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A Day for Spike and Twilight
Written by Jetfire2012
Translated by BlackS
“-그러니까, 이 물품들 모두 오늘 날이 저물기 전까지 배달해줬으면 좋겠어. 시간이 촉박한 건 알아.......음, 그리고 오늘이 네 휴무일인 것도 알고.......하지만 날아가는 것보다 캔틀롯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무엇보다, 넌 정말 빠르구.......”
“머핀!”
“.......태양궁까지 가는 길 알고 있는 거 맞지? 아는 척 한 거 아니지, 그치?”
“진실은 언제나 하나 뿐!”
바이올렛 색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그에 맞서 황금빛의 눈동자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빙빙 돌았다. 그리곤 천천히 끔벅거렸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쫌, 더피이-꼭 오늘 내로 배송되어야 하는 것들이란 말야. 정말 할 수 있는 거 맞지?”
더피 후브즈는 오른쪽 앞발굽을 멋들어지게 들어 올리며 경례를 했다. 나사 풀린 듯 느슨하던 표정이 제법 진지하게 변했다.
“비가 오든, 진눈깨비가 오든, 눈이 오든, 설령 어둠마저 잠드는 밤이 되더라도!”
따로 놀던 시선이 한순간이나마 의뢰자에게 모였다.
“해내보이겠습니다, 스파클 양!”
기다리던 확답을 받아낸 라벤더빛 유니콘은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더피. 돌아오면 바나나-넛Nut 머핀 여섯 개가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물론, 추가요금도 지불할게.”
회색 페가수스는 만면에 친근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 비껴 멘 편지 가방을 한 번 두드리고는, 힘차게 날개를 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금발의 갈기와 꼬리가 봄바람에 휘날렸다. 회색 둔부에 선명하게 그려진 비눗방울이 금빛 잔물결 사이로 돋보였다.
새파란 하늘색을 가르며, 회색 궤적은 에쿠아Equa 산의 능선 쪽으로 향했다.
트와일라잇의 시선은 더피보다 한 발굽 앞서 에쿠아 산에 닿았다. 그녀는 그 드높은 산의 절벽에 둥지처럼 자리 잡은 백금의 첨탑의 도시 : 위대한 광휘의 캔틀롯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여신이 기거하는 도시답게, 캔틀롯은 아침의 첫 햇살에 유독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였다.
포니빌 경계 바깥의 이 장소는 트와일라잇이 자주 왕래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이 장소에 발굽을 들였던 건 쟁기 포니의 날Plowpony’s Day 행사 때였다. 특별히 이 장소에 악감정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이 곳은 캔틀롯을 감상하기에 딱 알맞은 소중한 장소였다.
먼발치의 풍경이긴 했지만, 수도의 풍경은 여전히 장관이었다.
더피가 정말 빨라야 할 텐데.
트와일라잇은 포니빌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며 생각했다. 그녀가 보낸 물품은 어떤 두 생물체를 위한 선물이었다.
사실, 어제 도착했었어야 하는 거긴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그들이 하루 늦은 선물에 대해 개의치 않아하기를 바라며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볍게 흔들리는 둔부에 맞춰, 밤하늘 같은 보라색의 꼬리가 경쾌하게 춤을 추었다. 꼬리털에 세로로 몇 줄 그어져 있는 핫핑크 색의 줄무늬가 진한 궤적을 남겼다. 같은 패턴의 색채를 가진 갈기 역시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좌우로 흔들렸다. 봄바람에 너울대는 야생화 같은 모습이었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늦봄의 어느 날이었다.
이 쾌청한 늦봄의 날씨를 만든 데는 포니빌의 기상 포니, 레인보우 대시의 공이 컸다. 본래 게으른 페가수스의 전형을 보여주던 그녀였지만, 최근 몇 달간은 조금은 다른 모습들을 내보였다. 비가 와야 할 때 비를 뿌렸고, 눈이 와야 할 때 눈을 뿌렸다. 그 외에는 밝고 청명한 하늘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의를 다했다. 제멋대로 날씨가 바뀌는 에버프리 숲이 근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대시의 업적은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대시가 만든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트와일라잇은 느긋한 상념에 빠졌다.
이제.......뭘 한담? 내가 바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니, 스파이크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테고.......
그녀는 휴일을 즐기고자 하는 설레는 충동을 느꼈다.
다른 애들은 뭐하고 있나 가서 봐야겠다!
트와일라잇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로 가는 길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
“아고마, 미안케 됐다, 귀염둥아.”
각양각색의 포니들로 이루어진 혼란스런 마파(馬波) 한가운데서, 애플잭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근디 니도 보믄 알겠지만은! 이짝도 사정이 영 녹록치가 않데이! 울 애플 가문 친척들 델꼬 해야 할 일이 있다 안카나! 그기다, 오늘은 이래저래 일정이 많데이.”
“애플잭, 축하 행사는, 어제로 끝난 거, 아니었어!?”
트와일라잇도 마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질주해오는 두 수말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아직도 할 일이 남은 거야?”
“어, 그런 셈이제. 스미스 할매 식사도 차려줘야 허고, 글고-마! 캔디 애플Candy Apple! 니는 헛간에서 좀 나오라꼬! 거서 얼타고 있지 말그래이!-어, 어쨌든, 어데까지 했드라, 그래, 스미스 할매 식사도 차려줘야 허고-”
“그게 다 어제 끝난 일들 아니었어?”
“아녀.”
애플잭은 고개를 외로 꼬며 대답했다.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에서 고통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어제.......어젠, 거, 이래저래 왔다 갔다 하다보이 시간을 좀 썼었데이.”
형형히 빛나던 바이올렛 색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랬구나. 그럼 할 수 없지. 방해해서 미안.”
“미안할 거 읎다, 트와이. 오히려 내가 미안허제. 할매 식사 준비 땜에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니께 말여. 내일은 어떻겠노? 내일이라믄 하루죙일 떠들면서 같이 걸을 수 있을 끼다.”
“응, 그거 좋네.”
트와일라잇은 몸을 돌려 스위트 애플 에이커를 뒤로했다.
“그럼 내일 봐, 애플잭!”
-
“레인보우 대시!”
트와일라잇은 무지갯빛 폭포가 흐르는 하늘의 구름집을 향해 소리쳤다.
“레인보우 대시, 거기 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니콘의 뿔이 반짝이고, 명멸하는 마력이 보랏빛 발굽을 감쌌다.
구름 걷기 주문은 걸었으니, 이제.......
트와일라잇은 구름집의 구름 마당의 생김새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보랏빛 뿔에서 마력이 폭발하며 번쩍였다.
다음 순간, 트와일라잇은 하얗고 푹신거리는 구름 위에 도착해 있었다. 보라색 발굽이 새하얀 구름 위를 총총대며 가로질렀다.
대시의 집 앞에 도착한 트와일라잇이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쪽지 한 장이 그녀의 발굽을 붙잡았다. 그것은 작은 번개로 문에 매달린 채 고정되어 있었다.
클라우즈 데일 감.
화요일에 돌아옴.
트와일라잇은 한숨을 내쉬었다.
-
“어머, 미안하구나, 얘야.”
바쁜 와중에도, 케이크 부인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십여 개의 컵케이크들을 오븐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핑키 파이는 지금 포니빌에 없단다. 아마 내일 한밤중이나 되어야 돌아올 거야.”
“괜찮아요, 케이크 부인.”
-라고 태연스레 말하긴 했지만, 그녀의 눈엔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드러났다.
“같이 놀 친구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
잠시 후, 트와일라잇은 축 쳐진 걸음걸이로 카루셀 부티크를 나서고 있었다. 문 앞에 붙은 메모장을 통해, 부티크의 여주인과 그 여동생이 가족들과 함께 후핑턴Hoofington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이었다. 또한 메모에 따르면, 그들은 월요일 한밤중에나 돌아올 것이었다.
-
라벤더빛 유니콘은 에버프리 숲으로 향하는 마을길을 달렸다.
대로 중간 즈음에서, 그녀는 북쪽으로 빠지는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길의 끝에는 나무들과 어우러지며 지어진, 사랑스런 연못을 끼고 있는 작은 오두막이 있을 터였다.
한참을 내달린 후, 그녀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찾고 있던 포니와 단번에 맞닥뜨렸다. 그녀가 찾고 있던 포니 : 연한 핑크색 갈기와 꼬리를 가진 샛노란 색의 페가수스는 목재 현관문을 꼼꼼히 잠그고 있었다. 그녀의 양 쪽 둔부에는 헤센hessian=burlap 제의 안장가방 한 쌍이 걸려 있었다.
“어머.”
기척을 느낀 페가수스는 다가오는 유니콘에게 몸을 돌렸다.
