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 Ain't Got no Ack-cent!
Written by Conner Cogwork
Translated by BlackS
어느 패션 디자이너의 악몽 같은 절규가 카루셀 부티크를 뒤흔들었다. 그녀에게 드라마 퀸 기질이 다분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 내막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불과 3분쯤 전에 일어난 일이다.
아주 영향력 있는 손님이 카루셀 부티크를 방문했다. 그가 이르길, 다가올 농업 박람회를 위해 디자이너가 제작한 기념품에 주최 측이 큰 감명을 받았노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디자이너가 농업 박람회에 직접 참석하여 다른 작품들도 선보여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패션 디자이너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현재.
카루셀 부티크의 주인이자 재기발랄한 패션 디자이너는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하게 된 건지 서서히 알아차리고 있었다.
위대한 셀레스티아의 무궁한 왕국에 걸고, 그녀는 전에 없던 고뇌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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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흑, 난 못 해애애!!”
래리티가 패닉에 빠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고된 노동과 그로 인한 망상증에 빠지는 것도, 그녀에겐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난데없는 히스테릭을 부리는 건 그녀Rarity로서도 굉장히 ‘래리티rarity’ 한 일이었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람?!”
그녀는 콧김까지 내뿜으며 고함을 쳤다. 눈동자가 불안스레 번들거렸다. 혼란스런 시선이 부티크의 바닥을 보측(步測)하듯 가로질렀다.
제각각 다른 디자인 형태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종이 쪼가리 수십여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마네킹들에는 근본 없이 박음질된 천 조각들이 얼기설기 걸려 있었다.
유니콘 외에 이 장소에 있는 생명체라면, 뚱뚱하고 새하얀 페르시아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굴러다니는 종이 쪼가리들로 한동안 발장난을 치더니, 그마저도 질렸는지 이젠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래리티가 녀석을 붙잡고 절규하듯 하소연을 해댔지만, 이 건방진 고양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랜드 갤로핑 갈라Grand Galloping Gala를 제외하면, 전(全) 이퀘스트리아 농업 종합 박람회는 제일 잘나가는 부자 포니들이 총집합하는 행사란 말이야!”
래리티는 열변을 토했다. 그 기세에 콧잔등 위에 걸쳐져 있던 안경이 삐뚜름해졌다.
“내 재능을 한껏 선보일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난 평생 광마(狂馬)로 취급당해도 싸! 하지만, 아, 셀레스티아 공주님이시여! 오팔! 대체 뭘 만들어야 하는 거지?!”
길을 잃은 시선이 수많은 아이디어 스케치들을 향했다. 그것들은 그녀를 포위하듯 둘러싼 채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었다.
“농부들, 수확꾼들, 방앗간 일꾼들, 목수들, 그 외에 일꾼들에 요리사까지! 다들 지나치게.......‘직관적인’ 타입이잖아! 대체 어떤 디자인을 선보여야 그런 작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음, 요리사라면야,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박람회엔 요리사가 아닌 포니가 훨씬 더 많이 올 거야! 아휴, 빨리 뭐라든 생각해내야 해, 이제 박람회는 고작 2주 밖에 남지 않았다구!”
멜로 드라마스러운 한숨소리와 함께, 그녀는 책상 앞에 퍼질러 앉았다. 두 앞다리가 책상 위에 무기력하게 뻗어졌다. 오팔이 새하얀 앞발굽 옆에 얌전히 앉더니, 뭔가를 기대하는 눈초리로 래리티를 바라보았다.
“어우, 그래. 나도 안단다, 오팔. 지금은 스스로를 다잡아야 할 때지. 하지만 보렴! 난 마말레이드 씨에게 가장 멋진 드레스 10벌을 준비하겠다고 했잖니? 하지만 지금 창고엔 완제품이라곤 두 벌 밖에 없고, 둘 다 농업 박람회에 잘 어울리지도 않아! 특히 그 중 하나는.......아흑, 세상에 내보일 만한 물건이 아니란 말이야.”
그녀는 볼멘소리를 하며 발굽에 턱을 기댔다.
고양이는 제 주인에게 한심스런 눈빛을 보냈다. 그리곤 짐짓 냉담하게 진청색의 원단들이 쌓여 있는 쪽으로 걸어가 그 사이에 앞발을 끼워 넣었다. 녀석은 진청색의 원단에 하얀 털 뭉치가 떨어지도록 다분히 의도적으로 행동했다.
“그래, 그래. 네 말 대로란다. 난 이 시련을.......과거에 두고 나아가야 해. 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디자이너답게 말이지.”
래리티는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난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들도 여러 차례 겪어봤어. 도전은 언제, 어디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거지! 그래, 난 할 수 있어!”
긍정적인 생각들이 갑작스럽게 밀려들었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합리적인 생각들이 끼얹어지자, 그것들은 나타날 때처럼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세상에, 방금 내가 무슨 소릴 지껄여댄 거람?”
래리티는 오팔을 마력으로 붙들고는 복실복실한 하얀색 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곤 징징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오팔은 상당히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내 스타일대로 만든 드레스들을 농업 박람회에 제출했다 치자. 자, 농사꾼들이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농사꾼들이! 아아, 정말 감도 못 잡겠어! 내가 자문을 청해볼 수 있는 유일한 포니는-”
볼멘소리는 다급한 노크 소리로 중단되었다.
래리티는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오팔을 내려두었다. 고양이는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안전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녀는 안경도 다시 제대로 착용한 뒤, 현관문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조금 전까지의 기분은 조금 후에 있을 만남을 위해 확실히 심중에 갈무리 해둔 채였다.
“지금-나가요옹~~”
문고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새하얀 유니콘은 두 눈을 감다시피 내리깔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카루셀 부티크에 어서 오세요! 전 래리티에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 니랑 내랑 하루이틀 사이가? 내 올 때마다 글케 해줄 필욘 없지 싶은디.”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남부 사투리가 들려왔다.
“애플잭!”
유니콘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예상대로, 눈앞엔 농사일을 하는 오렌지색 암말이 서 있었다. 그녀는 관습적인 형태의 소몰이꾼 모자를 쓴 채였고, 안장 가방의 끈이 몸의 중앙 전면부를 가로질렀다.
“오늘은 무슨 일로 들렀니?”
“이거 땜시 말여.”
AJ는 안장 가방 쪽으로 턱짓을 하며 대답했다.
