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이 날 아침엔 세 포니가 동시에 눈을 떴다.
전날 일행은 밤을 보낼 만한 동굴을 발견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바람과 스산한 공기를 피하기엔 충분해 보였다. 안에 들어간 일행은 애플잭의 방수포를 바닥에 깔았고, 그 위론 각각 애플잭과 래리티의 것인 담요 두 장을 덮었다. 그러자 딱딱하던 돌바닥에 조금이나마 쿠션감이 생겼다.
레인보우 대시의 고집에 따라, 일행은 깍지 속 완두콩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몸을 눕혔다. 푸른 페가수스는 새하얀 유니콘과 오렌지 색 어스 포니 사이에 자리를 잡더니, 날개를 펼쳐 그 둘을 감싸 제 몸 가까이로 끌어안았다........
.......눈을 뜬 세 포니들이 서로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다. 래리티는 대시 쪽으로 부드럽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동안 애플잭은 안락한 한숨을 내쉬었다.
“거, 별 건 아니긴 헌디.”
그녀는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포니빌에 돌아가믄 이 순간이 좀 그리워질지도 모르겄데이.”
“밤샘 파티는 언제든 할 수 있지 않겠니?” 래리티가 말했다.
“그치.”
대시가 양 볼을 담요 깊숙이 파묻으며 대꾸했다.
“우리 집에선 못하겠지만 말야. 좀, 선 넘었다 싶을 정도로, 많이 ‘시원’하니까.”
“그기다 트와일라잇이 우리헌티 구름 밟기 주문Cloud-walking speell도 다시 걸어줘야지 않긋나.”
트와일라잇! 앓아누운 라벤더 색 유니콘의 모습이 래리티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빨리 움직이도록 하자꾸나.”
그녀는 레인보우 대시를 밀어내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늘 중으로 베네보레 군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진짜 필요한 건 진보라색의 베네보레고, 그것까지 오늘 찾아낼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글체.”
애플잭도 이에 동의했다. 그녀는 카우걸 모자를 눌러 쓰며 말을 이었다.
“글킨 허지만은, 캔틀롯도 식후경 아이긋나.”
“아, 물론 그건 그렇지.”
래리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날개를 파닥대며 몸을 일으킨 대시는 자신의 안장 가방으로 후다닥 발굽을 옮겼다. 그리곤 당근 몇 개와 빵 반 덩어리, 사슴들이 준 식량을 한 묶음 집어왔다.
“자, 여기 먹을 게 많으니 골라서들 먹어! 난 당근이랑 난naan!”
“내는 팬지꽃이 그래 마싰드만.”
애플잭이 말했다.
“넘 마이 무면 안 되겠드라. 한 번 맛들였다가 다른 집 정원에 있는 거 까지 다 뜯어뭇고 싶어지믄 우짜긋노.”
“팬지꽃을 먹어본 포니가 여태 없었다는 게 좀 의외지 않니?”
래리티는 마법으로 띄워 올린 빵을 몇 조각으로 찢어냈다.
“그 달콤한 풍미를 맛본 포니가 우리가 처음일 리는 없을 텐데 말이야.”
“꽃 키우는 아들이 죄다 서로 짜고 입단속한 거 아이긋나. 지들끼리만 뭇겠다고 말이제.”
애플잭은 양 발굽 사이에 당근을 끼워들며 대답했다. 그녀는 집어든 당근을 한 입 베어 물고 얌전히 입을 오물거렸다.
“뭐, 내라도 글케 했을 것 같긴 허다만은.”
대시는 사슴들이 준 식량 묶음을 펼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팬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 그거도 한두 송이 먹을 생각이야. 더 먹을 거면 너네도 꺼내 먹어.”
그녀는 밝은 색깔의 팬지꽃 세 송이를 꺼낸 뒤, 그 중 한 송이를 입에 던져 넣고 만족스럽게 씹어댔다.
일행은 한동안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래리티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치료에 쓸 만한 베네보레를 오늘 중에 얻었다고 치면,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 가야할까?”
“쉬머우드 숲을 다시 지나가야 하겄제. 근디 거 가면.......갑자기 든 생각인디, 거서 팔라라우리아 폐하헌티 잘 말씀드리면은, 포니빌로 한 번에 텔레포트 시켜주시지 않을까 싶데이.”
“뭐라구?”
래리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애플잭.......너 돌아가는 길에 길드데일에 한 번 더 들르고 싶었던 거 아니었니?”
“그런 맘도 있긴 헌디.......”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말꼬리를 흐리며 침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굳어진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인자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선 한창 파종할 때가 됐데이. 그 와중에 내는 거의 2주나 자리를 비우고 있다 아이가.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읎다. 내한테도 주어진 의무란 게 있는 기라.”
“주어진 의무라니까 말인데.”
래리티가 말했다.
“나도 캐러셀 부티크를 비운 지 좀 됐지. 내 봄 신상 라인업을 기다리는 고객 분들은 분명 실망하고 계실 거야. 스위티 벨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고. 아, 그 애가 날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지.”
대시는 자신을 동경하는 작은 망아지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좋은 친구들, 포니빌에 돌아가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별달리 안타깝거나 애석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내 생각엔 있지.......”
대시도 이 화제에 끼어들었다. 두 포니의 시선이 푸른 페가수스에게 꽂혔다. 그녀는 조금 멈칫대긴 했지만, 하던 말을 멈추진 않았다.
“‘주어진 의무’라는 말은 좀 웃긴 것 같아. 우린 뭔가에 대한 의무, 다른 포니에 대한 의무에 대해선 시도 때도 없이 얘기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도 있다는 건 가끔 잊어버리잖아.”
“아니. 난 잊어버리지 않아. 절대.”
래리티는 단호히 답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보면, 자신을 마지막에 두고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법이란다.”
“나도 그게 맞는 말인 것 같긴 해.” 대시가 말했다.
두 포니들은 이 싱거운 납득이 푸른 페가수스의 마지막 의견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대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들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 생각해 봐. ‘다른 포니들을 우선시해야 하니까’ 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기지 않으면, 처음에 결심했던 만큼 다른 포니들을 돕지 못하게 될 날이 언젠간 오고 말거야. 우린 트와일라잇을 위한 의무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 여행을 시작한 것도, 이만큼 시간을 보낸 것도, 모두 트와일라잇을 위한 거지. 그래도 우린 각자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잖아. 애플잭. 넌 애쉬테일하고 참 많은 시간을 보냈더랬지.”
