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일어나라.”
애플잭의 눈꺼풀이 움찔댔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대며 돌아누웠다.
테치홀름의 숙박 시설은 그라제첼트의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일행은 풀떼기를 모아 만든 짚단이 아니라 진짜 침대를 배정받았다. 애플잭은 이번 침대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일어나라.”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가 애플잭을 재촉했다.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를 쿡쿡 질렀다.
뭐꼬? 지금 멫신데?
“일어나라. 빨리.”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다. 애플잭은 못 이기는 척 눈을 떴다. 침대 옆에 서 있는 애쉬테일이 보였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깊었고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지금 멫신데예?” 애플잭은 하품을 하며 물었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동 트기 한 시간 전이다. 빨리 일어나.”
애플잭은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기운을 털어냈다.
“알겠심더. 지금 갑니데이.”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웅얼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의 옆에 누워있던 래리티가 잠에 취해 작은 소리로 낑낑댔다.
애쉬테일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했다.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 그대들도 식당으로 가야 한다. 오늘은 요리사가 일찍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왕실 근위대와 내 동부군 모두를 먹여야 하니까 말이지. 흐흥.”
애쉬테일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벌서 연회 만찬도 준비하고 있더군. 전투가 끝난 후에.......살아남을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아무도 죽지 않을 겁니더.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만찬을 즐길 수 있겠지예.”
침대에서 빠져나온 애플잭은 호언장담하며 모자를 푹 눌러썼다.
“래리티, 레인보우. 인제 인나라. 얼렁 가야제.”
애쉬테일이 애플잭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정말 이 내기를 할 생각인가? 이건 미친 짓이다. 그대는 죽고 말 거다!”
애플잭은 빙긋 웃어보였다.
“우리 귀염둥이 대장님, 죽는 건 지 계획에 없심더.”
검붉은 어스 포니는 콧김을 한 번 내뿜었다.
“정 그렇게 일을 벌여야겠다면, 따라와라. 그대에게 꼭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애플잭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알겠심더. 래리티. 레인보우. 느이들 먼저 내려가서 아침 먹고 있그래이. 해 뜨고 나면 밖에서 보자, 알겠제?”
“그래, 그래애, 알겠으어어어.......”
래리티는 하품을 하며 웅얼댔다.
“일어나, 레인보우 대시. 빨리 일어나야 한다구, 빨리흐아아암.”
그녀는 곯아떨어진 페가수스를 발굽으로 쿡쿡 질렀다. 대시는 잠꼬대를 하며 돌아누웠다.
-
애플잭은 애쉬테일을 따라 테치홀름의 3층 복도를 걸었다. 그들은 수많은 길드데일 포니들이 잠을 자고 있는 방들을 지나 테치홀름의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원형 창문에 다다랐다. 거기엔 2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지그재그 형태의 계단이 있었다.
2층으로 내려간 그들은 목재 통로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지그재그 형태의 계단을 밟았다.
두 어스 포니는 지상층에 도달했다. 새벽녘의 지상층은 어둡고 조용했으며, 광대한 만큼 공허하고 무덤처럼 고요했다. 애쉬테일의 발굽소리가 석재 바닥과 부딪히며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애쉬테일은 왼편의 기둥들 사이에 있는 복도로 들어가 회관의 뒤편으로 향했다. 애플잭은 이 어스 포니 왕자님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영 미심쩍었다.
근디 이케 혼자 생각해봐야 머하겠노? 테치홀름이 그라체첼트랑 구조가 비슷하다면야 이 머스마가 어딜 가고 있는 건지도 대충 알겠다만은.......
거대한 출입구를 지나고 통로를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애쉬테일은 왼쪽으로 꺾었다. 이어서 나온 석재 통로에서도 애쉬테일은 왼쪽으로 꺾었다. 애플잭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어진 갈림길에서 다시 한 번 왼쪽으로 꺾은 둘은 최하층에 닿았다. 불이 붙은 철제 촛대가 벽에서 돌출되어 있었고, 그 불빛으로 애플잭은 그라제첼트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무기고를 볼 수 있었다. 천장은 나무로 된 아치형이었고, 방의 가운데에는 발굽 도끼, 창, 칼, 심지어 깔끔하게 장식된 찌르기 용 검 등 온갖 종류의 무기들로 가득 찬 시렁들이 놓여 있었다.
양쪽 벽에는 백여 줄의 선반이 있었는데, 애쉬테일은 그 중 왼쪽 벽 아래에 있는 선반으로 향했다. 그 선반에는 잘 무두질 된 가죽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포네킹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선반을 따라 쭉 걷던 둘은 선반의 맨 끝에 다다랐다. 거기엔 X자로 교차된 두 개의 나무판자로 막혀 있는 칸이 있었다. 애플잭이 판자의 틈새로 겨우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포네킹들과 같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포네킹이 보였다.
“내 누이가 입던 갑옷이다.” 애쉬테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와 ‘입던’ 이라캅니꺼?”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애쉬테일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유달리 반짝였다.
“누이는.......북쪽 구역의 요새 근처에서 코마가들에게 당했다. 아무도 거기에 코마가 무리가 나타날 거라는 걸 몰랐다. 기습이었지. 정찰매도 몰랐고.......애초에 그곳은 통제구역으로 설정된 지역도 아니었다.”
“우짜다가 그런.......아고.......”
애플잭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애쉬테일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애플잭은 저 슬픔에 짓눌린 입가를 들어올리기가 얼마나 힘들었을 지에 대해 생각했다.
“난 누이가 그립다. 내.......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비통함을 드러낸 적이 없으시다. 아버진 내게 언제나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길더스를 이끄는 왕족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하시면서 말이지. 설령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어도 평온해야 한다고-”
“하지만.” 애플잭이 문득 입을 열었다. “누구나 가끔은 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예.”
“누이도 그렇게 말했다.”
애쉬테일이 답했다. 애플잭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인제 와 지를 보고 누이가 생각났는지 말해주셔야 겠는데예?”
애쉬테일은 애플잭을 보며 어두운 웃음을 지었다.
“가끔, 몇몇 부분에서 그렇지. 그대, 아니, 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충실하게 대한다. 내 누이도 그랬지.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누이는.......소심했지. 그리고 조용했어. 너처럼 군주에게 맞서는 짓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포니였다.”
애플잭은 X자로 가려진 선반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와 이걸 지헌티 보여주는 겁니꺼?”
“네가 이해해주길 바래서다.”
그는 울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코마가들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그들은.......자연재해 같은 거지. 네 생각처럼 움직여줄만한 존재들이 아니다. 마주치면 싸우고, 부순다. 그런 행동만 반복하는 녀석들이다.”
애플잭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그녀는 뭉클하게 솟아오르는 그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애쉬테일 이 머스마는 그냥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아 였던기라.......
그녀가 보기에 애쉬테일은 거의 매순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니였다. 다른 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짐작할 만한 여지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 철벽같은 마음가짐이,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평생토록 가르친 것들 중 하나였으리라.
하지만 지금 애쉬테일의 파란 눈동자는 고통으로 가득해보였다. 그가 이런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애플잭은 한숨을 내쉰 뒤 거세게 도리질 쳤다.
“인자 당신이 좀 보이는 것 같네예.......애쉬테일.”
그녀는 애쉬테일에게 한 걸음 다가가 머리를 앞쪽으로 기댔다.
“증말입니더. 그치만.......당신이 틀린 기라. 지는 알 수 있심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당신은 아는디 지가 모르는 기 있었듯이, 당신이 모르는 디 지가 아는 것도 있으니까예.”
애플잭의 초록빛 눈동자에 검붉은 색 어스 포니가 담겼다.
“지가 이퀘스트리아에 살았기 때문이고, 지가 지 자신이기 때문이지예.”
<“지가 이퀘스트리아에 살았기 때문이고, 지가 지 자신이기 때문이지예.”>
애쉬테일의 눈동자에도 애플잭이 비춰졌다. 둘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애플잭은 두방망이질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침을 삼켰다. 진심을 드러내며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애쉬테일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의 깊은 눈에서는 이제껏 어디에 숨겨왔는지 모를 열정이 느껴졌다. 애플잭은 홀린 듯이 몸을 더 가까이 기대려 했다.
그 순간 애쉬테일은 몸을 돌렸다. 그는 어쩐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네 말이 맞길 바란다.” 그는 누이의 갑옷을 보며 잠시 숨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내 누이에 대해 해줄 말이 하나 더 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지.”
“뭔데예?”
“너랑 몸 크기가 비슷했다.”
애쉬테일은 X자로 교차된 판자 앞에 앉았다. 그리곤 앞다리로 판자 하나를 감싼 채 몸을 뒤로 뉘였다. 그러자 나무 표면에 금이 가나 싶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선반에 박혀 있던 못이 빠져나가고, 나무 파편이 석재 바닥에 흩어졌다.
애플잭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쉬테일은 다음 판자를 앞다리로 감싸 안았다.
“이걸 입어라. 도와주겠다.”
“아, 안됩니더!” 애플잭이 외쳤다. “당신 누이 거 아입니꺼!”
“지금 누이에게는 이 갑옷이 필요 없지. 하지만 너한텐 필요하다. 만약 네가 코마가들과 마주쳐야 한다면, 하다못해 갑옷은 입힌 상태로 내보내고 싶다.”
“왜 하필 접니꺼? 레인보우랑 래리티는 우짜고예?”
“래리티는 마법이 있지. 레인보우 대시는 날개가 있고.”
“지는 금강불괴를 쓸 수 있다 아입니꺼! 당신이 가르쳐줬잖아예!”
애플잭은 지면에 발굽을 내리쳤다.
“지 친구들은 다 맨 몸으로 나가는디 어떻게 지 혼자만 갑옷을 입을 수 있겠습니꺼! 이건 좀 아니-”
“제발 입어!”
