Chapter 20. 完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네 포니들은 눈 깜짝할 새 포니빌 도서관에 돌아왔다. 베네보레 원정대는 요란한 엉덩방아를 찧으며 착지했다.
익숙한 실내의 정경과 온기. 그 안에 감싸인 일행은 마음속에서 북받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서서히 몽글대며 일행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트와일라잇 스파클만은 텔레포트가 아니라 제자리 뛰기를 한 것처럼 평온히 서 있었다.
“다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지?”
그녀는 일행을 돌아보며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간다고 간 거야! 환각 속에서 봤던 곳으로 이동한 거라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 지 어떨 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근데, 그건 도대체 뭐였어?”
잠시 트와일라잇을 응시한 뒤, 일행은 나무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누웠다. 그리곤 엄청나게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벌떡 일어나 서로의 몸을 방방 뛰어넘으며 덤블링을 해댔고, 소리 지르거나 울거나 웃으며 발굽을 마주잡았다. 서로 콧잔등을 부비고 쿠션이나 책들 위를 구르기도 했다.
이 소동에 이끌린 핑키 파이, 플러터 샤이, 스파이크, 애플블룸, 제코라가 계단 위쪽에서 옹기종기 고개를 내밀었다. 그 사랑스런 면면들을 발견한 대시는 그들 모두를 껴안고자 곧장 그 쪽으로 달려들었다.
래리티와 애플잭의 타깃은 트와일라잇이었다. 두 포니는 그간 겪었던 모험의 계기이자 성과 그 자체인 라벤더 색 유니콘을 맹렬히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트와일라잇이 뒤로 넘어지긴 했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마구 코를 비볐다. 심지어 더 강한 실감을 위해 몇 번 핥아보기까지 했다.
핑키 파이가 기쁨에 찬 고음을 발사하며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새하얀 유니콘과 오렌지 색 어스 포니의 품에 안겼고, 모두 행복하게 서로의 코를 맞댔다. 늘 얌전하던 플러터 샤이도 재회의 기쁨에 취해 친구들에게 향했고, 그녀를 뒤따라온 대시가 트와일라잇을 뒤에서 껴안은 채로 날아올랐다. 모여든 여섯 포니들 사이에 스파이크가 경쟁하듯 끼어들었다. 포니들은 그 꼬마 드래곤에게도 코를 비벼주었다.
그 다음엔 애플블룸이 아장대며 다가왔다. 애플잭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여동생을 안아 올렸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망아지가 언니에게 다정히 코를 비벼온 순간, 초록빛 눈동자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코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몇 마디 라임 있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병자를 위해 발굽 벗고 나서준 얼룩말을 향해 모든 포니들이 일제히 안겨든 탓이었다.
그렇게 모든 포니들이 모든 포니들과 포옹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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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과 코인사Nuzzling와 웃음으로 점철된 10여분이 지나고, 재회를 기뻐하던 열띤 분위기가 다소나마 진정되었다.
래리티는 이미 분명해져있던 사실을 뒤늦게 입에 담았다.
“트와일라잇. 너 완전 멀쩡하네!”
“너도 완전 멀쩡하네!”
트와일라잇이 웃으며 답했다.
“내가 제 시간에 맞춰 갔나봐!”
“요 귀염둥이 가스나야, 너가 우리 목숨을 살렸다 아이가! 니 아니었음 진짜 큰 사단이 났을 거데이!”
애플잭은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자신의 무릎에 애플블룸을 앉혔다.
“그런데 트와일라잇.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릴 찾아낸 거니?”
래리티가 물었다.
“어떻게 우리한테 온 거야?”
“베네보레 덕분이었지!”
라벤더 색 유니콘이 말했다.
