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레인보우 대시의 눈꺼풀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러나 다시 열렸다.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대시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들판이 보였다. 그녀는 눈에 남은 졸음기를 앞발굽으로 털어내며 하품했다.
꼭두새벽부터 기상하는 것은 레인보우 대시에겐 여전히 낯선 일이었다. 포니빌의 구름집에는 창문을 완전히 가려주는 어두운 구름 커튼과 극도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푹신한 구름 담요가 있었다. 그곳엔 매일 밤마다 수마(睡魔)가 찾아왔고, 녀석은 여간해서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대시는 제 몸을 뉘인 흙바닥을 발굽으로 긁었다.
요즘 들어 계속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단 말야. 뭐, 이유야 뻔하지.
푸른 페가수스의 얼굴엔 시무룩한 기색이 역력했다.
땅바닥이 너무 딱딱하니까!
그러잖아도 어제, 그녀는 친구들에게 길드데일 서부 구역의 요새나 주둔지 아무 곳에나 가서 하룻밤 묵어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그 속내에는, 한 번이라도 더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이 제안을 단박에 거절한 것은 애플잭이었다. 현재 나아가고 있는 최단 거리의 여로에 요새나 주둔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치백 산악지대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된다 안카나!
애플잭의 강경한 목소리가 대시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길드데일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묵었으이, 이제 여유가 읎데이!
길드데일 포니들과 시간을 보내던 애플잭의 모습은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특히 그 뻘건 녀석하고 있을 땐 확실히 그랬지.......
대시는 이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애플잭이 더 이상하게 굴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전날의 여행길에서 애플잭, 그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시종일관 시무룩해보였고, 가끔 입을 열 땐 퉁명스럽게 말했다. 래리티에게 연행되듯 구석으로 끌려가 그 이유를 귀띔받기 전까지, 대시는 애플잭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제에에에길, 그 때 소리 지른 건 농담이었는데! 난 진짜 몰랐다구!
대시는 뒷발굽으로 몸을 일으켜 야영지를 죽 훑어보았다. 래리티는 담요 아래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전용 베개를 베고 있었고, 수면 안대도 제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 위에 흘러내린 풍성한 보랏빛 갈기가 부드러운 숨소리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였다.
애플잭은 자신의 안장 가방을 베고 있었다. 그녀의 몸도 래리티처럼 얌전히 담요에 덮여 있었다. 얼굴에는 카우걸 모자가 덮여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새로 얻은 갑옷이 곱게 개어진 채 쌓여 있었다.
세상에. 다들 일어날 낌새가 전혀 안 보여!
대시는 굉장히 놀라워했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난 거야! 확실히!
이전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평소대로였다면, 그녀가 기상한 지 적어도 몇 분 이내에 애플잭이나 래리티 둘 중 하나는 깨어났을 것이었다.
.......이제 뭘 하지?
푸른 페가수스는 간단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날자!
날개를 파닥이며, 레인보우 대시는 발굽으로 천공을 가리켰다. 그녀는 위쪽으로 솟구치듯이 날아올랐다.
나선형으로 비행하던 푸른 페가수스는 날개 각도를 더 좁혔다. 그러자 몸체의 이동 반경이 회전축에 수렴했다. 대시의 몸은 팽이처럼 회전하며 대기를 갈랐다. 타오르는 주황색으로 도금된 태양이 지평선 위를 굴렀고, 황금빛으로 불타는 평원은 불그스름한 하늘과 끝없이 자리를 바꿨다.
엄청난 속도감, 복잡한 기동 방식이 일으키는 혼란, 빙글빙글 돌며 사방으로 쏠리는 뱃속의 느낌, 비행에 대한 모든 것. 레인보우 대시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그녀는 두려움을 이겨낼 때 느껴지는 짜릿함을 사랑했다. 일전에 래리티에게 말했던 대로, 두려움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떠난 적이 없었다. 높은 고도에서 수직 하강을 하기 직전에도 있었고, 정말 빨리 날 때는 온몸을 내달리는 차가운 공황의 형태로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절대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대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녀석을 지나치며 어깨 뒤편을 향해 웃음을 날려준 적이 많았다.
두려움들을 모두 이겨내다 보면 말이지, 언젠가 포니라는 존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두려움들을 다 경험해볼 수 있을 거야.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지론이었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어진다면.......엄청 넓고 푸른 하늘만 남겠지.
레인보우 대시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푸른 날개가 한껏 부풀려졌다.
두려움을 이겨낸다니 말인데.......
고도를 높인 그녀는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길드데일의 모든 대지가 주황빛을 내며 녹아내리는 금 조각처럼 보였다.
대시는 고도를 더욱 높였다. 구름 몇 점이 무지갯빛 궤적에 휘말려 흩어졌다. 그녀는 속도를 늦추고 정지 비행 형태를 취했다. 그리곤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려진 복부 위에서 차가운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것은 대시의 날개 죽지에까지 피어올라 찐득하게 늘어지며 속삭였다.
이제 천천히 고도를 낮추는 게 어때? 이 날개를 조금만 접으면 된다구.
천천히? 조금만?
푸른 페가수스는 날개를 접었다. 다만, 완전히 접었다.
그런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 그런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무지갯빛 유성이 하늘을 갈랐다.
자유롭게 떨어져 내리며, 레인보우 대시는 공중에서 몇 번이나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다 코가 지면을 향하도록 자세를 고정시킨 뒤, 다시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추락이 가속화되었다. 주변의 풍경이 희뿌옇게 흐려졌고, 지면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아, 고글 가져올 걸.
대시는 입꼬리를 올리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지면으로부터 약 30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에서, 그녀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몸을 뒤로 당겼다. 날개각이 날카롭게 좁혀지고, 푸른 몸체가 대기를 가르며 옆으로 회전했다. 그 회전력에 액화된 공기가 푸른 날개와 무지갯빛 꼬리에 부딪혀 비산했다.
레인보우 대시는 급하게 회전을 멈추며 온힘을 다해 무지갯빛 꼬리를 휘둘렀다. 초승달 모양의 반짝이는 무지개가 하늘을 수놓으며 멀리 퍼져나갔다.
와, 이런 건 처음 해봤는데!
대시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생각했다.
뭐라고 이름 붙일까?
그녀는 뺨에 발굽을 가져다 댔다.
“어.......바우 버커Bow Bucker?”
대시는 새 이름 후보를 두어 번 입에 담아 보았다.
“나쁘지 않네.”
날개를 힘차게 파닥대며, 그녀는 들판 위를 날아 야영지로 향했다.
-
어느덧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야영지로 더 가까이 날아간 레인보우 대시는 일어나 있는 애플잭과 래리티를 발견했다.
고도를 낮춘 그녀는 날개를 접고 비행 거리를 최대한 줄이며 착륙했다. 그 탓에 몇 걸음 정도는 보폭을 크게 벌려야 했다.
“가스나 또 어데 갔나 했다.” 애플잭이 말했다.
“그냥 날개 스트레칭 좀 하고 온 건데 뭘.” 레인보우 대시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글킨 해도 시간은 잘 맞춰 왔데이. 슬슬 아침 먹어야제. 가방 뒤져보니 사과가 좀 있드라. 벌써 며칠은 된 기라, 상하기 전에 처리하는 기 좋겄제.”
“세상에, 자기, 정말 최고야!”
래리티가 환호했다.
“이 거친 풀떼기만 안 먹을 수 있다면 뭐든 환영이야!”
애플잭은 안장 가방에서 사과 세 개를 꺼냈다.
“레인보우. 니 당근 좀 갖고 있다 아이가? 맞제?”
“어? 아, 맞아!”
대시는 새로 받은 안장 가방을 떠올렸다.
거기에 먹을 게 많이 있었지!
그녀는 안장 가방을 뒀던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당근 여섯 개를 가져와 사과 옆에 두었다.
“다들 먼저 무라. 내는 좀 이따 오께.”
애플잭은 엉덩이로 털썩 주저앉은 채 주섬주섬 가죽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앞다리에 보호대를 두르고 고정 끈을 이빨로 물어 당겼다.