“스위티 벨, 느그 여동생이 애플 프리터apple fritter 좀 구해다 주소 하고 부탁했던 게 인제사 머리속에 팍 꽂힌 거 아이긋나. 너 애플 프리터 모르나? 거 왜, 접때 했던 핑키 파이네 파티에 내가 가져왔던 거 말하는 거데이. 거 쪼매난 망아지 면상에 대고 어째 안된다 칼 수 있었겠노? 캐서 아침부터 이래 잔뜩 구워가꼬 왔다, 이거제. 여튼 간에, 좀 들어가서 주고 와도 되긋나?”
애플잭의 말을 듣는 동안, 래리티는 옴짝달싹 거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 사과수확꾼Applebucker의 기상천외한 사투리는 정말 참고 들어주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 애플잭은 농장에서 자랐더랬지.
래리티는 마음속으로 쫑알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나랑 이 애가 같은 이퀘스트리아 어를 쓰는 게 맞는지조차 의심이 들 지경이야! 그 레인보우 대시도 얘보단 제대로 말한다구!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용건을 모두 들었으므로, 최고의 접대용 미소를 날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물론 가능하지, 자기! 카운터에 두고 가도록 하렴. 스위티 벨이 학교를 마치고 오면 전해주도록 할게.”
“그래주면 고맙제!”
애플잭은 대답과 함께 부티크 안쪽으로 발굽을 들였다. 유니콘은 현관문을 닫으며 친구의 뒤를 따랐다.
실내의 몰골을 목도한 애플잭은 잠시 몸을 멈칫거렸다. 그리곤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
“갈라Gala 때 난리는 난리고 아이고만. 여 꼬락서이가 우짜다 일케 되뿟노, 래리티? 새 드레스라도 만들고 있는 기가?”
사방에 흩뿌려진 종이 쪼가리들이 두 포니의 주목을 받았다. 오렌지색의 포니는 종이 쪼가리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하얀 포니는 한숨을 폭 내쉬곤 친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
침묵의 순간. 뒤이어 관찰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우침의 순간이 도래했다.
“애플잭.......”
디자이너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농군은 친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와?”
그 다음 대화엔 그다지 많은 단어가 포함되진 않았다. 대신 유니콘의 어스 포니를 향한 몸통 박치기에 가까운 열렬한 포옹과, 이런 식의 비명 같은 환호성이 뒤따랐다.
“애플잭! 너야! 너가 정답이야! 너야말로 농부 스타일 패션의 최고의 뮤즈야!”
척추가 우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애플잭은 겨우겨우 내뱉었다.
“머, 머꼬?”
“왜 내가 이 생각을 빨리 못 했을까! 너야!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의심의 여지없이 너라고! 네 현실적인 안목과 내 패션 지식이 있다면, 박람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충분히 드레스들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아아 애플잭, 어떤 행운의 여신께서 널 내게 데려다 주신 걸까, 이건 분명 운명이야-!”
“자아아아아아암깐, 잠깐만 좀 있어봐라, 요 가스나야.”
농군 포니는 래리티를 밀어내며 말했다.
“거, 땅 파먹는 ‘내’랑 느가 하는 ‘드레스 만드는 일’이 우째서 같은 문장에 들어있는지부터 좀 설명해줘야지 않긋나?”
“어머, 내 정신 좀 봐.”
유니콘은 안경을 고쳐쓰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도움이 필요해.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아까 전에 손님이 한 분 오셨었거든. 그리고 그 분은 내 창작물에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셨어.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애플잭의 입꼬리가 물결 모양을 그리고, 초록색 눈동자가 위쪽으로 반 바퀴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래리티는 설명을 이어갔다.
“자자, 계속 들어보렴. 그 분이 내 디자인 스타일에 완전 껌뻑 반하셨단 거지. 그래서, 날더러 자기랑 같이 올해의 이퀘스트리아 농업 종합 박람회의 전시를 준비해보자고 하신 거 있지!”
“이퀘스트리아 농업 종합 박람회라꼬?! 거 이농박EACE=Equestran Agriculture Conference Exhibition아이가?!”
오렌지색 포니는 비로소 래리티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시이이이이이이상에, 이기 먼 일이꼬, 이농박은 이퀘스트리아의 모든 농사꾼들의 꿈의 무대데이! 내는 거기 울 스위트 애플 에이커용 부스 한 칸만이라도 받아도 소원이 없긋다! 거야말로 진짜 확실한 돈벌이가 될거데이!”
주근깨 있는 얼굴에 일순간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그랜드 갤로핑 갤라에서 맛보았던 쓰디쓴 낭패가 떠올라버린 탓이었다.
“.......이농박에 올 정도의 포니들이라믄, 좋은 사과는 한 눈에 알아볼 정도의 안목은 갖고 있지 않긋나!”
“당연히 그렇고말고!”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래리티는, 그러나 곧장 프로다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난 지금껏 한 번도, 단 한 번도 농사일이나 농경 사회에 관련된 옷가지들은 만들어본 적이 없단다! 게다가 그런 생경한 주제의 옷들을 열 벌이나, 박람회가 열리기 전까지 2주 안에 완성시켜야 해!”
애플잭은 낮은 휘파람 소리로 장단을 맞추었다.
“아따, 너무 엄살 피우지 말어라, 요 가스나야. 글케 말해놓코 또 보란 듯이 해낼 거 아이가! 거, 니가 접때 내헌티 맹글어줬던 기 두 벌인가가 있지 않나? 일단 거 둘은 박람회 포니들헌티 잘 먹힐 게 틀림없데이.”
“그래. 네 갈라용 드레스는 써먹을 생각이긴 했는데.......”
하얀 디자이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도 발굽으로 공연히 마루를 긁어댔다.
“.......그거 말고 다른 건.......거기에 네 의향이 많이 반영되어있단 건 나도 안단다. 덧신 같은 장화랑 그런 거 있는.......얘, 너 진짜 그게 ‘잘 먹힐’ 거라고 보니?”
“그-을씨.......쪼끔 재정비를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허다. 글킨 허지만, 맞다. 좀 발굽 봐주기만 하믄, 내는 그기 통할 거라 본데이.”
애플잭은 타가닥거리며 래리티에게 다가갔다. 네 발굽으로 마루를 굳게 디디고 선 그녀는 열정적인 눈빛으로 디자이너를 바라보았다.
“여튼, 내가 도와줄 기 있음 뭐든 말하그래이. 니도 알겄지만은, 내는 실이랑 바늘가꼬 뚝딱거리는 건 몬한다. 그치만 농군들이 몸뚱아리에 뭘 걸치고 다니는 지가 궁금하다믄.......”
초록빛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윙크를 보냈다.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둔하고 무심한 포니라도 알아차릴 만한 노골적인 힌트였다.