“안녕, 트와일라잇.”
“안녕, 플러터샤이. 뭐하고 있었어?”
“어, 음. 에버프리 숲에 가려고. 그.......관찰해야 할 동물들이 있거든.”
“그래? 혹시 같이 갈 포니는 필요 없고?”
트와일라잇은 조금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선명한 의도를 내비쳤다.
“다들 바빠 보이더라. 일정이 있거나, 아님 포니빌 밖으로 나갔거나.......그래서 혹시나 해서 말인데.......”
터키옥 색 눈동자가 두어 번 깜빡거렸다. 플러터샤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트와일라잇-너랑 같이 동물 관찰을 하는 게 싫다는 건 아닌데, 그, 이번 관찰은 꼭 나 혼자서 해야 하는 거라서 말야.”
“정말로?”
“정말로.”
플러터샤이는 전에 없이 고집스럽게 굴었다.
“그렇구나.”
트와일라잇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얼마나 걸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하지만 기다려주지 않아도 돼. 분명 나 말고도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낼 다른 포니나, 아니면 다른 생물체가 있을 거야.......그치?”
플러터샤이는 상냥한 웃음을 띄웠다.
“응, 그치.”
라벤더빛 유니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알겠어, 플러터샤이. 관찰 잘하고.......다음엔 볼 수 있는 거지?”
“물론이지.”
플러터샤이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트와일라잇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큰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난 내 역할을 한 거야.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로! 게다가, 다 좋은 의미로 한 일이니까!
샛노란 색의 페가수스는 날개를 파닥대며 날아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오두막집 상공을 가로질러, 나무들이 우거진 숲의 서쪽으로 향했다.
어쨌든, 그녀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살펴봐야 할 동물이 있다는 건 분명 사실이었다.
-
불그스름한 마력이 도서관 문고리를 돌렸다. 열린 문으로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털레털레 걸어 들어왔다. 시무룩한 얼굴과 무기력한 걸음걸이가 그녀의 감정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본디 그녀가 바랬던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 하나 : 도서관에 홀로 앉아 책들이나 파며 사색에 잠기는 것뿐이었다.
그래, 독서 좋지. 하지만 그런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은 줄여보려고 포니빌에 온 건데.......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조심스레 자신의 충직한 조수를 불렀다.
“어서 와, 트와일라잇!”
스파이크는 이동식 사다리의 제일 꼭대기에 앉아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책을 붙박이 책장 제일 위 칸에 꽂아 넣고는, 천천히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도서관을 좀 정리하고 있었어.”
트와일라잇은 주변을 슥 돌아보았다. 도서관은 대체로 정리정돈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티 하나 없이 말끔해 보였다.
“좀? 무슨 소리야, 스파이크. 대청소라도 한 것처럼 깨끗한데. 고마워. 힘들었겠다.”
“에이, 뭘.”
스파이크는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었다. 양 쪽으로 당겨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빼곡히 드러났다.
“어쨌든, 여기서 뭐 해? 소포 보내고 나면 시가지에서 놀다 올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래서 다른 애들은 뭣들 하고 있나 보러 갔었거든.”
트와일라잇은 다시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다들 바쁘거나 포니빌 밖으로 나갔더라고. 하긴, 휴일 바로 다음 날에 또 놀 수 있을 정도로 일정이 비어 있는 포니가 몇이나 있겠어.”
쫑긋 서있던 라벤더 빛 귀가 축 쳐졌다.
스파이크는 제 볼따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트와일라잇!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응? 뭔데?”
트와일라잇의 시선을 받으며, 스파이크는 등허리에 손을 올렸다. 작고 둥그런 배가 의기양양하게 튀어나왔다.
“그건.......”
그는 은근슬쩍 마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요새 말야, 우리 둘이서만 놀러나갔던 적이 통 없지 않았어? 네 친구들이 다들 바쁘다면.......”
“아, 스파이크!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라벤더 빛 유니콘은 탄성을 내뱉었다.
스파이크의 말이 맞아. 마지막으로 스파이크랑 둘이 놀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걸!
그녀는 죄책감마저 느꼈다.
“네 말이 맞아, 스파이크! 너도 알지? 너도 내 친구잖아!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주 좋은 선택이야!”
“정말? 그렇다면야 나도 좋지!”
스파이크는 눈에 띄게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들뜬 눈빛으로 트와일라잇을 바라보았다.
“그럼.......우리 뭐할까?”
트와일라잇은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걸. 스파이크. 너는 뭘 하고 싶은데?”
“어디 보자, 이제 곧 점심 먹을 시간이잖아.”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트와일라잇의 시간 감각을 일깨웠다.
“같이 피크닉 가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이야!”
“조금만 기다려. 짐도 거의 다 싸놨으니까!”
“그거 정말.......응? 정말?”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갸웃대며 되물었다. 스파이크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괜히 손사래를 쳤다.
“별 것 아냐. 곧 점심 먹을 시간이니까, 음식 준비는 해놨다는 거지.”
“아, 그래? 그거 잘 됐다!”
트와일라잇은 곧장 의문을 털어내곤 제자리에서 신나게 발굽을 굴렸다.
“갈만한 곳은 벌써 생각해뒀어. 내 실험실에서 몇 가지 장비들을 가져올 테니까, 좀만 기다려줄래? 피크닉을 하면서 연구도 같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치유 마력을 가진 식물들에 대한 연구야? 나도 도와줄게.”
“그래주면 정말 고맙지, 스파이크.”
-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스파이크와 트와일라잇은 포니빌 서쪽 경계 밖의 풀로 뒤덮인 언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종종걸음으로 트와일라잇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의 짧은 팔에는 피크닉용 바구니가 야무지게 걸려 있었다.
하늘을 살피던 트와일라잇은, 오늘 날씨가 피크닉에 더 없이 완벽하단 사실을 새삼스레 느꼈다. 비 예보도 없었고, 햇살은 적당히 따스했으며,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유니콘과 작은 드래곤은 늙은 오크나무가 자라 있는 언덕의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나무줄기로부터 튼실한 나뭇가지들이 넓게 자라나 있었고, 그 사이를 빼곡히 채운 싱싱한 나뭇잎들은 주변의 공간에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다.
라벤더빛 유니콘은 조수에게 몸을 돌렸다.
“내가 말한 데가 여기야. 어때?”
“너무 좋다!”
스파이크는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기분 좋게 대답했다. 그는 바구니를 열고 내용물을 뒤적였다.
“식사로는 페튜니아 샌드위치petunia sandwich랑 서머 샐러드summer salad를 준비해봤어.”
트와일라잇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서머 샐러드? 지금은 봄이잖아? 서머 샐러드를 어떻게 준비한 거야?”
“운이 좋았어. 시장에서 딸기를 좀 구했거든.”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나무 뚜껑으로 덮인 커다란 나무 용기를 꺼내며 말했다.
“게다가 신선한 페타feta 치즈도 같이 팔고 있더라고. 그래서 둘 다 손에 넣을 수 있었지.”
스파이크는 바구니에서 머리를 빼내며 문득 서쪽을 바라보았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 사이에 깃든 생생한 어둠이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조금 놀란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나저나, 우리 에버프리 숲에 너무 가까이 온 거 아냐?”
“다 이유가 있어.”
트와일라잇은 체크무늬 돗자리를 마법으로 꺼내 풀밭 위에 펼쳤다.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역시 네 도움이 꼭 필요하겠더라고. 내가 아팠을 때 기억나지? 그 때 제코라가 널 장난꽃Poison joke 가져오라고 에버프리 숲으로 보냈었잖아.”
“그 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은 나.”
스파이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트와일라잇이 오롯이 홀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때의 일들이 반사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쨌든, 그 때 장난꽃의 독은 너한텐 효과가 없었잖아, 그치?”
“그랬지. 애초에 그 정도 독이 내 비늘을 뚫고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좀 더 가져다 줄 수 있지?”
트와일라잇은 종이에 포장되어 있는 자신의 샌드위치를 마법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 연구를 위해 장난꽃에 대해 공부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좀 모험일 것 같더라구. 저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헷, 물론이지. 그래도 난 한 번쯤은 트와일라잇 플로플Flopple을 다시 만나보고 싶은데. 넌 어때?”
“어우, 난 됐어.”
라벤더 빛 유니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발굽사래를 쳤다. 그녀는 종이에 포장된 다른 음식 꾸러미를 바구니에서 꺼내 올렸다.
“이건 네 거야?”
“이-엽!”
스파이크는 공중에서 종이 꾸러미를 받아들고 포장지를 풀었다. 그러자 안에 싸여있던 바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위를 부수어 그 단면을 트와일라잇에게 들이밀었다. 거기엔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수정이 있었다.