“너 진짜 그거 계속 입고 다닐 거야?” 대사가 물었다.
“안장 가방에 넣을 자리가 없다 안카나.”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대꾸했다.
“딱히 불편하지도 않데이. 진짜다.”
“.......무겁진 않아?” 이번엔 래리티였다.
“하나도 안 무겁데이. 농장에서 끌고 댕기던 것들에 비하면 암것두 아이다. 그기다, 길드데일에서 을매나.......좋은 일들이 많았는지 떠올리기도 좋지 않긋나.”
래리티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애플잭은 아직 착용하지 않은 한쪽 다리 보호대를 멀거니 응시하고 있었다.
“애플잭, 정말.......안 무거운 거지?”
새하얀 유니콘이 재차 물었다.
애플잭은 몇 번이나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당연하제. 당연히 그래야제.”
그녀는 남은 다리 보호대를 집어 뒷다리에 둘렀다.
일을 마친 애플잭이 식사 자리에 돌아왔을 때, 래리티와 레인보우 대시는 할당받은 사과 한 개와 당근 두 개를 이미 먹어 치운 뒤였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둘 모두 후식 삼아 풀을 조금 뜯어먹고 있었다. 래리티는 풀떼기의 거친 식감에 여전히 몸서리를 치긴 했지만, 풀을 먹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애플잭은 제 몫의 사과와 당근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곤 풀을 뜯어먹는 무리에 합류했다.
대시는 옆에 애플잭이 왔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후식에 열중해 있었다. 이른 아침의 빈 속 비행이 이 유별난 허기의 주범이었다. 약 10분 간 풀을 흡입하고 나서야 포만감을 느낀 그녀는 친구들에게 돌아가 야영지 정리를 돕고 짐을 챙겼다.
푸른 페가수스는 엉덩이를 짜증스레 씰룩대며 안장 가방의 위치를 맞췄다. 둔부 쪽에 없던 무게가 생긴 탓에, 전날 비행할 때 불균형이 느껴졌었다. 새로 생긴 안장 가방의 무게에 적응하는 데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았다.
래리티는 마법으로 담요를 돌돌 말아 정성스레 접어 안장 가방에 넣었다. 그리곤 린넨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둘렀다.
애플잭은 모자를 눌러쓴 뒤, 등에 맨 안장 가방들의 위치가 만족스러워질 때가지 엉덩이를 흔들었다. 이윽고 그녀는 친구들을 불렀다.
“가스나들아, 다들 준비됐제?”
“오늘은 얼마나 빨리 달릴 거야?” 래리티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최대한 많이 갈 수 있을 정도로 빨리 갈끼다.”
“흐응, 알겠어.”
래리티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녀는 빠르게 달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만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싫어했다.
“그럼 출발!”
애플잭은 일행의 선두에 나서며 황금빛 들판을 내달렸다. 이 날도 레인보우 대시는 일행과 보조를 맞추며 발굽으로 달렸다. 태양이 일행의 뒤에서 밝게 빛나며, 황금빛 들판 위로 길고 어두운 세 포니들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질주하는 동안, 애플잭은 위쪽을 조금씩 올려다보았다. 어둠에 가려져 어렴풋하게 보이지만, 실은 지평선을 가릴 정도로 웅장한, 발굽을 내딛을 때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산봉우리들.......그녀는 앞으로 남은 여로(旅路)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침내 최종 목적지 : 아치백 산악지대가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저 흐릿한 실루엣으로서가 아닌, 선명한 암석들의 형체로서 똑똑히 보였다. 애플잭은 두 눈을 부릅뜨고 최대한 멀리 보려 했지만, 머나먼 거리 탓에 풀과 하늘 그리고 산비탈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근디, 숲은 어뎄노?
“레인보우! 내 옆으로 좀 와가꼬, 길더스들이 얘기하던 숲이 보이나 좀 봐주그라.”
푸른 페가수스는 페이스를 올려 애플잭의 옆에 붙었다. 페가수스로서 타고난 시력을 가진 장밋빛 눈동자가 먼 거리까지 꿰뚫어 보았다. 그녀의 시각에서, 일행의 앞길은 한동안은 풀밭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더 멀리까지 보면, 산악지대의 초입 부근에 어두운 띠 같은 것이 있었다.
“아, 뭔가 보여! 저거 같은데!”
대시가 소리쳤다.
“그.......잘은 모르겠는데, 이 페이스로 가면 지금부터 하루하고 반 정도 더 달리면 도착할 것 같아!”
지금부터 하루 반? 아직 아침이지 않나?
“가스나들아! 좀만 더 빨리 가재이!”
애플잭은 뒤를 돌아보며 일행을 독려했다. 투구에 박힌 에메랄드가 햇빛을 받아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어머, 우아해라!
새하얗고 예술적인 유니콘에게 그것은, 지금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가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나저나, 길더스들은 저런 보석들을 다 어디서 구해온 걸까?
래리티는 상념에 잠겼다.
유니콘의 마법 없이 보석을 찾긴 힘들었을 텐데. 게다가 길드데일의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지. 이퀘스트리아의 암석 지대만큼 퇴적물이 풍부할 거라고 보긴 힘들어. 어쩌면.......이퀘스트리아랑 길드데일의 관계가 괜찮았던 무렵에 이퀘스트리아에서 수출됐던 보석들이 아닐까?
학교를 졸업한 뒤로, 래리티는 교과서란 것들은 건드린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역사 교과서를 샅샅이 뒤져보고 싶었다.
어쩌면 스위티 벨한테서 역사책을 빌릴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러길 바래야지. 그 애 정도의 나이라면 학교에서 역사도 배우겠지?
여동생을 생각하는 언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 스위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학교에 있겠지, 아마. 부모님하고 보낸 일주일의 휴가를 끝내고 말이야.
이제 스위티 벨은 카루셀 부티크에 혼자 있게 된 셈이었지만, 래리티는 이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랜 시간 플러터 샤이와 알고 지내왔고, 그 상냥한 샛노란색 페가수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두 포니는 트와일라잇을 구심점에 두고 묶이기 전부터 친했다. 사실 래리티는 플러터 샤이가 포니빌에 와서 처음으로 만났던 포니이기도 했다.
-
정오가 되었다. 속도를 늦추던 일행은 아주 낮은 언덕의 꼭대기에 멈춰 섰다.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은 따스했고,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레인보우 대시에겐 날개가 근질거리게 만드는 풍경이었지만, 일단 허기로 요동치는 뱃속부터 해결해야 했다. 무지갯빛 갈기가 땀에 절어 번들거렸다.
대시는 고개를 숙이고 주변의 풀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숲이 제법 가까워졌어.”
그녀는 풀을 씹으며 말했다.
“지금 페이스 좋은 것 같아.”
“거 좋네.”
애플잭은 모자를 벗고, 노란 갈기를 발굽으로 대충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근디, 지금 좀 덥지 않나? 내만 그런 기가?”
“어두운 색 가죽 갑옷을 입고 있잖니, 애플잭.”
래리티가 지적했다.
“그거 진짜 안 벗을 거야?”
“지금 벗어 뭐하긋노. 출발하기 전에 다시 입어야 될낀데.”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기다, 아까도 말했지 않나. 늫을 데가 없다 늫을 데가. 내 안장 가방엔 자리 읎고, 니나 레인보우 거에도 안 들어가지 싶고.”
래리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만에 하나의 경우 : 애플잭의 갑옷을 들고 가야 하는 경우에 대해 고민했다. 애플잭의 말대로, 그녀의 안장 가방도 짐으로 꽉 차 있었다.
애플잭의 신체 조건은 도보 여행에 최적화되어 있긴 해. 갑옷 하나 정도 더 들고 가는 건 그 애한텐 힘든 일도 아니겠지. 애초에 들고 갈 수 있다면, 분명히 입고 갈 거고.
일행으로부터 왼쪽 방향,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울링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대기를 찢어발기며 예고 없이 세 포니들의 귓가에 박혀들었다.
“코마가다!” 레인보우 대시가 소리쳤다.