레인보우 대시는 오렌지 색 어스 포니를 가리켰다.
“난 프롱혼들하고 같이 몽환시에 다녀왔고-” 푸른 발굽이 제 몸뚱이를 가리켰다가-
“래리티 넌 팔라라우리아한테서 텔레포트를 배우기도 했지.”-새하얀 유니콘에게 향했다.
대시는 발굽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팔라라우리아가 우리 셋 모두한테 조화의 원소에 대해, 각자가 가진 원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했어. 근데 말야, 우리가 이렇게 보낸 시간들이 우리한테만 중요했을까? 아니야. 이건 언젠가 우리의 도움을 받게 될 모든 포니들한테도 중요한 시간이었어. 그 시간을 보냄으로서 우린 더 나아졌고, 이로서 우린 더더욱 많은 포니들을 도울 수 있게 됐으니까.”
애플잭은 조금 놀라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철없는 베짱이 같던 페가수스가 이 정도로 지혜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진청색 시질Sigil로 뒤덮인 오랜 친구를 눈여겨보니, 어쩐지 그녀에게서 전에 없던 고결한 태도가 엿보였다. 그건 하룻밤 만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었다. 여정 중에 서서히 일어난 일이라 줄곧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레인보우 대시는 그녀 자신의 영리함과 눈에 띄는 발전으로 자신의 의견을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얘기데이, 요 귀염둥이 가스나야. 포니빌에 돌아가더라도, 이 여행은 앞으로도 쭉 우리 변화의 원동력이 될끼다.”
“장담컨대, 핑키 파이와 플러터 샤이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를 겪고 있을 거야.”
래리티도 한 마디 거들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도 그럴 거고. 물론 그 애가 겪고 있을 경험은 아무한테도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모였을 때, 다시 이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꼭 있겠지.”
래리티는 애플잭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애플잭. 넌 왜 팔라라우리아 폐하께서 우릴 포니빌로 텔레포트 시켜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우릴 산악지대 한가운데로 텔레포트 시켜주겠노라고 폐하께서 먼저 제안하지 않으셨을까?”
“글킨 허제.”
애플잭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디 그게 내도 확신이 있어가꼬 했던 말은 아이다. 레인보우가 했던 말하고 맥락은 비슷헌디, 거, 어쩌믄 폐하께선 우리가 직접 발굽을 굴리가매 여행하는 걸 바라시는 게 아인가 싶데이.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제. 그기다, 폐하께선 트와일라잇이 죽지 않을 거라 확신하시는 것 같더만. 그러니 더 우리가 직접 여행해가매 배우고 성장하길 바라시는 거겠제. 한 가지 확실한 건, 폐하께선 뭔가를 숨기고 계신데이.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대해서 말이제.”
“흐으음.......”
새하얀 유니콘은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애플잭. 관찰자가 된다는 게 뭔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한 것 같거든 : ‘엿본 미래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할 땐 조심해야 한다.’ 만약 미래란 게 선택들이 모인 토대 위에 세워지는 거라면, 그리고 그 선택들이란 게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의미하는 거라면, 내가 아는 미래를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은 경우도 가끔은 있지 않을까 싶어. 해를 입히려는 의도 없이 상대에게 미래를 알려준다 해도,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에 상대가 다른 선택을 해버릴 수도 있잖아. 자신이 했던 선택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하는 이유로 말이야.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돼버리면, 오히려 예견했던 미래가 오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래리티는 일행이 쉬머우드 숲을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던 팔라라우리아의 선택을 떠올렸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미래를 보는 관찰자에게는 그것도 나름의 행동일지도 모르겠어. 잘 기억해둬야겠다.
애플잭은 제 몫의 마지막 팬지꽃을 입에 넣었다.
“관찰자라.......래리티. 니 고거 트와일라잇헌티 말했다간 일장연설에 특강까지 풀코스로 듣게 될끼다.”
그녀는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예측이니 예언이니 하는 것들에는 아주 몸서리까지 쳐대는 가스나니까 말이제, 갸는.”
“걔한텐 말 안할 거야-아마. 당분간은. 어쨌든.”
래리티가 말했다.
“폐하께선 우리가 서로의 재능을 다 알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하셨잖아. 어쩌면 재능에 대한 얘길 하려면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알 수 있겠어?”
대시가 볼멘소리를 했다.
“어쩌면 그냥 서로 감으로 때려 맞춰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구.”
“그럼 그래야겠지, 대시. 그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든 알아차리면 되는 거야.”
새하얀 유니콘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큐티마크를 얻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그 순간이 되면, 다들 그냥 알게 되잖니.”
“하긴, 포니들은 운명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
대시는 순순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어 플라이도 그렇게 말했었고 말야. 사부가 한 말들은 대체로 옳았어.”
그녀도 래리티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이제 슬슬 가는 게 좋겠어. 트와일라잇은 여전히 상태가 안 좋을 테니까 말야.”
“맞는 말이데이, 귀염둥이 가스나야.”
애플잭이 말했다.
“레인보우. 내랑 래리티가 갑옷 입는 동안 먹을 것들 좀 챙겨놔 주긋나?”
대시의 입가에 근질대는 웃음이 번졌다.
“이제 니네 둘 다 갑옷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웃긴데!”
키득대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는 남은 빵과 당근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특히 래리티. 너랑 전사 타입은 절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
“어머, 대시. 그럼 오늘부터라도 기억해야 되겠구나. 이 몸, 바로 나, 래리티는 우아한 첫인상 뒤에 수많은 모습들을 겸비하고 있단다.”
래리티는 잘 정돈된 은빛 갑옷들 앞으로 발굽을 옮겼다. 새하얀 유니콘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여성 교양 학교Finishing School에 재학하던 시절에, 한 학기동안 뿔 펜싱Horn-Fencing 강의를 들은 적 있다고 말 안했었니?”
“뭐라고? 너가? 펜싱을?”
푸른 페가수스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와, 골 때리네, 네가 펜싱이라니! 진짜 전혀 몰랐어! 한 번도 본 적 없-.......”