“그 꽃이 뿔 부패증을 순식간에 완치시키고 내 마력까지 넘치게 채워줬거든! 그건 그렇고, 내가 너흴 찾아낼 수 있었던 건.......어흠, 그, 뿔 부패증을 앓을 때 말이지, 환각들이 좀 보였거든. 그 중에 너희 셋이 나오는 것도 있었어. 그래서 너희들이 어디에 있을 지 확실히 알 수 있었지.”
“환각이니 예지니 하는 거 안 믿는 주의 아니셨나?”
대시가 은근한 비웃음을 날렸다.
“그건 지금도 그래.”
트와일라잇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믿든 안 믿는, 그 환각으로 너흴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겠지.......그건 그렇고.”
보라색 동공이 새삼스레 커졌다.
“진짜, 그 커다란 녀석은 도대체 뭐야? 그렇게 큰 동물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어!”
“동물을 봤다구?”
플러터 샤이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큰 동물? 큰 아이였니?”
“거, 우리끼린 세계뱀이라고-”
“우우우-! 봤구나, 세계뱀! 내 핑키 센스가 그거 때문에 발동했던 거였어!”
핑키 파이의 발랄한 비명이 애플잭의 말허리를 끊었다.
“어땠어땠어땠어? 진짜 세계만큼 크디? 분명 그랬겠지 그치?!”
“에이, 그 정돈 아니었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능글맞은 허세가 묻어났다.
“빌어먹게 크긴 했어. 뭐, 어쨌든 내 개쩌는 번개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야.”
“번개라고?” 트와일라잇이 물었다.
“어, 그치-”
대시는 말문을 열며 몸을 일으켰다. 래리티도 그녀를 따라 일어섰고, 애플잭은 애플블룸을 내려놓은 뒤 두 친구들과 행동을 함께 했다.
“세상에 마상에!”
스파이크가 소리쳤다.
“너희들 그새 좀 변한 것 같은데!?”
모여 있던 포니들은 한 눈에 일행을 살피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과연 스파이크의 말대로였다.
래리티의 경우, 몸의 실루엣은 이전보다 늘씬해졌음에도 근육이 붙어서 탄탄해보였다. 애플잭은 원체 근육질이었던 몸이 더 튼실해져 있었다. 그들의 몸엔 아무렇게나 자라난 털들이 비죽비죽 솟아있었지만, 그 색깔만큼은 생기 있게 빛났다.
애플잭의 길드데일 제식 갑옷이 도서관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진한 검붉은 색 가죽에선 광이 났고, 엉덩이 부분에 금빛실로 수놓아진 길드데일의 상징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하게 명멸했다. 머리 보호대 꼭대기에 박혀있는 장식용 에메랄드도 멋진 초록빛을 발했다.
레인보우 대시의 목에는 스카프가 걸려 있었고, 몸에는 프롱혼들의 진청색 시질이 소용돌이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한층 더 야성적이고 용맹해 보였다.
래리티는 기다렸다는 듯 패션 전문가다운 포즈를 취했다. 사슴 군주가 직접 두드려낸 은색 갑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투구의 장식과 보호대에 그려진 문양 등 수정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반짝거렸다.
“그 갑옷들은 어디서 난 거니?”
플러터 샤이가 물었다. 청록색 눈동자가 동물 이야기를 할 때처럼 크게 떠졌다.
“으음, 말하자면 긴데.......내 갑옷이랑 애플잭 갑옷은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
“맞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맞장구쳤다.
“거, 내 갑옷은 길드데일에서-”
“언니, 길드데일이 뭐야-?” 애플블룸이 물었다.
“이퀘스트리아에서 산맥 하나만 넘어가면 나오는 나란디, 거는 어스 포니들만 한가득 살고 있데이.”
“어스 포니들만 한가득이라고?!”
노란색 작은 망아지는 기뻐하며 캐물었다.
“다들 어땠어? 생긴 거는? 우리랑 비슷해?”
“쪼-매 다른 부분도 있긴 했지마는, 거, 툭 터놓고 지내보이 이 짝이나 그 짝이나 결국 다 같은 포니드만.”