“꺄악! 싫어!”
래리티는 비명을 질렀다.
“아직도 그 짐승들이랑 엮여야 되는 거야?”
“길드데일을 완전히 통과하기 전까지는 계속 엮이지 싶데이.”
애플잭이 말했다.
“레인보우. 올라가서 갸들 좀 살펴봐 줄 수 있나?”
푸른 페가수스는 무지갯빛 궤적을 남기며 솟구쳤다. 그녀는 파란 하늘로 깊숙이,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뛰어들었다.
대시는 몸을 돌리며 온 사방의 지평선을 살폈다. 그러다 남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전방으로 몸을 내뻗었다.
잠시 후, 이륙할 때처럼 빠르게 착륙한 그녀는 다급하게 보고했다.
“셋이야! 곧장 이리로 오고 있어!”
“다 처리할 만한 시간이 있을까?” 래리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좀.......흩어져 있던데.” 대시가 답했다.
“그냥 갸들한테서 떨어지기만 하믄 된데이. 괜히 가가꼬 투닥거리지만 않음 된다. 그럼 갸들도 우릴 쫓아오진 않을기라.”
그 말을 들은 대시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AJ, 래어!”
그녀는 날개를 파닥이며 지상에서 몇 미터 가량 날아올랐다.
“내 몸통 잡아!”
래리티와 애플잭은 흥미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대시를 바라보았다.
“아 쫌! 빨리!”
래리티가 먼저 나섰다. 새햐얀 유니콘은 폴짝 뛰어올라 대시의 몸통을 발굽으로 감쌌다. 애플잭은 좀 머뭇거리긴 했지만, 결국 래리티처럼 대시의 몸통에 매달렸다.
그렇게 세 포니들은 이상한 형태의 단체 포옹을 하게 되었다. 이 포옹의 중심에 있는 푸른 페가수스는 날개를 아주 활짝 펼친 채, 최대한 크게 펄럭대며 힘겨운 날갯짓을 이어갔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일행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근육질의 어스 포니와 옷가지를 잔뜩 싸든 유니콘을 매달고 나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레인보우 대시의 온몸에 땀방울이 맺혔다.
할 수 있어! 난 이미 래리티랑 원더볼츠 셋을 한꺼번에 들고 날았던 적도 있다구! 할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되뇌었다.
할 수 있어!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소닉-레인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푸른 페가수스는 그 사실을 무시했다.
어느덧 레인보우 대시는 6미터 상공에 도달했다. 그 지점에서부터 그녀는 더 이상 고도를 올리지 못하고 정지 비행 상태로 돌입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날개는 더욱 리드미컬하게 흔들어댔다. 가혹한 반복 동작 탓에 거의 트랜스 상태에 접어든 근육에선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 다른 하울링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에 찢겨져 진동하는 대기가 일행들의 늘어진 발굽에 느껴질 정도였다.
그 순간, 회색의 거대한 코마가가 언덕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발을 디딘 곳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행이 휴식을 취하려던 곳이었다. 녀석은 앞으로 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목, 두터운 몸통, 길고 채찍 같은 꼬리까지, 온몸 구석구석 동작 하나하나가 굉장히 느렸다.
녀석으로부터 약 6미터 쯤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코마가가 나타났다. 코마가들이 어떤 방식의 연락 체계를 갖고 있는지, 애초에 원거리 간 의견 교환이라는 개념이 있긴 한 지 포니들로선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또 다른 코마가가 나타난 순간, 느리게 움직이던 코마가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번째로 나타났던 코마가 역시 덩달아 달렸다.
일행은 두 코마가가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얕은 구덩이를 지나 완만한 언덕을 올랐다. 그리곤 쭉 뻗은 평지를 가로질러갔다.
두 코마가가 충분히 멀어지자, 대시는 날개를 뒤로 돌리며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계속 흔들리던 푸른 동체는 발굽을 풀밭에 딛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애플잭과 래리티는 대시의 몸통을 감쌌던 발굽을 풀고 일어섰다. 레인보우 대시는 곧장 날개를 접어 넣고는 땅에 쓰러져 헐떡댔다.
“허이구 무서라, 요 귀둥이 가스나야.”
애플잭은 다정한 눈빛으로 대시를 바라보았다.
“와 그랬노? 기냥 냅다 튀었음 됐을낀데.”
“시간 안에.......도망칠 수.......없을 것 같았.......어.”
레인보우 대시는 혀를 내뺀 채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래리티는 대시의 안장 가방에서 가죽 물통을 꺼내 대시에게 건넸다. 대시는 물통을 열고는 어미젖을 찾는 강아지 마냥 탐욕스럽게 물을 들이켰다.
“정말 훌륭했어, 대시.”
래리티는 대시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대시는 개구지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들 잊었나 본데, 내가 바로 아이언Iron 포니라구.”
“흐흥.”
애플잭은 코웃음을 쳤다.
“이 가스나야, 니는 재시합 땐 아무도 안 왔던 걸 다행으로 알어라.”
그녀는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마주칠 뻔했던 코마가 두 마리가 자그맣게 보였다. 그들은 짧은 평지를 지나고 마주친 작은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서로 부딪힐 일없었음 좋겄는디. 쟈들도 지들을 기냥 냅둬줬으면 하지 않긋나. 쟈들이 마을이나 요새 쪽으로 지나갈라 칼 때만, 아주 쪼금만, 쪼금만 우리가 발굽을 써주면은 피차 피 볼일 없을낀데.......
‘간단한 밧줄 기술만 있으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애쉬테일을 비롯한 모든 길더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플잭은 이를 계기로 길드데일이 바뀌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만약 그 바램이 이루어져서, 오랜 역사 속에 이어져 온 폭력의 굴레가 끊어진다면 애플잭으로선 그 이상 자랑스러운 일이 또 없을 것이었다.
그기다 트와일라잇도 구하면은 진짜 완벽하겄제. 암암.
일행은 대시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 구체적으로는, 제 발굽으로 일어나 사과 한 알과 빵 반 덩이를 먹고 풀을 조금 뜯은 뒤 물 한 모금으로 입가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일행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이번 일로 레인보우 대시에겐 날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추가되었다. 그녀의 날개 근육은 충분한 휴식이 요구되는 상태였다.
서쪽으로 달리는 일행의 시야에 어느덧 저물어가는 태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치백 산악지대는 가까워질수록 더 크고 어두워졌고, 황금빛이 되었던 하늘은 천천히 주황빛으로 불타올랐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애플잭은 어깨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하늘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달려보재이!” 그녀는 래리티와 대시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HOORAY!”
래리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어쩌면 그저 알아들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를 기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온몸은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태양이 아치백 산악지대 뒤편으로 완전히 저물자, 하늘은 불그스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들판이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할 무렵, 조금 전부터 슬금슬금 들판을 비추던 은색 달빛이 비로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어떤 냄새를 감지했다.
“무슨 냄새 나는 것 같지 않나?”
그녀는 속도를 줄이며 친구들의 의견을 구했다.
래리티는 고개를 들고 코를 킁킁거렸다.
“어.......물 냄새인 것 같은데?”
“내도 글케 생각한데이.”
레인보우 대시도 친구들을 따라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텐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것 같은데.”
“어, 음.......”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한담?
래리티는 잠시 고민하며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대시야, 있지, 내가 듣기론, 페가수스들은 월등한 시각을 타고나는 대신, 그, 다른 감각들은.......그만큼 뛰어나진 않대.”
“엥? 그런 게 있었어?”
푸른 페가수스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놀라움을 표했다.
“그럼 니들은 어떤데?”
“스미스 할매 말로는, 어스 포니들은 냄새를 잘 맡고 귀도 밝다카데.”
애플잭이 말했다.
“할매가 그 나이 먹고도 매년 번쩍사과 잼 만드는 거 보믄 얼추 맞는 말 같기도 허고.”
래리티는 발굽으로 갈기를 매만지며 공연히 폼을 잡았다.
“우리 유니콘들은 미각과 촉각에 예민하단다. 날 보면 정확하게 알겠지 않니?”