“지난번에 래리티랑 보석을 찾으러 갔을 때 찾은 정동석geode이야! 오늘 같은 날에 먹으려고 두고두고 아끼고 있었지.”
날카로운 혀가 입술을 핥고 지나갔다.
“음냠냠냠, 포니들의 음식에 비유하자면, 크림으로 가득찬 페스츄리 같달까.......”
“드래곤한텐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겠지, 분명.”
트와일라잇은 뱃속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좋아, 그럼 슬슬 먹자! 더 이상 못 기다리겠어. 정말 먹음직스럽게 생겼잖아.”
그녀는 발굽 사이에 샌드위치를 끼워들고 한 입 거하게 베어 물었다. 스파이크는 입 안 가득 수정을 채워 넣었다.
“트와일라잇.”
몇 분 후, 스파이크가 물었다.
“갑자기 왜 장난꽃을 연구해보려고 하는 거야?”
“장난꽃은 마(魔)관다발 식물magi-vascular plant의 일종이니까. 베네보레Beneviolet 기억나지?”
“잊을 리가 없지. 네 생명을 구한 꽃이잖아. 말 그대로, 생명을!”
“맞아. 나도 절대 못 잊어.”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없었으면 지금 난 여기 없었겠지.”
스파이크의 얼굴에 고통스런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딴청을 피웠다.
“뿔 부패증을 앓고 난 뒤부터, 베네보레의 메커니즘이 궁금해지더라고. 그 가공할만한 치유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지. [초자연적 자연Super Naturals]에도 나와 있듯이, 베네보레는 장난꽃처럼 마관다발 식물로 분류되거든. 마관다발류에 속하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아.”
“마관-뭐?”
“마관다발류.”
트와일라잇은 조금 빠르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했던 말했다.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학구열에 들뜨곤 했다.
안장 가방 중 하나가 열리고, 두터운 갈색 책 한 권이 염동력에 들려 나왔다. 그녀는 표시해두었던 페이지를 펼쳐 스파이크에게 보여주었다. 페이지 전체에 걸쳐 식물의 해부도가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의 식물은 내부에 관다발 기관계라는 순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뜻이냐면,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과 영양소를 흡수하고, 그것들을 줄기나 잎, 꽃 등 모든 생체 기관에 공급하는 과정을 말하는 거야.”
트와일라잇은 페이지를 몇 장 넘겼다. 그녀는 어떤 삽화가 그려져 있는 페이지에서 발굽을 멈췄다. 스파이크가 보기엔, 파란색으로 강조된 몇 개의 줄 같은 것들이 식물을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물지만, 몇몇 소수의 식물종들은 부수적인 관다발 기관계도 갖고 있어. 그 2차 기관은 평상시엔 별 역할 없이 기존의 관다발 기관계 주변에 엮여 있을 뿐이야.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기존의 관다발 기관계가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이 때가 바로 2차 기관의 존재가 빛을 발할 때지. 2차 기관은 특수한 에너지 : 마력을 운용할 수 있거든. 이 형태는 유니콘들의 마력 회로와 유사한 부분이 많아. 이 메커니즘은 세포 내의 이온화된 전달체로 인해.......”
스파이크의 시선이 눈에 띄게 멍해졌다. 트와일라잇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유니콘처럼 마력을 흡수하고 방출한단 뜻이야. 베네보레도 여기에 속하는 식물이지. 최근에 알아낸 바로는, 장난꽃도 여기에 속해. 베네보레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은 아니니까, 대신에 장난꽃을 연구해보기로 한 거지. 둘 다 근본적인 구조는 비슷하니까. 적어도 둘 다 마관다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말야.”
“으응, 그거 멋지네. 내 말은, 그, 멋진 것 같네.”
작은 드래곤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그래서, 그렇게 알아낸 것들로 뭘 할 건데?”
“적어두겠지. 아마.”
트와일라잇은 산뜻하게 대답했다.
“만약 마관다발류 식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마력을 저장하고 운용하는 지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들을 이용해서 약을 조제할 수도 있을 거야. 만약 그런 식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뭐, 그런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나한텐 즐거운 일이 될 거야.”
스파이크는 결국 웃어버리고 말았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배움과, 그렇게 얻은 즐거움을 설파하고 다니는 포니들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보라색 이종족(異種族)이 보기에, 트와일라잇은 그 중에서도 진짜배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트와일라잇의 학구적인 면이 나한테도 좀 전염된 것 같아.
스파이크 역시 트와일라잇과 마찬가지로, 뭔가 흥미롭고 멋진 것들을 찾고 싶을 땐 하던 일마저 팽개친 채 백과사전이나 학술 논문을 뒤지곤 했다.
특별히 이유는 없지. 그냥.......어릴 때부터 보며 자란 게 트와일라잇의 그런 모습들 이었으니까. 트와일라잇은 새로운 무언가를 늘 즐기며 배울 줄 아는 포니였어.
스파이크는 트와일라잇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백과사전의 지식을 설명해주는 어린 보라색 유니콘. 그 옆에는 이제 막 꼬리 빠는 습관을 고친 보라색 아기 드래곤이.......
스파이크는 작게 키득거렸다. 지금은 척척박사인 트와일라잇도 당시엔 어렸기에, 가끔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애써 더듬대며 읽어주곤 했던 것이다.
그는 트와일라잇처럼 학교에 다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늘 스파이크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녀의 노력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한편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제 몫의 샌드위치를 다 해치웠다. 그녀는 샌드위치의 마지막 한 입을 천천히 우물대며 스파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만끽하고 있었다. 비교하자면, 다른 조화의 원소 수호자인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그 어떤 걱정거리라도 이 소중한 시간 앞에서는 사소한 불씨가 되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있어 스파이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스파이크가 태어나는 순간의 모습을 봤을 뿐 아니라, 스파이크의 알을 부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포니라는 책임도 갖고 있었다. 오랜 세월 휴면 상태에 있던 알을 깨운 것이 그녀의 마력 아니었던가.
어린 유니콘과 어린 드래곤. 마침 몸 색깔마저 같은 두 생물체가 아장거리며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셀레스티아 공주는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 황혼Twilight에 멋들어진 그림자가 생겼구나!
둘은 지금도 당시와 별반 다를 거 없이 붙어 다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이는 문득문득 트와일라잇을 괴롭히는 걱정거리였다. 포니와 드래곤. 둘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자신이 이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고 여겼다.
스파이크는 늘 내 곁에 있어줬어. 불평불만도 거의 없이, 늘 내 편이 되어줬지. 난.......혹시 그걸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스파이크한테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한 적이 있나?
“저기, 스파이크?”
“엉?”
스파이크는 마지막 남은 정동석을 한 입에 넣고, 볼따구를 우물대며 트와일라잇에게 고개를 돌렸다.
트와일라잇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부드러운 소음을 냈다.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그 소리는 근처의 거목(巨木)에 부딪혀 반향을 일으켰다.
“VmmmmRRrrraaaAAAeeeVVVVvvvvVVVV,”
그녀는 이 뒤로도 몇 가지 소리를 더 냈다. 그러자 스파이크는 신을 내며 비슷한 소리로 화답했다.
“TTTTzzzzzssssAAAAAARrrrr,”
거기에 트와일라잇이 또 소리를 얹었다. 그러자 둘의 소리는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 선명하게 퍼져나갔다.
“<드라켄 텅Drakentongue은 오랜만에 해보는데, 어땠어? 연습을 더 해야 되겠지?>”
트와일라잇의 노래에 스파이크가 마주 노래했다.
“<아니. 잘하는 것 같은데. 아니, 사실, 잘 모르겠어. 애초에 이것도 네가 가르쳐준 거잖아. 내가 어떻게 널 평가할 수 있겠어?>”
트와일라잇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이건 드래곤의 토착어잖아. 네 모국어라구. 좀 다르게 들리거나 하진 않아?”>
“<그것도 많이 들어봤을 때나 해당되는 얘기지. 난 드라켄 텅을 너한테서밖에 들어본 적이 없어.>”
스파이크가 노래했다.
“<드라켄 텅을 더 능숙하게 구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내 모국어는 이퀘스트리아 어라고 생각해.>”
세로로 찢어진 초록색 동공이 불안스레 흔들렸다.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드라켄 텅을 더 잘 말하게 될 수 없는 걸까?>”
트와일라잇은 상냥한 시선으로 스파이크를 바라보았다.
“<네 드라켄 텅은 충분히 능숙해.>”
드래곤이란 대체로 폭력적이고, 무례하리만치 직설적이며, 하나 같이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생물체들이었다. 게다가 자만심에 사로잡혀있어서, 자신들보다 작은 생물체는 업신여기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란 사실이 쉽게 잊혀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종족적인 특성들 때문이었다.