래리티의 따가운 시선이 경박한 웃음소리를 잦아들게 했다.
“.......-지만, 그래, 한 마디만 더 했다간 그 실력 지금 보게 생겼네. 이왕이면 여행 끝나기 전까진 볼 일 없었음 좋겠다.”
“뭐, 실은 나도 처음엔 별로 안 좋아했단다.”
래리티는 하체 보호대와 페이트랄을 머리 위로 띄우며 말했다.
“하지만 강의 마지막 시간엔 뿔 펜싱을 꽤나 즐기게 되었지. 뿔 펜싱은 인내심과 차분함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단다. 상대의 틈을 포착하고, 기회를 노렸다가, 그 순간이 오면.......”
푸른 마력이 번쩍였다. 새하얀 유니콘의 몸통에 갑옷이 단단히 조여졌다.
“.......놓치지 말아야 하거든.”
애플잭은 길드데일 제식 갑옷의 하체 보호대에 다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고정용 끈을 몸통 위로 두른 뒤 배 아래에서 조였다.
“거, 들어보이 사과차기Applebucking하고 요령이 비슷허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게 뭔 줄 아나? 핑키 파이 고 가스나가 그랬었다 아이가. 여행 중에 온갖 끔찍한 괴물들을 만나게 될 기라고. 근디 가만 생각해 보븐, 만나본 아들 중에 코마가 말고는 딱히 괴물이랄 것들도 읎었데이.”
“하핫!”
대시는 의기양양하게 콧김을 내뿜었다.
<대시는 의기양양하게 콧김을 내뿜었다.>
“걔가 그 때 뭐라고 했었더라?”
“발록이랑.......또 뭐라캤더라.......거.......”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한동안 웅얼댄 끝에 고개를 내저었다.
“몰겄다. 까고 말해서, 잊어 묵었데이.”
어스 포니와 유니콘은 부지런히 각자 갑옷들을 챙겨 입었다. 그동안 레인보우 대시는 식량들을 모두 챙겨 넣은 뒤 이부자리까지 정리를 끝냈다. 이윽고 갑옷 착용을 마친 애플잭과 래리티는 안장 가방을 갑옷 위에 걸쳤고, 레인보우 대시는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각자 소지품들을 안전히 챙기고, 장비도 꼭 맞게 갖춰 입은 일행은 발굽을 나란히 하며 동굴에서 빠져나갔다.
현재 일행은 아치백 산악지대의 제법 높은 고도에까지 올라 있었다. 공기는 건조했고, 바람은 쾌적했지만 조금 쌀쌀했다. 아래쪽 먼발치에 길드데일의 금빛 평원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전방에선 태양이 드라켄리지 산맥에서부터 막 떠오르고 있었다.
“글고 보니, 레인보우.”
애플잭이 물었다.
“니 먼저 가서 베네보레 함 찾아볼끼가?”
“그래볼까 싶긴 했는데.......”
대시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하자. 만약 2시간 안에 산맥 깊숙이까지 들어갈 수 있으면, 니들하고 같이 가는 거야. 어때?”
“시계도 없으면서 시간을 어떻게 아니.”
래리티가 핀잔을 주었다. 은빛 투구 위의 수정 장식이 하루의 첫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날 믿어. 난 알아.”
“그럼 그렇게 하렴.”
래리티는 돌투성이의 가파른 길목으로 몸을 돌렸다.
“다들 준비됐지?”
그녀는 거세게 발굽을 구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애플잭이 잽싸게 그 뒤를 따랐고, 대시도 이에 질세라 단 번에 페이스를 높였다. 페가수스의 꼬리가 팔랑대며 무지갯빛 궤적을 남겼다. 새카만 바위들은 포니들의 발굽을 굳건히 받아들이며 더 높은 곳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침실의 벽을 내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뿔에 번개가 내리친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녀는 덮고 있던 이불을 쥐어뜯으며 거세게 몸부림쳤다. 단정하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탐스러운 라벤더 색이던 뿔은 이제 거의 검은색으로 덮여 있었고, 질끈 감긴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지독하고 끔찍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고통엔 그 어떤 진통제도 효과가 없었다.
“열이 계속 오르고 있네! 물을 더 가져오게!”
제코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발등을 라벤더 색 유니콘의 이마 위에 얹은 채였다. 옆에 있던 애플블룸이 재빨리 침실 밖으로 달려 나갔고, 대야에 담겨있던 물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아, 어떡하면 좋아, 스파이크가 여기 있었어야 했는데!”
플러터 샤이는 발굽을 동동 굴러대며 울먹였다.
스파이크는 에버프리 숲으로 장난꽃Poison Joke을 채취하러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제코라의 말에 의하면, 장난꽃의 줄기는 더 강력한 진통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였다. 더구나 용의 비늘은 장난꽃의 부작용에도 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장난꽃 채취엔 스파이크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역시 지금 당장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연락을 드려야 해!”
“안-돼애애애애애!!!”
트와일라잇은 비명 섞인 대답을 토해내며 울부짖었다.
“안돼애.......친구.......들.......이.......”
그녀의 마음은 고통에 잠식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사과주에 만취한 대시보다도 불명확했다.
“다들 시간 내에 해낼 거야-! 할 수 있어! 난 안다구!”
핑키 파이가 제 자리에서 몸을 방방 튕겨 올리며 소리쳤다. 분홍색 발굽이 마루를 때릴 때마다 흡사 망치를 두들기거나 드럼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플러터 샤이에겐 그것이 어떤 끔찍한 결말을 예고하는 카운트 다운처럼 들렸다.
“트와일라잇이 쫌만, 쫌만 더 버티게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거야!”
샛노란 색의 페가수스는 목이 뻐근할 정도로 크게 침을 삼켰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에게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아.
5일 전, 플러터 샤이는 처음으로 이 의견을 입 밖에 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과 핑키는 이를 반대했다. 플러터 샤이는 트와일라잇이 내민 반대표에 적잖이 당황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멘토이자 스승 : 셀레스티아에게 연락을 해대는 라벤더 색 유니콘. 이것이 그녀가 익히 알던 트와일라잇 스파클이었다.