“아하, 어쩐지! 이제 이해가 되네!”
대시는 두 앞발굽을 서로 가볍게 맞부딪혔다.
“그래서 너가 풀 먹을 때마다 그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놨던 거구나!”
래리티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받아쳤다.
“여기 풀은 정말 별로야, 대시. 진짜로. 그건 내가 유니콘인 것과는 하등 관게가 없단다.”
“가스나들아, 마, 됐다, 그건 글코.”
애플잭은 일행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저 짝으로 가믄 물이 나올 것 같은디.”
애플잭은 냄새를 따라 왼쪽으로 천천히 달렸다. 대시와 래리티도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작은 강을 발견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수심은 얕았지만, 오랜 세월 흘러온 것 같아 보였다.
“잘 됐데이. 오늘은 여서 야영하는 걸로 허자. 물도 얼마 안 남았제? 슬슬 채워야 된다 아이가.”
“그리고 목욕도 할 수 있지!”
래리티가 밝게 외쳤다. 그녀는 안장 가방에서 파라핀지로 포장된 무언가를 꺼냈다. 포장을 풀어헤치자, 하얀 덩어리 같은 게 드러났다.
강한 허브향을 풍기는 비누였다. 대시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비누? 비누를 가져왔었어?”
“당연하지, 대시. 비누 없이 어떻게 모험을 떠나니?”
“잠깐, 잠깐. 가스나들아. 좀만 기달려바라. 니들 비누 쓰기 전에 물통부터 채워야제.”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안장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래리티. 내가 물통 채우는 동안, 야영할 땅에 있는 풀 좀 뽑아주그래이. 레인보우랑 같이 하믄 수월할끼다.”
새하얀 유니콘은 얼굴을 찡그리긴 했지만,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그녀는 대시를 도와 마법으로 강기슭의 풀들을 뽑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한 공간이 만들어졌고, 두 포니는 뽑았던 풀들을 빈 공간에 깔았다.
“쿠션감이 부족해 보이는데.”
대시는 자신의 구름집에 있는 구름 담요를 생각하고 있었다.
“평평한 카펫이라고 생각하렴, 대시.”
새햐얀 유니콘이 대시를 달랬다.
꽉 찬 물통을 짊어진 애플잭이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래리티는 대시를 달래다 말고 곧장 강으로 달려갔다. 물론 비누도 있지 않았다.
이로서 야영지를 완성시키는 것은 온전히 오렌지 색 어스 포니와 푸른 페가수스의 몫이 되었다.
“.......불이나 지필까?”
“안될 거 없제.”
애플잭은 착화용 통나무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걸 본 대시는 크게 자란 마른 풀들을 근처에서 뽑아다 통나무 주변에 뿌렸다. 애플잭은 통나무 가운데에 얕은 구멍을 내고 거기다 나뭇가지를 꽂은 뒤 숨을 불어넣으며 그것을 돌렸다. 그러자 쌓인 풀무더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며 피어올랐다. 연기에서 축축한 흙냄새가 났다.
“다 됐데이.” 애플잭은 편하게 누운 채로 주섬주섬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다 됐네.” 대시도 편하게 누웠다.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불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와 푸른 페가수스. 이 두 포니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서로 안면을 튼 사이였다. 둘만 있는 자리에 세 번째 손님으로 ‘침묵’이 온다고 해도 어색해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이.
사실 둘 사이의 교류란 주로 경쟁의 형태로 이루어져왔다. 주로 레인보우 대시가 먼저 도전장을 내밀고, 애플잭이 받아들이는 형태였다. 둘 모두 규격 외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포니들이었고, 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하지만 둘의 사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도 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대시가 아무 용건 없이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방문한 적도 제법 많았다. 그럴 때 대시는 그저 애플잭과 함께 있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플잭 역시 친구의 의중을 존중해서,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기도 하고, 농장 주변을 돌며 잡일들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대시는 말없이 애플잭을 따라다녔는데, 언제부턴가 애플잭은 그 푸른 페가수스가 조용히 있는 것 자체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쉬머우드 숲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대시가 물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하늘에 별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잭은 꼼지락대며 벗은 페트랄peytral을 다른 갑옷 조각들을 쌓아둔 곳에 놓았다.
“너가 그랬었제. 하루 반이라꼬. 뭐, 래리티가 얼마나 달려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 아이긋나.”
몇 분의 침묵 후, 대시가 또 한 번 말문을 열었다.
“거기엔 뭐가 있을 것 같아? 해머 후프가 마법 얘기를 했었잖아. 그리고 래리티가 거길 좋아할 거라고도 했고.”
“내도 잘 모르겄다.”
애플잭은 모자를 벗고 안면 보호대의 고정끈을 풀었다. 그리곤 머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꾹 눌려 있던 풍성한 갈기가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래리티가 좋아라 한다믄.......
애플잭의 머릿속에 유니콘 버전의 길드데일이 그려졌다.
대시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니콘들의 길드데일. 가능할까?”
“가능하제.” 애플잭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마 걔들도 자기네끼리 살아가겠지. 길드데일처럼.”
대시가 말했다.
“.......그리고 이상할거야. 길드데일처럼.”
“내는 길드데일 아들이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한데이. 기냥 다른 거제.”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말했다.
“만약 진짜 있다믄, 숲에 사는 유니콘 무리도 또 많이 다르겄제. 당연한 기다. 마, 생각해바라. 다른 종족들 없이 한 종족끼리만 모여 사는 포니 무리. 우리하곤 이것저것 다른 점이 많겄제.”
푸른 페가수스는 발굽에 머리를 괴었다.
“클라우즈 데일에선 말야, 정해진 나이가 되면 도시 밖으로 나가서 살아야 해. 그러다 정해진 나이가 되어야 다시 돌아올 수 있지. 그 누구도 클라우즈 데일에서만 평생을 살 순 없어. 아마 이것도 페가소스들이.......너무 ‘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겠지.”
애플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번 침묵은 둘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자리했다. 이번엔 애플잭이 먼저 이 세 번째 손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새삼스럽긴 헌데, 아까, 코마가들 피해서 우리 다 들고 날았던 거 고맙데이.”
“아, 뭘 그런 걸로.”
대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얼굴엔 일순간 어두운 빛이 스쳤다. 정말 일순간이었지만, 애플잭이 대시의 이상을 눈치 채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스나야, 뭔데?”
“아무것도 아냐.”
“아니긴. 뭐 있다 아이가. 레인보우. 뭔데?”
애플잭의 추궁에 대시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레인보우. 퍼뜩 말해봐라.” 애플잭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난, 그, 별 건 아닌데.”
대시는 괜히 눈을 깜빡거렸다.
“코마가들 말이야.......그 녀석들이랑 싸웠던 거 생각하고 있었어. 왜, 길드데일 애들이랑 같이 싸웠었잖아.”
애플잭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우린 기냥 해야할 일을 했던 것 뿐이데이, 레인보우.”
“아니, 아니잖아.”
대시의 장밋빛 눈동자가 불빛에 번들거렸다.
“코마가들이 위험한 괴물이 아니라고, 네가 증명했잖아. 난.......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그 녀석들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구.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 진짜로.”
“그 땐 몰랐었다 아이가.”
애플잭은 모닥불 가까이로 다가갔다.
“레인보우. 그 때 닌 니가 해야 했던 일을 했던 기다.”
“난.......”
대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맞아. 그치만 싫어. 기분이 끔찍해. 그 순간만큼 끔찍한 기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도 그래.”
“어떻게 보믄 다행이지 않나?”
애플잭이 말했다.
“쉴드 메이든도 그랬었제. 피가 무섭고, 죽이는 것도 싫다고. 거기에 빠지면 경비대 자격이 없는 거라고. 니가 그러는 거 보이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안카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시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난 분명히 죽였어. 그리고 분명히 기억나.
애플잭과 쉴드 메이든이 뭐라고 했든 그녀는 여전히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 자체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철부지처럼 느껴지게 했다.
난 더 성장해야 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해.