다른 여러 언어들-이를테면 이퀘스트리아 어Equestrian, 라우틸 어Laewtil, 제브라히 어Zebrahi, 롭 텅Lopetongue 등-은 표음 언어였다. 이 언어들은 입 모양을 다르게 함으로써 여러 소리들을 구사했다. 수없이 많은 여러 방식의 복잡한 소리들로 시제를 표현했고, 나-너-그것 과 같은 지시 대명사와 그 외에 여러 표현들도 구사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드라켄 텅은 성조 언어tonal language였다. 여타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드라켄 텅엔 분명한 발음을 통해 구사되는 ‘단어’가 적었다. 이는 대화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정보들이 음의 높낮이나 음조를 통해 상호 교환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단어라 해도, 드라켄 텅에서는 그 단어가 어떤 식으로 발음되는가에 따라 열 가지가 넘는 뜻을 갖게 될 수도 있었다.
드래곤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모든 단어나 문장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운율들을 얹음으로서, 드라켄 텅의 음악적인 측면이 더욱 돋보이게 했다. 또한 전체적인 표현에 음조를 덧씌움으로서 평상시의 기분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드라켄 텅은 ‘노래’되는 언어였다.
어느 날 밤엔가, 셀레스티아 공주가 트와일라잇에게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다. 드래곤들의 노래가 맑게 울려 퍼지는 카르코사Carcosa의 산들에 대해.
“<앞으론 너희들이 노래할 때 좀 더 끼어들어야겠어.>”
스파이크는 이전보다 느린 어조로 노래했다. 이는 실망감, 낙심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노래하는 건 그다지 많이 연습하질 않았으니까 말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잘하고 있어,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웃으며 노래했다.
“<네 저음은 나보다 훨씬 나은 걸.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거든.>”
사실, 이 둘 모두 원형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의 드라켄 텅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리지널 드라켄 텅의 구사에 필요한 음역대를 모두 소화하기엔 이들의 폐와 성대가 미성숙하거나 작았던 탓이었다. 수천 년의 지혜와 권능에 걸맞는 기골을 가진 셀레스티아 공주도 마법의 도움 없이는 드라켄 텅을 원어 그대로 사용하지는 못했다.
“언젠간 그렇게 될 거야,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다시 이퀘스트리아 어로 말했다.
“언젠가 같이 카르코사에 가보자. 약속할게.”
“에이, 그럴 필요 없어, 트와일라잇.”
작은 보라색 드래곤이 말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이퀘스트리아야. 난 여기가 좋다구.”
“하지만 동족하고 같이 지내보고 싶지는 않아? 한 번 가보기라도 하는 건?”
“나한테 그런 존재는 너야, 트와일라잇.”
스파이크는 진지하게 트와일라잇을 바라보았다.
“넌.......”
그의 시선이 불안정해졌다.
“날 부화시킨 게 너잖아. 지금까지 날 쭉 지켜봐온 것도 너고.”
“그래도 포니들 사이에서 평생을 보낼 순 없어, 스파이크.”
“적어도 지금까지는 포니들 사이에서 평생을 살아왔지. 난 거기에 대해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트와일라잇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일단.......그, 네가 챙겨온 샐러드부터 먹자.”
그녀는 짐짓 평온하게 화제를 돌렸다.
“좋은 생각이야.”
스파이크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나무 용기의 뚜껑을 열고 돗자리 위에 먹기 좋게 두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둘은 식사를 이어나갔다.
-
피크닉했던 자리를 정리한 뒤, 라벤더 색 유니콘과 작은 드래곤은 언덕을 내려가 에버프리 숲으로 향했다.
찰랑거리는 보라색 꼬리털을 뒤쫓으며, 스파이크는 자신이 소풍 분위기를 망친 게 아니기를 바랬다.
걷는 내내, 트와일라잇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숲의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녀의 기분은 차차 나아졌다. 밝아진 기분만큼이나 밝은 불빛을 뿔끝에 단 채, 그녀는 장난꽃 군락지를 찾아 어두운 숲 속을 헤집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한 데 모여 자라는 밝은 푸른색의 식물들을 발견했다.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를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넌 장난꽃의 독에 영향을 받지 않는댔지? 가서 한 송이만 좀 따다 줘.”
“맡겨 줘!”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은 뒤, 스파이크는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장난꽃 군락지로 향했다.
그는 이파리가 제대로 자라난 장난꽃을 찾기 위해 잠시 군락지를 살폈다. 걔 중에 유독 단정하게 자란 밝은 색의 잔가지를 가진 장난꽃이 보였다. 비늘 달린 손이 그 식물을 조심스레 땅에서 뽑아들었다.
식물의 마법이 비늘을 자극하는 느낌이,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다.
“여기 있어, 트와일라잇!”
그는 자랑스레 외치며 군락지를 빠져나왔다.
“잠시 기다려,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몇 발굽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내 뿔이 또 우스운 꼴이 되게 할 순 없거든.”
그녀는 소풍용 가방 안에서 작은 가방을 마법으로 꺼내 들었다.
“여기다 넣어 줘.”
스파이크는 그 말에 따랐다.
“자, 이제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이 표본을 낱낱이 해부해볼 일만 남았어!”
“더 도와줄 일 있을까?”
스파이크가 물었다.
“아마, 그럴 걸?”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 거야?”
“필요하다면야, 당연하지!”
“진짜로?”
트와일라잇은 머뭇대며 웅얼댔다.
“그.......좀 지루한 작업이 될 텐데.......”
“트와일라잇. 오늘 난 너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지루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구.”
스파이크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트와일라잇의 눈을 응시했다.
저런 식으로 쳐다보면.......
트와일라잇은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그럼 한 번 해보자. 해가 지기 전까......”
이런, 해가 졌을 리가. 이제 막 오후가 됐을 텐데.
그녀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내 말은, 우린 할 일이 많아! 별로 재밌어 보이지 않는 일도 해야 할 수도 있어, 스파이크!”
스파이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알겠다구, 트와이. 가자. 가서 과학 함 해봐야지.”
작은 드래곤은 종종걸음으로 용케도 트와일라잇을 앞질러갔다.
초록색 돌기가 달린 작은 보라색 등을 쫓으며, 트와일라잇은 오늘 하루 동안 스파이크에게서 보인 행동들에 대해 생각했다.
왠지, 오늘 스파이크의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둘의 편안한 관계는 년 단위로 이어져온 것이었다. 스파이크가 오롯이 트와일라잇의 돌봄 속에서 자라야했던 시간이나, 트와일라잇이 연구에 매진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아 물론, 내가 뿔 부패증 때문에 죽다 살아난 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니까. 그 뒤부터 스파이크가 이상하게 굴긴 했지. 그래도 이제 완전 말짱해졌으니까, 다시 전처럼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당장 오늘만 해도, 아니, 최소한 점심때부터, 어쩐지 스파이크가 묘하게 나를.......섬세하게 대접해주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그녀가 보기에, 스파이크는 자신과 대화할 때마다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세심하게 얼굴을 살피며,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반응이 돌아올 지 읽어내려는 듯이.......
보고 있자니 귀엽긴 하지만.......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 나한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녀의 경험상, 스파이크는 비밀을 갖고 있을 때 유난히 산만하게 행동했다.
나한텐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걸 스파이크도 알 거야. 나쁜 소식은 아니어야 할 텐데.
아울리셔스와의 사건을 계기로,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에게서 다시는 자신(트와일라잇)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었다.
-
도서관에 도착한 스파이크는 열려있는 문으로 걸어 들어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그 때, 불그스름한 마력이 그의 손에 들려있던 소풍용 바구니를 감싸들었다.
“이건 내가 처리할게,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넌 먼저 실험실에 내려가서 시험판exam slab 좀 준비해줘.”
스파이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디뎠다. 장난꽃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은 여전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소풍용 바구니를 정리한 트와일라잇이 실험실로 내려와 보니, 실험 준비가 완벽히 끝마쳐져 있었다. 그녀의 현미경은 바로 사용될 수 있는 상태로 놓여 있었고, 장난꽃은 편평한 돌판 위에 잘 펴져 있었다. 그 양 옆에는 메스와 캘리퍼, 핀들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금속 뼈대에 달린 커다란 돋보기가 탁자 위에 걸려 있었고, 그 바로 위쪽엔 밝은 반딧불 조명 기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고마워,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근처에 의젓하게 서 있는 스파이크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에 안 있어도 돼. 올라가서 좀 놀아.”
“말했잖아. 여기에 있고 싶다고.”