이에 대해 트와일라잇은 이렇게 설명했다. : 들어봐, 플러터 샤이. 우리 친구들, 애플잭,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 난 걔들이 기한 내로 베네보레를 찾아올 거라고 믿어. 내가 지금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가버리면, 그건배신이나마찬가지인거야게다가난공주님을방해하고싶지도않고.......
이게 무슨 소리람!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죽어가는 애제자의 소식을 방해된다고 생각하실 거라니!
플러터 샤이로서는 뿔 부패증이 병자의 사고능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 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트와일라잇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트와일라잇이 평소와 정반대로 굴었다면, 핑키 파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굴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친구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엇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트와일라잇의 의견에 주저 없이 힘을 보탰다.
이 두 고집쟁이들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플러터 샤이의 의견을 기각시켰다. 샛노란 색 페가수스는 슬슬 자신의 유순한 성품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난 더 굳세었어야 했어, 더 고집을 부렸어야 했다구.......
하지만 트와일라잇과 핑키의 ‘믿음’에 진심 어린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둘은 이른바 ‘베네보레 원정대’가 이름값을 해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제코라가 한 자리에 있었다. 플러터 샤이는 제코라 역시 자신만큼 트와일라잇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핑키. 친구들에 대한 네 믿음은 나도 알고 있단다.”
플러터 샤이는 전에 없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트와일라잇은.......끝장나고 말거야!”
“그치만 난 그냥 알아아-난 알 수 있엉-”
핑크색 어스 포니의 눈이 밝게 빛났다. 그 눈엔 단순한 활기나 쾌활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걔들은 해낼 거야! 난 알아! 다들 엄청 멋지게 해낼 거구 우린 걔들한테 짝-짝-짝 발굽박수를 쳐줄 거야! 그리구 트와일라잇도 말했잖-”
“트와일라잇은 제정신이 아니야, 핑키!”
플러터 샤이는 끝내 언성을 높였다.
“트와일라잇은 죽어가고 있고, 우린 뭐라도 해야 한다고! 당장!”
애플블룸이 푹 젖은 물수건을 물고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제코라가 그 물수건을 받아든 순간, 검게 변색된 뿔 끄트머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병자의 눈꺼풀이 번뜩이며 열렸다. 보라색 눈동자의 안구 대신 공허하게 빛나는 하얀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를 감싸는 짐승을 조심하라! 가장 위험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노라니!”
눈꺼풀이 다시 굳게 닫히고, 빛줄기도 사라졌다. 트와일라잇은 등을 아치형으로 꺾으며 고통에 겨워했다.
“방금 그거 무슨 말이야?” 애플블룸이 물었다.
“뭐긴 뭐겠어, 곧 엄청난 일이 벌어진단 뜻이징!”
핑키 파이는 발랄한 환호성을 터트리다-
“그리구-으와아아아아!!!”
-뜬금없이 발을 헛디뎠다. 분홍색 다리들이 뇌의 통제를 벗어난 듯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삐걱댔다. 그녀는 공중제비를 돈 끝에 등을 바닥에 댄 채로 거나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야, 핑키 파이!”
플러터 샤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 목소리엔 전에 없던 짜증이 뚝뚝 묻어났다.
그녀는 핑키에게 몇 마디 더 핀잔을 얹어줄 요량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핑키 파이에게 벌어진 일은 샛노란 색 페가수스의 입을 놀라움으로 봉해버리기 충분했다.
핑키 파이의 오른쪽 앞다리와 뒷다리가 앞으로 걸음을 내딛듯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에 왼쪽 앞다리와 뒷다리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오른쪽 방면 다리들이 뒷걸음질을 칠 땐 왼쪽 방면 다리들이 앞으로 움직였다. 오른쪽이 앞으로 가면 왼쪽은 뒤로. 왼쪽이 앞으로 가면, 오른쪽이 뒤로 움직였다.
플러터 샤이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그거, 혹시 핑키 센스니?”
“맞앙!”
핑키 파이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곧 엄청 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거야!”
“핑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애플블룸이 물었다.
“그런 거 처음 보는데!”
“한 쪽 다리들은 앞으로, 다른 쪽 다리들은 뒤로 갔잖아.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내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었다는 거야아!”
“정말로?”
플러터 샤이가 되물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트와일라잇과 그로 인한 혼란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썹은 동그란 아치형을 그렸다.
“그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닌 거지?”
“그렇긴 하지이-”
핑키는 발랄하게 대꾸했다.
“어쨌든, 내 예감은 잘 들어맞으니까!”
“응, 그치, 그치만.......난.......그래도 난 플러터 샤이 언니랑 제코라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애플블룸은 제 언니가 으레 그러듯 발굽을 바닥에 내리쳤다. 작은 발굽이었음에도 제법 우렁찬 소리가 났다.
“우린 트와일라잇 언니가 죽지 않게 해야 하잖아.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연락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린 그렇게 해야 해!”
“하지만-”
“핑키.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렴.”
플러터 샤이는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
“애플잭하고 우리 친구들이 트와일라잇을 구하게 될 거라고 쳐도, 이제 그건 미래의 언젠가가 아니라 당장 일어나야 하는 일이야! 게다가 애들의 성공 여부랑 상관없이,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트와일라잇을 구할 수 있으실 거야. 아님.......최소한 뭔가 해주실 순 있겠지. 물론 이건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부터 아셔야 벌어질 일이고!”
핑키 센스가 잦아들었다. 핑크색 어스 포니는 몸을 반 바퀴 굴러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렸다.
분홍색 앞발굽이 분홍색 찐빵 같은 양 볼을 꾹꾹 주물러댔다.
“그을쎄에.......”
이윽고 그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한껏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오키-도키! 그러자! 그치만 이건 너희들이 너무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야! 너희도 곧 알게 될 거야! 우리한텐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걸!”
“어쨌든, 알겠어.”
플러터 샤이는 재빨리 결론을 매듭지었다.
“스파이크가 돌아오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메세지를 보내자. 이 얘긴 이걸로 끝이야.”
“아르르르르그가아아아악!!!”
트와일라잇은 괴성과 신음 사이의 무언가를 거칠게 토해냈다. 제코라는 축축한 물수건을 병자의 이마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얼룩말 주술사의 입에서 토착어 몇 마디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만약 트와일라잇이 지금 당장 어떻게 되진 않는다고 쳐도.......