유니콘의 눈동자가 감사의 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농군 포니는 척추에 무리를 가하는 포옹을 또 한 번 버텨내야 했다.
“정말 고맙구나, 애플잭! 다과회에 다른 포니도 데려가겠다고 내 고객 분에게 꼭꼭꼭 말해놓을게!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걸! 특히 네 특제 애플 프리터를 맛본 뒤라면 더더욱 말야!”
그녀는 가련한 사과수확꾼을 감고 있던 앞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러고도 못내 고마움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네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넌 정말 상상도 못할 거야.”
“글케까지 말할 것두 읎다, 요 가스나야. 인제, 거.......니만 괜찮다믄야, 가서 작업이든 머든 시작하는 기 어떻긋노?”
어스 포니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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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디, 거, 우리가 와 이러고 있는 긴데?”
“간단해.”
래리티는 띄워올린 빗으로 피사체의 노란 갈기를 빗어내리며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함께 일한다고 한다면, 우리 둘 모두 흙바닥 위에 서 있어야겠지. 난 발굽이 더러워지는 것만 참으면 되겠지만, 너는.......이건 논쟁의 여지도 없는 문제란다. 넌 전체적인 몸단장을 좀 미리 해둬야 할 필요가 있어. 드레스를 몸에 걸치기 전에, 먼저 기초적인 베이스를 깔아두어야 해야 한다는 거지!”
애플잭은 침음성을 내면서도 몸을 움직이려 들지는 않았다. 아침에 샤워라도 하고 온 것이 그녀에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입욕제와 이국적인 방향제로 가득 찬 욕조로 떠밀렸을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갈기 빗질의 아귀에선 도망칠 수 없었다. 애플잭은 자신의 카우걸 모자와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있는 퉁퉁한 마네킹을 공허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내는 할 수 있데이.
애플잭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래리티는 내가 먼 수를 써도 읃지 모달 기회를 주고 있는 기다. 내는 기냥 참기만 하믄 되는 기다. 요 가스나가 하려는 대로 두는 기 제일이다.......그기 설령 치렁치렁하고 요사시런 무언가가 되더라도 말이제.
유니콘은 군데군데 뭉쳐진 농군의 금발 갈기를 비질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피사체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흘러내리는 금색 털 줄기를 감상했다.
디자이너의 얼굴에 변덕이 담긴 웃음이 그려졌다. 갈기 스타일링용 스프레이병이 공중에 띄워 올려지더니, 사과수확꾼의 갈기에 가차 없이 뿌려졌다.
“자-잠만, 거 있어봐라.”
애플잭이 다급한 목소리로 제동을 걸었다.
“자르거나 할 건 아니제? 내는 다 말짱하게 고대로 두고 박람회에 가고 싶데이. 너가 혹시-”
“걱정마렴, 애플잭.”
래리티는 한 쪽 발굽을 친구의 어깨에 부드럽게 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의도와는 달리 사투리에 대한 비평으로 들리지 않도록 제법 애를 썼다.
“그냥 좀 꾸며보는 거란다. 내가 이렇게 네 갈기를 만져보는 게 늘 있는 일은 아니잖니. 자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이게 할 거야. 약속할게!”
고오-급스럽게라, 하고마, 복잡시러버라.......기냥 지 재미볼라꼬 하는 기면서.
어스 포니는 또 다시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기래. 괘안타. 어케 되든 요 가스나가 꾸민대로 평생 가는 건 아니니께. 진정허자.
그녀는 문득, 빗질이 느껴질 때마다 자신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분 정도가 지난 뒤, 하얀 유니콘은 한 발굽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작품을 살폈다. 그리곤 작품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해!”
디자이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딱 마지막, 화룡점정이 될 만한 게.......아! 그게 있었지!”
근처의 옷장이 열리고, 상자 하나가 마력에 들려 나왔다. 그것은 유니콘 옆의 상공에 맴돌며 유일한 내용물을 : 가운데에 밝은 보라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금목걸이를 뱉어냈다.
그것이 래리티가 수호하는 조화의 원소라는 건 농군의 투박한 안목으로도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딱 이번만이야.”
래리티는 스스로에게 허락을 구하듯 말했다. 그리곤 목걸이를 애플잭 쪽으로 띄우곤, 조심스레 오렌지 색 목에 둘렀다.
“완벽해! 와서 보렴, 애플잭!”
애플잭은 종종걸음으로 친구를 따라 방의 다른 한 구석으로 향했다. 거기엔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유니콘은 자신의 작품을 거울 앞으로 끌어당겼다.
“모두 보거라! 진흙 속의 진주가 마침내 제 광채를 되찾았으니!”
AJ는 제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목에 친구의 조화의 원소가 걸려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진정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확 달라진 갈기 스타일이었다. 언제나 삐죽삐죽하게 뻗어있던 금빛 갈기가 위로 말려 올라가 돌돌 말린 채 쪽 지어져 있었고, 몇 가닥만이 목과 눈앞으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었다.
망아지였던 시절 이후로, 이런 갈기 스타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애플잭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통해 어렸던 시절의 자신을 회상했다. 더 어리고, 세련된 매인해튼 감성manehattenite의 애플잭을.
다 자란 어른 포니가 거울 속에서 애플잭과 눈을 맞췄다. 그 성숙한 모습에,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아한 아우라가 보기 좋게 어우러졌다.
위대하신 셀레스티아 공주님, 오렌지 삼촌이랑 고모가 이런 제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
세련된 교양을 갖추기 위한 노력 중 제일 어려웠던 것이 말투 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어렵지 않게 매인해튼 투로 생각하고 있었다.
애플잭은 눈앞의 포니를 돌아보았다. 상대의 얼굴을 앞에 두고,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낼 때도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확인 못 해볼 문제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이미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다.
“에헤헴.......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운 장신구를 갖고 계시는 군요, 마담. 이 목걸이는 혹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건가요? 어머, 맞죠, 그거죠? 조화의 원소! 아아, 세상에. 이 귀중한 걸 어떻게 얻게 되신 건지 알려주시겠어요? 그 사연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제게 그것만큼 영광인 일도 달리 없을 거예요!”
애플잭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그다지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
*THUMP*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인상적인 인상을 내보이는 래리티가 보였다. 그녀는 마치 아래턱을 바닥에 떨어뜨린 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눈빛은 죽어 있었고 동공은 까만 점처럼 줄어들어 있었다.
그 점들은 애플잭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사과랄crabapples.
애플잭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금은 너무 큰 소리로 씨불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조심스레 친구에게 다가갔다.
