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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gerous Business~Saga/[1부] It's a DB, GOYD.

It's a Dangerous Business, Going Out Your Door 17화

by BlackS 2022. 7. 23.

Chapter 17.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레인보우 대시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는 상체를 일으키고 주변을 두리번댔다. 몸을 뒤척이는 애플잭과 래리티가 보였다.

  

  애플잭의 눈꺼풀이 끔벅대며 천천히 열렸다.

  

  “, 좋은 아침이데이.”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하품을 하며 웅얼댔다.

  

  “. 좋은 아침.”

  

  푸른 페가수스는 대답과 함께 머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간밤에 너무 생생한 꿈을 꿔버린 탓이었다. 온갖 색들이 맥동하는 몽환시에 대한 꿈이었다.

  

  이제부턴 꿈만 꾸면 그런 걸 보게 되는 걸까?

  

  그녀는 진청색 시질Sigil로 덮인 앞발굽을 내려다보았다. 그 이질적인 문양은 볼 때마다 마음이 술렁거렸다.

  

  장밋빛 눈동자가 푸른 눈꺼풀에 가려졌다. 대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주 적은 양의 번개를 몸 안에 받아들였다. 작은 스파크들이 심장과 뼈마디 마디를 덩굴처럼 감쌌다.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몸풀기용 기상 루틴으론 이만한 게 없었다. 눈가에 맺혀있던 졸음기와 몸에 남아있던 피곤함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래리티는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뒷다리를 모아 앉았다.

 

  “좋은 아침이야, 얘들아.”

 

  친구들에 비해 확연히 밝은 목소리였다. 유니콘의 뿔에서 빛이 일렁였다. 벨벳 안장 가방이 열리고, 그 안에서 작은 거울과 빗이 경쾌하게 회전하며 들려나왔다. 그녀는 거울을 얼굴 앞에 띄운 채 보랏빛 갈기를 빗기 시작했다.

 

  “잘 잤니? 어쩐지 다들 피부가 뽀얀 게 망아지 같네. 물론 나도 그렇고! 역시 수면에서 중요한 건 시간보다 질 아니겠어?”

 

  애플잭은 카우걸 모자를 머리에 눌러 쓰며 코웃음을 쳤다.

 

  “허이구야, 요 가스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와이라노? 간밤에 멋들어진 숫말하고 데이트라도 하고 온 기가?”

 

  “아니. 그런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보람찬 밤이었단다.”

 

  애플잭의 눈썹이 뚜렷한 갈매기 모양을 그렸다. 래리티의 대답엔 의미심장하게 일렁이는 반짝임 같은 것이 있었다.

 

  저 가스나가 그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은디.......뭔가가 아리송하데이.

 

  하지만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더 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거짓말이 아닌 이상, 친구의 비밀을 무리해서 알아내려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싶었다.

 

  숙소 입구를 가리는 커튼 밖에서 부드러운 벨소리가 들려왔다. 대시가 꾸물대며 기어가 커튼 끝자락을 입에 물고 잡아 당겼다.

 

  숙소 입구엔 이네스가 서 있었다. 그녀의 뿔 사이에는 마력에 감싸인 종이 딸랑대며 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진홍색 눈동자의 암사슴이 환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모두 푹 주무셨으리라 믿어요!”

 

  “그럼 그럼, 완전 잘 잤지!” 대시는 힘차게 날개를 파닥대며 숙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납작한 담요랑 시트만 깔아놓은 돌침대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었다구!”

 

  “여기서 살다보면, 최고의 안락함은 소박함에서 나온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되지요.”

 

  이네스가 답했다. 그녀의 뿔 사이에서 울리던 종이 사라졌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번에도 레이디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실 거예요.”

 

  “잠시만요.......”

 

  래리티가 발굽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갈기 손질은 이제야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롤 빗이 보랏빛 갈기를 말았다가 다시 풀어내며 부드럽게 빗어냈다. 그 궤적에 탄력 있는 볼륨감이 남아 갈기를 멋들어지게 띄워 올렸다.

 

  “좋아요. 이제 완벽해요.”

 

   래리티는 빗과 거울을 도로 안장 가방에 집어넣었다.

 

  “어디 보자, 아침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우리 꽃사슴 양?”

 

  “맞아요.” 이네스가 답했다.

 

  래리티는 지면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애플잭도 그 뒤를 따랐다.

 

  “레이디께선 여러분 모두와 꼭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초대에 응하시겠다면, 절 따라오세요.”

 

  “어제 저녁 먹었던 데랑 같은 데가 아닌가 보네예?” 애플잭이 물었다.

 

  “아뇨. 이번 아침 식사는 좀 다릅니다. 이리 오시면 보여드리지요.”

 

  이네스는 몸을 돌려 나무들 사이로 발굽을 옮겼다. 세 포니들은 래리티, 애플잭, 레인보우 대시의 순으로 사슴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높이에 매달려있는 건물들의 크고 작은 그림자들을 지났다.

 

  “얘들아, 저것 좀 봐!”

 

  나무들을 멀거니 올려다보던 대시가 갑작스레 외쳤다.

 

  “불빛! 불빛들이 하얘졌어!”

 

  우거진 나뭇가지들로 형성된 숲의 지붕에 점점이 박힌 광점들이 금빛에서 새하얀 은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빛이 된 광점은 전날 저녁보다 밝고 깔끔한 광채로 숲을 밝히고 있었다.

 

  “시간에 따라 색이 바뀌거든요.”

 

  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아침엔 은색으로 시작해서, 날이 저물수록 금빛을 띠게 되죠. 한밤중엔 확실한 금색이 되고요. 그러다 동틀 무렵이 될수록 다시 은빛을 띠게 돼요. 우리는 저 빛의 색을 통해 낮과 밤을 파악하고, 그 사이클에 따라 생활 패턴을 유지하죠.”

 

  그럼 난 거의 한밤중에 폐하랑 대화를 나눴던 거구나.

 

  래리티는 세례식이 있던 호숫가에서 봤던 금색 광점들을 생각했다. 그 안락하게 빛나던 광점들이 맥동하며 섬광처럼 번쩍이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오한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 난 그대와 그대의 친구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래리티는 이 서슬 퍼런 고백이 빈 말이 아니었으리라고 확신했다.

 

  가볍게 내뱉을 내용은 아니잖아, 이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다지고 하셨던 말씀이 분명해. 그런 굳은 마음이 내 즉석연설만으로 돌아섰던 걸까? 우릴 곱게 보내주겠다고 생각을 바꾸신 이유가 정말 그 연설 때문이었던 거야?

 

  뒤늦게 밀려든 안도감이 새하얀 유니콘의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배어나온 식은땀이 하얀 털들을 축축하게 적셨다. 믿음에 관한 담론을 당당하게 설파하긴 했지만, 사실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온 대로 뱉어낸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 말이 갖게 될 무게를 그 때부터 의식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래리티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

 

  일행은 이네스의 인도를 받으며 나아갔다. 그들은 수정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가득한 수풀을 지나 작은 잡목 숲으로 들어섰다. 이네스는 작은 나무들과 덤불들 사이를 헤치며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잠시 후 그들은 빈터에 도착했다. 은빛 광점들이 내뿜는 빛으로 둘러싸인 그 곳은 동틀 무렵의 탁 트인 평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빈터의 한가운데엔 연못이 있었는데, 한 줄기의 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그 연못에 흘러들고 있었다.

 

  연못의 오른편 기슭에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전날의 저녁 식사 때와 마찬가지로, 목재 연단 위에 수정 테이블이 놓여 있는 채였다.

 

  그 테이블의 옆에 사슴 군주가 서 있었다. 그녀의 두 뿔 사이엔 금색 실크 띠가 걸쳐져 있었고, 머리엔 수정으로 된 머리띠가 씌워져 있었다.

 

  이네스는 군주의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뒷발굽을 슬쩍 움직여, 자신을 따라하라는 신호를 포니들에게 보냈다.

 

  이네스는 금빛 암사슴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어젯밤의 경험으로, 래리티는 그것이 라우틸 어임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보고를 마친 뒤, 이네스는 일행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떴다.

 

  “좋은 아침이에요, 내 벗들이여.”

 

  팔라라우리아가 너그러이 말했다.

 

  “다들 잠자리는 평안했는지요?”

 

  “, 아주 놀다 지친 망아지 마냥 골아떨어졌심더.” 애플잭이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금빛 암사슴이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침 식사가 곧 나올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여러분 모두 씻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녀는 연못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속이 맑게 비쳐 보이는 연못 위로 폭포가 쏟아지며 새하얀 비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 세상에! 좋아요! 최고야!”

 

  래리티가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쏜살같이 물가로 달려간 뒤 발굽을 물에 살짝 담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가 느껴졌다.

 

  “, 목욕. 목욕이라카시믄.......더 말할 것도 읎지예.”

 

  애플잭도 흡족함을 표했고-

 

  “꼭 해야 되는 건 아니겠지?”

 

  레인보우 대시만이 뜨악한 눈빛으로 연못을 곁눈질했다.

 

  “셀레스티아 님 맙소사.”

 

  래리티는 경악에 찬 얼굴로 대시를 쳐다보았다.

 

  “대시. 너 마지막으로 목욕했던 게 언제니?”

 

  “.......”

 

  푸른 페가수스는 눈알을 데구룩 굴리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길드데일? 거기서 내가 씻었던 적이 있었나? 한 번은 씻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느냐, 이걸 묻는 거지? .......”

 

  “그게 고민할 문제니? 결정 났네, 이건.

 

  래리티는 단호히 말했다.

 

  “빨리 들어오렴. 기분이 개운해질 거야!”

 

  유니콘의 마법이 대시의 앞발굽을 잡아 당겼다.

 

  “, 알겠어! 알았다구!”

 

  대시는 킬킬대며 래리티 너머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연못 위에서 대뜸 날갯짓을 멈추었다. 푸른 몸뚱이가 그대로 연못에 떨어졌고, 거대한 물보라가 새하얀 유니콘을 흠뻑 적셨다.

 

  “너 진짜 개운해 보인다, 래어.”

 

  “근디, 혹시 비누 갖고 온 가스나 있나?”

 

  애플잭의 물음에 팔라라우리아의 뿔이 반짝였다. 그러자 호숫가에 세 조각의 허브 비누가 생겨났다. 래리티는 또 한 번 행복에 찬 비명을 내지른 뒤, 발굽 사이에 비누를 끼우곤 온 몸에 거품을 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모자를 벗고는 조심스레 연못에 몸을 담갔다.

 

  “가만 있어보렴, 대시. 네 날개를 좀 닦아야겠어.”

 

  래리티는 때에 찌든 깃털들에 비누를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대시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끅끅대는 소리를 냈다.

 

  “어머, 너 날개에서 간지럼 타는구나?.......그건 몰랐는데.”