샛노란 색의 페가수스는 암울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한두 시간은 저렇게 끔찍한 고통을 버텨내야겠지.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연락을 드리려면 스파이크가 여기 있어야 하고, 우리 중 아무도 스파이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트와일라잇의 옆을 비우면서까지 스파이크를 찾으러 가고 싶진 않았다. 이 고집은 비단 플러터 샤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간호 그룹의 다른 이들도 모두 그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플러터 샤이는 그냥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린 망아지 : 애플블룸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굳세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과 질척한 무력감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샛노란 색의 페가수스는 뒷다리를 쪼그리며 방바닥에 앉았다. 두 앞발굽이 가슴팍 앞에 다소곳이 그러모아졌다.
루나 공주님. 공주님께서 귀환하셨던 날, 기념 파티가 끝난 다음에 저희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나이트메어 문이 그랬듯, 공주님 당신도 뭇 포니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다고요. 그 마음이 보답 받게 될 거라는 희망을 잃은 뒤론, 복수를 위해 포니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에 집착했다고도 하셨죠. 하지만 저희들이 공주님의 영혼을 정화해 공주님을 원래대로 돌려놨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셨죠. 포니빌의 모든 포니들은 줄곧 공주님을 사랑하고 싶어 했고, 공주님과 포니들 모두에겐 언제나 희망이 있었음을요. 절대 구원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기에, 이제 공주님께선 ‘내몰린 이들의 수호자Patroness of Desperate Causes’라는 새로운 신성(神聖)도 수행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공주님. 지금 전 공주님의 그 신성에 기대려고 해요. 더 빨리 기도했어야 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지금 저흰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어요. 공주님이 꼭 필요해요. 지금은 잠자리에 계실 시간이겠지만, 제발, 공주님의 신성을 베풀어 주세요! 제 친구가 죽지 않게 해주세요!
-
길이 갑작스럽게 휘어졌다. 그러나 래리티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능숙하게 발굽을 미끄러트리며 곡선 구간을 통과했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해낸 건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알았더라면, 부쩍 향상된 자신의 운동 능력에 스스로 감탄했을 것이었다. 반 탈진 상태로 드라켄리지 산맥을 넘었던 2주 전의 몰골이 무색하게, 지금의 그녀는 가파른 급경사도 가뿐히 소화해냈다.
은색 갑옷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찬바람이 래리티의 주변에서 매섭게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과 달리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애플잭은 래리티의 뒤를 바짝 쫓아가고 있었다. 주근깨 박힌 볼 살이 입꼬리에 밀려 올라갔다. 그녀는 현재 일행의 페이스에 제법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길은 이미 바위투성이로 변한지 오래였다. 게다가 갈수록 좁아졌고 경사도 가팔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행은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정오가 되기 전까지, 그것도 정오 ‘직전’이 아니라 ‘한참 전’까지 산악지대의 한복판에 도착할 심산(心算)이었다. 물론 베네보레를 곧바로 찾아내는 것도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다.
트와일라잇, 우린 꼭 해낼끼다.
애플잭은 다짐했다.
으떤 드러븐 꼴을 보게 되드라도 반드시 닐 구해낼 끼다!.......근디, 그 뒤엔 우짜지?
이는 지성체로서의 필연적인 생각의 흐름이었다.
팔라라우리아 폐하께서 우릴 포니빌까지 텔레포트 시켜주실 수 있을지가 관건인디.
만약 팔라라우리아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애플잭은 기꺼이 그 강력한 사슴군주의 선의에 기댈 셈이었다. 그녀가 추론하기론, 일행이 포니빌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팔라라우리아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팔라라우리아에게 텔레포트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설령 그것이 애쉬테일과 재회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고 해도.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애플잭은 문득 길드데일의 황금빛 평원을 떠올렸다.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찬란한 갈채를 일으키고,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그 가운데를 달린다. 검붉은 색의 수말이 그녀의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 거칠고 탄탄하면서도 호리호리한 체형의 그 수말은 위풍당당하게 제 페이스에 맞춰 내달린다. 그가 오렌지 색 어스 포니에게 몸을 기대며 달큰한 숨결을 내쉰다. 낮은 울림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애쉬테일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이해하는 수말이다. 애플잭은 언젠가, 언젠가 분명 그와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앎의 권능이나 천리안 따위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내는 애쉬테일을 빅맥 오빠랑, 울 스미스 할매헌티 소개시켜주고 싶데이. 애플블룸은 갸를 깨나 좋아할 게 분명타! 갸라면 울 농장도 맘에 쏙 들어할 끼다! 더 말해 뭣하긋노? 울 가족들이 뚝심 있게 키우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 산(産)의 사과는 풍미가 기가 멕힌다 아이가! 갸도 분명 그 맛을 알끼다! 갸헌티 울 사과를 꼭 좀 줘야긋다!
-
드높은 두 절벽 사이를 통과한 직후, 래리티가 갑작스레 발굽을 멈췄다.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는 선두가 남긴 급정지의 궤적을 밟으며 래리티의 뒤에 붙어 섰다.
전방에 거대한 협곡이 보였다. 길은 방금 전 일행이 통과했던 두 절벽 중 한쪽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깊숙한 협곡 아래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그 주변엔 풀이 자라고 있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개울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끝에서 협곡은 광대한 계곡이 되었는데, 계곡 안에는 보랏빛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든 초록빛이 보였다.
보랏빛?
“저, 저거 아이가!”
애플잭은 앞발굽으로 남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다들 보이나? 저 짝에 있는 거, 저게 베네보레가 틀림없데이!”
“좋아. 내가 먼저 가서 한 번 볼게! 다들 최대한 빨리 와!”
대시가 날개를 거세게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명심해야해, 선명한 보라색의 베네보레야!”
이미 저만치 멀어진 푸른 페가수스의 등에 대고 래리티가 소리쳤다.
“맡겨 둬!” 대시는 어깨 너머를 대충 돌아보며 대꾸했다.
“어여 가재이!”
애플잭이 재촉과 함께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래리티가 바싹 쫓았다.