“어음.......래리티?”
평소와 같은 사투리가 말투에서 묻어났다.
래리티는 두어 번 눈꺼풀을 끔벅댔다. 쩍 벌어져 있던 아래턱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애플잭?”
그녀는 멍하니 웅얼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어스 포니에게 고정되어 있는 채였다.
“괘안나, 귀염둥아?”
“난.......아니, 그.......애플잭.......”
유니콘에게서 약한 과호흡 증세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너, 너 목소리.......말투가.......어떻게?”
애플잭은 친구의 눈길을 피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죄책감이 드러났다.
“내가 큐티마크를 우째 얻었는지, 니헌티 얘기 해준 적 없다 아이가, 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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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매인해튼에 간 적이 있었니?!”
“말했다 아이가!”
어스 포니는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 땐 뭣도 모르는 애송이 망아지였었데이! 고만한 아가 뭘 알았긋노!”
“어휴, 애플잭. 좀.”
래리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옆으로 굴렸다.
“제발, 매인해튼은 이퀘스트리아에서 캔틀롯 다음으로 문화적인 도시잖니. 그런 도시에 살았던 걸 꼭 무슨 큰 실수를 했던 것처럼 폄하하진 말아주겠니!”
“그치만 그건 실수가 맞았데이!”
애플잭이 항변했다.
“만에 하나 그 때 레인보우 대시의 소닉 레인붐을 못 봤었드라믄, 내는 지금도 거 처박혀 있을 거데이.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파무치가꼬, 이모랑 삼촌이랑 같이 높으신 윗분들하고 히히해해 거리고 있었겄제. 그랬음 농장 꼴이 우예 됫긋노, 엉? 애플블룸은! 갸는 언니가 있는지도 모르고 컸겄제! 내는 그 삭막한 도시에서, 내 삶을 걸고 겨우겨우 토꼈던 기다!”
“정말 멜로드라마가 따로 없구나. 진짜 드라마-퀸이 여기 있었네.”
디자이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보렴, AJ. 네가 농장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포니는 아무도 없을 거야. 나도 물론 그래.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 왜, 왜 오렌지 부부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다 없던 일로 해버린 거니? 그런, 상류층의 매너들 말이야!”
“건 내가 아녔다 안카나.”
농군은 바닥을 멀거니 응시하며 대답했고-
“그 교양 머시깽인지 하는 것들은 결국 내한텐 하등 쓸모없는 것들 뿐이었데이. 농장 생활을 하믄서 그따위 것들을 어따 써묵겠노? 기냥 잊어묵는 기 백배천배 낫......”
“아니 어떻게 그런 소릴!”
-라는 폭발적인 반발을 샀다.
“그런 재능을 그냥 잊어버리겠다고? 자기야,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기나 해?!”
유니콘은 부리나케 어스 포니에게 달려가 그녀의 발굽을 부여잡았다.
“그런 고상하고 부유한 계층이 향유하는 문화적인 어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너 스스로도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로 이어질 거라구! 어우, 자기야, 한 번만 더 아까처럼 말해봐!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치고는 너무 완벽하게 들렸거든! 특히 사투리accent도 없고-”
“사아-투리Ack-cent? 그기 먼소리꼬?“
래리티는 두 눈을 끔벅였다.
“왜, 그, 네 평소 말투 있잖니, 억양 찐한 그.......애플잭. 물론 넌 몰랐-”
오렌지 색 콧잔등이 씰룩거리며, 푸르륵 대는 소리가 났다. 선녹색 시선이 래리티를 노려보았다.
“니 지금 머라카노? 야 이 가스나야, 거, 내 말투 으-디에 그런 빌-어-묵을 윽양이 있단 긴데!”
총체적 난국의 덩어리 같은 인상적인 항변이었다.
이에 대해 래리티가 의견을 개진하고자 발굽을 들어 올린 찰나였다. 부티크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래리티는 애플잭에게 ‘쉬-잇’ 모션을 보인 뒤,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카루셀 부티크에 오신 것을-, 어머! 마말레이드 씨, 무슨 일이신가요?”
유니콘은 뒤로 물러서며, 진한 주황색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수말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짧게 이발된 갈색 갈기와 꼬리가 수말의 궤적을 따라 휘날렸다. 펄럭대는 외투 아래로, 둔부 즈음에 그려져 있는 잼 병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마담 래리티, 이런 식의 예고 없는 방문에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작업하는 속도가 놀랍도록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디자인 스케치 작업은 이미 끝내셨을까요?”
“어머! 그건.......”
래리티는 대충 치워둔, 방금 전까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종이 쪼가리들을 곁눈질했다. 하얀 발굽이 어색하게 바닥을 긁었다.
“아이디어 스케치 정도라면.......조금 있긴 하죠. 하지만 아직 완성된 건 아니구요. 전.......”
그녀는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 시선의 종착역은 친구이자 피사체인 금발의 어스 포니였다.
“아! 지금은 농업 분야의 전문가와 이야길 나누고 있었답니다. 디자인 최종본을 결정하기 전에 말이죠. 소개해 드릴게요!”
애플잭은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숨소리조차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유니콘이 말쑥한 수말을 거울 앞으로 데려오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이 쪽은 제 친한 친구랍니다.”
래리티는 퍽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애는 근방에서 가장 큰 사과 농장을 경영하고 있어요! 매사에 조금 투박한 면도 있긴 하지만, 아주 멋진 친구랍니다.”
아고, 마, 부끄러버서 볼따구 다 타긋다, 요 귀염둥아.
애플잭은 속으로 쫑알거렸다.
“어이쿠, 그러시군요!”
마말레이드는 반갑게 외치며 애플잭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시선 탓에 오렌지 색 암말의 볼에 조금 홍조가 돌았다.
“정말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분이시군요. 농부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예요! 혹시 성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마담?”
“지는-”
그 때, 수말의 오른편에서 어떤 움직임이 보였다. 래리티가, 경악에 찬 눈빛을 보내며 머리를 양 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쟈가 지금 와 저러노?
AJ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제 유니콘은 기도라도 하듯 양 발굽을 한 데 모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간절함이 뚝뚝 묻어났다. 눈썹 부근엔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땀방울까지 보였다.
아하, 거, 인제사 알겠데이.
마말레이드는 알지 못했지만, 어떤 재빠른 눈빛 교환이 두 포니 사이에서 일어났다.
애플잭은 조용히 심호흡을 내뱉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매인해튼 억양을 준비했다. 오렌지 색 입이 열렸을 때, 그녀는 이미 농군이 아닌 사교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포니였다.