 

  래리티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비누를 쥔 발굽이 페가수스의 날개 구석구석을 내달렸다. 대시는 끝내 자지러지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물속에서 몸을 외로 꼬며 래리티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애플잭의 입가에 흡족한 웃음이 지어졌다. 기분이 안 좋아 보였던 래리티가 한껏 신을 내는 모습이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비누를 집어 들고는 앞다리 아래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사슴 군주가 준 비누는 샴푸처럼 세척력이 좋았다. 그녀는 내친김에 금빛 갈기와 꼬리에까지 비누칠을 했다.

 

  아침 식사가 차려지는 동안, 애플잭은 머리까지 물에 담근 채 마지막 남은 비눗기를 헹궈내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상차림이 끝난 뒤였고, 팔라라우리아는 테이블 앞에 앉아 포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스나들아, 인쟈 그만 밥 묵자.”

 

  애플잭이 물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레인보우 대시가 그 말에 따라 호숫가로 헤엄쳐갔다. 래리티도 그 뒤를-따르려 했으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래리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느낌을, 테이블 옆에 서면 느껴질 감각들을 상상했다. 부드러운 잔디, 선선한 공기, 야트막한 언덕의 오르막길. 그녀는 정신을 집중한 채 뿔에 마력을 순환시켰다.

 

  테이블 앞에 다다른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는 래리티가 따라오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래리티?”

 

  애플잭은 새하얀 유니콘을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니 퍼뜩 안 오고 뭐-”

 

  그 순간, 래리티의 모습이 사라졌다.

 

  “래리티?!”

 

  애플잭은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움찔댔다. 초록빛 눈동자가 다급하게 흔들리며 온 사방을 흘깃댔다.

 

  “나 불렀니, 애플잭?”

 

  왼편에서 래리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플잭은 황망히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온몸을 푹 적신 채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래리티가 보였다.

 

  “, 니 방금.......”

 

  애플잭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가스나야, 니 방금 텔레포트 한 거 아이가!”

 

  “다시 해 봐! 다시!”

 

  레인보우 대시가 열렬히 소리쳤다.

 

  래리티는 다시 눈을 감았다. 뿔에서 아주 잠시 동안 빛이 일렁였고, 다음 순간 그녀는 사라졌다가 대시의 옆에 다시 나타났다.

 

  “폐하께서 사슴 방식의 텔레포트를 가르쳐주셨거든.”

 

  래리티가 말했다. 착 붙은 갈기에서부터 흘러내린 물방울이 그녀의 턱선을 타고 떨어졌다.

 

  “한 번 느낌 알고 나니까, 그리 어렵지도 않더구나.”

 

  “이 말은 안 할 수가 없네요. 래리티는 정말 쉽게 배워냈어요.”

 

  팔라라우리아가 옆에서 거들었다.

 

  “래리티는 우리들의 텔레포트를 익히기에 최적의 재능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폐하, 혹시 수건 좀 빌려 쓸 수 있을까요?”

 

  래리티의 청에 팔라라우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우린 수건 같은 건 거의 쓰지 않아요. 이런 걸 할 수 있으니까요.”

 

  사슴 군주의 뿔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러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세 포니들의 털 사이사이에까지 세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홀딱 젖어있던 일행의 몸은 삽시간에 보송보송해졌다.

 

  팔라라우리아는 흡족한 웃음을 띠었다.

 

  “, 이제 식사들 하도록 해요. 메뉴는 셀러리Celery와 스프링 롤Spring roll이랍니다. 차도 준비되어 있구요.”

 

  “그거 짱이다!”

 

  레인보우 대시가 신나게 외치며 금빛 암사슴의 옆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앞발굽 사이에 찻잔을 끼워 들고는 한 모금 홀짝였다.

 

  “햐아, 이거 향 좋네.”

 

  “? 대시. 너 차 마시는 거 좋아하니?”

 

  래리티는 대시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건 몰랐는데. 마실 때 나 좀 부르지 그랬어.”

 

  “사실 자주 마시진 않아. 그냥 기회 되면 마시는 정도지.”

 

  “언제 한 번 날 잡고 너랑 차 한 잔 해야겠구나.”

 

  “차도 좋제. 좋긴 헌데.......”

 

  래리티의 옆에 앉으며, 애플잭이 말했다.

 

  “폐하. 혹시 차 말고 커피나 다른 건 좀 없겠심꺼?”

 

  “물론 있지요.”

 

  팔라라우리아의 뿔에서 또 다시 빛이 일렁였다. 애플잭의 앞에 검은색 액체로 채워진 묵직한 머그잔이 나타났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피어났다.

 

  옴마야, 길드데일에서도 커피는 구경도 못해봤는디!

 

  그녀는 피어오르는 김의 따스한 열기와 씁쓸한 향을 만족스레 들이마셨다.

 

  “, 이런, 죄송합니데이, 폐하.”

 

  애플잭은 팔라라우리아가 식전 연설을 아직 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 엊 저녁 때 보이 식사 전에 뭔가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예.”

 

  “아녜요. 괜찮답니다.”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여긴 우리들뿐이니까요. 평상시엔 나 혼자서 아침 식사를 하거든요. 식전 기도는 여러분 재량껏 하면 돼요.”

 

  “이렇게 융숭히 대접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래리티는 스프링 롤 하나를 마법으로 집어 올리며 말했다.

 

  “폐하의 관용 아래에서.......참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네요.”

 

  “나 역시도 그래요.” 팔라라우리아는 즐거이 화답했다.

 

  래리티와 사슴 군주 간의 아리송한 대화에서, 애플잭은 아침에 래리티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캐묻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느낌을 좀 활용해볼라믄, 일단 느낌을 무시하는 방법부터 배워야겠지 싶은디. 하얀 거짓말이란 것도 많이 있다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이래뿔면 불편해서 우예 살긋노. 폐하께선 요 숲에 마력이 퍼져있다 카셨었지. 여서 나가믄 좀 나아질까 모르겄네.

 

  애플잭은 커피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그동안 대시와 래리티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여기엔 우리 밖에 없어요. 내 아이들에겐 잠시 자리를 피해달라고 말해뒀거든요. 그러니 조화의 원소에 대한 질문이 더 있으면 해도 좋아요.”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원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슴들 앞에선 하지 않는 게 좋겠더군요. 난 내 아이들을 믿지만, 조화의 원소 수호자들에 대한 정보는.......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겠죠. 게다가 셀레스티아도 그러길 바랄 거예요.”

 

  “지도 글케 생각합니더. 거 동네방네 소문나서 좋을 게 뭐 있겠심꺼.”

 

  “난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대시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팔라라우리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혹시 충실의 원소에 대해서 뭐 새로 알아낸 거 없어? 아니, 부담 갖진 말구, 그냥 궁금해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있어요.”

 

  팔라라우리아가 답했다.

 

  “원한다면 사적으로 알려줄 수도 있고요.”

 

  “그럴 필욘 없어.”

 

  푸른 페가수스는 딱 잘라 말했다.

 

  “내 친구들이 안다고 문제될 것도 없고.”

 

  “그렇다면야.”

 

  금빛 암사슴은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충실의 원소는 영감이나 강화와 같은 부류의 재능을 수호자에게 부여해줘요.”

 

  “영감?”

 

  대시가 되물었다.

 

  “다른 포니들한테 아이디어를 준다, 뭐 그런 거야?”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에요. 그대는 그대의 친구들, 가족, 신념 같은 것들을 굉장한 수준의 충실함을 가지고 대하지요. 그대의 재능은 이 충실함을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들 각자가 가진 무언가 혹은 그대가 고른 무언가나 그대가 가진 무언가에 대해서, 그대와 같은 수준의 충실함을 가지고 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대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 이들이 그에 맞서 도전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줄 수 있고, 그들이 나약해졌을 때 더 많은 힘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할 수 있죠. 만약 그들의 정신이 망가졌다면, 그걸 치유해줄 수도 있어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실의 원소가 부여하는 재능은 리더십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리더십이라, 그건 좀 이해가 되네.”

 

  대시는 발굽에 볼을 기댄 채 말했다.

 

  “난 명령에 따라 고분고분하게 뭘 잘해내 본 적은 없거든.......만약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서 뭘 하는 식의 재능이 나왔다면 그건 좀 이상했을 거야.”

 

  그녀는 키득대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난 내 일은 늘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왔었거든.”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대를 따랐겠죠, 그렇지 않나요?”

 

  “.......근데 생각해보니 말야, 난 이끄는 위치에 서본 적도 없어.”

 

   대시가 소심하게 웅얼거렸다.

 

  “레인보우, 이 가스나야, 그기 무신 소리고?”

 

  애플잭이 끼어들었다.

 

  “포니빌 함 생각해바라. 그기 포니들 중 절반은 니가 세상에서 젤 멋진 줄 안다 아이가. 닌 온 동네 망아지들 우상이데이. 애플블룸 고 사고뭉치 꼬매이도 니 멋지다카더만.”

 

  “그거랑 이끄는 건 좀 다른 거잖아.”

 

  대시는 주눅 든 채로 불만스레 쫑알댔다.

 

  “내가 암만 애를 써도, 내 뒤를 따르고 싶어 하는 포니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그대의 재능은 아직 완전히 개화된 게 아니에요.”

 

  팔라라우리아가 달래듯 말했다.

 

  “언젠가 그대는 필연적으로 그대의 재능을 갈고 닦는 길을 고르게 되고, 강력한 리더쉽을 갖게 될 거예요. 이건 상식적인 수준의 설득력만 갖추면 충분히 이룩할 수 있는 경지에요. 그대가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

 

  대시도 자신이 다른 포니들을 들들 볶는 데 일가견이 있음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듣는 이의 신경을 건드리는 조롱에 능했고, 이는 포니빌에서 가장 냉정하고 시큰둥한 포니의 엉덩이도 들어 올릴 수준이었다.

 

  근데 이걸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나? 내 주도로 상대를 움직이게 한다, 이게 이끈다라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시는 애플잭이 말했던 것에 대해서도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대시 역시 자신을 향한 포니빌 망아지들의 동경을 잘 알고 있었다.

 

  듣자하니, 날 만났던 망아지들은 죄다 집에 가면 엄마 아빠한테 레인보우 대시처럼 되고 싶다고 떼를 써댄다지. 심지어 페가소스가 아닌 애들까지도 말야.

 

  게다가,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대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대시에게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위험에 직면했을 때 겁먹지 않고, 보다 용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거야 뭐, 다 잘된 일이긴 해. 근데 이런 것도 원소의 재능 같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쳐 주나?

 

  “생각해보렴, 대시. 네가 앞에 나서거나 연설을 할 때마다 온 마을 포니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잖니.”

 

  래리티가 대시의 얼굴에 떠오른 불신을 감지하고 그녀를 다독였다.