길은 가파른 석산의 절벽을 똬리 튼 뱀처럼 감싸고 있었다. 폭이 좁은데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었지만, 두 포니는 계속해서 발굽을 굴렸다. 그들은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어떤 곡선 구간을 지나자 길이 한결 넓어졌다. 두 포니는 발굽을 나란히 하며 달렸다. 그러다 또 한 번 휘어진 길이 나타났고, 그 구간을 지나자 이번엔 곧장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은 두 포니를 오른쪽으로 서서히 이끌었다. 그 끝엔 초록빛 잔디로 뒤덮인 광활한 들판이 있었다.
두 포니는 마침내 계곡에 발굽을 디뎠다. 장엄함이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계곡이었다. 폭은 몇 마일은 족히 될 것 같았고, 남쪽으론 아무리 눈살을 찌푸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개울은 은빛으로 반짝였다. 개울가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베네보레야!”
희열에 찬 비명이 감탄을 표했다.
“이렇게나 많다니, 세상에!”
그 기쁨과는 별개로, 래리티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눈이 번뜩였다. 베네보레는 그 생김새만으로도 이미 멋진 꽃이었다. 꽃잎의 시작점과 끝 점은 날렵한데 반해 가운데 부분은 풍만하여 유려한 곡선이 돋보였다. 그런 꽃잎 다섯 장의 다섯 끝 점들은 모두 중심으로부터 같은 길이만큼 떨어져 있어서, 꽃의 실루엣이 아름다운 별 모양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꽃의 중심부는 새까만 색이었고, 줄기엔 순금색 점들이 조그맣게 찍혀 있었다. 꽃잎들은 깊고 어두운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래리티의 시선이 꽃잎에서 멈췄다.
가만. 저건 너무 짙은데. 어두운 보라색이잖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건 비단 래리티만은 아니었다.
“색이 너무 어둡다 아이가! 죄다 너무 많이 자라 삔게 분명하데이!”
“아, 이런.......”
래리티의 마음속에 서늘한 초조함이 넘실대며 차올랐다. 심장에 스산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레인보우 대시가 돌풍을 일으키며 두 포니의 앞에 착륙했다. 그녀는 지면을 할퀴듯 미끄러지며 속도를 줄인 뒤 다급히 보고했다.
“죄다 엄청 시꺼멓던데!”
그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애플잭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시를 달랬다.
“거, 거참, 레인보우, 이 가스나야. 여 좀 봐라. 음청 넓다 아이가. 아직 더 찾아볼 데가 있지 않긋나. 그제?”
“아냐, 다 찾아봤어! 낮게 날면서 샅샅이 다 뒤져봤다고!”
“조용! 이제부턴 직접 발굽으로 뛰면서 찾아볼 수밖에 없어!”
래리티는 엄습해오는 절망을 떨쳐내며 선언했다.
“개울을 기준으로 하자. 애플잭, 넌 저 쪽을 살펴봐.”
그녀는 개울 오른쪽을 발굽으로 가리켰다.
“난 이 쪽을 맡을게! 다들 몸조심하면서 최대한 빨리 움직이자! 대시, 넌 들판 전체를 지그재그형으로 날면서 살펴줘! 눈 크게 뜨고!”
“그치만-”
“당장 해!”
강철 같은 단호함이 서린 목소리였다. 대시는 곧장 고개를 끄덕대고 날아올랐다. 그녀는 새하얀 유니콘이 지시했던 대로 눈을 부릅뜬 채 바지런히 날아다녔다.
애플잭은 들판을 내달리다 단번에 개울을 뛰어넘었다. 그리곤 여물 부스러기를 빗질하듯 천천히 잔디밭을 거닐었다. 초록빛 동공이 번들대며 샅샅이 지면을 살폈다.
푸른 눈동자가 들판의 한쪽 끝부터 다른 쪽 끝을 다급히 훑었다. 래리티는 발굽을 서두르며 탐색을 이어갔다.
빨리, 빨리 밝은색의 베네보레를 찾아야 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구역을 촘촘한 지그재그 형태로 달리며 살폈다. 계곡의 넓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희한할 정도로 푹신거리는 지반은 래리티의 인상에 남았다. 그녀가 아는 한 가장 비옥하고 기름진 토양도 이 곳의 지반만큼 무르진 않았었다.
거의 한 시간 쯤 지났을 무렵, 래리티와 애플잭은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계곡의 길이가 너무 길었던 탓에 끝까지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안구가 시릴 정도로 탐색에 열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뭐라도 있디?” 래리티가 무기력하게 물었다.
“읎드라! 쪼매라도 밝은 건 한 개도 읎드라!”
애플잭은 발굽으로 지면을 내려치며 화풀이를 했다.
“내가 진작 그랬잖아!”
레인보우 대시가 두 포니 앞에 착륙하며 항변했다.
“근데 계곡이 여기 말고도 더 있더라고! 내 말은.......그만큼 들판도 더 있고, 찾아볼만한 데는 아직도 많단 거야! 아으으, 페가수스들 좀 더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페가-”
래리티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시무룩하게 끔뻑대던 푸른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심각하기 그지없는 현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새하얀 유니콘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그녀는 성큼성큼 레인보우 대시에게 다가갔다.
“어머, 대시! 드디어! 드디어 해냈구나! 이제 네 말을 고쳐줄 필요가 없게 됐어! 야호! 공주님, 아니, 레인보우 대시에게 축복을! 자, 대시, 이리오렴. 키스나 한 번 하자!”
래리티는 앞발굽을 대시의 목에 냅다 감았다. 푸른 페가수스는 조금 몸을 뒤로 빼는가 싶더니, 곧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으래, 뭐, 원한다면야.......”
래리티는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섰다. 이성을 되찾은 얼굴에 망설이는 빛이 어렸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며 의미모를 침음을 낸 뒤, 대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자. 됐지. 난 했어. 나중에 딴 소리 말기다.”
“거 봐라, 내 방법이 맞았제. 니처럼 계속 고쳐주기만 해선 될 게 아니었다 안카나.”
고개를 주억거리던 애플잭은 퍼뜩 화제를 돌렸다.
“잠만, 이게 아니제, 이 가스나들아! 정신 똑디 채리라! 다른 들판도 찾아봐야제!”
“그러니까, 대시, 네 말은.......”
래리티는 계곡의 북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서 다른 방향에도 들판이 있다는 거지?”
그녀는 두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다. 푸른 눈동자가 돌투성이의 계곡 너머를 집요하게 응시했다, 일행의 현재 위치로부터 조금 거리가 있는 곳, 그 끄트머리에 초록빛이 언뜻 보인 것도 같았다.