스파이크는 어쩐지 걱정하는 것 같은,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 내 말은, 내가 여기에 있는 걸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 말이지.”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크, 넌 언제나 환영이야. 그냥 네가 지루해 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
“지루해 할 리가. 난 네가 여기서 연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늘 보고 싶었거든.”
“그럼 여기 있는 고글을 써.”
트와일라잇은 핀 근처에 놓여 있던 고글 두 쌍을 마법으로 집어 올렸다. 그리곤 그 중 한 쌍은 자신의 얼굴에, 다른 한 쌍은 스파이크의 얼굴에 씌웠다. 스파이크는 옆에 있던 작은 의자를 집어 트와일라잇의 옆에 앉았다.
트와일라잇은 석판 위에 놓인 장난꽃에 시선을 집중하며 몸을 일으켰다. 메스 하나가 그녀의 마력에 감싸인 채 떠올랐다.
“자, 우린 이제 줄기 바로 아랫부분을 절개해 관다발 조직vascular tissue을 노출시킬 거야. 여기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난 마관다발류 식물이 어떤 식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 지에 대해선 정확하게는 모르거든. 게다가 잘못해서 마력을 다루는 2차 기관까지 훼손해 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우린 기본 조직基本組織ground tissue 바로 앞까지 절개를-”
“기본 조직? 그게 뭔데?”
“관다발 조직과 줄기의 외부 표면을 나누는 조직이야. 줄기의 가장 바깥 면은 진피 조직dermal tissue라고 하는데, 동물들의 피부 같은 역할을 해. 네 경우엔 비늘이겠지. 그 안쪽에 있는 기본 조직은, 식물의 형태를 지탱하는데 도움을 줘. 장난꽃도 그렇지만, 관다발 조직은 대체로 식물 줄기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지나가거든. 이런 구조는 속髓pith이라고 하는 망 체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눈을 가운데로 좁히며, 트와일라잇은 메스로 조심스레 장난꽃의 줄기를 절개했다. 그녀는 두 개의 핀을 자신의 양 옆에 떠 있게 둔 다음, 줄기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열리자 벌어진 양 쪽에 핀을 박아 고정시켰다.
“보아하니, 2차 기관이 기본 조직에까지 퍼져 있는 것 같아.”
그녀는 몸을 장난꽃 쪽으로 기울였다. 뿔에서 얼얼함이 느껴졌다.
“이 푸른색의 ‘스트리에이티드striated’ 한 표면에 마력을 좀 불어넣어 볼 거야.”
근처에 있던 노란 깃펜이 날아오르더니, 책상에 고정되어 있는 잉크통에 두어 번 끝부분을 적셨다. 그리곤 비어 있는 실험 노트 위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스트리에이티드’ 하다는 게 뭐야?”
“음.......줄무늬가 있다고 해야 하나, 주름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와서 한 번 볼래?”
트와일라잇은 확대경을 스파이크가 볼 수 있을 정도로 낮췄다.
“기본 조직의 표면 위에 보이는 이 푸른 힘줄 같은 것들 말이야. 보이지?”
어린 보라색 드래곤은 테이블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이며 신나게 소리쳤다.
“우와, 정말이네! 보여!”
“지금부턴 더 절개하는 대신에, 기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채로 두고 마력 반응을 관찰할 거야. 내가 주입하는 마력의 양에 따라서.......”
그렇게 둘은 몇 시간 동안 함께 실험을 진행했다. 스파이크는 중간 중간 적극적으로 질문들을 던졌고, 그것들은 하나 같이 실험의 풍미를 돋우는 것들이었다.
트와일라잇은 조수의 모든 물음들에 대해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이로 인해 다른 때보다 실험이 지연되긴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했다. 그녀는 배우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는 포니였다.
게다가 스파이크 역시 실험 현장에 함께 있는 걸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트와일라잇의 지시라면 뭐든지 열정적으로 따랐다.
-
마침내 실험 노트가 덮였다. 노트는 온갖 도식과 메모, 그리고 메모보다도 더 휘갈겨 써진 무언가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채였다.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를 따라 도서관 1층으로 올라왔다. 창문 밖으로 새카매진 하늘과 달이 보였다.
세상에!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간 거람?!
놀람과 함께, 시간의 흐름을 의식한 신체가 뒤늦게 정당한 요구를 표했다.
요컨대,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배고파?”
스파이크가 물었다.
“조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이었다.
“냉장고에 과일 샐러드가 조금 남아있을 거야.”
스파이크는 아장대며 부엌으로 향했다.
“다 나은 거 축하 파티Feeling Better Again party 기념으로 핑키 파이가 만들어 줬던 거니까, 조금 된 거긴 한데.......”
“그럼 지금 당장 먹어야겠네.”
라벤더 빛 유니콘은 발굽을 재촉하며 부엌에 들어갔다. 마침 냉장고에서 과일 샐러드를 꺼내는 스파이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부엌 서랍을 열고 그릇 두 개를 꺼냈다.
“저기, 스파이크?”
그녀는 그릇을 탁자에 두며 문득,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을 입 밖으로 낸 것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왜?”
스파이크는 들고 있던 과일 샐러드를 탁자 위에 두었다.
“너 말야.......”
트와일라잇은 잠시 말을 끊었다.
“.......카르코사에 가기 싫다고 했던 거, 진심이야?”
초록색 파충류의 눈동자가 진지하게 보라색 동공을 바라보았다.
“응, 맞아. 진심.......이었던 것 같아.”
그는 시선을 거두고 트와일라잇의 의자를 꺼내주었다.
“내 말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단 거지. 진짜로. 언젠가 구경해보고 싶긴 한데, 영원히 못 가게 되더라도 상관은 없어. 난 이퀘스트리아가 좋은 걸.”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자신이 민감한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건드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나 이야기하기를 꺼려했고, 앞으로도 이야기할 일이 없길 바랬던 주제에 대해서.
“스파이크, 난 네가 드래곤들 사이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난 포니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드래곤들 사이에서 그들의 일원으로 자라야만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을 거야.”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런 게 있든 말든 신경 안 쓴다니까. 너도 알잖아. 난 언제나 너랑-”
“스파이크. 내가 너랑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트와일라잇이 소리쳤다. 맥동하는 심장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넌 거의 15년째 아기 드래곤이잖아.”
이제 그녀는 이야기해야만 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영원히 하지 않을 순 없는 이야기였다.
“넌 분명히 천 년은 넘게 더 살 거야. 만약 내가 운이 좋으면, 한 백 년 정도는 같이 있을 수 있겠지. 아마 넌 내가 죽.......”
“더 이상 말하지 말아줘.”
스파이크는 타이르듯 그녀의 말을 제지했다. 그는 손톱달린 손가락들을 불안스레 그러모았다.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꽉 쥐려는 듯이.
“트와일라잇. 나도 알아. 굳이 말해줄 필요 없어.”
초록빛 눈동자가 황혼을 넘어, 그 뒤에 찾아올 무언가를 아득히 바라보았다.
“나도 알아. 언젠간 너도.......죽게 될 거란 걸.”
트와일라잇은 한 걸음 스파이크에게 다가섰다.
“그럼 내가 하는 말도 이해해줘. 넌 배워야 해. 네 곁에 내가 없을 때, 내 대신 네 옆에 있게 될 생물체들에 대해 말야. 네 동족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구.”
스파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생각해볼게’ 라고 대답하면, 그렇게 하게 해 줄 거야? 솔직히 지금은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거든.”
라벤더 빛 유니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스파이크. 나도 이런 주제에 대해선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좋든 싫든 언젠간 일어나게 될 일이니까, 마냥 피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거지.”
“나도 알아.”
스파이크가 말했다. 그는 다시 의자 등받이를 쥐고 밀어 당겼다.
“어쨌든, 앉을 거야, 말 거야?”
트와일라잇은 빙그레 웃었다.
“저런, 매너 있기도 하셔라. 물론 앉아야지요, 드래곤 신사 분.”
그녀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래리티처럼 두 눈을 깜빡였다. 스파이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트와일라잇도 함께 웃었다.
자리에 앉으며, 트와일라잇은 마법으로 자신의 접시와 스파이크의 접시에 과일을 들어다 두었다. 스파이크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도왔던 연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고, 트와일라잇은 기분 좋게 조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는 때때로 열정적인 부연 설명도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스파이크의 미래에 대한 것들을 잊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싫은 일이긴 했지만, 곧 아니면 언젠가 자신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함을 트와일라잇은 알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한평생을 트와일라잇과 함께 보내왔고, 이는 트와일라잇의 삶에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를 조수로서 생각하며 의지해왔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의 존재 자체에 의지해왔다.
스파이크는, 그 보라색 드래곤의 존재는.......
.......나한테 뭘까?
이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둘의 관계는 단순한 연구자와 조수 사이 이상이었고, 친구 사이보다도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가족?