 

  “네가 했던 말들을 듣고 난 너에 대한 평가를 바꿨단다. 이 내가. 이 래리티가 말야. 내가 한 번 내렸던 판단을 스스로 번복하게 만들었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란다.”

 

  “그건.......그렇지.”

 

  그 순간, 대시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눈앞의 새하얀 유니콘은 그녀 자신의 말마따나 고집스러운 포니였다. 대시도 그런 래리티와 자신이 지금처럼 친한 친구가 되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저기.”

 

  대시는 팔라라우리아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재능 말인데, 그럼 난 다른 포니들이 진짜로 나한테 동의하는 건지 아님 내 재능에 홀려서 동의하도록 만들어진 건지 절대로 알 수 없는 거 아니야?”

 

  장밋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난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거야?”

 

  “그럴 리가요.”

 

  금빛 암사슴이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리더가 되는 것과 친구가 되는 것. 이 둘은 서로 다른 방식의 관계랍니다. 그대는 다른 이들이 그대를 따르도록 만들 순 있겠지만, 그렇게 그대를 뒤따르게 된 자들이 그대의 친구가 되는 건 아니에요. 그대가 지금 가진, 그리고 앞으로 사귀게 될 진짜 친구들은 그대의 재능과는 무관해요.”

 

  “, 가스나야. 우린 옛날부터 친했었다 아이가.”

 

  애플잭은 오랜 친구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냈다.

 

  “내는 순전히 내 의지로 니랑 친구 먹은 거데이. 안 그랬으믄 내 일케 니랑 허물없이는 몬 지냈을 끼다.”

 

  “나도 그래. 우리 모두 네 친구란다, 대시.”

 

  래리티 역시 부드럽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우정을 강제할 수 있는 마법은 어디에도 없어.”

 

  “으음.......”

 

  대시는 마음 한구석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물질세계를 보는 창을 닫고 영혼을 개방했다. 번개가 흘러들어와 내면에 휘몰아치도록 두었다.

 

  나는 바람 위의 나뭇잎일지니.

 

  대시가 이제껏 쌓아온 우정들이 그 주체에게로 다가왔다. 형형색색의 본질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우정을 강제해본 적이 없음을 확신했다. 포니든 그 외 생물체든, 이 푸른 페가수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을 참고 견뎌줄 수 있는지 여부였다.

 

  못 버티시겠다면야, 어쩌겠어. 그때부턴 그 쪽 사정인거고. 난 바람 위의 나뭇잎이야. 그냥 걔들이 알아서 하게 두는 거야.

 

  “너희들 말이 맞는 것 같아.”

 

  대시는 비로소 의심을 걷어내며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곧 또 다른 의문점이 찬물처럼 그녀의 뇌리에 끼얹어졌다.

 

  그럼 따른다Following’ 는 건 뭐지? 바람 위의 나뭇잎처럼 살면서 남들을 이끈다는 게 가능할까? 어떻게?

 

  “리더가 된다는 건.......이끌어야 할 때 뿐 아니라 따라야 할 때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대시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을 향해 말했다.

 

  “가끔은 내가 독단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한 적도-아니, 사실 자주 그래왔었지. 그치만 며칠 전에.......프롱혼들한테서 배웠거든. 외부의 영향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말야. 무슨 일이든 내 방식대로만, 내가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순 없는 거더라고. 내가 설령 이끄는 자Leader가 되는 걸로 정해져 있다 해도, 때로는 이끌어지는 자의 위치에 서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거야.”

 

  팔라라우리아의 별빛 눈동자가 가늘게 떠졌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엘크들의 가장 현명했던 왕과 여왕들이 할 법한 말이군요. 그대는 좋은 리더가 될 거예요, 레인보우 대시. 사실 이미 그렇죠. 적어도 그댄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단 좋은 리더예요.”

 

  “진짜 그렇게 됐음 좋겠다.”

 

  대시는 불신을 완전히 걷어내진 못한 채 말했다.

 

  “포니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싶진 않아. 절대.”

 

  “여하튼, 그럼 인쟈 원소 둘은 얘기가 다 끝났다 아이가.”

 

  애플잭이 부드럽게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남은 건 하나제? 폐하. 래리티 껀 어떻심꺼?”

 

  “맞아. 래리티한텐 관용의 원소가 있지. 래리티의 재능은 뭐야?”

 

  팔라라우리아는 자연스럽게 래리티에게 눈짓을 보냈다. 새하얀 유니콘은 사슴 군주에게만 보이게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래리티의 재능이라면, 내가 어젯밤에 직접 알려주었답니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 하는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설명하도록 하지요. 관용의 원소의 재능은 그 수호자로 하여금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감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뭔가를 필요로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볼 수 있죠. 생물체들의 과거를 봄으로서 그들이 어떤 삶을 거쳐 어떤 걸 필요로 하게 됐는지 알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생물체들의 미래도 볼 수 있죠. 이를 통해 그들이 후에 어떤 걸 필요로 하게 될 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요.”

 

  억센 농군 포니의 앞발굽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애플잭은 래리티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가스나야, , 니가 미래를 본다꼬?”

 

“.......-.......” 래리티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양 앞다리를 작게 펼쳐보였다.

 

그니까, 팔라라우리아 같은 능력이란 거잖아! 완전 멋져! 쩔어!”

 

레인보우 대시가 두 눈을 빛내며 열광했다.

 

엄밀히 따지면 나랑 같은 능력은 아니에요.”

 

  사슴 군주의 설명이 뒤따랐다.

 

  “래리티에겐 통찰안이 없으니까요. 보이는 수많은 미래들 중 어떤 미래가 제일 실현 가능성이 높을지는 알지 못하죠. 하지만 천리안의 측면에서 보면, 맞아요. 래리티의 재능은 천리안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제가 그걸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래리티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됐으니, 어젯밤에 폐하와 얘기를 나눴었다는 걸 너희한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 폐하의 말씀을 들을수록 기가 죽긴 했었지만 말이야.”

 

  “원소의 재능은 그대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짐이 될 수도 있어요.”

 

  팔라라우리아는 찻잔을 마법으로 띄워 올리며 말했다.

 

  “재능을 제대로 다뤄내지 못한다면, 한 때 선물이었던 그것들은 점점 무거운 짐으로 변모해갈 것입니다. 부디 명심하세요, 내 벗들이여. 재능은 그대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재능에 소모되어선 안 되는 것이지요.......나는 그런 우를 범한 적이 있습니다.”

 

  세 포니들은 귀를 쫑긋대며 사슴 군주에게 몸을 기울였다.

 

  “한 때 난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의 과거와 미래를 보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였었지요. 세세한 것들에까지.......편집증적으로 집착했었습니다.”

 

  “편집증이라. 어서 많이 듣던 얘기 아이가?” 애플잭이 래리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앎의 저주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그 날, 난 모든 것들을 굽어보려 했습니다.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들을 한 번에 관찰하려 했지요. 권능을 넘어서, 진정한 전능(全能)을 내 발굽에 넣으려고 했던 거예요.”

 

 

<"진정한 전능(全能)을 내 발굽에 넣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래리티가 물었다.

 

  “해냈습니다. 몇 초 정도였지만요. 아주 짧은 신위(神威)를 맛본 대가로, 내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요컨대, 정신이 나가고 말았단 거지요. 그 상태로 아주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했어요.”

 

  금빛 암사슴은 시선을 낮추며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난 내 흰꼬리사슴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결국 날 회복시켰던 건 그 아이들의 존재와 그들이 내게 베푼 진실함이었거든요. 그리고 내가 무력해져있는 동안 쉬머우드 숲을 지켜주기도 했고요.”

 

  래리티는 몸을 떨고 있었다. 애플잭이 가만히 그녀에게 기대며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그건 그렇고, 알려줄 게 더 있어요.”

 

  팔라라우리아는 세 포니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대들의 원소들과 각각의 재능들을 개별적으로 여겨선 안 돼요. 조화의 원소가 여섯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 모여 하나의 우정을 상징하는 여섯 원소들이니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대들 셋, 그리고 다른 친구들 셋도 마찬가지에요. 모두들 거대한 조화를 이루는 부분들이에요. 하나로 결합함으로서, 각자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내는 데 그 의미가 있죠.”

 

  “다른 세 원소들의 재능은 뭔가요?”

 

  래리티가 물었다.

 

  “친절, 웃음, 마법의 원소가 주는 재능은 뭐죠?”

 

  “그건 그 원소의 수호자들에게 직접 말해주고 싶네요. 원소를 수호하는 생물체의 사적인 정보들은 그 당사자가 직접 밝히기 전까진 신중히 다뤄야한다, 라는 게 셀레스티아와 사슴장로들의 생각이었거든요. 나도 그렇고요. 그나저나 그대들 셋으로 추측해보면, 다른 세 친구들도 각자 가진 재능의 존재는 인지하고 있거나 이미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제쳐 두고서라도 말이죠.”

 

  팔라라우라아는 무게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권능으로 보건대, 언젠가 그대들 여섯 모두가 각자의 모든 잠재력을 알게 될 날이 올 거예요. 그 날을 대비하도록 하세요. 그 날이 오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어야 해요.”

 

  래리티의 두려움이 다소 가라앉은 듯 보였다. 애플잭은 부드럽게 그녀로부터 몸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즈인 벌써부터 글케 해왔심더, 폐하. 특히 래리티랑 레인보우랑 지는 이번 여행에서 서로헌티 많이들 의지하고 있지예.”

 

  “이 여정이 그대들 셋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대들은 강해졌고, 서로 우정을 공고히 했어요. 이를 통해 각자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나기도 했죠. 그대들 셋은 각자가 가진 조화의 원소에 대해 잘 몰랐던 만큼, 서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죠. 이 여정에서 쌓은 경험들은 그걸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지만요.”

 

  팔라라우리아는 음식이 차려진 접시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일단 아침 식사부터 드는 게 어떨까요. 여행의 끝이 그대들의 발굽 코앞에까지 다다랐습니다.”

 

  “포니빌로 돌아가는 길을 빼고 생각해보면, 그렇겠지.” 레인보우 대시가 덧붙였다.

 

  “, 맞아요.”

 

   팔라라우리아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요, 돌아가는 길도 있었지요.......”

 

  애플잭의 눈썹이 또 한 번 아치형을 그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전부터 깨작대던 셀러리를 다시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그 다음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 옆에선 래리티가 조심스럽게 스프링 롤을 베어 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대시는, 늘 그랬듯이 끔찍한 테이블 매너를 선보이며 식사를 해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래리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거니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일행은 별다른 대화 없이 평온하게 각자의 식사에 집중했다. 그릇이 다 비워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제 주간 경비대가 그대들이 쉬머우드 숲을 통과할 수 있도록 안내해줄 겁니다. 나도 동행할 거예요.”