“.......그런 것 같네. 뭔가 있어!”
“그래, 내가 봤대두!”
대시가 큰소리를 쳤다.
“내가 당장 가서 더 보고 올게! 니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푸른 페가수스는 날개를 파닥대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목에 매어져 있는 스카프가 무지갯빛 궤적 위에서 팔락거렸다.
멀어져가는 대시를 바라보던 애플잭은 기상 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더 젖혀들었다. 어두운 회색빛깔의 구름이 소리 소문 없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도 전에 없이 사납게 불어댔다. 그 서슬에 카우걸 모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아따 마, 돌겄네 진짜.”
애플잭은 모자를 부여잡으며 혀를 찼다.
“서둘러야 된데이. 아무래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다.”
“여기 고도를 고려해보면, 눈폭풍이 일어나지 싶은데.”
래리티도 우려를 표했다.
“여기가 눈에 파묻혀버리면 베네보레고 뭐고 다 끝나는 거야!”
레인보우 대시는 온힘을 다해 날고 있었다. 이 푸른 페가수스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맞바람이 정말 하나도 안 느껴져. 짱짱 스카프 만만세. 팔라라우리아랑 다시 만나게 되면 고맙다고 꼭꼭 말해줘야지.
순식간에 협곡을 건넌 대시는 다른 계곡의 상공에 다다랐다. 일행이 있던 곳보다 조금 작은 계곡이었지만, 그 곳에도 대부분 베네보레로 이루어진 야생화 군락이 있었다. 이전 계곡에서도 뻔질나게 보였던 시커먼 보라색 빛깔이 푸른 페가수스를 반겼다.
대시는 이를 앙다물었다. 장밋빛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페가수스의 시력이 베네보레 군락을 샅샅이, 세심히, 집요하게 살폈다. 그녀는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딜 봐도 어두운, 이제 새까맣게 타버린 것처럼 보일 지경인 보라색뿐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절망마저 불살라진 잿더미에서야 비로소 움트는 법이다.
새까만 보라색 가운데 단 하나, 선명한 보라색의 점이 있었다. 그 점은 길쭉하고 낮고 넓은, 이상한 모양의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대시는 순간적으로 두 눈을 깜빡였다. 강렬한 보라색 일점의 잔상이 눈꺼풀에 남아 반짝였다. 상공에서 허둥대던 그녀는 곧장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소리쳤다.
“봤어, 봤다고! 저기 있어! 베네보레가! 선명한 보라색! 저거야!”
“그럼 와 일로 오고 있노!?”
애플잭은 폐 속 공기를 그러모으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다앙-장 가서 갖고 온나, 이 가스나야! 빨리!”
하늘은 완전히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세찬 바람이 계곡을 내달리며 하울링 같은 소리를 냈다.
“빨리 갖고 오래이! 날씨가 심상찮다!”
레인보우 대시는 고개를 까딱대며 정신없이 방향을 바꿨다. 그녀는 눈 깜짝할 새에 작은 계곡의 상공에 다다랐다.
한껏 각성된 심장이 미친 듯이 내달린다. 삶의 맥동이 날개 끄트머리의 깃털들을 포함해 온몸의 털 한 올 한 올에까지 전해진다. 대시는 자신의 몸을 감싸며 소용돌이치는 몽환시를 느낀다. 그녀는 해안가의 모래사장이고, 몽환시는 그녀에게 스몄다가 물러나길 반복하는 대양이다.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 대시는 그것을 느꼈다. 그간 겪었던 고된 여정의 피날레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작은 계곡으로 진입한 대시는 조금 전 봤던 이상한 모양의 언덕을 향해 고도를 낮췄다. 그녀는 언덕의 전방에 들이박듯 착륙하며 발굽을 굴렸다. 지면으로 이어진 무지갯빛 궤적이 풀들 사이를 날렵하게 헤치고 지나갔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부드럽게 흩날렸다.
언덕의 꼭대기엔 낮게 패인 잔디밭이 있었다. 대시는 그 근처에서 거칠게 속도를 줄였다. 그 쪽은 지면이 굉장히 부드러워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굽이 땅 속으로 푹푹 빠졌다.
이제 베네보레는 3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대시는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의 아드레날린에 몸을 맡기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됐어! 드디어!”
대시는 괴성과 함께 지면에 발굽을 내리찍었다.
“찾았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굽 아래 대지의 용틀임에 따라 대시의 몸도 흔들렸다. 이 진동은 비단 언덕 뿐 아니라 모든 계곡, 모든 산악지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땅 속에 빠지겠어!
다리를 쭉 벌리며 중심을 유지하던 대시는 황급히 날개를 펼쳤다. 그녀가 날아오르기가 무섭게 근방의 모든 흙과 잔디가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그 아래에서 축축하게 젖은 듯 기이한 광채를 가진 밝은 바다색의 평원이 솟아올랐다. 그 평원은 솟아오를수록 계속 넓어져만 갔다.
대시는 상공에 맴돌며 ‘그것’의 부상을 지켜보았다. 그것의 영역은 수십 미터 이상 뻗어 있었고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리며 시야를 180도 돌렸다. 다른 방향에서 봐도 그것의 영역은 수십 미터 이상이었고, 마찬가지로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곳엔 초록빛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고, 진하지만 공허한 검은색만 보였다. 산악지대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더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우르릉대는 소리도 점점 커져만 갔다.
대시는 언덕이었던 곳에서 거리를 두며 뒤쪽으로 비행했다. 바다색의 평원은 찬란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조금 전 보았던 공허한 검은색이 실은 바다색의 평원을 양분하는 경계였음을 깨달았다. 그 검은 선만 해도 두 포니를 나란히 세우고도 남을 만큼 두꺼워 보였다.
잠시 후 바다색 평원의 확장이 멈췄다. 이제 그것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이상한 타원형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온 사방이 고요해졌다.
두꺼운 검은 선의 양 끝이 씰룩대더니, 폭이 좁아졌다. 대시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언덕이었던 것이 ‘폭발했다.’