-
식사를 마친 뒤,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의 설거지를 도와주었다.
그릇의 물기를 닦으며, 스파이크는 트와일라잇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트와일라잇.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는 것 같아.”
“뭔데?”
“네 부모님이 두 분 다 집에 늦게 들어오시던 날이었던 것 같아. 그 날 우리가 우리끼리 집에서 뭐했었는지 기억 나?”
트와일라잇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당연하지-우리가 나이 먹을수록 그런 날들이 많아졌잖아. 엄마는 정말 열심히 일하셨지. 요샌 좀 쉬어가면서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눈썹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 주로 뭐하고 지냈었는지 기억나?”
트와일라잇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끼리 있을 때, 집에서 뭘 했-
머릿속에서 섬광이 반짝였다. 그녀는 큰 소리로 키득대며 웃었다.
“지금 해볼까, 그거?!”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거든.”
“그치만 레코드 판이 없으니.......”
“아냐, 있어!”
스파이크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저번 주에 벼룩시장에서 찾았거든.”
“정말!? 잘했어,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마음속에서 경쾌하게 차오르는 향수에 몸을 맡겼다.
“레코드 플레이어는 내가 당장 가서 갖고 올게!”
둘은 쏜살같이 부엌을 박차고 나갔다.
트와일라잇은 도서관의 서쪽 벽에 있는 옷장으로 달려가 옷장 문을 거칠게 열어 제꼈다. 그 안에 덩그러니, 나무로 된 레코드 플레이어가 놓여 있었다. 나팔부분이 활짝 핀 꽃처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사각형 턴테이블 위에 뿔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마법을 이용해, 트와일라잇은 그것을 들어 도서관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원탁 위에 올려 두었다.
한편 스파이크는 깡충깡충 뛰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제일 아래 계단에서, 그는 검은색 커버로 싸인 레코드판을 꺼내들었다. 색소폰을 부는 페가수스의 일러스트가 고전적인 회색빛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엔 흐르는 것 같은 글씨체가 여봐란 듯, ‘삭시 스미스와 그의 콰르텟이 나가신다!Saxy Smith & His Quartet Go To Work’ 라고 쓰여 있었다.
“준비됐어?”
스파이크의 물음에, 트와일라잇은 흥에 겨워 발굽을 구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스파이크는 탁자에 기어올라 레코드 플레이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들고있던 레코드 판을 커버에서 꺼낸 뒤 플레이어에 집어넣었다. 트와일라잇은 마법을 이용해 플레이어를 켰고, 돌고 있는 검은 디스크의 홈에 맞춰 바늘을 올렸다.
유니콘과 새끼 드래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정신없이 빠른 템포의 색소폰 솔로가 레코드 플레이어의 뿔나팔에서 터져 나왔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엉덩이를 내밀고 뒷다리로 몸을 돌리며 재빨리 옆걸음을 쳤다. 그녀의 옆으로 스파이크가 미끄러지듯이 다가가 함께 박자를 맞추며 걸음을 옮겼다.
색소폰 솔로에 베이스와 피아노, 트럼펫 둘의 소리가 가미되었다. 여러 악기들이 맹렬히 내달리며 복잡하게 어우러진 궤적을 그려냈다.
트와일라잇과 스파이크는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췄다. 정해진 동작도, 스텝도 없었다. 그저 들리는 음과 멜로디에 몸을 맡긴 채,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대로 즉석에서 몸을 흔들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서로의 움직임 뿐이었다. 서로의 이동 경로와 움직임에 따라 박자를 맞췄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시절에, 텅 빈 집에서 막춤을 추는 것이 유일한 반항의 상징이었던 때처럼.
마지막 곡의 마지막 음들까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자, 그 자리엔 두 생물체의 거친 호흡소리만 남았다. 둘 모두 입꼬리가 귓가에 닿을 정도로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무 재밌었어!”
트와일라잇이 외쳤다.
“이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나도 그래!”
스파이크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실력 여전하던데, 누님.”
“한 판 더 할래?”
“그래야지!”
스파이크가 말했다.
“이번엔 네가 판을 골라. 재즈 몇 개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찾아보니까 옷장 안에 있더라.”
라벤더 색 유니콘은 레코드 플레이어가 있던 옷장으로 향했다. 옷장 문을 다시 열고, 그녀는 고개를 박은 채 안쪽에 있는 상자들을 살폈다.
그 중 레코드판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마법으로 들어 밖으로 꺼낸 뒤, 그녀는 상자 안쪽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열중해있는 트와일라잇의 뒤쪽에서, 스파이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적어도, 트와일라잇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만, 작은 드래곤은 어느 샌가 그녀의 바로 뒤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플러터샤이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트와일라잇?”
“응, 왜 그래?”
트와일라잇은 여전히 상자 안쪽을 뒤적이며 대꾸했다.
“이제 날이 좀 늦긴 했지만.......그게.......”
“스파이크, 왜 그래?”
트와일라잇은 재차 물으며, 그제야 스파이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는.......”
그녀는 말을 삼켰다.
붉은 리본으로 포장된 작고 하얀 상자가 스파이크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수줍게 웃으며 그것을 트와일라잇에게 건넸다.
“어머니의 날, 축하해.”
트와일라잇은 아무 말도 못한 채 헛숨을 들이켰다.
“.......그래, 나도 알아.”
스파이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얘기한 것들 때문에.......아무래도 이걸 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네 말대로야. 난 포니가 아니고, 넌 드래곤이 아니지. 언젠가 난 이퀘스트리아를 떠나 다른 드래곤들과 살아야 할지도 몰라. 네 말이 맞아. 내 삶에 네가 언제나 함께 있을 순 없겠지. 하지만.......”
초록색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한테 알려줄만한 걸 주고 싶었어. 넌 언제나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잖아. 넌 날 부화시키고, 날 키워줬어. 읽는 법과 말하는 법을 비롯해서, 정말 온갖 것들을 가르쳐주기도 했고, 내 집이 되어 줬어.......넌 날 언제나 사랑해줬어, 트와일라잇. 난.......날 낳아준 드래곤이 누구인지는 몰라. 앞으로도 쭉 모르겠지. 하지만 내가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 포니가 누구인지는 알아.”
스파이크는 애틋한 눈길로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쩐지 찌푸려진 채 일그러져 있었다.
작은 드래곤은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네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알.......”
“아아, 스파이크!”
트와일라잇은 울부짖듯 외치며 스파이크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한 데 뭉쳐져 땅 위를 굴렀다. 트와일라잇은 제 등이 땅에 닿게 몸을 굴리며 스파이크를 품에 꽉 안았다.
“스파이크, 스파이크! 나도 널 사랑해! 내 소중한 스파이크! 내가 널 왜 사랑하지 않겠어?”
그녀는 품에 안은 스파이크에게 머리를 기댔다. 스파이크는 자신의 머리를 적시는 트와일라잇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스파이크의 이마 한 가운데에 입을 맞췄다.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눈을 감고 트와일라잇에게 몸을 기댔다. 라벤더 색 유니콘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이는 그가 아주 어렸던 시절, 잠자리에 들 때 느끼곤 했던 감각이었다. : 아주 어린 보라색 드래곤을 아기 침대 겸 구유통에 뉘어놓고, 마찬가지로 어렸던 트와일라잇이 그 옆에 바싹 몸을 붙여 누웠었다.
트와일라잇은 여전히 스파이크를 품에 그러안은 채 훌쩍이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긴 했지만, 결국은 슬그머니 두 눈을 떴다.
“그래서.......선물은 언제 열어볼 거야?”
“아, 맞다.”
트와일라잇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머뭇대며 마지못해 스파이크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선물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트와일라잇은 그것을 발굽으로 집어 들고, 리본을 푼 뒤 뚜껑을 열었다. 내용물을 본 그녀는 또 한 번 헛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뿔 반지horn ring였다. 루비들과 금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장신구였다.
“스파이크.......이거 너무 예쁘다.”
그녀는 촉촉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고마워.”
“좀 화려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긴 했는데.......그래도, 네가 화려한 파티에 가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나 싶더라고. 그치?”
“응.......맞아.”
트와일라잇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스파이크는 갑작스레 크고 요란한 하품을 내뱉었다. 트와일라잇은 어린 드래곤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넌 슬슬 자야할 시간인 것 같은데. 벌써 한밤중이야.”
“그래도........”
스파이크는 늘어져 내리는 눈꺼풀을 겨우 끔벅이며 웅얼댔다.
“아직 설거지가 안 끝났는 거-얼.......”
“내가 마무리할게. 오늘 넌 애를 많이 썼잖니.”
트와일라잇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스파이크에게 다가갔다.