애플잭은 갑옷으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건 글코 이 갑옷으로 말하자믄, 이기 바로 길드데일 경비대 아들이 입는 제식 갑옷 아이긋나. 여서 길드데일 경비대가 뭔고 허니, 갸들은 황금빛 평원 전역을 순찰하며 조국을 수호하는 전사 포니들이데이.”
“전사 포니들? 우우-엄청 멋진데!”
핑키 파이가 분홍 구름 같은 갈기 속에서 팝콘 한 컵을 꺼내들며 외쳤다.
“내 갑옷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 보자면,” 래리티가 말했다.
“사실 이건 포니가 만든 게 아니란다. 쉬머우드 숲의 사슴이 만든 거지.”
“사슴을 만났니?” 플러터 샤이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사슴 한둘이 아니라, 숲에 사는 사슴 무리를 만났다구!”
레인보우 대시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프롱혼들도 만났지. 내 몸에 있는 이 문양이 걔들한테 받은 거야!”
그녀는 좌중을 위해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보였다.
“그 문양을 예전에 본 적이 있으니, 혹시 그건 프롱혼들의 시질이 아닌지?, 라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으니.”-라고, 제코라가 뒤늦은 사족을 달았다.
“프롱혼들?”
트와일라잇이 되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놀라움과 반가움이 혼재했다.
“프롱혼을 만났어?”
“응. 프롱혼 셋!”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하던 대시는 일순 고개를 갸웃댔다.
“근데, 너도 프롱혼들을 알아?”
“알지. 프롱혼들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메세지를 전달하러 태양궁에 자주 왕래했거든! 내가 공주님한테 일대일 교습을 받을 땐 거의 매일 프롱혼들을 봤었어.”
“메신저들이라고? 혹시 그 분들께선 메세지 전달을 위해 발굽과 머리털의 희생도 불사하시니? 아, 제 한 몸 바쳐 세계의 명령을 수행하는 용감하고 고귀한 종복들이여!”
핑키 파이는 앞발굽을 제 이마에 얹으며 드라마틱한 탄식을 내뱉었다.
트와일라잇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셈이지. 번개를 타고-잠깐! 너 방금 번개가 어쩌고 그랬지!”
그녀는 대시에게 다급히 물었다.
“너 설마 프롱혼들한테서 번개 다루는 법을 배운 거야?”
“아무렴, 그랬지!” 푸른 페가수스는 가슴을 한껏 내밀며 답했다.
“그거 진짜 멋지당!”
핑크색 어스 포니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빨리 이야기해줘!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줘! 빨리!”
“이야기.......이야기라.”
래리티는 핑키 파이의 말을 되새김질 하듯 입에서 굴렸다. 그녀와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거,”
애플잭의 입가에 의미 모를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가 그간 겪었던 시련들을 돌이켜보믄.......아주 장대한 대서사시가 하나 나오긴 허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말해줘! 나 그런 거 엄청 좋아해!”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이고, 요 귀염둥이 가스나야. 내가 방금 대서사시라칸게 농담 같나? 진짜 긴 이야기가 될끼다.”
“그게 어때서? 아직 시간은 많아!”
스파이크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마따나 태양은 아직 동쪽 하늘에 기울어져있는 채였다.
“흐으음, 그렇다믄야-”
애플잭의 이야기보따리의 입구가 느슨해 질랑 말랑하던 찰나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긴 회색 밧줄이 그녀의 발치에 떨어졌다. 툭, 하는 무미건조한 소리에 이어 우렁찬 고음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좌중은 소음의 근원으로부터 일제히 몸을 뒤로 뺐다.
“로피ROPEY! 시상에나, 니 진짜로 내헌티 온기가? 아이구, 로피야, 내가 써본 밧줄들 중에 니가 최고다!”
좌중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으며, 애플잭은 밧줄을 품안에 소중히 끌어안았다.