애쉬테일이 애플잭에게 다가서며 외쳤다.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가 간절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테치홀름에 주인 없는 방어구는 이것 밖에 없어! 그 둘한테도 갑옷을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셋 중 하나한테 줄 갑옷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난, 네가 갑옷을 입었으면 좋겠어!”
놀란 애플잭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애쉬테일은 움찔대며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원하는 대로 하도록.”
애플잭의 심장이 다시 두방망이질 쳤다.
아, 아니제. 이 가스나가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자빠졌노!?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먼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해 내기에서 이겨야했다.
“알겠심더.” 애플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겠습니데이.”
애플잭은 갑옷을 입고 온 자신을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가 걱정스러웠다.
갸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겄는디.......
“애쉬테일. 글고 보니 지헌티 이 갑옷보다 더 필요한 게 하나 있심더.”
“무엇이든 말하라. 무엇이든. 구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구해다 주겠다.”
“별 대단한 건 아니고예.”
애플잭은 상쾌한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밧줄 좀 갖다 주이소.”
-
동쪽에서 밝은 주황빛깔의 태양이 떠올랐다. 하루의 첫 번째 빛줄기가 길드데일의 들판을 불타는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레인보우 대시와 래리티는 테치홀름의 받침돌 모서리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일출을 보고 있었다. 편안한 침묵은 아니었다. 둘 모두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상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새하얀 유니콘은 날짜를 가늠하고 있었다.
7일이야. 오늘로 7일째.
7일 전 오늘,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뿔 부패증에 걸렸다.
기한은 2주.......
이제 일주일이 지났으니, 일행이 친구를 살리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도 일주일 남은 셈이었다. 만약 기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트와일라잇은 죽게 될 것이었다.
그 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래리티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내 라벤더 빛 유니콘이 잘 자고 있기만을 빌었다.
지금은 이른 아침이잖아. 이제 막 해가 떴는걸. 자고 있어야할 시간이야. 제발, 아파서 밤에 잠도 못자고 있진 않았으면.......
레인보우 대시는 스멀스멀 피어나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애플잭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털어놓았고, 셋은 그 계획대로 행동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대시는 애플잭의 추측이 맞기를 필사적으로 바랬다. 그녀는 절대로 테치홀름에 감금되는 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애플잭이라는 이름의 오렌지 색 어스포니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관록 그리고 현명함을 푸른 페가수스인 그녀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플잭의 말이 맞을까?”
레인보우 대시는 멀거니 앞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걔 생각대로 될까?”
래리티는 잠깐 침묵한 뒤에 대답했다.
“그러길 바래야지.”
그녀 역시 의심을 품고 있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짜왔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은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옳다’ 는 가정 하에 세워진 것들이었다.
얄궂은 일이네. 애플잭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면 우선 애플잭이 옳아야 한다니. 나라면 이런 도박은 절대로 안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트와일라잇을 구할 수가 없게 되는 걸.”
“일주일이 지났어.”
내 기준으론, 나 혼자 떠나야 할 날까지는 3일 남은 거지.
대시는 속마음을 중얼거림으로 얼버무렸다.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정한 기한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친구들을 떠나는 게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더 빨리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레인보우 대시는 지난밤에 애플잭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레인보우. 만약 일이 잘 안 풀리가꼬 길드데일 아들이 내랑 래리티를 구속하면은, 닌 곧바로 날아서 튀어라, 알겠제? 날아서 아치백 산악지대까지 가서, 혼자서라도 베네보레를 찾그래이. 우리 걱정은 말고.
얘네들을 두고 떠나기 싫어!
대시는 맘속으로 울부짖었다. 장밋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요 일주일간의 여행을 거치면서, 레인보우 대시는 두 친구들과의 사이가 전보다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들을 뒤에 두고 떠나는 것은 말 그대로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길드데일과 길드데일 포니들이 미웠다.
“레인보우 대시, 괜찮은 거야?”
래리티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시는 고개를 돌려 래리티의 푸른 눈을 마주했다. 새하얀 유니콘이 골똘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어.......왜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됐을까?”
대시는 자문하듯 중얼거렸다. 절망에 물든 그녀의 목소리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길드데일 포니들은 왜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 왜 걔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걸까?”
래리티는 평원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를.......무서워해서 그런 거란다.”
그녀는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황금빛 들풀처럼 말했다.
“무서워한다고? 왜?” 맥이 빠져있던 목소리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래리티는 두 눈을 깜빡이며 음침하게 웃었다.
“우리를 자기네 문화에 종말을 가져올 사신처럼 보는 게 아닐까 싶어. 군주 해머 후프가 하는 말 들었지?”
“하지만 나는 화폐 제도도 없는 이런 곳에 머물면서 깽판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너도 그렇잖아!”
푸른 페가수스는 길드데일의 상징들을 향해 발굽을 휘두르며 항의했다.
“그냥 좀 지나가고 싶을 뿐 인건데!”
“이해할 수 없으니까 두려워하는 거야. 두려움들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부류의 두려움이지. 여기에 휘둘린 포니들은 극단적인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돼. 아주 잔인한 일까지도 말야.”
래리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 너도 그랬던 적이 있을 거고, 모든 포니들이 한 번쯤은 그랬던 적이 있겠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야.”
대시는 앞발굽을 바위에 힘껏 내리쳤다.
“여기 포니들은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어! 설마 이런 식의 촌극을, 자유로운 방랑 포니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구! 여기 애들은 비열하고 앞뒤가 꽉 막혔어!”
래리티는 혈기왕성한 어린 페가수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속눈썹이 천천히 바람에 흔들거렸다.
“하지만 이 포니들은 자유롭단다, 레인보우. 모르겠니? 이 포니들은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보다 훨씬 자유로워.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거친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 생각해보렴. 털 관리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고 온몸의 털을 다 밀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물론 털을 관리하는 수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긴 할 거야. 하지만 체온 유지도 안 될 거고, 피부에 생채기도 더 잘 나겠지. 그럼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굴고, 다른 포니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고 하게 되겠지. 무지 우스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건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해.”
래리티는 두어 번 키득댄 뒤 말을 이었다.
“길드데일 포니들도 마찬가지야. 법이나 규율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언제나 불안하고 무너지기 쉬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 그 누구보다도 걔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문제일 거야. 그래서 주변 환경의 변화나 자극에 더 공격적으로 구는 거야. 마법을 쓰고 날아다니는 우리한테도 그렇고, 코마가 무리한테도 그렇고. 자기네들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치만 애쉬테일은 대부분 코마가 무리 때문에 그런 거랬잖아.”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좀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
래리티는 볼을 발굽에 기댄 채 말을 이었다.
“난 그게 좀 이상했거든? 코마가 무리가 제일 큰 문제라면, 왜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걸까? 길드데일과 이퀘스트리아는 서로 돕기로 협약까지 맺은 사인데?”
“네 말은 길드데일 애들이 싸우고 치고받는 걸 좋아한다는 거야? 쉴드 메이든이 했던 말하고는 영 다른데!”
“쉴드 메이든.......은 아주 친절하고 온화한 친구지.”
래리티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길드데일 포니들이 고의로 코마가들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쉴드 메이든이야. 걔들은 고통을 주고 받는 걸 즐기는 타입은 아냐. 확실해. 다만, 자신들의 문화를 보호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긴 해. 이건 그 친구들의 패션센스를 보면 알 수 있-”
“뭐-어? 패션?”
대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꼬리를 올렸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패션 센스로 걔들을 판단하는 거야?”
“셀레스티아 님께 맹세코, 당연하지. 구체적으론, 패션의 편향성을 보면 알 수 있어. 그 애들은 보석 장신구 몇 종류 빼면, 정말 아무도, 어떤 경우에도 옷을 안 입고 다니더라. 그 보석 장신구란 것도 왕족들이나 하고 다니지, 다른 애들은 아무도 안했어. 하지만 걔들이 유일하게 공들이는 패션이 뭐게?”
래리티는 눈썹을 올리며 레인보우 대시를 바라보았다. 대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래리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갑옷이야. 걔들 가죽 갑옷에 얼마나 복잡한 세공이 들어갔는지 봤니? 심지어 금실을 썼어. 금실을! 세상에, 어스 포니들끼리 살면서 그런 걸 어떻게 만들었나 몰라. 그 뿐만이 아니야. 마법 없이 가죽 다루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난 상상도 못하겠어. 게다가 염색까지! 하지만 그 가죽들이 만약 코마가 가죽이라면, 극도로 발전된 가죽 세공 기술도 설명이 된다고 봐. 매년 오는 코마가 무리와 싸워서 얻은 전리품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또 싸우고 더 많은 전리품을 얻고, 그 모든 과정을 문화적 자부심으로 삼고.......이건 일종의 순환 구조 같은 거지.”
대시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그러니까, 길드데일 애들은 싸울 때 입는 거에는 엄청 공을 들인다 이거지.......왜냐면 걔들한텐 싸우는 게 중요하니까?”
“싸움이랑 경비 임무까지지. 걔들은 코마가들한테 모든 방향에서 공격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방어도 공격만큼 자랑스러워할 거야. 걔들은 끊임없는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포니들이지.......적어도 걔들 스스로는 그렇게 여기고 있고.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제한 없는 자유를 제일로 추구하는 사회 통념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야.”
레인보우 대시는 귀를 착 가라앉히곤 빽 소리쳤다.
“그게 자유라면, 난 싫어!”
“애초에 그게 자유긴 할까?” 래리티가 물었다.
“나는.......”
대시는 래리티가 했던 말의 궤적을 좇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그녀는 천천히 단어를 조합해 입 밖에 냈다.