 

  팔라라우리아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별로 먼 거리는 아니에요. 게다가 쉬머우드 숲의 서쪽 경계는 아치백 산악지대의 기슭과 맞닿아 있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이소, 폐하. 즈이 물건들이 아직 숙소에 있심더.”

 

  “어젯밤에 방에 짐을 풀어놨나요?”

 

  “그건 아이긴 헌데.......”

 

  사슴 군주의 거대한 뿔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 순간 래리티와 레인보우 대시의 안장 가방이 원래 거기 있었던 것 마냥 소유주들의 옆구리에 나타났다. 길드데일제 가죽 갑옷들도 애플잭의 몸 위에 나타났는데, 직접 입은 것처럼 단단히 매여진 채였다. 조금 뒤엔 애플잭의 안장 가방이 그녀의 엉덩이에 나타났다. 물론 이것도 제대로 조여져 있었다.

  래리티는 남몰래 자신의 오른쪽 안장 가방을 마법으로 더듬댔다. 네모반듯한 책표지의 감각이 느껴졌다.

 

  “다들 따라와요.” 금빛 암사슴은 몸을 돌려 폭포 쪽으로 나아갔다.

 

  그 때, 선두에 선 팔라라우리아의 옆으로 푸른 페가수스가 날개를 파닥대며 다가왔다.

 

  “저기, 나 물어볼 거 또 있어.”

 

  “뭔가요?”

 

  “우리는 내면에 조화의 원소들을 받아들였다고 했었잖아. 그럼 나이트메어 문을 정화할 때 썼던 목걸이는 뭐야? 그 왜 있잖아. 우리 큐티마크 그려져 있는 그거.”

 

  “목걸이.......목걸이라.......”

 

  금빛 암사슴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건 일종의 보조도구에요. 그대들에게 내재된 마력과 주변의 외부 마력을, 조화의 원소가 있는 그대들의 정신에 집속시키기 위한 것이죠. 그 목걸이를 걸면 원소 자체와 그 원소가 부여하는 재능이 일시적으로 강해질 거예요. 오랜 기간 계속해서 착용하고 있으면, 재능의 위력이 서서히, 하지만 영구적으로 강해질 거고요. 물론 재능을 강화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은 수련과 연습이지만, 목걸이를 계속 걸고 있는 것도 도움은 될 거예요. 방금 말했다시피, 목걸이는 보조도구니까요.”

 

  “나이트메어 문을 정화한 다음엔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목걸이들을 전부 가져가셨답니다.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어요.” 래리티가 말했다.

 

  “그대들이 요청만 하면 돌려줄 거예요.”

 

  팔라라우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단언했다.

 

  “그 목걸이를 필요로 하는 이유까지 말한다면, 더더욱 주지 않을 리가 없지요.”

 

-

 

  사슴 군주와 세 포니들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진입했다. 발굽이 닿는 곳 어디에든 덤불과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수북했다. 땅에 내려온 대시는 애플잭의 옆에서 걸었고, 애플잭의 다른 쪽 측면에는 래리티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의 앞에 풀로 덮인 오솔길이 나타났다. 길의 양 옆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완전 무장한 일곱 사슴들과 이네스가 서 있었다. 사슴들은 자신들의 군주가 다가오자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팔라라우리아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와 함께 이 아이들이 그대들을 안내해줄 겁니다.”

  

  팔라라우리아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우린 쉬머우드 숲의 중심부 근처에 있어요. 서쪽 국경까진 한나절 정도 걸릴 거예요. 서두를 필욘 없어요.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그대들의 페이스에 맞춰서 갈 겁니다.”

  

  세 포니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래도 뛰긴 해야지 않긋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래리티가 애플잭의 제안에 맞장구를 쳤다.

 

  “해질녘 전까진 산악지대에 도착했으면 좋겠거든.”

 

  “그럼 당장 가자!”

 

  레인보우 대시는 페이스를 한껏 올리며 달려 나갔다. 애플잭이 그녀와 발굽을 나란히 했고, 래리티는 그 둘의 뒤를 따랐다. 팔라라우리아는 새하얀 유니콘의 옆에서 달-리진 않았고, 엄밀히 따지면, 가볍게 걸었다. 이 금빛 암사슴의 긴 다리에서 나오는 보폭은 포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사슴 군주의 뒤로는 충직한 여덟 기의 흰꼬리사슴들이 바싹 따라 붙었다. 이로서 세 포니들과 아홉 사슴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다함께 풀밭 오솔길을 달렸다.

 

  무리가 이동하는 동안, 오솔길 양 옆의 나무들 틈에서 사슴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몇몇은 제 키보다도 높은 나뭇가지 위에 서 있기도 했다. 그들 모두 사슴 군주에게 예를 표했고, 팔라라우리아도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암사슴, 수사슴, 아기 사슴 등, 연령성별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사슴들이 열렬한 눈빛으로 군주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도 무리가 지나가면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쉬머우드 숲에 사는 사슴은 정확히 몇이나 되나요?”

 

  래리티가 물었다.

 

  “달리면서 본 수만 쳐도 꽤 많은 것 같아서요.”

 

  “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하는사슴들이 몇인지 는 대답해주기가 어렵군요. 쉬머우드 숲의 마법은 굉장히 강력해서요. 경계에 걸쳐져 있는 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거든요.”

 

  “경계? 영향?”

 

  대시는 고개를 갸웃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쉬머우드 숲엔 아직 혹은 이미, 어찌됐든 삶의 경계 밖에 있는 자들도 있다는 뜻이지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슴들이 이따금씩 숲을 거닐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이미 죽은 사슴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요. 적어도 한동안은요.”

 

  “몽환시에 있을 때, 존재라는 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고 배웠어.”

 

  대시가 말했다.

 

  “그랬더니 이게 궁금해지더라고 : 그럼 존재는 도대체 언제 시작되는 걸까?”

 

  푸른 페가수스의 눈썹이 상념에 눌려 일그러졌다.

 

  “우린 그냥.......계속 존재하는 걸까? 이 물질 세계는 그냥 잠시 스쳐 가는 장소인 거야? 다른 어딘가로 가기 전에 잠깐 머무는?”

 

  “그건 사슴뿔 혈족Antlerkin, 포니 사회Ponyfolk, 낙타들, 그 외에 수많은 생물종들의 철학자들이 수없이 고찰해온 물음이지요.”

 

  팔라라우리아가 답했다.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함의 마법은 모든 생물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구해야 할 영역이에요. 내가 지금껏 마주해본 생물체들 중에선 프롱혼들이 그 쪽 방면에 대한 지식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더군요. 그 지식을 번역하는 작업은 자주 벽에 부딪히곤 하지만요. 그런 난해한 지식들의 근원은 필시 몽환시에서의 갖가지 경험들이겠죠. 하지만, 프롱혼들은 대체로 눈에 띄게 명랑한 기질을 갖고 있어요."

 

  금빛 암사슴은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만약 프롱혼들이 존재함의 불가사의와 끝없이 맞닥뜨리면서도 그런 식으로 쾌활하게 생활해나갈 수 있는 거라면, 글쎄요. 최소한 그들이 배워온 것들이 그리 나쁜 것들은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대화는 거기서 잠시 중단되었다. 세 포니들 모두 제각각의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애플잭은 느긋한 행군 속도가 염려스러웠다. 그녀는 페이스를 조금 더 올리고 싶었지만, 팔라라우리아에겐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봤자 내가 멀 우짜겠노. 내는 이 요사시런 숲을 빠져나가는 길도 모른다 아이가.

 

  처음엔 그녀도 지금 달리는 오솔길만 따라가면 아치백 산악지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방금 팔라라우리아에게 쉬머우드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마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윽고 무리는 갈림길과 맞닥뜨렸다. 이 곳에서 애플잭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두 길 중 오른쪽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어서,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당연히 그 쪽으로 진로가 결정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팔라라우리아는 왼쪽 길-내리막길-로 가야함을 일렀다. 이에 대해 애플잭이 가타부타할 입장은 아니었으므로, 결국 모든 무리가 사슴 군주의 말에 따랐다.

 

  무리는 나무로 가득 찬 계곡에 들어섰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자신들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거, 이쯤 되니 우리가 어델 가고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구먼........, 내헌틴 정직의 재능이 있었제. 그걸로 맞는 길을 가려낼 수도 있지 않긋나?

 

  애플잭은 이 아이디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곧 이 아이디어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팔라라우리아는 애플잭의 재능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라고 했지, 목적지로 통하는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라고 한 적은 없지 않았던가?

 

  폐하의 통찰안은 생물체의 본질까지 볼 수 있다고 하셨제. 내 정직의 재능도 그기 될진 모르겄다. 내가 정직의 원소 수호자긴 허지만 서도.......우리 포니들헌티 본질이란 건 결국 큐티마크제.

 

  애플잭의 얼굴에 문득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애플블룸헌티 갸가 갖게 될 큐티마크가 뭘 지 미리 알려줄 수도 있겄네.

 

  한편 레인보우 대시는 어깨 너머로 팔라라우리아를 곁눈질하며 입을 열었다.

 

  “, 물어볼 게 하나 더 있는데. 혹시 이것도 대답해 주려나 해서.......”

 

  “그럼요. 뭔가요?”

 

  “별 거 아니긴 한데, 아니, 어쩌면 별 게 아니지 않을 수도 있고, 근데 진짜 큰 문제는 아니야. 그래도 정말 알고 싶긴 해.”

 

  “내가 아는 것이라면, 대답해 주지요.”

 

  “여기 날씨는 누가 관리해?”

 

  푸른 페가수스가 물었다.

 

  “내 말은, 쉬머우드 숲이나 길드데일이나 비도 오고하잖아, 그치? 계절도 바뀌고.”

 

  팔라라우리아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쉬머우드 숲이야 뭐, 너희 사슴들이 마법으로 어째저째 한다 쳐도, 길드데일은? 그 쪽은 어떻게 날씨를 다루지?”

 

  “길드데일의 날씨는 순전히 이퀘스트리아의 기상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결정돼요.”

 

  팔라라우리아의 대답에 세 포니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쉬머우드 숲도 비슷해요. 숲 주변의 날씨는 우리의 마법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이퀘스트리아의 페가수스들에게 맡기고 있죠. 차이점이라면, 길드데일의 경우엔 그 의존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건 말도 안 돼!”

 

  대시는 바삐 달리던 발굽까지 멈춰가며 소리쳤다. 그 탓에 무리 전부가 잠시 행군을 멈췄다.

 

  “길드데일엔 페가소스가 하나도-”

 

  “페가-”

 

  래리티가 자연스레 대시의 말을 정정하려는 찰나였다.

 

  "그만!"