“저는 애플잭이라고 해요, 신사 분. 이번 작업을 의뢰하신 분이죠? 래리티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답니다!”
“오호!”
마말레이드의 얼굴이 기쁨을 기반에 둔 놀라움으로 점철되었다.
“어린데도 굉장히 교양있는 말투를 사용하시는군요! 그래요, 제가 바로 그 포니입니다. 제 이름은 망고 마말레이드Mango Marmalade고, 필리델피아Fillydelphia 외곽에서 잼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요. 이번 EACE에도 초청되었고요. 물론 들어보셨겠지요?”
이런 식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자랑 방식이 농군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신사 분. 사과를 귀히 여길 줄 아는 이퀘스트리아의 모든 농부 포니들은 EACE에 대해 알고 있지요. 저 역시, 언젠가 박람회에 참석해 제 수확물들을 선보이는 날을 꿈꾸고 있답니다.”
“애플잭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소유주이기도 하지요.”
래리티는 애플잭이 가져온 안장 가방 쪽으로 발굽을 옮겼다. 그녀는 마법으로 가방을 열고, 안쪽에서 따끈한 애플 프리터를 꺼냈다.
“특히 사과와 관련된 디저트 솜씨는 따라올 포니가 없어요! 이 애플 프리터는 애플잭이 오늘 아침에 구워서 가지고 온 거랍니다. 마말레이드 씨도 한 번 드셔 보세요.”
“거, 함 잡셔-.......가 아니라, 여하튼 정말 맛있을 거예요!”
애플잭은 황급히 사투리를 얼버무렸다. 진한 주근깨가 어색하게 치켜 올라간 입꼬리에 슬쩍 가려졌다.
“킁킁.......와우, 정말 군침 도는 향이 나는 군요!”
마말레이드는 눈앞에 떠 있는 프리터의 냄새를 음미했다. 그리곤 그것을 발굽에 쥐고는, 우아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수말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풍미를 만끽하며 천천히 씹어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어느 순간, 감겨있던 마말레이드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여유와 교양이 넘치던 눈동자는 이제 노골적인 놀라움으로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어떤 푸른 페가수스처럼 재빠른 발굽놀림으로, 남은 프리터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정말 놀라운 맛이야!”
마말레이드는 애플잭의 발굽을 부여잡으며 열광적으로 외쳤다.
“애플잭 양, 그건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혹시 래리티 양이 당신을 박람회에 동행시키고자 한다면, 단언컨대, 전 무조건 래리티 양의 의사대로 일을 진행시킬 겁니다! 아니, 이것만이 아니죠. 아예 애플잭 양을 위한 별도의 전시 부스까지 마련해줄 수 있습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겼군요!”
비즈니스 포니는 희열에 찬 걸음걸이로 부산스레 마루를 거닐었다. 당황한 암말들은 멀거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 당장 위원회와 연락을 해봐야겠어요! 아, 그 전에 행사에 낼 요리를 담당하시는 분들께도 연락을 드려야겠군요. 애플잭 양 측의 분들과도 조율을 해야 할 테니까요! 어디보자, 우선 애플잭 양의 전시 부스를 마련하려면 원래 그 자리를 쓰기로 했던 분들과 상의를 해야겠죠! 만약 그 분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뭐, 제가 그 자릴 사버리면 되겠죠!”
그는 몸을 홱 돌리곤 바람처럼 현관문을 향해 질주했다. 드레스 디자인을 보러 왔다는 초장의 목적은 이미 온데간데없어 보였다.
“먼저 처리해 두어야할 일들이 많을 것 같으니, 실례할게요, 여러분!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면 다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투들-루toodle-loo!”
“투, 투들-루~.......”
래리티와 애플잭도 작별의 인사를 고하며 앞발굽을 흔들었다.
다급히 뛰쳐나가나는 수말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부티크의 문이 거세게 닫혔다. 이제 실내엔 입꼬리가 뻐근해 보이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암말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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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두 포니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농군의 얼굴엔 경악과 불신이 떠올랐다. 반면에 디자이너의 얼굴엔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만연했다.
“거.......방금 그 머스마가.......”
“애플재애애액!”
어스 포니의 몸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쥐어 짜이듯이 움츠려졌다.
“어우, 자기야, 자기가 너무 자랑스러워! 자긴 방금 자기에게 내재된 교양 있고 세련된 면모를 끌어냈고, 정말 별처럼 빛났어! 이제 우린 박람회에 같이 갈 수 있게 된 거란다!”
신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내.......내도 몬 믿긋다, 거.......고 머스마가 내를 초-대했다카이.......”
“너도 들었잖니, AJ! 넌 마말레이드 씨한테서 극찬을 받았어!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이제 그 분은 네 수확물들을 전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걸! 이제 우리는 온갖 내로라하는 포니들이 참가하는, 이퀘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박람회에-”
“첫, 첫 번째는 가-알라 겄제.”
애플잭은 짧아진 호흡으로 힘겹게 대답했다. 그녀는 껍질을 벗기듯 제 몸으로부터 하얀 포니를 떼어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털이 꽉꽉 눌린 부분에 혹여나 멍이 들진 않았는지 살폈다.
“이농박 가는 기 울 스이트 애플 에이커 역사상 다시없을 최고의 순간이 될 기란 건, 머, 두말할 것두 없이 자명한 사실이데이! 그치만은, 그, 도시-말투는 좀 관둬야지 싶은-”
“안 돼!”
거센 반발이 곧장 날아들었다.
“애플잭, 너도 알잖니, 박람회에 올 포니들은 모두 하이-클래스 포니들일 거야. 다들 너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 최고의 모습을 기대할 거라구! 우리 둘 모두한테서 말야!”
래리티는 애플잭의 갈기를 빗는데 썼던 빗을 보란 듯이 띄워 올렸다. 천천히 허공을 맴돌던 그것은 이윽고 디자이너의 보관함 안으로 들어갔다.
“단 한순간이라도 박람회에서 ‘교양 없는 모습’을 보여 버리면, 우린 분명히 쫓겨나고 말겠지!”
“글케까진 안될끼다!”
어스 포니가 대꾸했다. 그녀의 눈썹이 불신으로 일그러졌다.
“갈라에서 났던 그런 일은, 다신 안 일어날 끼다.”
“어우, 그럼. 그날 밤만큼 나쁜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
푸른 눈동자가 위쪽을 보며 반바퀴 굴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니. 지금 상황은 그 때보단 훨씬.......명확하잖아. 네가 제일 잘 알겠지만.”
목에 걸려 있던 조화의 원소를 풀어내려던 애플잭은, 곧 친구가 말하려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다.