“그러니까 네가 하는 말은.......전에.......자유로워지려면 어느 정도의 제한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었지? 그치? 진정 자유로운 자신이 되려면.......최소한의 안전은 보장 받은 상태여야 한다는 거지.......맞아?
래리티는 빙그레 웃었다.
“계속 해봐, 자기.”
그녀는 부드럽게 대시를 북돋았다.
“그, 그치만, 길드데일 포니들에 대해선 네가 틀린 것 같아!”
레인보우 대시의 목소리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걔들은 고집불통이긴 하지만 겁쟁이는 아니야! 그리고 많은 길드데일 포니들이 바뀌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 쉴드 메이든도 그랬고, 그라제첼트 화구 앞에서 나랑 얘기해봤던 애들도 그랬어! 다들 용감했지! 위험에 직면한 와중에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해내기도 했어! 심지어 위험 그 자체가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고!”
그녀는 발굽을 번쩍 들어올렸다.
“언제나 안전한 곳에만 있으면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어! 위험은 포니들의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어! 너도 마찬가지고!”
래리티의 눈썹이 아치형으로 올라갔다.
“이 여행에서 나는 너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어! 여행을 시작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나는 네가 고상한 척하면서 패션이랑 여성스러운 잡동사니에나 집착하는 멍청이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실제로 넌 굉장히 똑똑하고 착하고, 내가 모르는 것들도 많이 알고 있었어! 넌, 진짜 굉장해, 래리티!”
래리티는 동그래진 눈으로 대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넌 내가 말해준 것 이상의 것들까지 보는구나, 레인보우 대시.”
대시는 다시 자리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널 멍청이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래리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는 거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대시를 바라보며 래리티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넌.......솔직히 말하면, 내가 멍청하게 굴 때만큼 멍청하진 않은 것 같아. 넌 빠르게 습득하고 그걸 응용할 줄도 알지. 그리고 레인보우, 난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아니, 사실 많이 두려워.”
대시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안 그런 척 하는 것뿐이야.” 그녀는 래리티의 눈을 마주보았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둘끼리 놀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우린 둘 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친구잖아.” 래리티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친구가 아니지-아니, 아니었지.”
푸른 페가수스는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외쳤다.
“난 그걸 바꾸고 싶어!”
래리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네, 레인보우. 나도 그러고 싶어.”
“대시.”
“응?”
“대시라고 불러. 내 친구들은 다 그래. 애플잭 빼고. 걔는 왜 안 그러는 지 모르겠어.”
레인보우 대시는 래리티에게 발굽을 들어보였다.
“그럼 그렇게 부를게.” 래리티도 발굽을 들어올렸다. “대시.”
두 포니의 발굽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두 포니의 발굽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BANG!
물론 이건 발굽이 부딪혀 난 소리는 아니었다. 두 포니는 펄쩍 뛰어오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테치홀름의 대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완전 무장한 길드데일 포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일으키는 발굽 소리는 천둥 같았고, 모두 창을 받들어 세운 탓에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군단의 선두엔 브라이트 텅이 있었다. 그는 네 기의 병사들을 데리고 관문으로 내려가는 통로로 사라졌다. 나머지 군단은 계속 제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다.
코마가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대시와 래리티는 군단병들 사이를 지나쳐, 관문이 완전히 열리는 것을 보기 위해 관문으로 내려가는 통로로 향했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통로를 올라오던 브라이트 텅과 맞닥뜨렸다.
“너희들, 페가수스와 유니콘이지. 어때, 여물은 좀 먹었나?”
여물? 이 신사.......놈은 정말 우리를 같은 포니로 안 보는구나. 무례하기는.
“그럼요, 고문님.”
래리티는 솟구치는 짜증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대시는 말없이 고개만 까딱댔다.
더 많은 군단병들이 테치홀름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던 쉴드 메이든이 두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을 발견하곤 그들에게 달려왔다.
“혹시 대장님 봤어?”
그녀는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후로는 못 봤는데.” 대시가 말했다.
“아침 일찍 애플잭이랑 둘이 나가더라. 그 후로는 못 봤어.” 래리티가 설명을 덧붙였다.
흐린구름색 어스 포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걱정.......안 해도 될 거야. 이런 일에 늦으시는 분은 아니니까.”
그녀는 표정을 풀고 말을 이었다.
“기분은 어때? 사실 대장님보다 너희 둘이 더 걱정이야. 애플잭한테 뾰족한 수가 있어야 할 텐데.”
“난 그 친구한테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만.”
브라이트 텅이 끼어들었다.
“근위대장께서는 애플잭 양을 잘 모르시죠.”
쉴드 메이든이 서늘하게 말했다.
“전 그 애를 믿습니다.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건 그 애가 멍청했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 쳐도 이게 멍청한 짓거리라는 건 변함이 없지. 안 그런가?”
브라이트 텅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코마가들을 제어하겠다고? 무의미한 헛수고지!”
“.......애플잭 양이 꼬-옥 성공했으면 좋겠군요.”
쉴드 메이든은 감정을 실어 중얼거렸다.
“저기, 만약에.......”
옆에서 쉴드 메이든을 지켜보던 레인보우 대시는 못내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애플잭이 성공해서, 더 이상 이런 것들이 필요 없어지면?”
그녀는 쉴드 메이든의 갑옷을 앞발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싸우고 영광을 쟁취하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면? 그래도 괜찮아?”
쉴드 메이든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제대로 된 전사들이라면, 언젠가 무기를 내려놓아도 될 만한 좋은 시기를 맞게 되길 꿈꾸거든. 내 딸이 보다 안전한 길드데일에서 자라게 된다면, 그것만큼 싸움을 그만두기 좋은 이유는 달리 없겠지.”
“잡담은 거기까지다.”
브라이트 텅은 일행의 대화를 끊어내고 소리쳤다.
“길더스! 평원으로 진격! 동쪽에 대해 방어선 구축! 포위 형태로!”
군단은 질서정연하게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왕실근위대장은 아직 본성에서 나오고 있는 이들을 통솔하며 군단에 합류했다.
"이제 가야겠다. 다들 행운을 빌어!”
쉴드 메이든도 군단과 함께 관문으로 떠났다.
쉴드 메이든이 충분히 멀어지자, 대시가 말했다.
“봤지? 재는 용감하다구. 때가 되면 무기를 놓을 각오까지 되어 있을 정도로 말야. 큐티마크까지 타고난 전사인데도 말이지.”
“네 말이 맞았구나. 난 다들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줄 알았어.”
새하얀 유니콘은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던 거야.”
“네 말도 대체로 맞았어.”
푸른 페가수스가 말했다.
“하지만 포니는 모두 입체적이야.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지. 그렇지 않을까?”
“그럴 거야, 대시.” 래리티가 동의를 표했다.
그들의 앞에 새로운 그림자가 생겼다. 완전 무장한 해머 후프가 태양을 등진 채 두 포니 뒤에 서 있었다. 그의 갑옷은 모든 부분이 금실로 고정되어 있었고, 투구에는 금테를 두른 거대한 루비가 박혀 있었다.
“그대들의 어스 포니 친구는 어디 있나?”
군주가 물었다.
래리티는 고개를 숙였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마지막으로 그 애를 봤을 때, 그 애는 애쉬테일 왕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 어쩐지 왕자도 보이지 않더군.”
해머 후프가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울링이 들려왔다. 몇 번의 하울링이 바람을 타고 연달아 메아리쳤다.
“왕자가 빨리 와야 할 터인데.......그대들 둘은 일단 짐을 따라오라.”
군주는 관문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향해 달렸다. 두 이퀘스트리아 포니들도 그를 뒤따랐다. 래리티가 보니, 군주는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창도, 발굽 도끼도, 칼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는 오직 상아색 의족만 착용하고 있었다.
관문을 통과한 길드데일의 군주는 오른쪽으로 선회해 받침돌의 모서리를 따라 달렸다. 모퉁이에 이른 그는 또 한 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를 따라 달리던 레인보우 대시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완전 무장한 수천 기의 포니들이 동쪽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 무리는 가로로 세 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세 줄 모두 테치홀름의 받침돌의 한 모서리의 길이를 다 덮을 정도로 길었다. 그들은 조각상처럼 굳은 자세로 서 있었고, 전방만을 쏘아보고 있었다. 맨 앞줄의 가운데에는 브라이트 텅과 체크보드가 서 있었다.
쉴드 메이든이 했던 말이 맞았구나. 정말 전사였네.
래리티는 빼빼 마른 하얀 곰팡이 색의 포니 : 체크보드마저 무장한 채 서 있는 걸 보고 그 주변을 곁눈질했다. 어제 저녁 때 신목의 법원에서 봤던 금목걸이를 한 포니들 모두가 무장한 채 전장에 나와 있었다.
해머 후프가 다가오자, 그들 모두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
체크보드가 대표로 나서서 예를 표했다.
“애쉬테일 왕자의 기별은 없나?” 해머 후프가 물었다.
“아침 내내 보지 못하였습니다, 폐하.”
체크보드가 그렇게 대답한 찰나, 받침돌 쪽을 응시하던 레인보우 대시가 빽 소리쳤다.
“앗! 저기, 저기 온다!.......애플잭도 있는 것 같은데!”
근처에 있던 포니들 모두가 북쪽을 바라보았다. 갑옷과 창, 발굽 도끼로 완전무장한 애쉬테일이 받침돌의 모퉁이 쪽에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애플잭 역시 그의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래리티와 레인보우 대시의 눈빛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섞여들었다.
애플잭은 길드데일 제식 갑옷을 입고 있었다. 종아리에는 두터운 가죽 보호대가 안쪽에서 매듭이 지어진 채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둔부를 비롯한 하체에도 두터운 두 조각의 갑옷 가죽이 꼬리뼈 부근에서 만나 꼭 맞게 매어져 있었다. 큐티마크가 있는 자리에는 길드데일의 상징-황금빛 풀이 그려져 있었고, 꼬리가 있는 위치에는 꼬리 구멍도 있었다.