“으응, 감동적이야. 잘 됐네.”
트와일라잇은 얼떨떨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재촉했다.
“자, 이제 빨리 너희가 겪었던 일들을 얘기해줘.”
“어디보자.......”
대시는 짐짓 확실치 않다는 듯 말을 아꼈다. 사실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청중을 다루는 방법을 아는 건 비단 래리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빨리 듣고 싶은 걸.”
플러터 샤이가 말했다. 늘 그렇듯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샛노란 색의 날개만은 때때로 움찔대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우리 맘 타들어가네, 뜸 그만 들이고 어서 이야기 해주게.”
뒤편에 있던 제코라마저 좌중의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내 입이라도 떼다가 붙여 주고 싶은 심정이네, 입을 열지 않는 그대들에게.”
“호호, 물론 이야기해줘야지. 너희 모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자격이 있으니까.”
래리티는 마법으로 투구를 벗고, 보랏빛 갈기를 우아하게 털어내며 말했다.
“최소한, 우리가 베네보레를 구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알 자격은 충분하지.”
“중간에 점심시간만 제공 해준다믄야. 못 얘기해줄긋도 없제.”
애플잭이 로피를 옆에 내려두며 진심어린 농을 쳤다.
“울 스위트 애플 에이커 산의 신선한 사과가 진짜 미치게 먹고 싶었다 안카나!”
“여튼 다 말해줄게! 장담하는데, 내 얘기 중에선 너희 둘도 꽤 흥미로워할 법한 것도 있어.”
레인보우 대시가 래리티와 애플잭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나일스랑 프롱혼들이랑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너네들한테도 자세히 얘기해준 적 없었잖아.”
“내랑 애쉬테일 사이에도 이래저래 일들이 있긴 했제.......이따 말해주긴 하겠지만은.”
애플잭이 말햇다. 그녀의 목소리에 일어난 순간적인 변화를 감지한 건 핑키 파이 뿐이었다. 핑크색 뺨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능글맞은 주름을 그렸다.
“나한테도 너희 둘이 모르는 일들이 일어났었지.”
래리티가 한 마디 거들며 상황을 정리했다.
“흐음, 우리 셋도 이제야 우리 모험담을 완전히 알게 되겠구나.”
“나 가서 스위티 벨이랑 스크툴루 데려올래!”
애플블룸이 활기차게 발굽을 종종대며 외쳤다.
“걔들도 이거 듣고 싶어 할 거야!”
“그래, 우리 스위티 좀 꼭 데려와 주렴!”
새하얀 유니콘의 만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아, 내 귀여운 여동생! 너무 보고 싶어!”
“가는 김에 빅맥 오빠도 좀 델꼬 온나.”
애플잭이 여동생의 뒤통수에 대고 다급히 주문을 날렸다.
“글고 오빠헌티 사과도 좀 가꼬 오라캐라!”
“알겠어, 언니들!”
힘차게 대답한 뒤, 애플블룸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럼 난 차를 좀 타놔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파이크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은 생각이야, 스파이크!”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주전자에 물 올리고 나면, 펜이랑 종이 다발 좀 가져다줘. 한 장 말고, 다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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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달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위대한 광휘의 도시 캔틀롯. 이퀘스트리아의 수도인 이 도시엔 각양각색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지만, 그 중 으뜸을 꼽으라면 모두들 입을 모아 태양궁을 외칠 것이다.
궁전 내부 깊숙한 곳에는 태양의 여신이자 이퀘스트리아 최고 통치자를 위한 서재가 있다. 이 서재엔 거대한 벽난로가 하나 있는데, 그 벽난로에서 최근 반 년 동안 태워진 장작의 양이 지난 천 년간 태워진 양보다 많았다.
우정의 원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 날 밤에도 벽난로에선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초봄의 밤에 서린 철 지난 냉기를 막아내며 기세 좋게 이글거렸다.