“이만 쉬어. 나도 곧 자러 갈게.”
그녀는 작은 드래곤의 비늘 덮인 이마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서늘한 비늘 위에 촉촉하고 따스한 입술 자국이 남았다.
“.......잊지 말렴, 스파이크. 잊지 마.”
초록색 동공이 일렁거렸다.
“응. 약속할게.”
그는 까치발을 들며 트와일라잇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잘 자, 트와일라잇.”
“잘 자, 스파이크. 좋은 꿈 꿔.”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계단을 올라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마음이 하도 술렁거리는 탓에 양치마저 잊어버릴 뻔했다. 그는 허둥대며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침실에 도착한 스파이크가 자신의 잠자리 겸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창문에서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창문 쪽을 바라보니, 커튼 너머로 페가수스 포니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히죽거리며, 스파이크는 트와일라잇의 침대로 뛰어 올라가 창문과 커튼을 열었다.
“여, 레인보우 대시!”
대시도 마주 웃어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엄청 잘 됐어!”
스파이크는 쾌활하게 대답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래리티, 플러터샤이, 애플잭, 핑키 파이가 도서관 나무의 뿌리 언저리에 서 있었다. 그들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그들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다들 도와줘서 너무 고마워!”
“별것두 아이다, 요 귀염둥아.”
애플잭이 말했다.
“그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데이. 거, 내가 한 거라고는 음청 바빴던 척을 한 기 다 였다 아이가. 실제론, 뭐, 실제로도 바쁘긴 바빴다만은.”
“거짓말은 아니었지.”
플러터샤이가 덧붙였다.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가야할 장소가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스파이크에게 물었다.
“트와일라잇은 좋아해줬니?”
“으응, 그랬던 것 같아. 울더라고.......”
“왜냐면왜냐면, 너가 자길 얼마나 엄청 좋아하는지 알게 됐으니까 그런 거겠징! 당연히!”
핑키 파이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포니끼리거나 아님 포니랑 드래곤이거나 아님 드래곤이랑 다른 생물체거나 누구든 간에, 서로에게 슈퍼-판타스티컬한 사랑을 갖고 있다면, 또 그걸 알게 된다면, 행복감으로 터져버리지 않고는 못 견딜 거라구! 행복의 눈물이란 바로 그런 걸 말하는 거양!”
“뿔 반지는 마음에 들어하디?”
래리티가 물었다. 스파이크는 어두운 밤에도 보일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엄청 좋아했어! 고르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래리티!”
새하얀 유니콘은 멋들어지게 휘어진 자신의 보라색 갈기를 한 번 흔들어보였다.
“난 진작 알고 있었단다. 그 아이한테 루비가 정말 잘 어울릴 거란 걸 말야. 아, 이제 그 장신구를 돋보이게 해줄 드레스를 빨리 만들고 싶은 걸.”
그녀의 머릿속에선 벌써부터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었다.
“내일은 다 같이 아침 먹자.”
레인보우 대시가 착륙하며 말했다.
“물론 너도 포함이야, 스파이크. 트와일라잇한테 우리가 다 같이 뭘 작당하고 있었는지 말해줘야지.”
“그거 참.......”
스파이크는 하품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것 참.......좋네.”
“이제 가서 쟈, 스파이키!”
핑키가 말했다.
“낼 보장!”
“정말, 다들 너무 고마웠어.”
작은 보라색 드래곤은 재차 말했다.
“좋은 밤들 보내, 너희들 모두.”
그리고 그는 창문을 닫았다.
“일이 다 잘 풀려서 다행이야.”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저 둘, 참 멋진 가족 같지 않아?”
대시가 도서관을 멀거니 올려다보며 말했다.
“늘 그랬제.”
애플잭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트와일라잇이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기 참 놀랄 노자다 아이가.”
“그 애도 아직 어리잖니.”
래리티가 말했다.
“그럼 내일 도서관에서 다시 보는 걸로 할까?”
“무조건이징!”
핑키 파이가 통통 뛰며 활기차게 외쳤다.
다섯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발걸음을 돌려, 각자 집으로 향했다.
-
물기 하나 없이 반짝이는 식기들을 뒤로한 채, 트와일라잇은 부엌을 나서 도서관에 들어섰다.
뿔 반지가 계단 근처의 마루 위에 놓여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그 쪽으로 달리다가, 이내 천천히 속도를 죽이고, 종래엔 기다시피하며 천천히 발굽을 옮겼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겁을 집어 먹은 작은 라벤더 빛 유티콘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뿔 반지에 다가가,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든 뒤, 마루에 등을 대고 벌렁 누웠다.
“어머니의 날.......”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스파이크는 날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이 말인즉슨, 그 애는 자기가 내 아들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마음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천 개의 낯선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
트와일라잇은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그려보면, 친모인 트와일라잇 벨벳과 함께.......셀레스티아 공주가 떠올랐다.
그녀가 어머니의 날에 선물 두 개를 준비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머니란, 좀 더 나이든 암말들을 말하는 거지. 다들 현명하고 온화하고 상냥해.......나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트와일라잇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그녀는 어렸고 멍청했으며 고집스럽고 어설펐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언젠가 괜찮은 수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면, 결혼을 하고, 망아지를.......
둘이 좋겠지.
.......두 망아지를 낳고.
하지만 이런 계획은 언제 올지 모를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어쩐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트와일라잇 스파클에게나 일어날 것 같은, 지금의 자신과 같은 포니에게 일어날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일이었다.
난 준비되지 않았어.......난 스파이크의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난 현명하지도 않고, 어떻게 아들을 키워야 하는 지도 몰라, 난-이런, 난 몰라. 스파이크의 학습 상태는 어떻지? 난 그 애를 잘 가르치고 있는 걸까? 좋은 아이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걸까? 용감한 아이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걸까?
이 쯤 되자 트와일라잇은 거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스파이크는 그녀의 조수요 친구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 애에게 뭔가를 더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옛날의 어떤 나날들이 천천히 기억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녀는 부모님의 옆에서 즐거이 춤추고 있었다. 아직 셀레스티아 공주의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셀레스티아 공주의 사적인 제자를 뽑는 시험에 합격하고, 큐티마크를 얻은 직후의, 그녀의 삶에서 가장 위대했던 순간이었다.......
-
몰려오는 기쁨과 희열을 한껏 만끽한 뒤, 트와일라잇은 겨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 작고 어린 보라색 망아지는, 제 딴엔 다시 한 번 감사의 예를 표하기 위해 셀레스티아 공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인사를 받아야 할 이는, 박살난 나무 수레 쪽으로 이미 몸을 옮긴 뒤였다. 트와일라잇의 시험을 감독했던 유니콘 마법사들 역시 공주와 함께 둘러 앉아 있었다.
트와일라잇이 그 쪽을 멀거니 보고 있노라니, 시험장의 문이 열리고 두 유니콘이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한 쪽은 고동색의 털가죽에 하늘색의 갈기와 꼬리를 가진 수말이었고, 다른 한 쪽은 어두운 초록색의 털가죽에 하얀 갈기와 꼬리를 가진 암말이었다. 둘은 모두 황금색 서큘렛circlets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스타캐쳐Starcatcher, 위젠바흐Wizenbach. 이런 다급한 호출에 와줘서 고마워요.”
두 유니콘은 몸을 낮췄다.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공주님.”
어두운 초록색의 유니콘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호출 내용이 아주 흥미롭더군요. 공주님께서 '딜레마' 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다니요?”
“이걸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새하얀 알리콘은 코끝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작은 보라색 드래곤이, 쌓여있는 밀짚 한가운데에 꼬리를 빨며 누워 있었다. 아이의 찬란한 초록색 눈동자가 태양의 여신을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고, 세상에.”
고동색 유니콘이 중얼거렸다.
“이런 일이 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건지.......그, 당최 알 수가 없슴다.”
트와일라잇의 시험 감독관을 맡았던 노란색 유니콘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이 시험의 요점은, 그, 각 후보생들의 잠재적인 마력에 아, 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한 겁니다! 알을 깬, 아니, 부화시켜버린 학생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고요!”
“하지만 이젠 있지요. 그리고 우리 발굽엔 새끼 드래곤이 떠맡겨졌고요.”
고동색 유니콘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순한 새끼 드래곤이 아닙니다, 마스터 스타캐쳐.”
자리에 있던 회색 유니콘 마법사가 말했다.
“보세요. 보라색이잖아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어두운 초록색의 유니콘 : 위젠바흐는 앞발굽으로 아랫턱을 문질러댔다.
“애초에 이 알은 대체 어디서 난 건가요?”
“확실치 않습니다.”
파란색 유니콘 마법사는 솔직히 고했다.