“닌 그니께.......일이 이래 잘 굴러간 기.......내가 그 머스마랑 도시 말투로 잘 얘기했기 때무이다.......이기가?”
래리티는 목걸이를 돌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고로, 지금부터 우린 말투 교정 특훈에 들어갈 거랍니다, 아가씨. 마말레이드 씨가 오늘, 카루셀 부티크에서 만난 흠 잡을 데 없이 세련되고 교양 있는 애플잭 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에 대해 온 이퀘스트리아에 퍼뜨리고 다닐 거라는 게 분명하니까요.”
그녀는 금발의 포니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 반짝거리는 시선에 애플잭은 식은땀마저 흘리기 시작했다.
“물론, 애플잭 너도 박람회에서 만나게 될 네 잠재적인 고객 분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싶진 않겠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농군 포니가, 자신이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실감한 것은.
“그니께 니 말은.......나더러 박람회에 있을 땐 완전 곱상한 매인해튼 출신 아가씨 같은 말투를 쓰란 거 아이가?! 하루 밤낮 종일!”
“하루 밤낮? 자기야, 박람회는 3일 동안 열려!”
“머라꼬? 그럼 3일 내내?!”
패닉 상태에 빠진 초록빛 눈동자 위로 어떤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 3일 동안 박람회에서 내쫓기지 않고 부유한 권력층과 대화를 나누려면? 3일 동안 요란한 메이크업으로 주근깨를 가리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있어야 한다. 3일 동안 농장을,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를 떠나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것은
3일 동안
자신의 것이 아닌 말투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낸 몬한다! 래리티, 진심으로 하는 말인디, 낸 몬한다! 몬한다꼬!”
애플잭은 친구 앞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녀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유니콘에게 호소했다.
“평생 매인해튼에 살았던 것처럼 굴라니, 그 모냥 그 꼴로 3일 동안 우째 살긋노! 생각 만해도, 아고, 숨 멕힌다, 숨 멕혀! 내는 몬한다-!”
“.......애플잭! 애플잭, 일단 진정해보렴!”
오렌지 색 어스 포니가 이렇듯 무너져 내리는 몰골은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디자이너는 놀란 마음을 애써 숨기며 친구를 달랬다. 그녀는 쓰러진 암말의 몸뚱이를 제 어깨에 기대고, 거칠어진 숨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되찾을 때까지 안아 주었다.
몇 분 정도의 시간과 침묵이 흘렀다. 어느덧 농군 포니의 눈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유니콘은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오늘부터 당장 연습을 시작해야 할 이유란다. 우린 함께 할 거야. 그리고 네가 더 능숙하게 도시 말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거고. 충분히 연습하고 나면, EACE에서의 3일 간 더 쉽게 도시 말투를 구사할 수 있게 될 거야!”
애플잭은 뒷다리를 꿈지럭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초록빛 눈동자가 제 앞발굽을 응시하다가, 친구를 한 번 슬쩍 올려다보았다.
“닌 진짜로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보나?”
래리티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래리티 선생님을 믿고 다 맡기려무나. 그러면 박람회의 어느 누구도, 봄바람 같이 살랑이는 귀엽고 세련된 애플잭 아가씨에게서 걱정과 근심 따윈 보지 못할 거야. 뭘, 그냥 내 보답이라고 생각해. 네가 나에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 말이지.”
두 포니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묵언의 눈빛교환은 어스 포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끝을 맺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부티크의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유니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엔 비로소 다져진 각오가 엿보였다.
“거, 니가.......엣헴, 내 말은.......네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널 한 번 믿어보는 것도.......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유니콘이 어찌나 환하게 웃던지, 애플잭으로선 고통에 얼룩진 웃음이라도 마주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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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가 열리기 전까지, 두 포니의 나날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 우선 애플잭이 래리티의 작업물들을 감독하며 코멘트를 남겼다. 주안점은 그것들이 농부, 일꾼, 정원사 포니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그렇게 좋은 옷가지들을 선별해내고 나면, 감독역은 래리티에게로 넘어갔다. 그녀는 주황색 포니를 앉혀두고 몇 시간이고 교양 있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계속 얘기해볼까요!”
유니콘은 티 테이블 앞에 앉으며 활기차게 외쳤다. 다즐링 차 한 컵이 그녀의 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농장 일은 요즘 어떤가요?”
“덕분에요, 모든 게 잘 이루어지고 있죠.”
애플잭은 제 발굽 사이에 끼워져 있는 비스코티biscotti를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녀의 말투에선 조금의 사투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애플블룸이 헛간 한 쪽 벽에 틈새가 벌어져 있는 걸 발견했지 뭐에요. 그런데 그 애가, 저랑 빅 맥킨토시가 알아채기 전에 먼저 조치를 취한 거 있죠!”
“어머머! 참 발굽 재주 좋은 아이네요!”
“그럼요! 게다가 다 수리하고 나서도 제겐 아무 말도 안했어요! 제가 밭일을 하다가 와서 뺑끼칠이 새로 되어있는 걸 보기 전까지 말이죠. 그 애는 제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하지만.......”
애플잭은 말꼬리를 흐렸다. 정면에서 쏘아지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응? 또 뭐 실수한 거 있나?”
하얀 발굽이 삿대질하듯 들어 올려졌다.
“방금 또 희한한 사투리를 썼잖니. 뺑.......끼칠? 유추해보건대, 표준어로는 페인트칠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구나.”
애플잭은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발굽에 들려있는 비스코티를 다시 바라보다가, 한 입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이어, 쩝쩝, 오음 말른 것, 쿨럭, 가튼디.”
유니콘의 파란 눈동자가 위쪽으로 반바퀴 데구룩 굴렀다.
“비스코티잖니. 그건 애초부터 차나 음료에 적셔먹으라고 만든 과자란다. 넌 주로 커피에만 적셔먹지만 말야. 자, 이제 다시 매너있게 좀 굴어줄래?”
카우걸은 침음을 내며 등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리곤 입 안에 뭉쳐져 있던 마른 쿠키를 차 한 모금에 적셔 삼켰다.
헛기침을 한 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잠깐 실수를 했네요.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려요.”
“문제될 거 없죠!”
래리티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하며 활짝 웃었다.
“누구나 잠깐 동안은 집중력을 잃을 수 있는 거니까요! 자, 그럼 여동생 분의 이야길 계속 해주시겠어요? 그 아이가 자신이 해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던 거지요?”
“그리-어요.”