그 포근한 온기 속에 셀레스티아 공주가 있었다. 그녀의 앞엔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있었고, 책상 옆엔 온갖 문서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양피지 냄새 풍기는 산의 구성물은 실로 다양했다. : 갖가지 긴급 공문과 보고서와 성명서부터, 이퀘스트리아가 국가로서 제 기능을 다 하게끔 하는 다양한 행정 부처들에서 올라온 의뢰서까지.
수입품들에 대한 보고서를 넘겨보며, 셀레스티아는 벌써 백 번째로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었다.
나 이제 진짜로 자러 가야 하는데. 꼭 잠을 잘 필요는 없지만.......
태양의 여신으로서의 신성과는 무관하게, 셀레스티아는 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잠이란 그저 기호의 문제였다. 그녀는 ‘수면’이라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을 좋아했다.
얼마 전부터 루나 공주가 정무에 복귀했다. 그녀가 밤에 관련된 직무를 다시 맡게 됨에 따라, 셀레스티아는 천 년 전에나 즐겼던 밤의 휴식을 다시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자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그녀는 지난 천 년 간 의무적으로, 또한 무리 없이 철야를 반복해왔다. 그녀에게 있어 철야란 이미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셀레스티아는 정무의 세세한 부분에도 최대한 신경을 기울이는 타입의 통치자였다. 사실 이는 한창 젊었을 적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한 때 그녀는 모든 정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 발굽으로 직접 처리하고자 하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이 이 집착증을 많이 뭉그러뜨리긴 했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도리질까지 쳐대며 충동과 집착증의 그림자를 털어냈다. 기다란 백색 뿔에서 금색 빛이 일렁이고, 수입품들에 대한 보고서가 한쪽으로 치워졌다.
저건 아침에 처리해도 될 문제지.
백색 알리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빛나는 아우라 같은 갈기가 신성한 기운을 타고 넘실거렸다. 장엄한 날개를 간단히 스트레칭하며, 그녀는 침실로 머리를 돌렸다.
그 때, 희미하게 빛나는 보라색 마력이 태양의 여신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 마력의 궤적은 위쪽 창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력은 잠시 반짝이더니 소용돌이쳤고, 이내 빨간 리본으로 묶인 두루마리로 변했다.
어머, 트와일라잇이잖아.
여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애제자의 다음 우정 보고서가 언제쯤 올지 슬슬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사실, 최근 며칠간은 궁금함을 넘어 걱정이 되기까지 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오던 게 2주 동안이나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우정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을 터였다.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음을 셀레스티아는 알고 있었다.
아주 넓은 파레트 같은 아이니까, 충분한 물감을 넣어주는 걸로 내 역할은 끝난 거야. 그걸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진 그 애의 몫이지.
염동력으로 두루마리를 집어 든 그녀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번 우정 보고서 두루마리는 이전까지의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못해도 수십 장 분량의 두께감이 느껴져서,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우정 보고서가 아닌 우정 논문처럼 보였다.
제자의 뜻을 숙고해볼 새도 없이, 마법 구름 두 개가 연달아 날아 들어오더니 대뜸 합쳐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종이 다발 묶음으로 변모했다. 새로 배달된 종이 다발들도 주섬주섬 집어 올리던 스승은 묶음들 사이에 책갈피처럼 튀어나와있는 페이지들을 발견했다. 그 페이지들의 빈 공간에는 각각 1, 2, 3, 4 라는 숫자가 하나씩 매겨져 있었다.
뒤이어 가냘픈 보라색 마력 줄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것은 공중을 한 바퀴 맴돈 후 얇은 두루마리로 변했다. ‘다섯 번째’로 추정되는 두루마리는 평소의 우정 보고서와 비슷한 두께를 갖고 있어서, 셀레스티아에겐 제일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두루마리의 바깥면에는
먼저 읽어주세요
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가장 늦게 온 건데?