 

  애플잭이 둘 사이에 저돌적으로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하면 됐다, 이 가스나들아! 가만 듣고 있자니 이 짓도 인자 징글징글허다! 더 이상은 몬 들어주겄데이! 이기 벌써 멫 번째고? 인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세모꼴이 된 초록빛 눈동자가 래리티를 노려보았다. 새하얀 유니콘은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일단 래리티! 니도 그만하믄 됐다. 인자 레인보우가 뭐라 씨부리든 가만 내비두라!”

 

  애플잭의 시선이 푸른 페가수스에게 향했다. 그녀는 곧장 목표물을 향해 성큼성큼 발굽을 옮겼다. 시시각각 다가드는 분노를 마주한 대시는 귀를 납작하게 눕혔다.

 

  “그리고 레인보우, 니도 진짜 징-허다, 이 가스나야. 이쯤 되면 한 번 쯤은 맞게 말할 때도 됐다 아이가! 페가소스가 아이다! 페가수스라고! 알긋나? 똑똑히 들어래이. 페가수스다. 페가수스페가수스페가수스페가수스! !!!! 페가수스!

 

 

<"페가수스페가수스페가수스페가수스! 페!가!수!스! 페가수스!”>

 

 

  애플잭은 대시의 면전에 대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장밋빛 눈동자가 휘둥그레 해졌고, 그녀의 아랫입술이 달달 떨렸다.

 

  “........ 알겠어. 페가수스. 페가수스란 말이지. 이제 확실히 알겠어.”

 

  대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또랑또랑한 웃음소리가 일행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팔라라우리아가 웃고 있었다. 선율이 깃든 아름다운 웃음소리였지만, 그렇다고 평온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크고 경쾌해지고 있었다.

 

  뒤이어 크큭, 하고 억눌린 듯한 웃음소리가 났다. 래리티였다. 애써 웃음을 참아내던 그녀는 두어 번 연달아 키득대더니, 결국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사슴들 중 몇몇도 웃어대기 시작했다.

 

  애플잭은 짐짓 심각한 척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시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 키득거렸다. 그러다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애플잭의 얼굴 근육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딴에는 애를 써보는 것이었지만, 결국 그녀 역시 마음의 평정을 잃고 말았다. 조금 전만 해도 분노를 토해내던 입에서 우렁찬 웃음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이로서 세 포니들과 아홉 사슴들 모두 웃음바다에 빠졌다.

 

<애플잭의 얼굴 근육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해학의 교향곡이 나무들 사이로 널리 퍼져나갔다.

 

  “오호호, 아휴, 세상에.”

 

  웃음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팔라라우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실은 아침부터 이 순간만 쭉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재미있군요.”

 

  “재밌었다니 영광이야.”

 

  대시는 재치 있게 대답하며 앞발굽으로 경례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아까 하려던 얘기는.......”

 

  “길드데일엔 페가수스가 없다, 이런 얘길 하고 싶었던 거죠?”

 

  “맞아! 우리 기상대는 거기까진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든! 내가 알기론, 이퀘스트리아의 페가소-우스는 드라켄리지 산맥을 넘어간 적이 없단 말야. 그런데 어떻게 길드데일의 날씨가 우리 날씨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가 있어?”

 

  “길드데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의 날씨는 이퀘스트리아의 기상 상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요.”

 

  금빛 암사슴이 말했다.

 

  “페가수스들이 이퀘스트리아의 날씨를 조정하면, 이퀘스트리아 상공의 대기의 온도, 압력,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요. 이 변화가 이퀘스트리아 국경 밖까지 퍼져서, 다른 지역의 대기 상태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거죠. 이퀘스트리아에서 일어나는 날씨 변화는 이런 식으로 전 세계 곳곳에 영향을 끼쳐요. 날씨의 형태, 온도 변화, 심지어 계절의 변화까지 말이에요. 물론 다른 나라들에도 날씨를 조정할 수 있는 생물체들이 있어요. 그대들이 만났던 생물들 중엔 프롱혼이 있지요. 프롱혼들은 번개를 타고 이동하면서 대기 중의 마력을 순환시키고, 전 세계의 날씨를 조정하는데 도움을 줘요. 하지만 이퀘스트리아의 페가수스와 유니콘, 심지어 어스 포니들까지, 그대들의 종족만큼 날씨를 조성하는데 큰 몫을 해내는 생물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우와, 그거 쩐다!”

 

  대시가 흥분에 겨워 소리쳤다.

 

  “내가 전 세계의 날씨를 만드는 일을 돕고 있었던 거잖아! 아무도 그런 말 안 해줬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야!” 래리티도 동의를 표했다.

 

  “믿기지 않을 법하지만, 사실이랍니다.”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포니라는 종족과 이퀘스트리아는 그대들의 생각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이에요. 많은 삶과 기운이 이퀘스트리아를 근원에 두고 흐르지요. 포니들이 직접적인 삶의 터전으로 두는 곳보다 훨씬 머나먼 지역까지도 그 영향권 내에 있어요.”

 

  “에버프리 숲 같은 곳은 어떻게 된 건가요?”

 

  래리티가 물었다.

 

  “그 곳의 기상현상은 아무도 조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발생하더군요. 그것도 페가수스의 날씨 조정으로 인한 나비효과인가요?”

 

  “어느 정도는 그래요. 하늘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각 지역의 날씨들은 그 통일된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요. 하지만 아주 맞는 말은 아니죠. 에버프리 숲 주변의 마력은 스스로 자연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짙으니까요. 전 세계에 이런 장소는 이제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지요. 이런 곳에선 환경의 자연스런 순환이 일어나요. 식물이 날씨에 영향을 미치고 동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죠. 날씨는 식물과 동물들에게 환경을 제공하고, 동물은 식물을 퍼뜨리고 때때로 날씨에도 영향을 미쳐요. 에버프리 숲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곳이에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강대한 마력의 요람 역할을 했었죠. 이것이 에버프리 숲이 지금까지도 스스로 순환을 관리할 수 있는 이유랍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한 때는 모든 세상의 자연이 에버프리 숲처럼 스스로 순환했었다고 해요.”

 

  “머라꼬예? 그기 참말입니꺼?!” 애플잭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에요!” 래리티도 소리쳤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대시가 물었다. 두 포니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내 말은, 방금 다들 들었잖아. 전 세계의 날씨가 이퀘스트리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그게 가능하다면, 이것도 있을 법하지 않아?”

 

  “암만 그래도 글체, 온 세상천지 식물들, 동물들에 날씨까지 죄다 지들끼리.......”

 

  애플잭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지면을 발굽으로 거세게 내리쳤다.

 

  “아이다! 그건 말도 안 된데이!”

 

  “하지만 사실이랍니다.”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이 시점에서 무리는 모두 전진을 멈춘 상태였다. 세 포니들은 일제히 팔라라우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때는 온 세상의 자연이 에버프리 숲 같이 움직였어요. 외부에서의 조정 없이 스스로 관리되었죠.”

 

  “, 알겠심더.”

 

  애플잭은 여전히 회의적인 투로 말했다.

 

  “한 때 그랬다 칩시더. 전 세계가 에버프리 숲 같았다, 이 말씀을 하시는 거지예. 그렇담 와 지금은 안 그런 겁니꺼?”

 

  팔라라우리아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늘 우아하고 당당하던 군주의 고개가 아래로 쳐졌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사슴들도 갑작스레 시선을 내리깔거나 입술을 깨물며 포니들의 눈길을 피했다.

 

  팔라라우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건 우리가 저지른 과오 때문입니다.”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 세대가 저지른 잘못은 아니고.......고대 사슴들과 그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이죠. 전쟁이 지속되면서, 우리 종족은 해가 지날수록 더 강대한 위력의 전투 마법들을 개발해 전장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선을 넘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들을 쉴 새 없이 시전했고, 결국 전 세계의 자연에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히고 말았지요. 날씨의 순환, 식물의 생장, 지성이 없는 동물들의 본능적인 행동-이 모든 것들의 균형이 전쟁에 의해 흔들렸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엔 이미 모든 자연의 법칙이 다신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죠. 현대에 들어서, 우린 한 때 자연이 하던 일들을 마력을 지닌 생물체들이 대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선 특히 그대들의 종족, 포니들의 역할이 지대하죠.”

 

  금빛 암사슴은 일행에게 쓸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의 우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주길 바래요. 우린 포니들에게 막대한 짐을 떠맡겼으면서도 종족적 차원의 용서조차 빌지 않았어요. 그대들 포니들은 망가진 자연을 관리해야만 해요.......우리 사슴들이 망가트린 자연 말이지요.”

 

  애플잭은 한동안 골똘히 팔라라우리아를 응시했다. 래리티와 레인보우 대시는 오렌지 색 어스 포니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초록빛 눈동자가 사슴 군주의 눈꺼풀 사이의 별밤하늘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초점조차 보이지 않는 눈동자에서 감정을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폐하께선 전쟁을 겪어보지 않으셨다 캤지예?”

 

  애플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후 세대라 카셨다 아입니꺼?”

 

  “그랬지요.”

 

  “폐하 휘하의 흰꼬리사슴 분들도 다 전후 세대입니꺼?”

 

  “그래요.”

 

  “그렇담 용서하고 말고 할 게 뭐있겠심꺼.”

 

  애플잭이 말했다.

 

  “여러분덜이 일으킨 전쟁도 아이잖심꺼. 옛적에 살았던 사슴들이 벌였던 일을 여러분덜헌티 따지고 싶진 않심더. 끝난 건 끝난 거지예.”

 

  “고마워요.”

 

  팔라라우리아가 답했다.

 

  “전쟁을 겪었던 장로들은 종전 후 회한과 애도로 여생을 보냈어요. 하지만 다른 종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려 했다는 말은.......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난,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꼭 용서를 빌고 싶었어요.”

 

  “인자 마음 쓰실 것 없심더.”

 

  오렌지색 어스 포니가 말했다.

 

  “전쟁이란 건 물론 끔찍한 거긴 하지만서두예, , 막말로 식물이고 가축들이고 죄다 스스로 자랄 수 있었으믄 지 같은 아들은 뭘 해묵고 살았겠심꺼?”

 

  “나도 그래!”

 

  대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날씨들이 스스로 만들어지면, 나 같은 페가수스들이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물론 나 정도 되는 페가수스라면 스턴트 포니는 될 수 있었겠지. 스턴트 포니는 기상대보다 페이가 짜긴 하지만 말야.”

 

  “그대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군요.”

 

  금빛 암사슴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지독했던 파괴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음에도, 그대들은 그에 맞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 굳센 의지에 대한 믿음을 꼭 기억할게요.”

 

  래리티는 팔라라우리아에게 작은 미소를 보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새하얀 유니콘의 머릿속에선 사슴 군주가 했던 어떤 이야기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

 

  무리는 숲을 통과하는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달리진 않았지만,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래리티는 여전히 팔라라우리아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여로가 급격한 오르막길로 변했다는 것도 거의 눈치 채지 못했다. 여로는 가파르게 올라가다가 오른편으로 서서히 휘어졌다.