몸의 옆면에도 보호대가 둘러져 있었다. 가죽으로 된 그 보호대의 양쪽 끝부분엔 구멍이 나 있었고, 그녀의 등에 덧대어진 평평한 가죽 안장에서 만나 서로 엮이며 고정되었다. 가슴은 금실이 수놓아진 페트랄peytral로 감싸져 있었는데, 페트랄을 이루는 가죽 조각들이 가슴뼈의 굴곡을 따라 구부러진 채 서로 붙어 있었다.
목 뒤로 삐져나와 있는 타이는 상, 하체의 모든 갑옷들이 제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 목의 경우에는 상부만 가죽으로 감싸여 있었고 그 아래엔 밧줄 다발이 걸려 있었다.
머리에는 가죽 투구가 착용되어 있었다. 금실로 꿰매진 투구의 가운데에는 작은 초록빛 에메랄드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투구의 위에, 애플잭의 카우걸 모자가 덧씌워져 있었다. 두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은, 특히 래리티는 저게 뭔가 싶은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나, 계속 볼수록 어쩐지 그녀의 개성이 느껴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폐하.” 나는 듯이 달려온 애쉬테일은 해머 후프 앞에 멈춰 고개를 숙였다.
“.......애쉬테일 왕자.” 해머 후프의 눈이 이글거렸다. “저 갑옷은-”
“제 재량껏 다루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거대한 수말은 잠시 침묵하다가 코웃음을 쳤다.
“그랬긴 했지.” 그는 곧바로 한 마디 덧붙였다. “내 불찰이었군.”
들판 건너편에서 또 다른 하울링이 터져 나왔다. 그에 화답하듯 하울링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대기를 울리는 끔찍한 전율이 모든 포니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동쪽 하늘에서는 해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지평선의 모양이 울퉁불퉁해진 것이 여실히 보였다. 커다란 코마가들의 수많은 몸뚱이가 지평선을 가린 탓이었다.
“이퀘스트리아의 어스 포니여.”
군주의 시선이 애플잭을 향했다.
“아직도 내기할 마음이 있는가?”
애플잭은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 전부 아이믄 전무 아이긋나.
“당연하지예, 폐하.”
“그럼 그렇게 하라!”
군주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채 맨 앞줄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애쉬테일은 해머 후프를 따라 달리다 애플잭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행운을 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애플잭의 귓가에 맴돌았다.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이여!”
해머 후프가 본격적인 내기의 시작을 알렸다.
“짐이 윤허하니, 길드데일의 황금빛 들판에서 맘껏 달려 보거라!”
애플잭은 친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래리티의 뿔에 달린 칼날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래리티, 이 가스나야. 니는 그거 와 끼고 나왔노? 니도 알제? 우린 지금 싸우러 나온 게 아이다.”
“물론 나도 싸우기 싫단다.”
래리티가 답했다.
“근데 이걸 끼고 있으면 마법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더라구. 도움이 될 만 한건 다 해봐야지 않겠니?”
“그건 글체.”
애플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보우, 준비됐나?”
“그러엄! 가보자고!”
대시가 힘차게 외쳤다. 위기가 불러온 고양감이 그녀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알긋다.”
애플잭은 궁둥이를 땅에 대고 앉은 채, 목에 건 밧줄을 앞발굽으로 풀었다. 그녀는 풀어낸 밧줄을 지면에 두고 세 개의 뭉치로 나누었다. 세 밧줄 뭉치 모두 끝부분에 느슨한 매듭으로 만들어진 큰 고리가 있었다.
“자, 올가미데이. 하나씩 챙기그라.”
새하얀 유니콘과 푸른 페가수스는 각각 올가미를 하나씩 물어 들었다. 애플잭은 마지막으로 남은 올가미를 골랐다.
“이제 가보재이!”
애플잭은 몸을 뒤로 뻗으며 조용히 콧김을 내뿜은 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폭발적으로 달려 나갔다. 래리티가 그 뒤를 쫓았고, 대시는 두 포니의 바로 위쪽에서 비행했다.
일행은 황금빛 들판을 내달렸다. 언덕만큼 거대한 회색 형체들이 지평선을 가리며 몰려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하울링들 사이의 시간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점점 크고 날카로워졌다.
“진짜, 엄청나게 많은데!” 푸른 페가수스가 말했다.
“레인보우, 높이 날아서 좀 보그래이!”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외쳤다. 대시는 하늘을 가르며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
보고는 몇 초 후에 전해졌다. “진짜, 엄청나게 많아!”
“거, 맨 앞에는 몇 마리나 오고 있드나?”
“셋!”
“셀레스티아님 만만세다! 완벽하데이!”
애플잭은 친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가스나들아! 어제 계획했던 대로만 움직여 주믄 된데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돌아갈 지도 모른데이! 우리 셋이 각자 하나씩만 맡으면 된다! 내가 가운데로 가께! 레인보우 니는 오른쪽으로 가그래이! 니가 공간 확보를 잘 해줘야 칸다! 래리티 니는 왼쪽으로! 가서 내가 신호 줄때까지 기다리그라!”
래리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으로 달려 나갔다. 대시는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애플잭은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래리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으로 달려 나갔다. 대시는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애플잭은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세 마리의 거대한 코마가가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머지 무리에서 약 150미터 가량 앞쪽에 있었다. 그 중 가운데에 있는 녀석이 하울링을 내질렀다. 고성이 애플잭의 귀에 덮쳐들었다.
애플잭은 올가미 밧줄의 한 쪽 끝을 입에 물고 머리를 빙빙 돌렸다. 회전이 점점 빨라지면서, 구겨져있던 고리가 쭉 펴졌다. 손발톱이 달린 코마가들의 사지가 대지를 쿵쿵 울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좌측에서는, 혼 블레이드가 래리티의 마력에 반응해 하얗게 반짝였다. 올가미의 고리가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이더니 넓게 퍼졌다. 그녀 역시 올가미 밧줄의 한 쪽 끝은 입에 단단히 물고 있었다.
우측 상공에 있던 대시는 나선형으로 하강하며 발굽으로 직접 올가미의 고리를 펼쳤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일에는 요령이 없었다.
세 코마가와 일행 사이의 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대한 발들이 지면을 난폭하게 밟아대는 통에, 애플잭의 시야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집중시켰다.
제발, 셀레스티아 공주님, 루나 공주님, 그 밖에 대단하신 모든 분들! 듣고 계십니꺼? 제발 지 생각이 맞게 해주소!
“올가미 던지그라!”
애플잭은 폐 속의 공기를 그러모아 우렁차게 내질렀다.
어데보자, 한 오륙 메다 남았나?
애플잭은 자신이 맡은 코마가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둘 사이의 거리는 4미터까지 줄어들었다.
애플잭은 목을 털듯이 튕기며 올가미를 내던졌다. 앞으로 날아간 올가미는 거대한 회색 도마뱀의 목에 걸렸다. 애플잭은 재빨리 녀석의 오른쪽으로 달렸다.
대시는 한껏 고도를 낮추더니, 들고 있던 올가미를 직접 코마가의 목에 통과시켰다. 그녀는 신속하게 올가미 밧줄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남은 부분은 앞다리에 감았다.
래리티는 올가미 고리를 마법으로 띄워 코마가의 목에 걸었다. 그녀도 코마가가 걸린 올가미 밧줄을 물고 오른쪽으로 달렸다.
애플잭이 밧줄을 입에 문 채 외쳤다.
“당기그라!”
그녀는 발굽을 대지에 묻고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생각했다. 그리고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 핑키 파이, 플러터 샤이, 애플블룸, 빅 맥킨토시, 그래니 스미스, 모든 애플 가문 가족들 그리고-
.......애쉬테일.
그녀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의 다리에서 힘이 흘러넘쳤다.
래리티는 이를 악물고 넓은 자세로 지면을 디뎠다. 그녀는 자신이 물고 있는 밧줄에 온 마력을 쏟아 부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하얗고 밝은 빛이 혼 블레이드에서 뿜어졌다.
레인보우 대시는 있는 힘껏 날개를 휘두르며 오른쪽으로 향했다. 푸른 날개가 소닉-레인붐을 일으키기 위한 초기 가속을 할 때처럼 파닥댔다. 그녀가 맡은 위치상 그녀의 오른쪽 경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부터, 이 무거운 도마뱀들을, 오른쪽으로, 끌고 가야 돼!
대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시선을 오른쪽으로 고정했다.
그래야, 그래야, 애플잭이 성공해, 그래야, 우리 셋이, 다 같이, 트와일라잇을 구하러 갈 수 있어!
일행은 다 같이 올가미를 당겼다. 코마가들의 목에 걸린 채 팽팽하게 당겨진 올가미는 그들을 오른쪽으로 끌어 당겼다. 거대한 도마뱀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세 포니들은 그들의 괴물 같은 힘을 실감했다.
래리티는 몇 번이나 지면에서 발굽을 미끄러트릴 뻔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그녀는 자신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계속해서 되뇌었다.
나는 절대로 널 실망시키지 않아.
레인보우 대시 역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씩 끌려가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오른쪽으로 향하는 경로로 돌아오곤 했다. 무지갯빛 갈기 아래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애플잭은 친구와 가족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코마가는 그녀를 흔들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지만, 금강불괴는 단순한 물리력으로 쳐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한편, 코마가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올가미 밧줄이 느슨해졌다. 코마가들이 움직임을 멈췄음을 직감한 애플잭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 설마하니 그냥 목 졸려서 나자빠진건 아니긋제?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코마가들은 멀쩡히 서 있었다. 잠시 멈춰있던 그들은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가게 두그라!”