그 때 즈음에 래리티가 목욕을 마치고 친구들에게 돌아왔다. 한껏 가벼워진 걸음걸이마다 향긋한 허브 냄새가 피어올랐고, 조금 젖은 보랏빛 갈기가 흔들거렸다.
모닥불 주변으로 다가온 그녀는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 사이에 앉았다. 안장 가방에서 빗을 꺼내든 그녀는 보랏빗 갈기를 빗으며 입을 열었다.
“샴푸가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자리가 없어서 못 들고 왔지만 말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 가방엔 뭐가 들었어?” 대시가 물었다.
“어디보자.......”
래리티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스웨터 두 개, 코트 하나, 스카프 두 장-두꺼운 건 겨울용, 얇은 건 봄용. 오버슈즈 한 쌍, 선글라스 한 개, 캐주얼 안장, 필요한 경우 칵테일 바의 드레스 코드에도 맞는 반정장 안장, 비누 두 장, 인공눈물 한 병, 수면 안대 한 장, 배게 한 개, 담요 한 장, 에너지 바 네 개, 1개월 치 종합비타민하고 다이어트용 보충식품.”
그녀는 설명을 마치고 해맑게 웃어보였다.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게 다야?”
대시가 짐짓 굳은 얼굴로, 즉, 억지로 웃음을 참는 티가 나는 얼굴로 물었다.
“음.......응. 필요한 건 다 챙겨온 것 같아. 안장 가방 한 쌍에 들어갈 정도 밖에 못 갖고 왔지만 말이야.”
“그래, 그래. 그렇겠지.” 대시는 과장되게 입꼬리를 올렸다.
“거, 내 가방에 아직 사과가 좀 있데이. 각자 하나씩 무라.”
애플잭은 자신의 안장 가방을 뒤적댔다.
“레인보우. 닌 빵 을매나 남았노?”
대시는 자신의 안장 가방 안 쪽을 들여다보았다.
“두 덩어리 있어. 아, 오늘 내가 안 먹은 반 덩어리 더.”
“각자 반 덩이씩 먹음 될 것 같데이. 괜찮제?”
애플잭은 사과 세 알을 꺼내 대시와 래리티에게 각각 한 알 씩 건넸다. 그 사이 대시는 빵을 반 씩 쪼개어 애플잭과 래리티에게 건넸다.
“레인보우. 오늘 밤에 이따가 날아서 망 좀 봐주그래이. 밤에 자다가 코마가들이랑 마주치긴 싫다 아이가.”
대시는 요란스럽게 사과를 씹어댔다.
“그 때 일어나지면, 그러지 뭐.”
“안 인나있으면 깨울 끼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말했다.
대시는 속으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수면을 방해받는 건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사태였다. 조금 시무룩해진 그녀는 남은 식사 시간 내내 혼자 조용히 빵을 씹었다. 이에 아랑곳 않고, 래리티와 애플잭은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달이 높아질수록 새하얀 빛의 존재감도 커져갔다. 들판은 어느새 찬란한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애플잭이 말했다.
“레인보우, 싸게 싸게 올라가서 코마가들 오는지 좀 봐주그라.”
“.......꼭 해야 돼?” 대시가 물었다.
“부탁이데이, 응?” 애플잭은 애살맞게 웃었다.
레인보우 대시는 콧김을 뿜으면서도, “내가 착하니까 봐주는 거야.” 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빈둥대며 30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강물이 달빛에 반짝였고, 풀은 은은한 회색빛을 띠었다. 온 사방 몇 마일 내로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대시는 여유 있게 지면으로 내려왔다.
“아무 것도 없어.”
“그렇다믄야, 내는 슬슬 자야 쓰겄다.”
애플잭은 안장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덮었다. 그리곤 빈 가방을 접어 베개처럼 머리 아래에 넣었다.
“좀 이따 밤에 내가 함 더 일어나서 깨울 테니께, 그 때 한 번 더 올라갔다오면 될끼다.”
그녀는 담요를 푹 덮고 모자로 얼굴을 덮었다.
“뉘에, 뉘에. 어련하시겠어요.” 대시는 몸을 둥글게 말며 구시렁댔다.
“다들 잘 자렴.”
전용 배게에 머리를 누인 채, 래리티는 수면 안대를 착용했다.
“모두 아침에 보자꾸나.”
“그려. 다들 잘 자그라.”
“잘들 자든가.”
대시는 불퉁하게 내뱉었다.
그녀는 지난 이틀 간 보냈던 따스한 밤들이 그리워졌다. 일행이 모두들 한 침대에서 잠들고, 양쪽 날개로 친구들을 감싸 그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던 밤들.......
하지만 감성에 젖은 밤을 보내기엔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푸른 페가수스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대시는 꿈을 꿨다. 소용돌이치는 온갖 색들의 향연, 어둠을 가르며 춤을 추는 원형 무지개, 그리고 천둥번개가 내리쳤-
“-인보우. 레인보우. 좀 인나 바라.”
레인보우 대시는 눈을 떴다. 그녀는 삐걱대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하품을 했다.
“지금 몇 시야?”
완전히 꺼진 모닥불에선 열기의 낌새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는 여전히 은색 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도 모르제.”
애플잭이 대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코마가들이 있나 없나 니가 확인해줄 때는 됐지 싶으다.”
“꼭 해야 돼?” 대시는 누운 자리에 고개를 도로 처박으며 꿍얼댔다.
“해야제.” 애플잭은 엄격하게 굴었다.
“갸들이 밤에 갑자기 우릴 짓밟고 지나가버리면 우짤끼고? 얼렁 인나서 푸딱 보고 와라.”
“뉘에, 그러합죠.”
대시는 쫑알대며 스트레칭을 했다. 어쩐지 공기가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춥다는 느낌이 아닌, 더 깊은 곳 어딘가가 으슬으슬한.......
“그럼 내는 다시 자러 간데이.”
애플잭은 잠자리로 돌아가 도로 담요를 덮었다.
“뭣 좀 보이면 깨우그라.”
“.......야, 하다못해 기다려 줄 순 있는 거 아냐?”
“꼭 필요한 일은 아이지 않나?”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담백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다시 안장 가방을 베고 모자로 눈을 가렸다. 잠시 뒤 코를 골아대는 소리가 모자 아래서 새어나왔다.
“꼭 필요한 일은 ‘아이지 않나?’”
대시는 사투리를 콕 집어 흉내 내며 빈정댔다.
“참나. 지는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날개라는 게 무슨, 심부름꾼 포니들의 상징이라도 되는 줄 아나?”
푸른 페가수스는 애플잭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잠자리를 가리는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오늘 밤은 제법 숙면을 취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미 깨버린 이상, 망이나 보고 오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레인보우 대시는 날개를 파닥이며 지면과 수직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이는 중력 저항을 최대로 받는 비행 방식이었지만, 대시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중력에 대고 화풀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근육에 뜨거운 혈액이 돌면서 정신이 각성되었다.
야영지 상공에서, 대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페가수스의 예리한 시각이 달빛에 물든 들판을 살폈다. 잠들기 전에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들판은 회색빛이었고 텅 비어 있었다. 키 큰 풀들은 자신들의 몸을 오직 바람에만 내맡긴 채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응, 헛수고였네. 이제 확실해졌어.
대시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역시 난 너무 착하다니까. 이렇게 심성 고운 페가수스랑 같이 다닐 수 있다니, 다들 운도 좋지.
대시는 날개를 뒤로 접으며 고도를 낮췄다.
그리고 섬광이 번쩍였다.
4일 전 밤에 보았던 것과 같은 빛줄기였다. 엄청나게 밝은 빛의 선이 아주 먼 거리에서 평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아치백 산악지대로부터 나온 것 같은 그것은 대시의 시야를 가로지르다가 멈췄다. 빛줄기가 남긴 궤적은 맥동하듯 희미하게 번쩍인 뒤에 사라졌다. 그 뒤에는 은은한 달빛만이 남았다.