애플잭이 말했다. 이번엔 첫음절에서 아슬아슬하게 사투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전 헛간 벽에 생겼을 틈새를 찾아서 돌아다녔죠. 그런데 벽이 다 말끔하더라고요. 빅 맥킨토시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했죠. 최소한, 저희 둘 다 스미스 할머니가 한 일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할머닌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그래서 임시로 고용한 사촌 캐러멜한테도 물어봤었는데, 그도 자신이 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요.”
“거기서 애플블룸이 나섰나요?”
“저희가 마지막으로 물어본 게 그 아이였죠. 전 그제야 그 애가 아지트용 나무 오두막을 수리해본 경험이 있다는 걸 떠올렸답니다. 고 맹랑한 망아지를 구슬리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헛간 벽도 자기가 수리했다고 털어놓더군요.”
“여동생 분에게 알려줬죠? 전혀 화나지 않았다고 말예요.”
“거, 두말하면 잔소리제!”
애플잭은 용솟음치는 자부심에 몸을 맡기며 크게 소리쳤다.
“내 바로 말해줬다 안카나, 맛탱이 가 있는 것들을 그래 스스로 찾아가꼬 고치고 해주이 무쟈게 고맙고 도움이 된다고 말이제! 갸가 전문 수리공은 아이지만은, 그래 망치니 톱이니 하는 것들을 다룰 줄 안다꼬, 말보다도 행동으로서 팍 보여준 거 아이가! 캐서 내가 또 그랬-지.......아, 아하.......”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농군 포니는 흥을 거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어머, 미안하긴! 괜, 괜찮단다.”
유니콘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차마, 최소한 이 부분에서는, 친구의 사투리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언니의 폭발적인 마음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입 밖에 낼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사투리, 문법을 꼬고 단어를 뭉개버리는 그 남부 사투리는 들을 때마다 이를 앙다물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그녀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자신의 작품이 걸려있는 마네킹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무리 박음질을 좀 해야 할 것 같거든. 여기 있는 것들까지 하고 나면 이제 여섯 벌 완성이야. 일주일 동안의 성과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때?”
“니가 글타믄야.......”
애플잭은 자신의 카우걸 모자를 맡고 있는 마네킹 쪽으로 다가갔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말투 교정 시간이 끝났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친구를 실망시켰다는 사실로 인한 거북감이 마음속에 혼재해 있었다.
“여튼, 진짜 미안타, 래리티. 니도 알제? 내가 매인해튼에서 교양 말툰지 먼지 써먹어 보긴 했지만은, 솔직히 것도 이틀 뿐이었다 아이가.”
“괜찮아. 나만 믿으렴.”
하얀 포니는 자신 있게 단언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드레스에 머물러 있긴 했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일 뿐이지. 아직 박람회까진 여유가 있잖니. 그 때까진 능숙하게 사투리 없이 말할 수 있게 될 거야.”
농군 포니는 친구의 뒷모습을 쏘아보다가, 마네킹 머리에 씌워져 있는 모자를 제 머리 위로 옮겼다.
“멫 번이나 말했지만은, 내는 사투리 같은 거 안 쓴데이.”
“그럼그럼, 물론 그렇겠지.”
래리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애플잭 쪽으로 발굽만 대충 휘적이며 대꾸했다.
“농장에 돌아가면, 박람회에 챙겨갈 물품들을 미리 추려두렴. 마말레이드 씨가 박람회 전날에 채리엇Chariot을 끌고 이 쪽으로 와주실 거거든. 우리 물품들을 옮겨주시려고 말야.”
“말이 나와서 말인디, 올해 이농박은 어데서 열린다카드노?”
“이퀘스트리아 중심부에 있는 요클라호마Yokelahoma라는 도시에서 열린다고 들었어.”
“거라면, 소들의 고향이라 칼 수 있제.”
애플잭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색에 잠긴 눈빛으로, 그녀는 제 볼따구를 발굽으로 찬찬히 쓰다듬었다.
“농사일에 쓰이는 소들은 거진 다 그 짝서 자란다 아이가. 마, 니 진짜 거까지 가서도 내가 도시 말투로 씨부려야 칸다고 생각하나?”
“애-플-잭. 방금까지 연습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핑계니.”
작업에 열중해있던 디자이너의 고개가 움직였다. 엄중한 시선이 옷가지들에서 그대로 애플잭에게로 향했다.
“EACE가 농업의 중심지에서 열린다고 해서, 거기 참가하는 포니들이 죄다 너처럼.......순박하게 말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 게다가, 넌 이제 거의 능숙해졌잖니! 지금 그만두는 건 여러모로 낭비야!”
애플잭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려, 내도 안다, 알아. 그럼 여튼.......낼 아침에 보는 거제? 늘 그랬듯이.”
터덜터덜 문 쪽으로 향하는 농군의 뒷모습을, 래리티는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울론이지, 자기. 그리고 너무 시무룩해하지 말렴! 기억해,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란 걸!”
어스 포니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곤, 부티크를 나섰다.
신선한 공기와 밝은 햇살을 다시 마주하며, 애플잭은 자신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다시 실감했다. 그녀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걸이로 스위트 애플 에이커로 향했다.
고 가스나 말이 맞데이.
애플잭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갸는 부자 포니들이 내헌티 좋은 인상을 갖게 해줄라꼬 발굽 벗고 나서서 내를 돕고 있는 기다. 그기다, 이미 한 건 해줬지 않나? 우리 농장이 박람회에 자리 한 켠 받은 것도 다 갸 덕분이제. 이쯤 되면 미주알고주알 뺀질대는 것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 아이긋나.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치만, 머라캐야 하나, 이런 ‘상류 사회’ 예법인지 머시깽인지는.......내 자신헌티 그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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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 날이 왔다.
앞으로 24시간 내로, 마말레이드의 큐티마크가 그려진 짐마차 두 대가 포니빌에 들어설 것이었다. 그 짐마차들은 소중한 물품들을 싣고 요클라호마로 갈 것이었고, 그 다음날엔 전 이퀘스트리아 농업 박람회의 개최될 것이었다.
정리가 끝난 카루셀 부티크는 임시 휴업 상태가 되었다. 부티크의 주인이자 유일한 디자이너는 박람회에 선보여질 옷들을 부산스레 살폈다. 어떤 옷엔 바늘땀을 추가하고, 또 다른 옷에선 실오라기를 정리하는 등, 그녀는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작품들을 돌보았다.
다만, 그녀가 그 와중에도 남몰래 곁눈질하는 대상이 있었다. 흘깃대는 파란 눈동자의 시선 끝에는 분홍색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지난 2주간 아무도 모르게 준비해둔 비장의 물품이 들어 있었다.