 

  엄청 강한 마법은 자연의 법칙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거지. 한 때 자연이 스스로 유지해왔던 법칙들을 지금은 포니들이 관리하고 있잖아. 그게 다 그런 마법들 때문 인거야. 이 진실을 나이 들고 현명하다는 포니들에게 알려주면 뭐라고들 하려나?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래리티도 알고 있었다.

 

  나더러 미쳤다고 하면서 조롱이나 쏟아내겠지.

 

  하지만 그러한 포니들의 반응도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암만 그네들이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갖췄다 한들, 천 년 단위의 삶을 살아온 팔라라우리아의 현명함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될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팔라라우리아 폐하께서도 고대 사슴들의 전쟁은 겪어보지 않았다고 하셨지.

 

  팔라라우리아는 역사나 다른 정보들을 이야기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래리티가 알기론 그랬다. 그녀로서는 팔라라우리아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법칙을 망가뜨릴 정도로 강력한 마법.......

 

  래리티는 등골에 오한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마법을 구사하려면 응당 그에 맞는 양의 마력이 필요하겠지.......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마력이라면 가능할까?

 

  이 부분에서 래리티는 지난밤에 들었던 팔라라우리아의 선언과 폭발적인 마력의 발산을 떠올렸다.

 

  스스로가 태양의 여신과 비견될 만한 마력을 가졌다고 하셨었지. 태양의 여신이라니! 이건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있는 표현은 아니잖아.

 

  래리티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정면을 향한 팔라라우리아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단정한 암사슴의 얼굴에서 별밤하늘 같은 눈동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금빛 사슴 군주의 눈.......사실, 그것이 자아내는 신비감은 이라는 짤막한 단어에 묶일 만한 게 아니었다. 은은한 금색의 얇은 눈꺼풀 뒤엔 무한한 수의 별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래리티는 그 우주에 담겨본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 깊이를 모두 파악해내진 못했으리라고 확신했다.

 

  폐하께선 전능을 발굽에 넣어봤다고 하셨지. 몇 초뿐이었다고도 하셨지만, 어쨌든 해내셨던 거잖아. 그 정도의 힘을 가진 폐하께서, 자기가 가진 천리안보다 내 천리안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단 말이지.

 

  래리티는 더욱 주눅이 듦과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모든 것들을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 정신이 그 압박감을, 폐하처럼 단 몇 초 만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까?

 

  새하얀 유니콘은 꿈속에서 만났던 관용의 원소를 떠올렸다.

 

  ‘관용은 그 전능을 다뤄낼 수 있을까?

 

-

 

  쉬머우드 숲의 광점들은 여전히 밝은 은색으로 빛나는 채였다.

 

  레인보우 대시가 오솔길 한가운데에 있는 점을 발견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점은 은색이 아니라 백금색 이었다. 그 점을 지나친 순간, 대시는 숲을 비추던 광점들에겐 없었던 무언가-열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히 위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던 중에, 그녀의 시야에 드넓은 푸른빛이 스쳐지나갔다.

 

  하늘이다!

 

  마침내 쉬머우드 숲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대시는 한껏 신을 내며 페이스를 올렸다. 애플잭 역시 친구의 장단에 맞춰 발굽을 더 빨리 굴렸다. 래리티도 이번만큼은 주저 없이 뒤를 따랐다. 사슴들 역시 팔라라우리아를 필두로 속도를 올렸다.

 

  대시는 뒤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친구들에서 팔라라우리아에게로, 그리고 그 뒤의 사슴들에게로 향했다. 충직한 흰꼬리사슴들은 자신들의 군주 뒤에서 질서정연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쟤네들이 말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대시는 씨익 웃으며 날개를 파닥댔다. 날아오른 그녀는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팔라라우리아의 뒤로 돌아오더니, 달리는 흰꼬리사슴들 사이에 불쑥 내려앉았다. 사슴들의 대열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푸른 페가수스는 개구진 웃음을 터트렸다.

 

  “니들 너무 조용한 거 아냐? 따라오는 내내 한 마디도 안하던데!”

 

  “-, , 그렇네요.” 바다색 눈동자의 수사슴이 더듬대며 대답했다.

 

  “말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구만!”

 

  대시가 외쳤다. 사슴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할 줄 안다면, 이제 대화를 할 차례지! 좋아! 자네 이름을 밝히도록!”

 

  푸른 페가수스의 무지개색 번개 문양이 깜박거렸다.

 

  “.......”

 

  바다색 눈동자의 수사슴은 굉장히 수줍어했다. 하지만 말문을 닫아버리지는 않았다.

 

  “.......전 디오고Diogo라고 합니다, 페가수스 양.”

 

  “페가수스는 우리 종족 이름이고!”

 

   대시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난 레인보우 대시라고 해. 내 친구들은 다들 날 대시라고 불러.”

 

  그녀의 눈썹이 아치형을 그렸다.

 

  “그니까 니들이 날 대시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없단 거지.”

 

  “좋아요!”

 

  금빛 눈동자의 암사슴이 호응하며 나섰다.

 

  “전 헤르미니아Hermínia고요, 만나서 너무 너무 기뻐요! 우린 페가수스 포니는 처음 보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길드데일엔 페가수스가 없으니까. 하지만 페가수스가 있든 없든, 길드데일에 나만큼 멋진 포니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변치 않아. 생긴 대로 노는 쿨-한 녀석이란 건 원체 드문 법이거든.”

 

  이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러분의 여행기를 쭉 들어보니, 당신이 페가수스들 사이의 보석 같은 존재란 건 확실한 것 같더군요. 프롱혼들처럼 번개를 다루는 건 아주 강력한 마법이에요. 엄청난 의지도 필요하고요.”

 

  “맞아. 의지가 필요해. 하지만 어제 말했던 것처럼, 이겨낸다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의지는 아니야. 고집을 내려두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제일 중요할 때도 있지. 번개가 스스로 다가오게 해야 하는 거야. 번개가 다가왔을 때, 비로소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사슴들이 마법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그거예요.”

 

  디오고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미력하게나마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모든 마법은 등가교환Give And Take의 원칙을 가진다.’ 라고 배우죠. 우리 몸이 공기를 들이 마신 다음 내쉬어야 하듯, 마법도 우리 몸을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말이에요.”

 

  “너희 사슴들은 꽤 멋진 마법들을 배우는 것 같네.”

 

  대시가 웃으며 말했다.

 

  “내 친구 중에 말야, 멋진 마법들만 보면 껌뻑 죽는 유니콘이 있거든? 걔라면 니들 마법 엄청 보고 싶어 할 거야. 분명히! 넌 어떤 마법을 할 줄 알아?”

 

  “-글쎄요, 그건.......”

 

  디오고는 또 다시 말을 더듬거렸다. 바다색 눈동자가 시선 둘 데를 잃고 흔들렸다.

 

  “아 쬬오오오오옴.” 푸른 페가수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 전 분신술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요.”

 

  수사슴은 멋쩍게 대답했다.

 

  “모든 사슴들이 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전 할 수 있죠!”

 

  “그니까, 너가 둘이 된다는 거야? 너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거지?”

 

  “그런 셈이지요.”

 

  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디오고는 분신술에 능숙하답니다.”

 

  이거 보게.......뭔가 감이 오는데?

 

  대시는 디오고를 대하는 이네스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촉이 옴을 느꼈다. 그녀는 디오고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물었다.

 

  “디오고. 너 신참이지, 그치?”

 

  “......., 맞아요.”

 

  디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에 경비대에 들어왔어요. 설마 근무 첫 주부터 이퀘스트리아에서 온 포니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죠. 특히, 레이디의 초청객이 아닌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요.”

 

  “신고식 제대로 하네, 그치?”

 

  대시는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오른쪽 앞다리로 디오고의 옆구리를 쿡쿡 질렀다.

 

  디오고의 얼굴에도 미소가 머금어졌다.

 

  “정말 그렇네요.”

 

  한편 팔라라우리아는 대시가 흰꼬리사슴들과 재잘대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른 포니들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던 페가수스가 맞나 싶죠?”

 

  금빛 암사슴이 조곤하게 말했다.

 

  “레인보우 대시에겐 분명히 카리스마가 있어요.”

 

  “대시는 그런 아이지요.”

 

  래리티가 말했다.

 

  “저흴 북돋는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글킨 해도.......지는 저 가스나가 리더십이 지 재능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더 저렇게 된 것 같심더.”

 

  애플잭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프롱혼들도 쟈헌티 영향을 끼친 것 같고예. 원랜 좀, 머라캐야하나, 언행불일치한 면도 좀 있는 아였다 아입니꺼.”

 

  그 뒤로도 레인보우 대시는 한 시간여 동안이나 흰꼬리사슴들과 친목을 다졌다. 그 사이 위쪽에 우거져있던 나뭇가지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커져가는 빈 자리엔 밝은 햇빛이 들어차 얼룩덜룩한 무늬를 만들었다.

 

  무리가 걷던 오솔길의 앞에 급격히 휘어진 구간이 나타났다. 그곳을 지나자, 마침내 오솔길은 더 이상 오솔길이 아니게 되었다. 숲이 끝난 것이었다. 다만 오솔길이었던 작은 길만은 쭉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오른편에는 거대한 갈색 바위가 벽처럼 솟아 있었다.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보세요, 아치백 산악지대에요!”

 

  흥이 차오른 대시는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올랐다. 그녀는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온전한 볕의 온기를 즐겼다. 애플잭과 래리티도 그녀의 뒤를 따라 질주했다. 대시를 위시한 세 포니들은 푸른 하늘과의 재회를 만끽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애플잭은 해의 위치를 확인했다.

 

  잉, 즈기 뭐꼬? 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떠 있는 긴데?

 

  그녀는 팔라라우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즈기요, 폐하. 우째서 아직도 정오 밖에 안 된 겁니꺼? 아침 느지막이 출발해가꼬, 멫 시간동안 걸었다 아입니꺼?”

 

  “우리 사슴들이 집단 의지를 발현시켜, 쉬머우드 숲의 안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도록 했기 때문이지요.”

 

  사슴 군주가 답했다.

 

  “걱정할 건 없답니다.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저 해가 지기 전까지 그대들이 산을 다 올라갈 수 있을만한 시간을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적인 바람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대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번 더 하고 싶기도 했고요.”

 

  래리티는 애플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애플잭은 도리어 래리티를 마주보았고, 레인보우 대시도 래리티에게 시선을 향했다.

 

  잠시 두 포니들의 시선을 받아낸 끝에, 새하얀 유니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팔라라우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폐하께서도 트와일라잇이 죽지 않을 거라고 하셨고요.”