레인보우 대시는 빛이 멈춘 지점을 기억하고 그 쪽으로 향했다. 푸른 날개가 힘껏 파닥대며 비행 속도를 높였다. 뒷다리는 뒤쪽으로 쭉 뻗었고 앞다리는 목적지를 똑바로 가리켰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장밋빛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뿌옇게 흩어졌다.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대시는 고도를 낮추며 지면으로의 입사각을 줄였다. 발굽이 키 큰 풀의 꼭대기에 닿을 무렵, 그녀는 급격히 고도를 낮췄다. 푸른 동체가 풀들 사이를 마구잡이로 헤쳤다. 큰 풀잎들이 혼란스럽게 흔들렸고, 몇 줄기는 찢겨져 흩날렸다.
목적지의 코앞에서, 대시는 날개를 접고 지면에 착륙했다. 그녀는 곧장 발굽을 굴리며 비행 속도를 주행 속도로 전환했다. 키 큰 풀들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짓밟혔다.
마침내 푸른 페가수스는 짧은 풀들만 자라 있는, 비교적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우왓!”
제 풀에 놀란 대시의 비명에,
“으아악!”
또 다른 목소리가 비명으로 화답했다.
어떤 이상한 실루엣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꼬인 걸음걸이로 비틀대며 뒤로 물러섰다.
어둠이 너무 짙었던 탓에, 잠시 동안 대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둠에 눈이 익자, 그 ‘이상한 실루엣’도 얼추 보였다.
“아, 혹시 괜찮다면, 다신 그렇게 튀어나오지 말아줘.”
실루엣이 말했다.
“진짜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거든! 신경다발이 완전 곤두섰다가 다 엉켜버린 기분이야. 이제 누구든 나와서 파버부Pop-a-boo! 하고 소리만 질러주면 되겠다. 마침 한밤중이고 하니 말이야.”
때마침 달빛이 환하게 공터를 비추었고, 경쾌하게 떠들어대던 실루엣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포니가 아니잖아!
실루엣의 키는 대시보다 머리 하나만큼 컸다. 유연해 보이는 몸체에서는 가슴 부분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늘씬하고 긴 근육에 덮인 네 다리가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네 다리의 끝에는 지면을 딛고 선 발굽이 있었다. 목은 짧고 두터웠지만 그 위에 있는 머리는 길었고, 좁은 콧잔등이 꼭짓점처럼 보였다. 몸의 뒤쪽 끝에는 짧고 털에 덮인 꼬리가 있었다. 좁은 모양의 두 귀는 머리 뒤쪽으로 접혀졌다가 세워지더니 대시를 향해 파닥거렸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작은 눈은 둥글었고 검은색이었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도 그것의 털색은 확연한 밝은 갈색을 띠었다. 배 부분은 하얀색이었고 가슴 부분은 갈색 바탕에 흰 점이 박혀 있었다. 또한 목 주변에서 시작된 검은 줄무늬가 뺨 아래에까지 뻗어 있었다. 머리 위에는 좌우 하나씩 두 개의 검은 뿔이 있었는데, 둘 모두 위로 올라가다가 갈라졌다. 그 중 짧은 쪽은 앞쪽을, 나머지 한 쪽은 더 위로 올라가다가 부드럽게 안쪽으로 구부러졌다.
실루엣은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여러 지역의 억양이 뭉뚱그려진 것 같은 말투였다. 대시는 단순히 캔틀롯 억양과 애플루사 억양이 섞인 것 같다고 느꼈지만, 이는 순전히 그녀의 식견이 좁은 탓이었다.
“페가수스 포니지, 그치?”
물어보면서도 이미 확신하고 있는 듯, 검은 눈이 반짝였다.
“길드데일에선 너 같은 포니는 본 적이 없거든!”
대시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는 더듬대며 겨우 말했다.
“너.......너, 누구야?”
푸른 페가수스 포니는 진심을 담아 다시 물었다.
“넌 뭐야?”
“나? 내가 뭐냐고?”
<"나? 내가 뭐냐고?">
하얗고 복슬복슬한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아, 응, 난 프롱혼Pronghorn이야.”
프롱혼은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이름은 나일스 나이젤러스. 잘 부탁해.”
그는 다시 몸을 세우고 대시에게 머리를 기울였다.
“아가씨 이름은?”
“어, 응. 난 레인보우 대시야.”
대시는 더듬대며 대답했다. 그녀는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했다.
“너는, 그러니까, 너 같은 건 본 적이 없어. 넌.......엔털롭antelope인거야?”
사실 그녀는 영양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책에서 사진으로만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아-니!”
나일스는 명랑하게 부정했다.
“닮긴 했지, 그치? 웃기긴 하지만 말야. 여하튼, 너 땜에 꽤 놀랐단 말이지.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코마가들을 찾고 있었어.”
대시가 말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만 가지 생각들 중 가장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 소리로 알 수 있잖아.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어.”
나일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이 프롱혼은 무섭게 생긴 인상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이상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으음, 내 친구들이 이 근처에서 자고 있거든. 다들 자다가 코마가한테 밟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해서 말이야.”
“아, 그렇다면야. 응. 그럼 넌 지금 여행 중인 거야?”
“응, 나는-아니, 잠깐. 나도 좀 묻자!”
이종(異種)과의 갑작스런 접촉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자, 대시는 극심한 호기심을 느꼈다.
“넌 여기서 뭐하는 건데? 여기엔 어떻게 왔어?”
“볼트bolt했지.”
프롱혼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
“넌 날고 있었지? 날고 있었으면 내가 보였겠네. 난 일하다가 식사 좀 하려고 멈춘 거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경을 너무 곤두세우고 있었어서 말야, 좀 쉬어줘야 했거든. 브로큰 랜드Broken Land를 지나가는 건 그닥 유쾌한 여행은 아니란 말이지.”
그는 몸을 으스스하게 떨었다.
“으으, 얼마나 빨리 통과 상관없어. 여긴 올 때마다 소름끼쳐. 네가 날 놀래킨 게 영 기쁘지 않은 이유기도 하지.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시간에 말야.”
“아, 그건 미안해. 근데 ‘일하다가’ 라고? 경주 같은 거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경주? 아니, 그런 게 아냐.”
나일스가 말했다.
“메세지 배달이야. 오늘 밤까지 배송되어야 하는 메세지가 있거든. 내가 오늘 당직이어서 말이지. 별로 먼 거리도 아니야. 근데 아가씨가 너무 고집스러워서 원.......게다가 얼마나 매너 있게 부탁하시던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 아가씨의 애완견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냉혈한들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지.”
“메세지.......배달?”
“그럼 물론! 너도 알겠지만, 이게 다 네트워크를 위해서지.”
나일스는 활짝 웃었다. 대시는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네트워크 말야. 알지?”
대시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에 나일스는 대놓고 의기소침해했다.
“너 지금 내가 무슨 말하는 지 전혀 모르겠지?”
“어-응.”
“좋아, 그래.”
나일스는 한숨을 내쉰 뒤 목소리를 다잡았다.
“.......혹시 지금 바쁘니?”
대시는 잠시 생각했다.
주변에 코마가들도 없으니, 지금 굳이 돌아갈 필욘 없겠지. 어차피 다들 디비 자고 있을 거고!
“아니, 안 바빠.”
“그럼 일단 앉아봐. 편하게.”
나일스는 날렵한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대시도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았는데, 그제야 그녀는 나일스의 엉덩이에 안장 가방 한 쌍이 매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가방엔 파란 소용돌이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별로 오래 안 걸릴 거야. 불편하진 않지?”
“으응, 괜찮아.” 푸른 페가수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일스는 앞발굽을 자신의 몸 앞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검은 눈동자가 달빛에 반짝였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해두자고. 전쟁은 끔찍한 거야. 그치?”
“솔직히 모르겠어. 겪어보진 않았거든.”
“음, 좋아. 사실 그게 최고지.”
나일스가 말했다.
“좀 오래 전 얘긴데, 막 엄청 옛날은 아니고. 적당히 오래 전. 여튼 그 무렵에, 여기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두 대륙 간에 전쟁이 일어났어. 끔찍한 전쟁이었지. 모든 것이 끔찍했어. 기계 같은 군대, 군대 같은 기계, 그리고 요상한 마법들이 동원됐지. 수많은 생명들이 진영을 가릴 것 없이 죽어갔고.......”