사소한 호기심을 느끼며, 셀레스티아는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쿠션으로 돌아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허공에 떠있던 무지막지한 양의 두루마리들이 쿠션 옆의 카페트 위에 놓여졌다. 제자의 청에 따라, 그녀는 다섯 번째로 온 두루마리를 제일 먼저 펼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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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우선 지난 12일 동안 연락을 드리지 않은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용서를 구해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전 뿔 부패증을 앓고 있었어요. 제가 걸렸던 뿔 부패증은 일반적인 뿔 부패증에 비해 유독 경과가 나빴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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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세상에!”
셀레스티아는 속삭이듯 탄식했다.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뿔 부패증은 병자의 마력을 흡수하며 세를 불리는 위험한 질병이다. 그렇기에 트와일라잇 스파클처럼 강력한 마력을 지닌 포니에겐 특히 치명적이다. 어지간한 치유 마법으로는 치료되지 않으며, 오히려 질병에 마력을 불어넣어주는 꼴이 되어 병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럼에도 셀레스티아는 자신이라면 제자를 도울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최소한, 트와일라잇을 가사 상태로 만든 뒤 치료제를 조제할 시간을 벌 순 있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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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조화의 원소를 수호하는 다섯 친구들 중에선 핑키 파이와 플러터 샤이가, 그리고 다른 친구들 중에선 제코라와 애플블룸이 성심성의껏 절 돌봐주었어요. 모두들 절 즐겁게 해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고, 병증으로 고통 받을 땐 열심히 간호해주었죠. 제 첫 번째 조수이자 남동생인 스파이크가 그 모든 일들을 도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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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ㄹ-.......맙소사.”
셀레스티아는 애써 제 이름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앓아누운 채 죽어가는 애제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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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걱정 마세요. 지금은 완전히 나아서 평상시의 컨디션을 회복했답니다. 여기엔 다른 원소의 수호자 친구들인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 래리티의 공이 커요. 아치백 산악지대까지 이르는 긴 모험 끝에, 그 애들이 베네보레라는 약초를 찾아냈거든요. 그 약초가 뿔 부패증을 완치시키고 제 목숨을 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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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백 산악지대라?”
셀레스티아는 생각에 잠겼다.
이퀘스트리아에서 아치백 산악지대까진 날아서 간다고 쳐도 꽤 먼데. 애초에 그 셋 중엔 페가수스가 하나 밖에 없으니, 다 같이 가려면 걸어갈 수밖에 없었겠지. 포니빌 밖으로도 몇 번 안 나가봤을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 아치백 산악지대까지 도보 여행을 했다니, 이건 정말 보통 용기론 못할 일이야. 그렇고말고.
그녀의 시선이 카펫 위에 쌓여있는 두루마리들로 향했다. 1에서 4까지의 목차로 구성된 두터운 두루마리들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 지 얼추 짐작이 갔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의 편지부터 계속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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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험길에서 제 친구들은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운 대지들을 지났고, 놀랍고 환상적인 생물체들과 조우했어요. 이를테면 길드데일 왕국의 포니들과 그들의 왕, 황금 평원의 망치 발굽 경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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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셋이 길드데일의 국경도 통과했다고?”
셀레스티아는 미소를 띠며 궁리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그’ 길드데일 포니들이 자기들 나라의 국경을 열어준 거지?
영생을 누리는 태양의 여신은 수십 년 전의 망치 발굽 경 : 해머 후프를 알고 있었다. 그 젊은 왕은 자신의 황금빛 평원 왕국을 이종(異種)의 마법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며 꽤 고집스럽게 굴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여신 사이에 아주 교류가 없지는 않았다. 여신이 기억하기론, 그에게서 받은 편지가 적어도 한 통 이상은-
문득, 셀레스티아는 루나의 귀환을 아직 길드데일에 알리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는 몸소 해머 후프에게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다만 그러기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냐. 시간이 날 때 갈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가야겠지.