 

  “내 권능이 이르길, 그 대답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럼 식사 준비를 하죠. 마침 이 근처에.......”

 

  사슴 군주는 흰꼬리사슴들에게 라우틸 어로 몇 마디 명령을 내렸다. 충직한 사슴들은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더니, 긴 목들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지면에 코를 바싹 들이댔다. 팔라라우리아 역시 포니들로부터 떨어져 흰꼬리사슴들과 행동을 함께 했다.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오고가는 당혹스런 눈빛 사이에 누가 좀 나서 봐라는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 압박감에 제일 먼저 항복한 건 대시였다. 그녀는 금빛 암사슴에게 털레털레 다가가 물었다.

 

  “지금.......뭐해? 뭐 찾는 거라도 있어?”

 

  “분명 여기 언저리에 군락지가 있을 텐데요.”

 

  반쯤 혼잣말로 대꾸하며, 팔라라우리아는 고개를 높이 쳐들곤 잠시 코를 킁킁거렸다.

 

  “아하, 저기군요.”

 

  그녀는 숲의 경계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흰꼬리사슴들도 꽃에 꼬이는 벌들 마냥 열렬히 그녀를 좇았다. 세 포니들 역시 호기심을 느끼며 사슴들의 뒤를 따랐다.

 

  무리는 두 오크나무 사이를 지나 작은 수풀을 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들의 앞에 볕이 잘 드는 작은 빈 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그 곳은 빈 터는 아니었는데, 온 사방에 만개해있는 야생화들의 존재가 그 이유였다. 그 꽃밭의 한가운데, 작은 언덕 위에는.......

 

  “저거, 팬지꽃Pansies 아이가?”

 

  애플잭은 눈썹을 조금 씰룩였다.

 

  번성한 팬지꽃 군락이 꽃밭 가운데에 있었다. 그 색도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하얀색 등으로 다양했다.

사슴들이 팬지꽃 군락 주위로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타지에서 온 객들을 앞에 두고도, 그들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팬지꽃들에게 꽂혀 있었다.

 

  “팬지꽃은 고대 사슴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슴 문명의 별미랍니다.”

 

  팔라라우리아가 설명했다. 그녀는 팬지꽃 군락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하지만 팬지꽃은 깊은 숲속에선 자라지 않아요.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서 쬐어줘도 잘 호응해주질 않더군요. 불행 중 다행으로, 쉬머우드 숲의 가장자리에선 야생 팬지꽃들이 자라요. 특히 이 곳처럼 해발고도가 태양의 열기를 적당히 식혀주는 곳에선 군락지가 형성되기도 하죠.”

 

  “팬지꽃을 먹어요?”

 

  래리티 역시 약간이지만 놀라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가 알기로 귀엽고 화려한 색채를 가진 팬지꽃들은 깔끔한 장식이나 원예 연출에 효과적이었다. 그녀는 팬지꽃을 장식 이상의 용도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어제 저녁 때 팬지꽃을 식사에 얹어 주셨죠? 전 그게 고명용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건 고명이 맞아요. 우리가 사는 숲에선 키워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니, 평상시엔 가끔 가다 그런 식으로만 사용하는 거죠.”

 

  팔라라우리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사슴들을 보내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아치백 산악지대의 방어막을 관리하는 건 내 탑에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이 길로 지나다니는 생물체도 거의 없고요.”

 

  “으음, 하지만 저흰 베네보레를 얻고 나면 다시 이 길로 돌아올 텐데요.”

 

  래리티가 말했다.

 

  “그 때 여기서 저희와 만나서 팬지꽃을 잔뜩 채집해 가도록 하시죠.”

 

  “흐으음.......”

 

  팔라라우리아는 침음성을 냈다. 이어진 목소리엔 놀라울 정도로 망설임이 가득했다.

 

  “그게, 이치에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데?” 대시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금빛 암사슴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 와서들 먹어요. 한 번도 안 먹어봤다면 이 기회에 한 번 시도 해봐요. 꽤 맛있답니다.”

 

  일행은 애플잭을 필두로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었다. 본래 이 농군 포니는 낯선 것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구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의 놀라운 여정은 그녀가 고향 과수원에선 절대 겪을 수 없었을 여러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녀는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애플잭은 팬지꽃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꽃잎을 한 장 입에 물며 떼어냈다. 그녀는 맛을 음미하며 한동안 꽃잎을 씹어댔다.

 

  “어데보자.......이 맛은.......”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꽃잎을 잘게 씹으며 웅얼댔다.

 

  “달척지근헌게.......즙도 많고. 폭삭 익은 사과 같은 맛이데이.”

 

  대시는 한 입 가득 팬지꽃을 밀어 넣었다.

 

  “맛있네!”

 

  그녀는 행복하게 소리쳤다. 벌어진 입 사이로 반쯤 뭉개진 꽃들이 보였다.

 

  “대시, 제발. 식사하면서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아주겠니.”

 

  래리티는 꽃을 베어 물기 전에 대시를 조곤하게 타일렀다.

 

  “, -.” 대시는 팬지꽃 한 뭉치를 더 물어 삼키며 쾌활하게 대꾸했다.

 

  역사 깊은 특식을 양껏 먹게 된 사슴들의 즐거움이 대시의 그것보다 덜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니들의 속내에 있을 조급함을 이해한다는 듯,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를 속행했다. 발굽-문명Hoof-falk 개체들의 식사 자리는 몇 분간 열정적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삼키는 소리들로만 채워졌다.

 

  그 와중에도 레인보우 대시는 시간을 쪼개서 흰꼬리사슴들과 더 대화를 나누었다. 그 결과 그녀는 그들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배웠다.

  우선 이름에 대해서 : 새로 알아낸 이름은 마노엘라Manoela, 테오도르Teodoro, 테레자Tereza, 리비아Livia, 아벨Abel 이었고, 그 외엔 이네스, 디오고, 헤르미니아가 있었다.

  또한 학업에 대해서 : 그들 중 몇몇은 아직도 마법의 기초를 배우고 있었다. 또한 쉬머우드 숲 흰꼬리사슴 분파의 몇몇 문화들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정하고 아버지가 딸들의 이름을 정하는 문화가 있었다.

  흰꼬리사슴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대시는 이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길드데일에서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진 못한 탓에 단편적인 정보들만 전해 듣긴 했지만, 사슴들에 대한 감상이 바뀌기엔 충분했다.

 

  사슴들은 여전히 이상해. 하지만 이건 당연한 거야. 우리 포니랑은 많이 다르니까. 이상하긴 해도, 협력적이고 관대하고 상냥한 애들이야. 내 친구들처럼 말야. 언젠가 여기 다시 돌아오고 싶어.

 

  그녀는 포니빌에서 이곳까진 고작 한 번개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음을 떠올렸다.

 

-

 

  식사가 끝날 무렵, 팔라라우리아는 팬지꽃 군락 가운데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왔던 길을 되짚어갔고, 세 포니들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탁 트인 하늘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짧은 숲길을 걸었다. 여덟 기의 흰꼬리사슴들이 어느새 사슴 군주의 뒤에 서 있었다.

   완전히 숲을 빠져나온 팔라라우리아의 옆으론 우뚝 솟은 암벽과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녀는 세 포니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할 때가 왔군요.”

 

  금빛 암사슴이 말했다.

 

  “물론 이 헤어짐이 우리 만남에 있어서의 영원한 끝은 아닐 테지만요.”

 

  “지금껏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에 한없이 감사드려요, 폐하.”

 

  래리티는 고개를 숙이며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에게 눈짓을 했다.

 

  “힘이 닿는 대로,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폐하의 친애의 뜻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들만 믿겠어요. 꼭 안부 전해주세요.”

 

  팔라라우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그대들에게 베풀어줄 것들은 아직 더 있답니다.”

 

  세 포니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사슴 군주를 바라보았다. 그 때 이네스가 이파리들로 포장된 보따리를 입에 물고 오더니, 팔라라우리아의 옆에 내려두었다.

 

  “naan과 팬지꽃들이에요. 그대들이 지금 갖고 있는 식량과 합치면, 여정이 끝날 때까지 식량 걱정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대들 셋 각자를 위한 선물도 준비했지요.”

 

  팔라라우리아는 애플잭에게 고개를 돌렸다.

 

  “애플잭?”

 

   “, 폐하?”

 

  애플잭이 대답했다. 그 옆에서 레인보우 대시는 사슴들에게 받은 식량들을 안장 가방에 욱여넣고 있었다.

 

  “난 그대가 길드데일에 들어갈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대가 온갖 것들을 바라며 다양한 불평불만들을 늘어놓는 것도 들었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대가 눈에 띄게 갈망하는 게 하나 있더군요. 그래서 그걸 준비해 봤습니다.”

 

  위풍당당한 뿔에서 빛이 일렁였다. 이어서 애플잭의 앞 허공에 나타난 그것은-

 

  “밧줄!!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헛숨까지 들이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돌돌 말린 밧줄이 공중에 떠 있었다. 회녹색의 그것은 가느다랬음에도 굉장히 질기고 억세 보였다.

 

  “그래요. 밧줄이랍니다. 이제 거기다 침을 뱉어주세요.”

 

  팔라라우리아가 태연스레 권했다.

 

  “----.......?”

 

  애플잭은 앞발굽을 들어 올리려다 말고 되물었다.

 

  “방금 머라꼬-”

 

  “침을 뱉어요. 그 밧줄에.”

 

  래리티와 대시도 애플잭만큼 경악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잠시만 있어 보이소, 폐하. , 침을 뱉으란 건 좀, , 그건 영 막되먹은 짓거리 아입니꺼?”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날 믿으세요. 약속할게요. 그대가 여기서 침을 뱉는다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이는 아무도 없어요.”

 

  애플잭은 눈썹을 치켜뜨며 금빛 암사슴의 눈치를 살폈다. 팔라라우리아는 늘 그랬듯 완벽하게 평온해 보였다.

 

  “아으.......”

 

  한동안 눈살을 찌푸린 채 밧줄을 노려본 끝에, 결국 애플잭은-

 

  “.......알겠심더.”

 

  그녀는 떠 있는 밧줄 꾸러미 앞에서 잠시 입을 오물거렸다. 그리곤 입 안의 내용물을 퉷 하고 뱉어냈다. 튀어나온 침방울들이 밧줄 여기저기를 지저분하게 적셨는데, 그 젖은 자국들이 갑작스레 밧줄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애플잭이 기성을 토하려는 찰나, 밧줄을 뒤덮었던 침은 나타날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밧줄은 언제 더럽혀졌었냐는 듯 다시 말끔해졌다.

 

  “이제 밧줄이 그대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그대는 마법적으로도 그 밧줄을 소유하게 된 거예요. 그대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그 밧줄을 쓸 수 없어요. 설령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 밧줄은 무조건 그대에게 돌아올 겁니다.”