흙과 잔디, 꽃, 바위 같은 것들이 온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덩어리 일부는 대시의 코 아래까지 날아들었고, 그 뒤로 짙은 흙먼지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대시는 고도를 높였다. 그러나 퍼져나가는 흙먼지의 위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더 높이 날아올랐다. 이윽고 들판을 이루던 모든 흙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자, 매끄러운 검은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선명한 보라색의 베네보레는 그 때까지도 온전했다. 그것은 슈가큐브 코너보다 큰 어떤 길쭉한 것의 틈새에 쐐기처럼 박혀있는 듯 보였다.
저게 뭐야?!
대시는 혼비백산하여 친구들이 있는 남향으로 날아갔다. 눈송이들이 그녀의 주변에서 한층 더 빽빽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
애플잭과 래리티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때 산의 일부였던 덩어리들이 하늘로 떠올랐고, 그 아래에서 거대한 검은색 기둥 모양의 것들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좁은 협곡이 폭발하듯 무너지며 애플잭네 헛간 크기의, 혹은 포니빌 도서관 크기의 바위들을 온 사방 백여 미터 거리까지 날려 보냈다.
눈에 익은 푸른색 형상이 두 포니들에게 돌진해왔다. 그 형상 : 레인보우 대시는 친구들 앞을 스쳐지나가며 빽 소리쳤다.
“튀어!!”
애플잭과 래리티에게 그 이상의 경고는 필요치 않았다. 두 포니는 곧장 몸을 돌리고 내달렸다. 아니, 그 이상으로, 살면서 다시는 달릴 기회가 없을 것처럼 질주했다. 무너져 내리는 계곡의 파편들, 흙무더기들과 풀떼기들이 갈가리 찢긴 채 흩날리며 그들을 바짝 추격해왔다.
산악지대 전체가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포니는 몇 분간 쉼 없이 전력으로 질주했다. 끈적거리는 침이 거품이 되어 입꼬리에 맺혔다. 그들의 바로 곁에서 대시가 날고 있었다. 그녀 역시 겁에 질려 있긴 했지만, 친구들을 두고 떠나려 하진 않았다.
몇 분이 수십여 분이 되었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대면서도, 일행은 감히 멈출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산악지대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검은 탑 또한 지금도 일행의 뒤쪽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높이도 높이였지만, 그 두께 또한 지평선을 다 가릴 만큼 두꺼웠다. 시야에 한 번에 담기도 벅찬 것을 제대로 살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일행은 길고 긴 계곡의 끄트머리 : 가파른 내리막길의 초입에 다다랐다. 달리던 두 포니들은 발굽을 구르며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래리티는 뿔이 어딘가에 걸려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옆으로 몸을 돌렸다.
굴러 떨어지던 그들은 돌로 된 척박한 평지에 쏟아지듯 떨어져 내렸다 . 그곳은 길게 늘어선 산봉우리들에 둘러 싸여 있어서, 마치 고전적인 경기장Stadium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전방을 주시하던 대시는 석재 테이블과 아치형의 고대 건축물들의 잔해를 어렴풋하게 보았다. 그녀의 뒤편에 엎어지고 자빠져있던 두 포니들은 비틀대면서도 일어나 다시 발굽을 굴렸다.
거친 바위 위를 가로지르며 이어지던 도주극은 래리티의 탈진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의 인내심은 상당히 발전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새하얗던 유니콘은 흙먼지 범벅이 된 채 돌바닥에 엎어졌다. 그녀는 얼음처럼 차가워진 공기에도 아랑곳 않고 숨을 몰아쉬었다.
애플잭은 래리티보다 조금 더 나아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거친 숨결이 안개처럼 뿌옇게 새어나왔다.
레인보우 대시는 두 친구들의 근처에 착륙했다. 일행 중 제일 덜 지쳐있던 덕인지-혹은 탓인지, 이상(異狀)을 제일 먼저 포착한 것도 그녀였다.
“뭐야.......?”
이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다른 말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언뜻 듣기에 그것은 바람 소리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낮고 길게 이어졌다. 날카롭고 은근한 그 소리는 바람을 타고 온 대기에 스며들었다.
이쯤 되자 애플잭과 래리티도 그 불길한 징후를 감지했다. 서늘한 공포가 세 포니들의 등골을 타고 기어올랐다.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하지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없이 솟아오르던 검은 기둥 같던 그것은 이제 상승을 멈춘 상태였다. 3킬로미터도, 5킬로미터도, 10킬로미터도 아닌 수십 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까지 치솟은 채로.
그것의 몸체 일부는-어쩌면 몸체의 대부분은-여전히 대지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것의 몸체 중 지표면에 튀어나온 부분만 쳐도 에버프리 숲만큼이나 광대하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복부로 추정되는 방대한 부분까지 포함해, 그것의 온 몸은 칠흑같이 시커먼 색이었다.
세 포니들은 위쪽으로 목을 쭉 내뺐다. 공포와 호기심에 차있던 눈동자들이 그것의 꼭대기 부분에 이르자 경악에 물들었다. 하늘 높이 솟은 목 위엔 무려 캔틀롯과 비슷해 보이는 크기의 스페이드형 머리가 달려 있었다.
그것의 머리엔 이글거리는 네 개의 녹색 눈이 있었다. 눈 하나하나가 큰곰자리Ursa Major보다 거대했으며,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자아내는 악마스러운 시선은 단번에 전 세계를 가로질렀다.
그것의 입이 열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칙칙한 흰색의 송곳니들은 하나하나가 포니빌 정도의 크기였다. 흐릿한 푸른색의 혀는 폭으로는 성체 드래곤의 날개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의 길이를 능가했고, 길이로는 포니빌에서 에버프리 숲까지의 거리보다 길었다. 입 밖에 축 늘어져 있던 혀가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하게 움직였다. 낮으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또 한 번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애플잭은 마른침을 삼켰다.
.......바실리스크도 있을 거고, 버닙도 있을 거고, 발록도 있을 거고.......아, 세계뱀도 있을 지도 몰라!.......
<.......아, 세계뱀도 있을 지도 몰라!.......>
핑키 파이가 했던 말이 그제야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 거.......레인보우. 쟈가 그, 세계뱀인가 뭔가 하는 거 아이가?”
“어, 그러게.”
대시는 혼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러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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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끝
https://www.fimfiction.net/story/182859/19/its-a-dangerous-business-going-out-your-door/chapte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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