그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한 진영에 내 동족들이 많이 있었어. 그들도 많이 죽었지.”
“슬픈 일이네.”
“여차저차해서 전쟁은 끝났고.......평화 조약도 맺어지긴 했지. 하지만 최악의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어. 다들 알아버린 거야. 전쟁이란 게 실은 완전히 쓸데없는 이유로 일어난다는 걸. 양 진영이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눴더라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다들 알아버린 거야. 전쟁이란 게 실은 완전히 쓸데없는 이유로 일어난다는 걸. 양 진영이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눴더라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나일스는 이야기꾼처럼 규칙적인 운율을 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족의 시신들을 매장하고 죽음을 애도한 뒤, 우리 프롱혼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결정했지. 우리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말이야. 단순히 우리 두 대륙에서 뿐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대륙이든, 나라든, 종족이든 상관없이! 그 맹세가 지금에 이르러서.......”
그는 대시에게 돌발적으로 물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뭐게?”
대시는 잠시 고민했다.
“어.......욕심?”
“아냐, 그건-음. 사실 나쁘지 않은 답이긴 해.”
나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좀 더 생각해봐.”
“어........음.......”
“정답은, 소통의 부재야.”
프롱혼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나 혹은 여러 세력들이 자신들 외에 다른 세력들이 어떤 걸 원하는 지 제대로 모르거나, 그 목적이 뭔지 제대로 모른다면, 다툼은 사실상 불가피하지. 만약 모든 생명체들이 동료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될 거야. 이 결론을 내린 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온 세상에서 소통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왔지. 그게 프롱혼 네트워크Pronghorn Network를 세운 뒤부터 우리가 줄곧 마음에 두고 있는 목표야.”
“그게 모든 프롱혼들이 하는 일이야?”
“거의 대부분은 그렇지. 우리 프롱혼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그리고 무료 글로벌 메신저로서 우릴 필요로 하는 모든 종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모든 왕국, 공화국, 제국, 도시국가, 부족 혹은 무리 누구든, 어느 때든, 어떤 메세지든 배달해. 물론 답장 배달도 가능하고.”
그는 자신의 안장 가방을 몇 번 두드렸다.
“아니면 마법 주문도 배달돼. 주문이 시전 되어야 하는 장소까지 주문이 적힌 종이를 가져가는 거지.”
“아무리 멀어도? 정말 정말 멀어도?”
대시가 물었다. 프롱혼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계 반대쪽에 있어도?”
“그럼.”
나일스는 즉답했다.
“우리는 속도를 제공해. 속도는 소통의 부재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제일 중요한 요소지. 발송자가 누구든, 누가 받게 되든,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이 우린 일일 배달을 보장해.”
“어디에 있어도 상관없다고?”
대시는 재차 물었다.
“세계 반대쪽에 있어도 하루 만에 배달한다는 거지?”
“아, 그렇대두!”
프롱혼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더니 우아하게 말을 이었다.
“얼룩말들의 방식에 따라, 당신의 앞에서 엄숙히 맹세합니다.”
“릴레이처럼 전달하는 방식도 아니고?”
“아냐, 아냐. 그런 방식은 안 돼. 그러면 메세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발신자의 메세지가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오직 프롱혼 한 기가 전담해.”
“그렇다면.......”
대시의 눈이 커졌다.
“넌.......넌 정말로 여기서 세계 반대편까지 하루 안에 갈 수 있구나.”
나일스는 대시에게 윙크를 날렸다.
“사랑스런 페가수스 아가씨, 제게 하루만 주시면 세계 일주도 하고 올 수 있답니다.”
대시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불가능해.
“불가능해! 방법이 없잖아. 세상에 그렇게 빠른 생명체가 어딨어? 용들도 그렇게는 못해. 나도 그렇게 못해! 흉내도 못 내!”
“글쎄, 만약 물리적인 근력만 갖고 얘기한다면야 네 말이 맞지. 하지만.”
나일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프롱혼들의 속도는 근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 우리는 전 세계 모든 생물종 중에서 가장 빠른 주자야. 하지만 네 말대로, 날개나 다리만 가지고는 이 정도 속도를 낼 순 없지. 게다가 달리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도 없잖아? 그래서 우리 메신저들은 일을 할 때 마법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쓸 줄 알아?”
“당연하지! 여기 보라구, 우리도 뿔이 있잖아?”
뿔이 있는 거랑 마법을 쓸 수 있는 거랑 상관이 있는 거였나?
대시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트와일라잇한테 물어봐야겠다.
“배달할 때 쓰는 거지? 어떤 식으로 쓰는데?”
나일스는 또 한 번 웃어 보였다.
“번개를 타.”
대시의 장밋빛 눈동자가 휘둥그레짐을 넘어서 튀어나올 듯이 떠졌다.
“다, 다시. 다시 말해 봐. 방금 뭐랬어?”
“번개를 타. 번개를 만들어서, 그걸 타고 다니지.”
나일스가 말했다.
“우리 고향에서는 그 마법으로 날씨도 조금 건드려. 태풍이나 뭐 그런 거 조절할 때 말야. 사실 그게 우리 마법의 전문 분야지. 우리는 프롱혼 네트워크 업무를 할 때, 속도가 필요하다 싶으면 우리의 마법이나 주변 환경의 마법에서 번개를 이끌어낼 수 있어. 그렇게 만든 번개를 잡고, 타고 다니지. 그거 엄청 빠르다? 방금도 말했지만, 일일 세계일주를 하기에도 충분하다구.”
“너.......”
푸른 페가수스의 마음에 '번개가 쳤다'. 서늘한 고양감이 그녀의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너.......번개를.......만든다고?!”
“응, 맞아.”
나일스는 선선히 인정했다.
“너희 페가수스들이 하는 거랑 그렇게 다르지 않을 텐데. 적어도, 이퀘스트리아 출신 페가수스라면 말야. 너희들 날씨 조절 엄청 해대잖아, 그치? 보니까 우리가 하는 거랑 얼추 비슷하던데.”
“너번개를만드는구나.” 대시는 두 눈을 부라리며 나일스를 응시했다.
“어음음음.......그렇긴 하지이이이.......”
나일스는 천천히 말했다.
“이제 두 번째긴 한데, 아니, 세 번째인가, 마지막에 했던 것까지 합치면 네 번째-”
“가르쳐 줘!”
레인보우 대시는 나일스에게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그리곤 넘어진 프롱혼을 깔아뭉갠 채 마구잡이로 흔들어댔다.
“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가르쳐줘!”
“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암까아아아아아아아아안마아아아아아안!”
프롱혼은 긴 다리를 버둥대며 푸른 페가수스의 발굽에서 빠져나갔다. 그는 앞뒤로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잠깐만 있어봐! 지금 뭐하는 거야?”
“가르쳐 줘!”
대시는 떼를 쓰며 소리쳤다.
“번개를 만들 줄 안다면서! 그걸 조종할 줄도 안다면서! 어떻게 하는 지 알려줘, 제발! 제발!”
“잠깐만. 이렇게 난데없이 가르쳐 줄 순 없어. 우리 프롱혼들 방식대로 배운다고 페가수스인 네가 번개를 다룰 수 있게 될까? 나는 장담 못해.”
“페가소스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다면서!”
“페가수스.”
나일스가 대시의 표현을 정정했다.
“그리고 비슷하다 했지 똑같다고는 안했어. 근본적으로 종도 다르고 작동원리도 달라. 우리 마법은 뿔을 매개체로 접속하는 방식이고, 너희 마법은 몸 속에 내재되어 있으니까. 뭐랄까, 온몸으로 쓰는 방식이잖아. 네가 마법의 뉘앙스란 걸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네가 배울 수 있다고 쳐도, 글쎄.......네가 할 수 있을까?”
“배울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지! 뭐가 문제야? 나한텐 그냥 네가 가르쳐주기 싫어하는 걸로 밖에 안 들리는데!”