애플잭이 외쳤다. 그녀는 머리를 능숙하게 흔들어 코마가의 목에 걸려 있던 올가미를 풀었다. 래리티는 마법을 사용해 간단히 올가미를 풀었다. 레인보우 대시는 아예 올가미 밧줄을 놓아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녀는 씩씩대며 날아가 올가미 밧줄을 다시 주웠다.
“인자, 다들 튀그라!”
애플잭이 또 한 번 외쳤다. 그녀와 래리티는 코마가의 우악스런 발걸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껏 발굽을 굴렸다. 왼쪽으로 치우쳐 날던 대시는 친구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머리 위로 경로를 바꿨다. 충분히 거리를 벌린 일행은 애플잭을 필두로 속도를 줄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코마가 무리의 두 번째 줄은 열 마리의 코마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고집스런 회색 벽은 여전히 테치홀름을 향해 진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그들은 선두의 세 마리를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다음 줄도 그랬고, 다음 줄도, 그 다음 줄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모든 코마가의 진격로가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선회 각도는 일행이 있는 곳에서 보면 아주 작았다. 하지만 테치홀름을 기준으로 보면, 코마가들이 길드데일의 수도를 짓밟을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제일 먼저 환호성을 터트린 건 레인보우 대시였다.
“오오오-예에에에에!!”
그녀는 애플잭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해냈어! AJ, 네가 옳았어! 네 말이 맞았어!”
푸른 페가수스는 추락하듯 착륙하며 오렌지 색 어스 포니를 껴안았다.
래리티도 그 포옹에 합류했다.
“훌륭했어, 애플잭! 눈부실 정도로 완벽하게 성공했다구!”
애플잭은 다정하게 웃었다.
“너거들 읎이는 못했을 끼다! 다들 억수로 잘 당겨줬데이! 느그들은 명예 카우 포니들이데이!”
기쁨을 나눈 세 친구들은 올가미 밧줄을 챙겨들었다. 애플잭을 필두로, 그들은 테치홀름을 향해 발굽을 재촉했다.
길드데일의 병사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테치홀름에 가까워질수록, 세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은 모든 길더스가 경악스러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은 이가 없었고, 대부분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애플잭, 레인보우 대시, 래리티는 군단의 지도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애쉬테일, 브라이트 텅, 체크보드의 놀라워하는 얼굴이 그들을 맞이했다. 유일하게 해머 후프만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만은 어쩐지 조금 더 밝아보였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군주의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였다.
“폐하.”
새하얀 유니콘도, 푸른 페가수스도 그녀를 따랐다.
침묵이 감돌았다. 애쉬테일이 머뭇대며 입을 열었다. 단 한 마디의 물음이 심호흡에 섞여 나왔다.
“.......어떻게.......?”
애플잭은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우리 귀염둥이.......왕자님. 지가 말했었지예? 지가 이퀘스트리아에서 살았기 때문이고, 지가 지 자신이기 때문이라고예. 지는 농장에서 나고 자랐심더. 농장 자식으로 살다보믄, 동물들하고 엮일 일이 참 많심더. 왕자님네 주변에는 그런 아들이 없었지예? 아, 포니는 뺍시더. 우리 포니는 동물하고는 좀 다르니께. 여하튼, 그니께 왕자님네는 패닉 런Stamped이란 걸 모를 수도 있겠지예.”
“패닉.......런?”
애쉬테일이 재차 물었다. 그의 생에서 처음으로 혀에 굴려보는 단어였다. 어감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모여 사는 동물들 무리 전체가예, 뭔가에 겁을 집어먹어가꼬 반대쪽으로 냅다 튀는 깁니더. 주변에 뭐가 있든 신경도 안 쓰고예, 지들헌티 겁을 멕인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는 거에만 집중합니더. 거, 갸들 눈 뒤집힌 거 보셨다 아입니꺼?”
애플잭은 눈을 크게 떠보였다.
“완전 돌아있었지예? 그 상태로 뛰댕긴다캐서 패닉 런입니더.”
“그럼 코마가들은.......그냥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건가?”
“이-엽.”
애플잭은 빅 맥킨토시처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가 갸들헌티 겁을 준거지예. 근디 그 뭔가가 뭔지는 지도 잘 모르겠심더. 그렇게 많은 아들이, 매년마다, 것도 수백 년 동안이나 뭔가에 겁먹어가꼬 길드데일에 온 거지예. 여하튼 그런 깁니더.”
“믿을 수가 없군.”
멍하니 있던 브라이트 텅이 입을 열었다.
“그럼 녀석들은 왜 우릴 죽이고 기물들을 파괴한 거지?”
“기냥 지들이 갈 길 앞에 뭔가 있으니 그랬던 거지예. 이건 이미 알고들 계셨다 아입니꺼? 패닉 런 상태에 빠진 아들은 지들 주위에 뭐가 있는지 같은 건 신경도 안씁니더. 갸들이 스스로 돌아서 갈 기 같으면 그기 패닉 런이겠심꺼?”
애플잭은 자신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기에, 여러분네는 갸들이 생각할 줄 모른다 캤지예. 그기 맞다고 장담은 못하겠심더. 다만 갸들이 좀.......돌아서 가면 된다는 생각을 바로 못 떠올릴 정도로 지능이 낮은 건 맞는 것 같심더. 어쩌면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예. 갸들 힘이 워낙에 세니께, 엔간한 건 다 부술 수 있었을 테니까예.”
애플잭은 미소를 지었다.
“그치만 우리 포니들은 다르지예. 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심더. 무리의 선두만 방향을 돌려주면 되는 깁니더.”
“믿을 수가 없군.......”
브라이트 텅은 무기력한 목소리로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애플잭은 해머 후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캐서, 폐하.......내기는 즈이가 이겼지 싶은데예.”
해머 후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 체크보드가 조심스럽게 군주를 불렀다.
해머 후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애플잭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 애쉬테일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길드데일의 군주는 잠시 입술을 씰룩이다가 입을 열었다.
“짐이, 틀렸었군.”
애플잭,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넓은 아량을 가진 포니들이야말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지예.”
오렌지색 어스 포니가 말했다.
해머 후프의 시선이 애플잭의 목에 걸려있는 밧줄에 머물렀다.
“그대가 코마가들의 진로를 바꾸는데 사용했던 그건.......”
“아, 올가미 밧줄입니더.” 애플잭은 목에 걸려 있던 밧줄 뭉치를 앞발굽으로 풀어냈다.
“올가미 밧줄?”
“그렇습니더, 폐하. 농장에서 일하다 보믄 도음이 많이 되지예.”
그녀는 자랑스럽게 웃어보였다.
“지 입으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은, 지가 이걸 꽤 잘 다룬다 아입니꺼.”
군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잘 다룬다면,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는 되는가?”
애플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폐하, 그 정도도 못하믄 어데 가서 잘한다 하겠심꺼?”
-
몇 시간이 지났다.
쉴드 메이든은 밧줄 끄트머리를 입에 문 채 머리 위로 올가미 밧줄을 빙빙 돌렸다. 그녀는 고리가 공중에서 계속 돌도록 쉼 없이 머리를 돌렸다. 그러다 실수로 회전 박자를 놓쳤고, 올가미 고리는 뒤쪽으로 날아갔다.
패닉에 빠진 흐린구름색 어스 포니는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다급하게 앞으로 숙였다. 그 과정에서 올가미 고리가 뒷발굽에 걸렸지만, 그녀로서는 그걸 알 길이 없었다. 결국 당연한 수순으로.......
“으어아!”
제 올가미에 걸린 꼴이 된 쉴드 메이든은 그대로 지면에 엎어졌다.
애플잭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싱긋 웃었다.
“연습만이 살 길 아이긋나, 쉴드 메이든. 곧 잘하게 될 기다.”
“잘 하고 있어, 쉴드 메이든!”
래리티가 응원을 보냈다.
“벌써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걸!”
그녀와 레인보우 대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래리티. 넌 올가미 밧줄 아예 다룰 줄도 모르잖아.” 대시가 지적했다.
<“래리티. 넌 올가미 밧줄 아예 다룰 줄도 모르잖아.”>
“저런, 대시.”
래리티는 도도하게 대꾸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애를 응원하는 거 아니겠니?”
경비대와 왕실근위대를 통틀어 수백에 이르는 길더스들이 들판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 모두 올가미 밧줄을 하나씩 다루고 있었다. 그 초보 카우 포니들 사이에 애플잭이 있었다. 그녀는 추가 지도가 필요해 보이는 이들을 돕고 있었다.
사실 ‘추가 지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애플잭 혼자서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로 차고 넘쳤다. 애플잭이 쉼 없이 돌아다니며 밧줄 기술을 가르친 지 이제 세 시간 째였고, 이마저도 수백 줄의 올가미 밧줄을 만드느라 보낸 한 시간은 제한 것이었다.
애플잭은 맨 처음엔 모든 병력을 줄 세워 놓고 그룹별로 나누어 가르쳤다. 그들이 기본기를 갖추었다고 판단이 된 다음부터는 각각 자율적으로 연습을 시켰다.
글킨 허지만, 하루 만에 능숙해지는 아들이 몇이나 되겄노?
애플잭 자신은 망아지 때 하루 만에 밧줄 기술을 배워내긴 했지만, 재능 있는 포니는 소수에 불과했고 애플잭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이중에 실전에서 써줄 만한 아들은 사십 기 정도 되겄고, 그 중에서도 진짜 능숙한 아들은 열 하내 내지 둘 정도 되지 않긋나 싶은디.......
애플잭은 자신이 떠난 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가 보건대, 열 두어 기의 포니들은 다른 이들을 가르칠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특히 쟈는.......