미소를 머금은 채, 셀레스티아는 다시 트와일라잇의 편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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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롱혼 네트워크의 세 프롱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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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하고도 만났던 걸까?”
그 금욕적이고 늙은 프롱혼은 근 60년 간 셀레스티아의 메세지를 전담해왔고, 오늘날에도 노쇠의 기색 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최근 추가된 이퀘스트리아 경유 노선은 나일스와 오드리가 담당했는데, 셀레스티아가 볼 때 이 둘은 예의바르면서도 아주 상냥했다. 그들에 비해 클라이브는 조금 딱딱했고 형식적으로 굴었다. 게다가 몽환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살짝 거만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한 때 늘 몽환시에서 지냈던 여신과 대화할 때조차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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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쉬머우드 숲의 사슴들과, 그들의 통치자인 레이디 팔라라우리아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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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라라를 만났구나!”
줄곧 조곤하게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크게 소리쳤다. 오랜 친구를 생각하는 셀레스티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아주 옛날 일은 아니었다.
“.......”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니 제법 오래 전 일인 것은 분명했다.
셀레스티아는 즉시 계획을 세웠다. 2주 내로 길드데일에 가서 루나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그대로 쉬머우드 숲을 방문하기로.
루나도 하루 이틀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국정 운영을 해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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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잭과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는 인내하며 모든 여정을 견뎌냈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의 힘을 이끌어냈고, 경험하며 배우고 성장했죠. 그 애들은 약 2주간의 모험담을 저희들에게 들려주었고, 저는 스파이크에게 그걸 기록하게 했어요. 제가 보내드린 다른 4개의 두루마리들은 그 기록을 기반으로 하는 여행기에요. 부디 공주님도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제 변변찮은 감상으로는, 이 여행기는 궁중 기록 보관소에 들어갈 만한 가치가 있어요. 인내와 용기, 희망의 장대한 대서사시로서요.
제 경험, 그리고 제 친구들이 저와 나누어온 경험은 제게 우정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어요. : 모든 상황이 아름답게 잘 굴러갈 때는 누구와도 우정을 쉽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한 우정은 삶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모진 풍파를 겪게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진정한 우정은 미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며, 진정한 친구는 그대가 가장 빛날 때나 절망에 잠겨 무기력해졌을 때나 변함없이 곁에서 발굽을 내밀어 준다. 진정한 친구는 그댈 위해 많은 것들을,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다. 그대가 만약 진정한 친구를 두고 싶다면, 그대 역시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로서 무언가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친구들이 저를 위해 해줬던 것처럼, 언젠가 저에게도 친구들을 위해 희생하고 투쟁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죠. 그 날이 오면, 전 망설이지 않고 그 도전에 맞설 거예요. 맞서서 우리 우정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거예요.
공주님의 신실한 제자.
트와일라잇 스파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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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다 읽은 스승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도 흡족해하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트와일라잇의 글에서 묻어나는 사랑과 우정을 느꼈다.
셀레스티아는 자신을 대신해 트와일라잇을 지켜내 준 그녀의 여러 친구들의 행동에 깊이 감동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내 소중한 제자야. 넌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날이 갈수록 현명해지고 있구나. 네 친구들도 그렇고.
태양의 여신이 보건대, 이는 세상에 이로운 일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셀레스티아는 소중한 제자에 대한 마음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앞서 독백했던 것처럼, 그녀는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사실 피곤함을 느껴본 적조차 없었다.
네 개의 두루마리 중 ‘1’이라고 표시된 두루마리가 공중에 떠올랐다. 셀레스티아는 시원하게 리본을 풀어내고는 그것을 펼쳤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훌륭한 여행기지.”
연보라색 눈동자가 활자들을 따라 찬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쟁기 포니의 날 아침의 포니빌을 느끼고 있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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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完. 끝.
https://www.fimfiction.net/story/182859/19/its-a-dangerous-business-going-out-your-door/chapt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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