나일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고, 우리 레인보우 대시 양. 만약 네가 주변에 있는 번개를 다루는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신체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뭐, 사실 되어 있겠지. 페가수스니까.”
그는 발굽으로 주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부분은 쉬울 거야. 진짜 어려운 건 이 안에 있는 번개를 다루는 거지.”
프롱혼의 발굽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대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운명이야!-라고 그녀는 느꼈다. 붉고 선명한 피처럼 혈관을 타고 내달리는 목표와 운명이 느껴졌다. 번개를 다루지 못한 채 살아온 나날이 너무도 길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그 어떤 페가수스보다도 번개를 잘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될 지도 몰랐다.
이제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그런데 이 프롱혼은 도대체 왜 안 가르쳐주려는 거야?!
“너, 지금 거짓말 치고 있는 거지?”
푸른 페가수스는 도발 섞인 망발을 뱉어냈다.
“못하니까 그러는 거 다 알아.”
나일스의 검은 눈이 부릅떠졌다. 두 뿔의 뿌리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눈부신 빛의 선이 뿔을 타고 올라갔다. 두 개의 선은 위로 올라갈수록 서로 스파크를 튀기더니, 뿔이 갈라진 부분에서 하얀 번개를 일으켰다.
그 순간, 프롱혼이 사라졌다.
“.......!”
대시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아니, 무의식적으로 감았던 두 눈을 다시 뜨기조차도 전에, 찬란한 광휘가 그녀를 태워버릴 듯 강하게 비췄다.
“프롱혼 네트워크의 메신저로서, 나는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다.”
<“프롱혼 네트워크의 메신저로서, 나는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다.”>
프롱혼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위압적이었다. 그러나 푸른 페가수스는, 조금 주저하긴 했지만 오히려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럼 가르쳐 줘.”
대시는 간곡하게 청했다.
“제발. 시도라도, 노력이라도 해보게 해줘. 지금껏 살면서 번개를 다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나한텐 늘 벅찬 일이었거든. 번개는 늘 내 발굽이, 내 날개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어. 난.......난 그걸 배워야 해. 꼭 배워야 해.”
그녀는 다리, 가슴, 목을 쭉 펴며 필사적으로 프롱혼의 체고(體高)와 자신의 체고를 맞췄다.
“난 두려움을 이겨낼 거야. 이겨낼 수 있어.”
나일스의 얇은 입술이 옴짝달싹 거렸다. 잠시 시선을 피하던 그는 결국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 “적어도, 여기선 안 돼.”
“저녁 식사나 하면서 가볍게 수다 떨듯이 풀어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몽환시(夢幻時)Dreaming에 들어가야 한다구.”
“그건 또 뭐야?”
“말했다시피,”
프롱혼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렸다.
“중요한 건 여기니까.”
건드린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기울인 그는 평온한 시선으로 몇 분 간 대시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레인보우 대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껏 조급해진 심장 박동이 목구멍에까지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어쩌면.......”
시선은 대시에게 고정시킨 채, 프롱혼은 자연스럽게 속삭였다. 안달이 난 대시는 척추가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일단, 배짱 하나만큼은 두둑해 보이는구나.”
“제발.”
대시는 또 다시 간청했다.
“네가 말하는 건 뭐든지 할게. 여기서 널 만난 건, 적어도 나한텐 우연이 아니야. 그런 느낌이 들어. 우리가 여기서 만나야 했기 때문에 네가 여기 있고 내가 여기 있는 거야. 그래야 해. 반드시.”
“여행 중이라고 했지.”
나일스는 한층 더 진중해진 시선으로 대시를 바라보았다.
“목적지가 어디야?”
“서쪽이야. 아치백 산악지대로 가고 있어. 내 친구가 많이 아파서 말이야. 그래서 걔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
“-베네보레를 찾고 있다 이거군. 아치백 산악지대에 치료약 찾으러 간다면야 뻔하지.”
프롱혼이 대시의 말을 맺었다.
“너랑 같이 여행 중인 네 친구들은? 다들 페가수스야?”
“아니. 어스 포니 하나에 유니콘 하나야.”
“그럼 지금껏 걔네한테 속도 맞추고 있었겠네. 날지 못하는 포니들이 ‘빠르게 달리는 속도’ 만큼만 말이야.”
나일스는 앞뒤로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며 말을 이었다.
“흐음.......좋아. 이러면 되겠다.”
제자리에 멈춰선 프롱혼은 대시를 향해 고개를 내뺐다.
“날지 못하는 포니들의 평균적인 ‘빠르게 달리는 속도’로 하루 정도 서쪽으로 가면, 그 근처에 프롱혼 네트워크의 중간 기착지가 있어. 난 지금 하고 있는 배달만 끝나면 그 쪽으로 갈 거야. 거기 있는 다른 메신저들하고 상의해볼게.”
나일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너희 일행이 야영하려고 멈추면, 해가 질 때 즈음에 근처 탁 트인 곳으로 가서 위로 쭉 날아. 네가 보이면 내가 그 쪽으로 갈게. 거기서.......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는지 알려줄 거야.”
“고마워.”
대시는 유순하게 대답했다.
“이제.......뭐라고 더 할 말이 없네. 잘 부탁할게.”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나일스는 솔직히 이야기했다.
“네 부탁은 프롱혼 하나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여하튼 내일 밤이 되기 직전엔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흩뿌려진 모래알들처럼 반짝이는 작은 별빛들 사이로 달이 평온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일도 여로(旅路)를 달리려면, 이제 슬슬 자러 가야 되지 않을까?”
“그건 그래.”
대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나 찾으러 오는 거지?”
“어디 있는지 잘 보인다면야.”
프롱혼이 말했다.
“기억해. 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날아야 하는 거야.”
“무조건 그럴게!”
대시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일스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넌 배울 수 있을 거야. 프롱혼의 방식으로 번개를 다루는 페가수스라.......보수적으로 쳐줘도, 이건 정말 굉장한 실험이 되겠지.”
그는 앞발굽을 앞으로 내밀었다.
“빨리 일부터 끝내고 기착지로 가야겠어. 동료들도 이 얘기를 굉장히 흥미로워할 것 같거든. 몇 번이나 더 듣고 싶어 하겠지. 그럼 내일 보자, 레인보우 대시.”
대시도 앞발굽을 내밀었다. 둘은 마주 댄 발굽을 함께 흔들었다.
“당연하지. 내일 보자구.”
나일스 나이젤러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볼트’했다. 몰아치는 바람의 한가운데서 그는 갈색 잔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가 갈색 잔상이 되면서 바람이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대시가 보기엔 둘 다 같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푸른 페가수스의 오른쪽에 있던 잔디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궤적을 남겼다.
레인보우 대시는 곧장 날개를 파닥대며 위로 날아올랐다.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 위로 궤적을 남기며 나아가는 점이 보였다.
진짜 엄청 빠르네.
프롱혼이 페가수스의 시각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시는 온몸을, 정말 격렬하게 떨었다. 그녀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이내 거칠게 방향을 돌리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달은 여전히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까 나일스한테 날아갈 땐 달이 딱 내 오른쪽에 있었지.
지금은 달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대시는 달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 달빛에 의지해 지상을 살폈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보였다. 강둑을 살피던 날카로운 시야에 깨끗한 공터가 들어왔고, 래리티가 덮는 밝은 분홍색의 담요가 깃발처럼 눈에 띄었다.
느리게 소용돌이를 그리며 고도를 낮춘 대시는 부드럽게 지면에 발굽을 디뎠다. 그녀는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가며 완전히 착륙을 마쳤다. 그리곤 곧장 땅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덜덜 떨리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대시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꺼풀에 힘을 주고 있지 않으면 눈이 다시 떠졌다. 각성된 심장은 여전히 내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나고, 레인보우 대시는 마침내 잠에 빠졌다.
이번에도 그녀의 꿈속은 휘몰아치는 번개로 가득했다. 제각기 반짝이던 수많은 번개가 푸른 페가수스의 몸을 난도질했고, 이윽고 그 몸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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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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