 

  “허어.......”

 

  애플잭은 여태껏 어떤 물체에 대한 마법적인소유권은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밧줄을 입으로 물어 올렸다. 밧줄에 내재된 마법 탓에 입 안이 얼얼했다.

 

  이거 참, 범상하게 범상치 않은 밧줄이데이.

 

  그녀는 밧줄 끝에 올가미 고리를 만들어 묶고는 안장 가방의 벨트에 걸쳤다.

 

  “레인보우 대시, 그대에게는,”

 

  팔라라우리아는 푸른 페가수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번개를 다룰 때나 날개로 날 때나, 여하튼 비행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걸 준비해 봤어요.”

 

  금빛 암사슴의 뿔에서 또 한 번 빛이 일렁였다. 이번엔 스카프가 나타나 공중에서 너울거렸다. 그것은 칙칙한 회색빛깔을 띠었는데, 마치 금속으로 짜인 듯 이따금씩 번쩍거렸다.

 

  “선물 고마워, 잘 쓸게.”

 

  앞으로 나선 대시는 스카프를 앞발굽으로 집었다. 그리곤 어깨에 걸쳐 올렸다.

 

  “근데 사실 스카프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난 날면서 추위 타본 적은 없거든.”

 

  “물론 그렇겠지요.”

 

  팔라라우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 스카프는 단순한 보온용이 아니랍니다. 거기엔 맞바람을 갈라 더 효율적인 비행경로를 찾아내는 마법이 깃들어 있어요. 그대가 힘겨운 바람과 거친 대기 상황을 피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오오와아.......”

 

  대시는 입술을 오므리며 경탄했다. 그녀는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발굽으로 스카프를 만지작댔다. 놀이터의 철제 미끄럼틀처럼 매끄럽고 깔끔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어깨에 대충 걸쳤던 스카프를 목 주위에 소중히 두르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스카프 끄트머리가 날렵한 푸른 앞다리 사이에서 대롱거렸다.

 

  “그리고 래리티.......”

 

  은은한 별빛이 새하얀 유니콘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래리티, 그대가 내게 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거예요. 만물의 선의에 대한 믿음이죠. 난 언제부터인가 그 믿음을 잃은 채 살아왔어요. 어젯밤, 그대의 말을 듣기 전까진 잃었단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죠. 내 유니콘 벗이여, 그대가 일러준 교훈을 꼭 간직할게요. 그 보답으로, 나 또한 그대에게 유익한 선물을 주려고 해요. 그대가 그 선물로 우리의 우정을 기억하길 바라요.

  그대의 힘겨운 여정은 이제 거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어요. 하지만, 그대의 앞길엔 아직 맞서야 할 위험과 혼돈Chaos이 도사리고 있답니다. 내 벗이 그 사특한 것들의 사이로 나아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요.”

 

  위대한 금빛 사슴 군주의 뿔이 빛을 발했다. 빛무리 사이에서 몇 개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일렁이더니, 곧 명확한 실루엣으로 굳어졌다. 그것들은.......

 

  어머, 갑옷이잖아!

 

  래리티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흰꼬리사슴들이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재질의 전신 갑옷이었다. 다만 비율은 완전히 달랐다.

  투구는 사슴들의 것보다 전체적으로 더 우아해 보였다. 전방을 찌르는 두 개의 장식용 수정이 유니콘의 뿔 구멍을 중심으로 각각 위쪽과 아래쪽에 솟아있었다. 볼을 감싸는 부분은 금속 재질이었음에도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하체 보호대는 어깨가 있는 부분에서부터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졌고, 가느다란 크리스탈 실선이 이파리의 잎맥처럼 보호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위엔 페이트랄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연결부위엔 아주 작은 틈새조차 보이지 않아서, 착용자의 몸통을 하나의 금속 덩어리처럼 보이게 만들 것 같았다. 4개의 정강이 보호대 역시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들은 가늘고 날렵한 나뭇잎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사슴들의 것과는 분명히 비율이 달랐다. 사슴들의 것이라기엔 굉장히 짧고 널찍한, 마치-

 

  포니용으로 어레인지 한 것 같.......

 

  래리티는 헛숨을 들이켰다.

 

  “설마, , 제 건가요?”

 

  팔라라우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내내 대장일을 했어요. 내 아이들이 입는 갑옷처럼 가볍고 튼튼하답니다. 강철 표면 위에 수놓아진 수정엔 기본적인 방어 마법이 걸려 있어서 갑옷의 방어력을 증대시켜주죠. 투구에 있는 수정 장식들은 그대의 마력을 증폭시켜줄 거고요. 그대에게 잘 어울릴 거예요.”

 

  “꺄악,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래리티는 환호성을 연발했다.

 

  “세상에, 이 광택 좀 봐!”

 

  래리티는 팔라라우리아가 띄워놓은 갑옷을 마법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곤 곧장 제 몸 주변으로 옮겼다. 제일 먼저 앞다리 보호대를, 그 다음엔 뒷다리 보호대를 착용했다. 그 다음엔 정강이 보호대들을 앞다리부터 차례대로 착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는데, 정강이 보호대들의 크기가 커서 지면으로 자꾸 흘러내린 탓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갑옷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감에 따라 4개의 정강이 보호대들에 마력을 순환시키자, 보호대들의 크기가 그녀의 정강이에 딱 맞게 조여졌다.

  그 다음엔 래리티는 몸통 보호대의 목구멍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페이트랄이 쇄골에 기분 좋게 맞부딪혔다. 하체 보호대가 양쪽 엉덩이 부근에 안착했다. 그녀가 또 한 번 마력을 순환시키자, 각 파츠들 모두 크기가 딱 맞게 변했다.

  래리티가 마지막으로 착용한 건 투구였다. 새하얀 뿔이 투구의 윗부분에 있는 구멍을 매끄럽게 통과했다. 코를 보호하는 부분이 날렵한 콧날을 따라 씌워지면서 그녀의 단정한 이목구비를 자연스레 감쌌다. 여타 투구에 있는 크기 조절용 끈은 필요치 않았다. 그 역할을 대신 한 건 이번에도 마력이었다.

 

  래리티는 패션쇼를 하듯 멋들어지게 주위를 활보했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갑옷이었다. 그녀는 하체 보호대에 덮여버린 안장 가방을 빼낸 뒤, 은빛 갑옷 위에 다시 걸쳐 올렸다.

 

  “, 엄청 쿨하다!”

 

  대시가 발굽을 동동 굴러댔다.

 

  “이제 우리 다 쿨한 거 하나씩 갖게 됐다구!”

 

  래리티가 친구들을 찬찬히 살펴보노라니, 과연 대시의 말대로 였다. 애플잭의 길드데일 갑옷, 대시의 프롱혼 시질, 그리고 그녀 자신의 흰꼬리사슴 갑옷. 이제 세 일행 모두 꽤 인상적인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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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리티는 팔라라우리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려요, 폐하.”

 

  팔라라우리아 역시 그녀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미 말했듯이, 감사한 건 이 쪽이에요, 래리티.”

 

  금빛 암사슴은 일행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쉬머우드 숲 쪽으로 머리를 향했다. 일행은 숲의 그림자 안으로 돌아가는 사슴 군주를 바라보았다.

 

  “산봉우리들 사이의 계곡에서 베네보레를 찾아보도록 해요.”

 

  그녀가 조언했다.

 

  “지금 이 시기에는 많이 자라있을 거예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은 밝고 진한 보라색의 베네보레에만 있어요. 그런 베네보레를 발견하는 즉시 드래곤의 불꽃을 사용해야 해요.”

 

  “여부가 있겠심꺼.”

 

  애플잭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심데이. 여러분 모두 증말 고맙심데이!”

 

  “다들 고마웠어!”

 

  레인보우 대시가 날아오른 채로 앞발굽을 흔들며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 또 들를게!”

 

  “물론 그렇겠지요!”

 

  팔라라우리아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행 모두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왜 웃는 거지?

 

  “잘 가요, 애플잭! 잘 가요, 래리티! 잘 가요, 레인보우 대시!”

 

  “디오고, 너도 잘 있어!”

 

  대시가 연거푸 소리쳤다.

 

  “그 분신술이라는 거 꼭 보고 싶으니까, 계속 연습하고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페가수스!”

 

  “부디 평안하시길, 팔라라우리아 폐하!”

 

  래리티는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양 발굽을 모두 흔들며 소리쳤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고마웠어요! 다들 안녕히!”

 

  그들은 몇 분간 작별 인사를 계속했다. 이윽고 래리티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녀는 앞에 난 길로 총총히 나아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어째선지 애플잭도, 레인보우 대시도 그녀의 앞으로 나서질 않고 있었다. 새하얀 유니콘은 뒤를 돌아보았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와 푸른 페가수스가 그녀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들 중 어스 포니 쪽은 유니콘과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호흡을 한 뒤, 래리티는 사뭇 경쾌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들 따라오렴.”

 

  그녀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빨리 올라갈 수 있을 지 한 번 해보자!”

 

  새하얀 유니콘의 발굽이 가볍게 지면을 디뎠다. 길은 바위투성이였고 경사도 가팔랐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돌진해나갔다. 두 포니들이 그 뒤를 따랐다.

 

  “, 깜빡했군요!”

 

  그 때, 팔라라우리아의 목소리가 일행의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

 

  “갈라Gala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너무 실망하지들 마세요!”

 

  막 내달리려던 세 포니들은 우왕좌왕 대며 발굽을 멈추었다.

 

 

<막 내달리려던 세 포니들은 우왕좌왕 대며 발굽을 멈추었다.>

 

 

  “갈라? 설마 내가 아는 그 갈라 말씀하신기가?!”

 

  “설마 그, 그랜드 갤로핑 갈라Grand galloping gala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 ?”

 

  “잠시마아안!”

 

  대시의 다급한 물음을 신호로 일행들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그랜드 갤로핑 갈라에 대해 아는 거 다-”

 

  그러나 팔라라우리아와 사슴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장밋빛 눈동자가 데구룩 굴렀다.

 

  “, 좋아. 좋다고. 사슴들은 멋지고, 친절하고, 우릴 많이 도와줬어. 근데 그거 알아? 걔넨 여전히 이상해.”

 

  “감성적인 부분들을 많이 중시하는 생물체들인 거겠지. 난 그렇게 생각해.”

 

  래리티가 부드럽게 대시를 달랬다.

 

  “이제 가자. 계속 움직여야지.”

 

  대시는 어깨를 과장스럽게 으쓱댔다. 애플잭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세 포니들은 우뚝 솟은 산등성이들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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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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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Dangerous Business, Going Out Your Door

When an accident leaves Twilight Sparkle seriously ill, Applejack, Rainbow Dash, and Rarity must undertake a perilous journey to find her a cure. What adventures await them beyond Equestria's b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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