“‘알 시험’은 학교가 처음 세워졌던 약 400여년 전부터 시행되어 왔습니다. 제가 알기론, 매 시험마다 똑같은 알들이 사용되었고요. 알의 출처는.......글쎄요.”
곤란해하는 좌중들 사이에서, 셀레스티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잘 모를 만도 하죠.. 내가 학교에 이 알을 선물했던 것도 이젠 오래 전 일이니까요. 이 알은.......”
그녀는 잠깐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글라우라그Glaurâg를 쓰러트리고 가져온 거예요.”
“글라우라그? 선대 드래곤 황제의 알을 훔치셨던 겁니까?”
스타캐쳐를 위시한 포니들의 얼굴에 선명한 경악과 공포가 그려졌다.
“이 알을 노리고 덮쳐올 마수(魔手)들이 뻔히 보였기에,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어요.”
태양의 여신이 대답했다.
“카르코사의 황좌에 앉은 새 황제는 전 황제의 혈통부터 말살시키죠. 이건 드래곤들의 전통이에요.”
그녀는 아기 드래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구해온 겁니다. 그 외엔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아무도 이 아이를 원치 않겠군요.”
위젠바흐가 요점을 짚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카르코사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그건 이 아이를 사지(死地) 한복판에 내던지는 것밖에 되지 않을 거고요.”
“우리가 이 아이를 맡아서 돌봐준다고 가정하면.”
스타캐쳐는 다른 가능성을 입 밖에 내었다.
“이퀘스트리아가 맞게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야겠지요. 드래곤들이 이 아이를 원할지 원치 않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만약 우리가 드래곤 알을 갖고 있단 걸 현 드래곤 황제인 앙칼라곤Ancalagon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게다가 ‘보라색’ 새끼용의 존재를 말이죠.”
“에, 헤헷, 그렇다면, 마법으로 아이의 비늘색을 바꾸는 건 어떨깝쇼?”
노란색 유니콘 마법사가 경박한 투로 제안했다.
“성장이 시작되면 아무 소용없을 거예요.”
회색 유니콘 마법사가 딱 잘라 대꾸했다.
“무슨 색이든지 간에, 포니의 발굽에서 자라나는 드래곤이 있다는 사실을 앙칼라곤이 알게 되면 큰 사단이 날 거라고 봅니다.”
스타캐쳐가 말했다.
“이퀘스트리아와 카르코사의 관계는 지금껏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죠. 이번 일은 상처에 재를 뿌리는 꼴이 될 겁니다.”
“무슨 얘기들 하셔요?”
그 때, 작고 높은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셀레스티아와 나이든 유니콘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선 원의 바로 바깥쪽에, 어리고 작은 라벤더 색 유니콘이 서 있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알리콘과 유니콘들, 그리고 잠든 아기 드래곤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저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셀레스티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단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이 아기는 알에 너무 오래 있었던 데다, 우린 이 아기의 부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 그래서 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란다. 아마 드래곤들의 고향인 카르코사에 보내야 하겠지.”
“하지만요, 엄마 아빠가 없으면 누가 저 아기를 돌봐주나요?”
트와일라잇이 물었다.
공주는 자홍색 눈동자를 부드럽게 깜박였다.
“양부모라도 찾아줘야 할 거야.”
“그치만.......”
트와일라잇은 공주의 다리 사이에서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드래곤들은 비열하지 않나요? 특히 낯선 이들에게 말예요!”
“그건 그들이 그렇게밖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셀레스티아는 상냥하게 말했다.
“드래곤들도 사실 포니들과 다를 것 없는 존재들이란다. 그들 역시 받은 사랑을 돌려줄 줄 아는 생물체들이지.”
“그럼 이 아기는 왜 여기서 지낼 수 없나요?”
태양의 여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을 키우는 일은 포니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란다, 트와일라잇.”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트와일라잇이 외쳤다.
“전 그 애를 돌볼 수 있어요!”
“꼬마 숙녀 분, 이 일은 생각보다 정말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랍니다.”
노란색 유니콘 마법사가 말했다.
“하지만.......전 그 애를 가족도 없이 두고 싶진 않은 걸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고집을 부렸다.
“게다가, 제가 알을 부화시켰잖아요! 그 애는 이미 제 책임 아래에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네가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던 것도 아니잖니, 아이야.”
회색 유니콘 마법사가 말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못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니까요!”
“으흐으으으음.......”
어두운 초록색의 유니콘은 침음성을 냈다.
“.......의견은?”
스타캐쳐가 그녀에게 얼굴을 가져다댔다.
“생각해보니, 아기를 우리가 보호하는 것도 썩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위젠바흐가 말했다.
“앙칼라곤이 모르는 한, 아무 문제도 없을 거고.......게다가, 공주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사랑 받은 드래곤은 사랑을 베풀 수 있겠지요.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키우지 않는다면, 이 아기도 그런 식으로 자라지 않을 거고요. 아기가 눈에 띌 정도로 자라게 되면, 우린 그냥 이 애를 이퀘스트리아의 평범한 드래곤이라고 소개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아기의 생명도 구할 수 있게 되겠지요.”
셀레스티아는 구슬픈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난 이미 이 아이의 가족에게.......충분히 안 좋은 일을 저질렀어요. 이번 일로, 조금이나마 그 빚을 갚고 싶네요.”
그녀는 작은 라벤더 색 유니콘에게 시선을 돌렸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이 아기 드래곤을 맡아 기르고 싶다고 했지? 각오는 되었니?”
“네, 네네네! 공주님!”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몸을 낮추며 기쁜 목소리로 화답했다.
“아기란 건 펫이 아니란다, 트와일라잇. 이 점을 명심하렴. 아기에겐 적절한 영양 섭취와 보호,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단다. 또한 아기를 가르쳐주고, 건강한 몸과 선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줄 누군가도 필요하지. 이 누군가는 아기의 삶 속에서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거야. 이 책임을 질 수 있겠니?”
“전 할 수 있어요, 공주님! 약속드릴게요!”
트와일라잇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공주님.”
스타캐쳐가 셀레스티아에게 다가가 소근거렸다.
“더 나이든 포니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결혼한 부부에게라도요.”
“좋은 조언이지만, 꼭 그럴 필욘 없을 것 같군요, 마스터 스타캐쳐.”
셀레스티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트와일라잇은 어느새 둘을 지나쳐, 잠들어 있는 아기 드래곤의 옆에 앉아 있었다. 작고 둥그런 보라색 발굽이 아기 드래곤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벌써부터 보이는군요. 그 어떤 포니라도 이 아이만큼 아기 드래곤을 사랑해줄 순 없을 거예요.”
-
“어머니.......”
트와일라잇은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
왜 전엔 몰랐을까?
그녀는 스파이크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키워왔다. 때때로 부모님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직접 하려고 노력했다. 직접 먹이고, 직접 씻기고, 직접 가르쳤다.
최근 몇 년 간 스파이크는 트와일라잇의 조수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트와일라잇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돌봤기 때문이었다.
난 이미 어머니였던 거야.
이것은 특정한 연구 대상이나 주제를 대할 때처럼, 계획하거나 조직하고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준비할 수조차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것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겠지.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된다는 게 뭔지 모르는 거야. 분명, 분명.......부모 역시 더 배우고 성장하게 되겠지, 자식처럼 말이야.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엔.......내 아들처럼.
트와일라잇은 마법으로 뿔 반지를 들어올려 뿔에 끼워 넣었다. 꼭 들어맞았다.
계단을 올라, 트와일라잇은 침실에 들어섰다. 스파이크는 자신의 잠자리 바구니에서, 담요를 꼭꼭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찌할 도리 없는 충만함이 마음속에 꽉 채워졌다. 스파이크는 트와일라잇보다도 먼저, 둘 사이의 감정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지각력은 나한테서 배운 걸까? 아니면 나면서부터 타고난 걸까?
그런 것은 어찌됐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눈앞에 잠들어 있는 놀랍도록 똑똑하고 상냥하고 다정한 드래곤이 자신에게 사랑과 자부심을 선사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귀여운 아들.......”
트와일라잇은 가만히 속삭였다. 그녀는 조용히 스파이크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 둘 사이의 관계는 이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린 트와일라잇은 꿈틀거리며 그 안에 파고들었다. 그리곤 마법으로 뿔 반지를 벗고,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그것을 바라본 뒤 침대 옆 서랍장에 올려두었다.
이제 둘 사이의 관계는 이전과는 분명 같을 수 없을 것이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새로운 감정들이 불러일으켜졌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나쁜 변화는 아닐 거야. 아무렴.
트와일라잇은 알고 있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게 될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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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https://www.fimfiction.net/story/301785/a-day-for-spike-and-twi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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