애플잭은 다른 길더스들보다 월등하게 놀라운 밧줄 기술을 선보이는 한 포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애쉬테일은 머리 위에서 돌리던 올가미 밧줄을, 회전력을 유지시킨 채 몸을 낮추며 높이를 낮췄다. 고리 끝부분이 애쉬테일을 중심으로 양 쪽 끝을 지날 때마다 지면을 때렸다. 심지어 그는 돌고 있는 고리에 발굽을 넣은 채 돌리기도 했고, 그 상태로 뛰어올라 밧줄이 몸 아래로 지나가게 했다.
“대-장, 대-장, 대-장, 대-장!”
버드 스피크가 근처에서 발굽으로 박자를 맞추며 소리쳤다.
검붉은 색 카우 포니의 발굽에서 춤추던 밧줄은 마침내 자연스럽게 회전력을 잃고 주인의 발 앞에 떨어졌다. 물고 있던 밧줄 끄트머리를 뱉으며, 애쉬테일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혀 기술이 상당히 중요하군.”
“맞습니더.”
애플잭은 그에게 다가갔다.
“혀를 어떻게 다루는 지가 참 중요하지예. 그걸 그렇게 빨리 깨달을 줄은 몰랐는데예.”
“아마 나한테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애쉬테일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넘쳐흐르는 기쁨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애플잭은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것 같네예.”
애플잭이 말했다.
“당신한테 재능이 있으이 참 다행입니더. 제가 떠나도 누군가는 이 아들을 가르쳐야지 않겠심꺼.”
애쉬테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렇군.......너는 떠나야겠지. 친구가 네 도움을 필요로 하니 말이다.”
“지가 안 가면 래리티랑 레인보우가 어찌 되겠심꺼? 그기다 또, 과수원엔 일할 포니가 있어야카고, 지 가족들헌티도 지가 있어야카고, 포니빌도 그렇고예, 지 친구들도 그렇슴더.”
“길드데일에 내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애쉬테일이 담담히 말했다.
두 포니는 서로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외로 꼬았다.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이제 여긴.......많은 것들이 바뀔 거다.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애쉬테일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짐짓 여유롭게 말했다.
“우리 둘 다 각자의 임무가 있는 거다.”
“그런 것 같네예.”
애플잭도 짐짓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떠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은 마음속 작고 비밀스러운 곳에 고이 간직한 채였다.
BONG!
테치홀름 근처에서 커다란 공Gong 소리가 들려왔다.
“오, 드디어!”
애쉬테일은 이 요란한 방해를 도리어 반겼다.
“연회가 준비된 모양이다!”
그는 목을 길게 내빼고 숨을 들이마셨다.
“경비대! 왕실 근위대! 모든 길더스는 들으라! 각자 밧줄 챙겨서 테치홀름으로 복귀!”
삼삼오오 모여든 포니들은 본성으로 발굽을 재촉했다.
애플잭은 애쉬테일의 옆에서 함께 달렸다.
“여그 요리사들이 전사할 포니들을 감안해가꼬 요리를 한 건 아니겠지예? 보다시피 먹을 입이 으마으마하게 많다 아입니꺼.”
애쉬테일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럴 리가. 음식은 차고 넘치게 많을 거다. 테치홀름에서 개최된 연회에 배고픈 포니란 있을 수 없다.”
두 포니에게 래리티와 레인보우 대시, 쉴드 메이든이 합류했고, 버드 스피크와 샤프 사운드도 따랐다. 그리고 수많은 길더스가 일행과 어우러져 통로를 올라 대문을 통과했다.
거대한 중앙 회관을 지나며, 군중들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선회해 회관의 뒤로 돌아가는 기둥 사이를 지났다. 그곳엔 일반적인 공동 식당보다 좀 더 인상적인 크기의 식당 : 연회장이 있었다. 드넓은 천장은 두터운 나무 기둥들로 떠받쳐짐과 동시에 거대한 목재 트러스들trusses로 보강되어 있었다. 줄줄이 놓인 수백여 개의 나무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연회장 가장 깊숙한 곳에는 나무로 된 연단이 있었는데, 각각 주인이 있는 것 같은 특별한 의자들과 긴 테이블이 연단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해머 후프가 그 연단에 올라섰다.
“애쉬테일 왕자.”
군주의 목소리가 충직한 군중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대와 그대의 전우들은 오늘 짐과 함께 만찬을 즐길 것이다.”
그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물론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도 포함해서다. 그들이 짐의 가까이에 자리하는 것을 윤허한다.”
“이리로.”
애쉬테일이 앞장서며 말했다. 주변에 있던 군중들이 일시에 나누어지며 그들을 위한 길을 만들었다. 일곱 포니들은 연회장 끝까지 들어가 연단에 올랐다. 체크보드와 몇몇 길드데일 포니들이 이미 그 곳에 있었다. 그들을 비롯한 군중들 모두 경의의 침묵을 지켰다.
“모두들 앉게.”
해머 후프가 말했다. 아무 말 없이, 길더스들은 차례차례 테이블들을 채워나갔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있었다. 애쉬테일이 그 오른쪽에, 체크보드가 그 왼쪽에 앉았다. 애플잭은 애쉬테일의 옆에 앉았고, 레인보우 대시는 체크보드의 옆에, 래리티는 대시의 옆에, 쉴드 메이든은 애플잭의 옆에 앉았다. 버드 스피크와 샤프 사운드는 각각 래리티와 쉴드 메이든의 옆에 앉았다. 군주로서의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해머 후프는 여전히 서 있었다. 연회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부디 길더스의 감사를 받아주시오.”
길드데일의 군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든 길드데일 포니들이 군주를 따라 세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애플잭은 재빨리 모자를 벗었다.
“깊이 감사하오. 가장 많은 피가 흘렀어야 할 날, 바로 오늘, 그러나 누구도 죽지 않았음에. 깊이 감사하오. 길드데일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날, 바로 오늘을 주었음을. 깊이 감사하오. 바로 오늘부터, 아마도 몇 년 이내로, 더 이상 전투에서 죽게 될 길더스는 없게 될 것임을.”
군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
“또한 깊이 감사하오. 교훈을 받아들이는 의지와 넓은 아량의 미덕에.”
그는 상아색 의족으로 연단을 내리쳤다.
“이 세상을 조율하는 의지, 대지와 하늘, 태양 여왕과 그 나라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연회의 시작을 선포한다!”
테이블을 두드리는 발굽소리가 연회장 전체에 천둥처럼 울렸다. 그 소리가 가라앉은 뒤에는 즐거운 재잘거림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제야 해머 후프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왕족의 테이블은 가장 마지막에 차려진다.”
군주가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에게 말했다.
“모든 영민들의 안녕을 자기 자신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지도자들의 책무를 의미하지.”
“증말 멋지십니데이!”
애플잭은 모자를 쓰려다 말고 도로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녀는 묘하게 표정을 찡그렸다.
“어.......거, 불편 드릴 생각은 아닌데예, 폐하. 즈이 내기는 어케 된 겁니꺼.......? 지가 이긴 기 맞는 거지예?”
“크하하하! 당연한 말을!”
해머 후프는 천둥처럼 외쳤다. 그의 깊으면서도 호탕한 웃음소리에 돌로 된 접시들이 진동했다.
“짐은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수말이다. 그대들 셋 모두, 길드데일의 통행을 완전히 허가한다! 앞으로 남은 서쪽 영토는 물론이요, 돌아오는 길에도 길드데일을 지나가도 좋다!”
군주는 발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황금빛 평원의 왕이 정식으로 선언하노라! 어스 포니 애플잭, 페가수스 레인보우 대시, 유니콘 래리티는 길드데일의 친우들이다! 그대들은 언제든 원할 때 길드데일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으며, 길더스는 그대들을 영광스런 손님들로서 환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빠짐없이 기록될 것입니다, 폐하.” 체크보드가 말했다.
“또한.”
군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대들이 길드데일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대들의 이름은 올해의 기록으로서 데일스톤에 새겨지리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찾아올 수많은 이들이 그대들 셋이 일궈낸 업적을 알게 될 것이다.”
“와쩔어미쳤다미쳤다미쳤다미쳤다미쳤다미쳤어! 우리가 역사 속에 남는다구!”
레인보우 대시가 소리쳤다.
“너무 멋지잖아!” 그녀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들이 대화하는 중에 서빙 포니들이 나타나 돌 포도주 잔들Goblets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등에 배럴Barrel을 짊어진 건장한 어스 포니가 해머 후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가 배럴의 앞에 있는 마개를 열자, 황색 액체가 해머 후프의 돌 고블릿 옆에 있는 돌 머그컵에 가득 채워졌다.
“또한.”
해머 후프는 황색 액체가 채워진 머그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누런 수염에 하얀 거품이 묻었다.
“좋은 맥주는 덤이다!” 그는 머그 컵을 쾅 내려치며 소리쳤다.
“매, 맥주!?”
대시는 황홀경에 빠졌다.
“맥주래! 여기 맥주가 있어!!”
“으, 이 가스나는 안됩니더! 진짜! 부탁드립니데이!” 애플잭이 맥주 포니에게 간청했다.
“뭐?! 나한테도, 응? 나한테도 주라!”
푸른 페가수스도 맥주 포니에게 간청했다. 그녀는 애플잭을 노려보았다.
“너 뭔 소리하는 거야?”
“레인보우. 이 연회가 끝나면 우린 다시 떠나야 한데이. 그기다, 니가 술독에 빠져가꼬 미쳐 돌아가는 꼴을 여행길에서도 봐야긋나? 엉? 이 주정뱅이 가스나야!”
“미쳐 돌아가긴 뭘! 그리고 주정뱅이도 아니야!” 대시가 받아쳤다.
애플잭은 진중한 눈빛으로 대시를 바라보았다.
“레인보우. 니 만날 주량 조절 몬하고 냅다 퍼마신다 아이가. 니가 제일 잘 알제, 그제?”
“그럼 넌 할 수 있고?”
오렌지 색 어스 포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당연하제. 니 겨울 달 축제Winter Moon Celebration때 완전히 취해가꼬 탁자 밑에 기 들어가던 거 기억 안나나?”
“그, 그건 빼!”
대시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박박 우겨댔다.
“그 때 이미 몇 잔 마신 상태여서 그랬던 거야!”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래리티는 해머 후프에게 몸을 돌렸다.
“실례합니다, 폐하.”
군주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미 답을 알 것 같긴 한데,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요. 이것만 좀 여쭤볼게요. 길드데일의 국경은 아치백 산악지대에 맞닿아 있나요?”
해머 후프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가깝긴 하지만, 길드데일은 그렇게 멀리까지 뻗어있진 않다.”
그는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몸을 앞쪽으로 숙였다.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시도 어느새 말다툼을 멈추고 군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길드데일과 아치백 산악지대 사이에는 쉬머우드라는 거대한 숲이 있다. 길드데일만큼 크진 않다. 그래도 숲치고는 크지.”
“으엑, 숲?”
대시는 낮게 신음하며 짜증을 부렸다.
“우리 또 숲 지나가야 되는 거야?”
“걱정할 것 없다.”
해머 후프가 말했다.
“넓은 숲이긴 하지만, 가로지르기는 꽤 쉬울 것이다. 그 쪽 주민들도 딱히 불친절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흐음. 마법에 익숙한 그대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은 환영을 받을 것이다. 특히 그대, 유니콘은 더더욱.”
“환영이요?”
래리티가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
수염에 가려진 입가에 아리송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정말 엄청난 양의 음식이 도착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석쇠에 그을리고 소금에 절여지고 숯불에 구워지는 등 온갖 조리법으로 요리된 건초와 풀이 있었다. 당근과 감자, 양배추, 스튜와 수프, 각양각색의 빵들도 있었다. 음식들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졌고, 곧 모든 포니들이 바쁘게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대화 사이사이에 씹고 삼키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물과 에일ale도 자유로이 오고갔는데, 레인보우 대시는 애플잭의 강력한 제지로 인해 약간의 에일 밖에 마시지 못했다.
래리티는 너무 많이 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음식들이 너무도 훌륭했던 데다, 지난주에 있었던 쟁기포니의 날 이후로는 이런 식의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동료애와 우정이 자유로이 흐르는 분위기에서는 어쩐지 음식도 더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문득 길드데일 특유의 ‘길더스’ 문화에 대해 고찰했다 :
만약 그대가 무리의 안에 들어와, 그들의 일부가 된다면, 가족의 일원이 될 것이다.......하지만 길드데일 포니들은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이방인을 배척하지. 만약 이들이 후자의 경향을 잃는다면, 전자의 경향도 잃게 되는 걸까?
그녀는 단호히 부정했다.
아니야. 대시 말이 맞아. 이들은 용감한 포니들이야. 꼭 그렇게 되리란 법은 없지. 우리 셋은 길드데일 포니-길더스들에게 더 나아질 수 있는 변화의 기회를 줬어.
새하얀 유니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왁자하지만 전혀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 재잘거림, 훌륭한 음식의 향기와 온기, 쾌활한 웃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모든 것들과 사랑을 했다.
용감한 길더스들은 그 기회를 낭비하지 않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용감한 길더스들은 그 기회를 낭비하지 않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
식사 분위기가 사그라질 무렵, 해머 후프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의족으로 연단을 한 번 두드려 군중을 조용히 만들었다.
“이제 망아지들의 입장을 윤허한다!”
군주가 명했다.
“어린 것들도 식사를 해야지.”
쉴드 메이든을 비롯한 많은 길드데일 포니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몇 늙은 암말들이 크고 작은 백여 기의 망아지들을 데리고 드넓은 연회장에 들어왔다. 망아지 무리는 연회장에 발굽을 딛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졌고, 뭉툭한 다리로 테이블 사이를 빨빨대며 부모를 찾아다녔다.
연단 아래로 내려간 쉴드 메이든은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앞다리를 넓게 벌렸다. 그녀의 품으로 짙은 회색의 갈기와 꼬리, 밝은 회색 털가죽을 가진 망아지가 폴짝 뛰어들었다. 아이의 오렌지 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래리티는 그라제첼트에서 쉴드 메이든이 보여줬던 그림을 떠올렸다.
어머, 세상에. 그 그림하고 똑같이 생겼잖아.
포옹과 코맞춤을 한 뒤, 쉴드 메이든은 딸을 데리고 연단 위로 돌아왔다. 많은 귀족들을 마주한 어린 망아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군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군주도 아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왕자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우리 딸, 이번엔 이쪽으로 가볼까?”
쉴드 메이든은 자리에 다시 앉고는 자신의 무릎 위에 딸을 앉혔다.
“내 딸이야. 자, 우리 딸, 여기 엄마가 새로 사귄 친구들 이란다! 이 쪽은 애플잭.”
그녀는 오렌지 색 어스 포니를 가리켰다.
“저 쪽은 레인보우 대시, 그리고 저 쪽은 래리티라고 한단다. 다들 이퀘스트리아 라는 나라에서 온 포니들이야! 오늘 우리에게 엄청난 일을 해줬지.”
어린 포니의 오렌지 색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페가슷숫스다!”
아이는 레인보우 대시를 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대시는 제 가슴을 의기양양하게 두드렸다.
“그리고 날 수 있지! 잘 보라구!”
그녀는 날개를 파닥여 공중으로 몸을 띄운 뒤 자신의 자리 위에서 정지 비행을 선보였다. 망아지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벌렸다. 오렌지 색 눈동자엔 어린아이 특유의 동경어린 호기심이 가득했다.
망아지의 관심은 래리티로 이어졌다.
“언니는, 우니, 우우, 유-니콘!”
흥분에 찬 아이는 더듬대면서도 쉼 없이 재잘댔다.
“엄마, 유-니콘 언니 예쁘다! 엄마가 얘기해준 동화책에 나오는 유-니콘 같아!”
래리티는 눈을 애교스럽게 깜빡였다. 탄력 있는 보랏빛 갈기가 새하얀 발굽에 매만져졌다.
“그렇게 봐주니 너무 고맙구나, 얘야! 너도 정말 귀엽단다!”
그녀는 하이톤으로 까르륵대며 아이에게 웃어보였다.
“네가 본 첫 번째 유니콘이 되어서 영광이야.”
“래리티는 엄마의 갈기를 땋아주었단다.”
쉴드 메이든은 고개를 돌려 딸에게 자신의 갈기를 보여주었다.
“엄마, 엄청 예뻐!” 아이는 꺅꺅대며 대답했다.
“우리 작은 친구 갈기도 엄마처럼 해줄까?” 래리티가 물었다.
회색 망아지는 숨을 헉 들이켰다.
“네! 네! 네! 해죠요!”
아이는 간절한 시선으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제발! 하게 해죠요!”
“그래, 그래.”
쉴드 메이든은 아이를 안고 있던 발굽을 풀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연단에 폴짝 뛰어내린 작은 망아지는 래리티에게 달려가 그녀의 무릎에 뛰어올랐다.
래리티는 아이의 갈기를 매만지며 땋아줄 채비를 했다.
어쩜, 엄마 닮아서 그런가? 갈기 부드러운 것 좀 봐.
“언니 뿔에 소원 빌면 이뤄지는 거 진짜예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물었다.
“음.......”
래리티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이뤄지는 지 안 이뤄지는 지 직접 해보는 게 어떠니?”
“좋아요!”
망아지는 힘차게 대답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동글동글한 얼굴이 집중 때문에 앞으로 구겨졌다.
몇 초 후. 아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탱탱한 볼 살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왔다.
“다 됐어요!”
“잘했어!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단다. 그러면 소원이 안 이루어지거든.”
“안 말할게요!”
따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플잭은 옆자리의 애쉬테일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로, 여서 하룻밤 더 묵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예. 캐도 즈인 오늘 중으로 가야 합니더.”
애쉬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아치백 산악지대까진 아직 더 가야 하지. 쉬머우드 숲까지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고....... 폐하.”
그는 해머 후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에게 식량을 마련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물론 가능하지.”
군주는 흔쾌히 대답했다.
“짐이 직접 명하겠다.”
“그래도 래리티가 하고 있는 게 다 끝나야 갈 수 있겠지.”
대시가 의자에 편히 기대앉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동안 맥주나 좀 마시면 될 것 같은데.”
“안 된다캐도!”
애플잭이 딱 잘라 말했다.
“벌써 오백 미리는 비웠다 아이가!”
“그 반도 안 마셨거든!”
“이 가스나가 벌써 취했나, 짐 뭐라카노? 내 장담컨대, 사실 니 오백 미리보다도 더 마셨다!”
으이구. 시끄럽기는.
래리티는 마법으로 망아지의 갈기를 땋아주며 생각했다. 오렌지 색 어스 포니와 푸른 페가수스는 늘 저렇게 아웅다웅 거리곤 했다. 그것은 새하얀 유니콘에겐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정말.......시끄러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
그로부터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연회는 끝이 났다. 군주가 약속했던 대로 일행은 식량을 제공받았다.
래리티, 애플잭, 레인보우 대시는 테치홀름 얖 들판에 서 있었다. 래리티와 애플잭의 엉덩이에는 그들의 익숙한 안장 가방이 걸려 있었고, 대시는 가죽으로 된 새 안장가방을 한 쌍 제공받았다. 다른 친구들의 것과는 달리, 그녀의 가방은 빵과 당근 그리고 감자 등 식량으로만 채워졌다.
길드데일 측에서는 래리티에게 혼 블레이드를 가질 것을 제안했으나, 래리티는 정중히 거절했다.
일행은 가로로 늘어선 채, 쉴드 메이든과 애쉬테일, 버드 스피크, 샤프 사운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해머 후프는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이미 일행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뒤였다.
“너희 셋이 그리울 거야!”
버드 스피크가 말했다.
“길드데일에서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신나는 경험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
“언젠가 꼭 다시 들릴게.”
대시는 이 약속에 단서를 달았다.
“서둘러야 할 필요 없고,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말야. 그 때는 관광도 좀 시켜줘!”
“사실 코마가 무리만 없으면, 언제든 왕국을 구경할 수 있어.”
샤프 사운드가 말했다.
“일 년 중 대부분은 꽤 평화롭거든.......그래. 코마가 무리만 없으면.”
“아마 폐하께서도 이젠 이퀘스트리아에 대한 대외 정책에 대해 다시 고려해보실 것이다.”
애쉬테일이 덧붙였다.
“분명 더 많은 것들을 바꿔나가시겠지.”
“다들, 잘 지내요!”
래리티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요, 버드 스피크, 샤프 사운드! 작별이군요, 애쉬테일 왕자님. 모두 행운을 빌어요.”
그녀는 흐린구름색 포니에게 다가갔다.
“쉴드 메이든.......”
새하얀 목이 흐린구름색 목을 감쌌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가 해줬던 모든 것들, 절대로 잊지 않을게.”
“나도 마찬가지야, 래리티.”
쉴드 메이든이 답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유니콘이 너라서 정말 기뻐. 언제나 널 생각할거야.”
“언젠가 꼭 돌아올게.”
새하얀 유니콘이 말했다. 푸른 눈동자가 반짝이며 일렁거렸다.
“네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라고, 큐티마크도 갖고, 이름도 갖게 되는 걸 보고 싶어!”
“그 애도 널 잊지 못하겠지.”
“정말 고마워, 쉴드 메이든!”
대시가 쉴드 메이든을 와락 껴안으며 외쳤다.
“너가 우리에게 해준 게 엄청 많다구! 너희한테 뭔가 더 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한테 뭘 더 해준다고?”
샤프 사운드가 되물었다.
“우린 너희 셋한테 이미 충분히 받았는걸!”
쉴드 메이든이 쾌활하게 외쳤다.
“모두 고맙다. 덕분에 모든 게 바뀌었다.” 애쉬테일이 말했다.
“도움이 되어서 기쁘네예.”
애플잭이 말했다. 그녀는 모자를 벗으며 경의를 표했다.
“모두 안녕히, 버드 스피크, 샤프 사운드, 쉴드 메이든.”
초록색 눈동자가 검붉은 색 어스 포니에게 향했다.
“어.......”
애쉬테일은 입을 꾹 다문 채 두 눈만 깜빡였다.
쉴드 메이든과 래리티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무언의 공감대가 둘 사이에 형성되었다. 쉴드메이든은 버드 스피크와 샤프 사운드를 각각 발굽으로 한 번씩 건드렸고, 셋은 다함께 자리를 떠났다.
래리티는 레인보우 대시를 발굽으로 쿡 질렀다.
“이리 오렴, 대시. 먼저 가자. 애플잭이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거야.”
“어? 그냥 다 같이 가면 안 돼?”
대시가 눈치 없이 캐물었다.
“우리가 괜히 먼저 가버리면, 나중에 기다려야 될 수도 있잖아!”
“그렇지, 그렇긴 한데.......어쨌든 지금 가자.”
래리티는 막무가내로 우겨대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이리 와.”
그녀는 대시의 꼬리를 물고 끌었다.
“그치만-”
“우리 먼저 가자니까, 대시!”
래리티는 대시의 무지갯빛 꼬리를 당기며 으르렁댔다.
“으씨, 알겠어, 알겠다구!” 대시가 날개를 파닥이며 투덜댔다.
“안녕, 애쉬테일! 다 고마웠어! 언젠가 다시 보자!”
“나도 그렇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지!”
애쉬테일이 답했다.
“작별이다, 레인보우 대시!”
이어서 그는 새하얀 유니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는 길에 평화와 안녕이 가득하길, 래리티.”
“영광이에요, 왕자 전하.”
래리티는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쉴드 메이든, 잘 지내요, 버드 스피크, 샤프 사운드! 모두들 안녕히!”
애플잭에겐 은은한 미소를 보내며, 래리티는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서쪽으로 발굽을 굴렸다. 그녀의 뒤로 대시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따라붙었다. 쉴드 메이든과 버드 스피크, 샤프 사운드는 테치홀름으로 돌아갔다.
황금빛 들판엔 애플잭과 애쉬테일만이 남았다.
“거.......”
먼저 말문을 연 건 애플잭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말문을 열기만 했다.
“난.......”
애쉬테일도 입을 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두 포니는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한동안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정말 고마웠심더! 전부 다예!”
애플잭이 빽 소리쳤다.
“당신이 없었더라믄 암 것도 할 수 없었을 깁니더!”
“나 역시 고맙다.”
애쉬테일이 말했다.
“너의 용기, 힘, 모두 다. 무엇보다 네가 없었더라면, 이번 계절도 늘 그랬듯이 암울했겠지. 이젠.......진짜 봄이 온 거다. 새로운 희망이 보여.”
“지 생각에, 희망이란 건 늘 있었심더. 중요한 건 그걸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지예.”
“너 없인 볼 수 없었겠지.”
애쉬테일이 즉답했다. 둘은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푸른 눈동자 쪽이 먼저 깜빡였다.
“언젠가 꼭 포니빌을 보고 싶구나.”
“언제든 환영입니더.”
애플잭이 말했다.
“지.......지는예, 당신하고, 꼭 다시 만나고 싶슴더, 꼭, 올 수 있으면 언제든 오셔야 합니더.”
“나도.......널 다시 만나고 싶다.”
애쉬테일은 천천히 대답했다.
“너도 길드데일에 와라. 내 말은, 그, 나중에 한가할 때.”
“노, 노력하겠심더. 그치만, 지가 너무 바빠서예.......”
“해야 할 일이 있는 거겠지.”
검붉은 어스 포니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책임에 붙잡혀 있는 것 같군.”
“그기 나쁜 건 아니지예.”
애플잭은 애쉬테일의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두근대는 통에 제대로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 평범하진 않지만서두예, 여하튼.”
“난.......”
애쉬테일은 다시 뭔가 말을 꺼내려 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플잭은 땅바닥에 시선을 깔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황금빛 들판을 보던 초록빛 눈동자가 검붉은 종아리를 향하고, 자신의.......가죽 보호대?
“아앗!”
애플잭은 제 몸을 다시 살피며 비명을 질렀다.
갑옷! 애쉬테일 머스마네 누이가 입던 갑옷!
“지가 이 갑옷을 아직도 입고 있었네예! 안장 가방 맬 때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디, 그 뒤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심더.”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미안합니데이, 지금 당장 벗-”
애쉬테일은 발굽을 들어올렸다. 애플잭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입고 가라.”
애플잭의 초록색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애쉬테일은 빙긋 웃었다.
“내 누이는.......이제 없다. 인정해야겠지. 누이가 어디 있든, 누이는 네가 그 갑옷을 쓰고 있다는 걸 기뻐할 거다. 게다가, 네게 잘 어울린다.”
그는 변명하듯 황급히 웃음을 지웠다.
“아, 물론 갑옷을 안 입고 있을 때가 안 좋아 보인다는 건 아니다.”
이윽고 그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말이 자꾸 꼬이는 군.”
애플잭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괜찮심더, 그리 말해주시니 기분이 썩 좋네예, 우리 귀염둥이 왕자님.”
“난.......”
또 다시 할 말을 잃은 애쉬테일은, 이번엔 좀 더 솔직하게 굴기로 했다.
“난.......이거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애쉬테일.......”
애플잭은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는.......”
“애-플-잭!”
그 순간, 먼 곳에서 레인보우 대시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꽥꽥 찢어지는 고성이 황금빛 들판을 뒤흔들었다.
“애플잭! 남자친구랑 그만 떠들고 빨리 이리 와!”
애쉬테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애플잭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아, 알았다! 거 꼼짝 말고 있으래이! 지금 간데이!”
그녀는 얼굴만 돌려 검붉은 어스 포니를 바라보았다.
“어.......지는예.......”
또 다시 머뭇대던 애플잭은 고개를 털어냈다. 그리곤 심호흡을 한 뒤 깔끔하게 웃어보였다.
“지는 이제 가야겠심더.”
“물론 가야지.” 애쉬테일이 말했다.
애플잭은 한 쪽 앞발굽을 들어올렸다.
“안녕히, 애쉬테일.”
애쉬테일 역시 한 쪽 앞발굽을 들어 올려 그녀의 앞발굽에 맞댔다.
“작별이다, 포니빌의 애플잭.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그들의 발굽은 꽤 오랫동안 맞닿아 있었다.
먼저 발굽을 떨어뜨린 건 애플잭이었다.
“안녕, 내 귀염둥이.”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하곤 등을 돌려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내 멈추곤, 뒤를 흘깃 바라보았다.
검붉은 어스 포니의 만면에 그려진 따스한 웃음이 초록빛 눈동자에 담겼다. 석양빛에 물들어 밝게 빛나는 그 웃음은, 이제껏 애플잭이 그에게서 보아온 어떤 웃음보다도 진실해 보였다.
마주 웃어 보이며, 애플잭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향해 지면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그녀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향해 지면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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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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