확신해. 저 옷은 그 애에게 완벽하게,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거야!
래리티는 맘속으로 외쳤다.
한편 애플잭은,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븐에서 구워지고 있는 파이 네 개를 살펴봐야 했고, 스미스 할머니는 캐러맬 애플caramel apple을 만드는 마지막 공정에 착수해있는 상태였으며, 빅 맥은 밖에 나가 예쁘게 잘 익은 전시용 사과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그리고 애플블룸은 자기도 따라가게 해달라며 언니에게 떼를 써대고 있었다.
“언니야! 내도 도울 수 있다니까아! 내도 할 수 있다! 내한테도 기회를 좀 도!”
그녀가 방방 뛰며 소리칠 때마다, 붉은색의 갈기가 위아래로 정신없이 흩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플잭에겐 대답해줄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사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이빨 사이에 오븐 그릇을 물고 있는 채였으니.
그녀는 물고 있던 오븐 그릇을 옆의 선반에 올려놓은 뒤에야 대답을 내놓았다.
“미안타, 요 귀염둥아. 그치만 거 가면 필시 내 하나 챙기기에도 벅찰거 데이. 마말레이드 씨헌티 포니 하날 더 데려가도 되겠냐고 부탁하기도 좀 글코, 그기다.......낸 좀 쎄하거든, 거 왜, 니 접때 사과 파는 거 도와준다캐서 델꼬 갔다가 사단 났던 거 생각하면은.......”
“으이이.......”
노란 망아지는 칭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야, 그건 인자 쫌 잊아물 때 안됐나.......”
애플잭은 키득대며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글킨 해도, 일발굽이 부족한 건 맞제. 닌 일단 올라가서 좀 씻고 온나. 이따 짐마차 오믄 거따 파이 싣는 것 좀 부탁하께.”
“맡겨만 도!”
망아지는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외친 뒤, 금세 부엌을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미스 할머니는 홀홀대며 작게 웃었다. 그 늙은 암말은 캐러멜 애플들이 줄줄이 놓여 있는 탁자 앞에 서 있었다.
“아이구, 집 다 무너지겄다. 고 녀석 참 기운도 좋다, 그체?”
“글게 말임더.”
애플잭도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 평온한 얼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할매, 낸 진짜 모르겠다. 이기 진짜 맞는 기가? 이번 일은 우리 농장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릴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은, 그럴라믄, 내는 그 되도 않는 도시 포니 흉내를 다시 내야 한데이. 내가 매인해튼 간다꼬 농장 휙 떠뿌렀을 때, 다들 음청시리 고생했었다 아이가.......”
스미스 할머니는 발굽을 들어 손녀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AJ, 건 다 지나뿐 일이데이. 닌 기냥 니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인기라. 다만 한 가지, 갸들이 니헌티 거적떼기를 입히고 각설이타령이나 부르게 한다믄야, 뒷발굽으로 냅다 걷어차줘야칸데이. 애플 가문이 촌에 있다캐서 쉬이 얕보일 이름은 아니니께. 알긋제?”
“알긋다, 할매.”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즐거워하며, 애플잭은 동의를 표했다.
“인자 걱정 하나도 안된데이. 우리가 할 일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믄, 결국 요클라호마로 가서 사과를 파는 거 아이긋나. 할매. 이 손녀만 콱 믿고 계쇼. 한 탕 거하게 벌고 올 텡께.”
스미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꼬치에 꽂아둔 사과 하나를 집어 캐러멜 소스에 듬뿍 적셨다가 꺼냈다. 그것을 굳히기 위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서, 할머니는 주제를 전환했다.
“건 글코, 너 그, 친구헌티 받는다던 말투 교정 수업? 건 어케 되가고 있능고?”
애플잭은 오븐에서 꺼내던 파이를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겨우 파이 선반을 내려놓고는, 웅얼대며 대답했다.
“아-거, 말이제. 그, 잘 됐다! 인자 굳이 따로 신경 안 써도 능숙허게 도시 포니처럼 말할 수 있게 됐데이!”
“호오, 어디, 이 할미헌티도 들려줄 수 있긋나?”
오렌지 색 어스 포니의 눈썹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할매 부탁이다 아이가.......여따 대고 우째 안된다 카겠노.......
그녀는 발굽을 가슴에 가져다대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내는.......할매가 원한다믄야, 함 해보께. 그니께.......내.......난, 사실 아직 완전히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박람회에 대비해서 열심히 연습하긴 했지만 말이지. 그래도, 할머니가 들어보자고 했으니.......”
그 때, 작고 가벼운 발굽 소리와 함께 애플블룸이 부엌에 들이닥쳤다. 붉은 갈기는 대충 빗어져 있었고, 여전히 축축한 채였다.
“언니야! 짐마차 오면 파이들 어떻게 쌓아둬어?!”
애플잭은 자애롭게 웃으며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어머, 애플블룸,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단다. 짐마차들은 오늘 저녁 늦은 시간이나 되어야 여기에 올 거거든.”
작은 망아지는 멍해진 눈빛으로 언니를 응시했다.
“.......애플잭? 목소리가.......시방 이기 먼 일이래?”
혼란스런 시선 교환 후, 초록빛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동시에 주황색 볼따구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아! 미안타, 귀염둥아. 내-거, 연습 중이었데이. 그, 머랄까.......”
“박람회에 올 도시 포니들처럼 말하는 중이었던기라.”
스미스 할머니가 손녀를 거들고 나섰다.
“전에도 저러코롬 말했던 적이 있었드랬지. 다들 기억할랑가 몰겄지만은.”
“아아아아-하아아아.......”
애플블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꼬리를 늘렸다.
“맞아. 언니야가 큐티마크 얘기해줄 때 그런 말투로 말했었제! 오렌지 삼촌네 갔을 때 그런 식으로 말했던 거였나?”
“그런 셈이제.”
애플잭은 똑바로 서면서도 슬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그 땐 그런 말투를 쓸 필요성이고 이유고 즈언혀 몬 느꼈었데이. 그치만 이번 박람회에 그런 말투가 필요하다믄, 해야긋제. 썩은 사과 마냥 멍석에 둘둘 말려서 쫓겨날 순 없으니께.”
“우와, 우와! 그럼 만약 도시 포니들처럼 말할 수 있으면, 나도 가도 돼? *엣-헴-헴* 자, 이-러엄 어어-때애! 인-제 내 마-알투 도오시 상류층 포오니 같지-이, 그치?”
망아지의 형편없는 흉내에, 대답 대신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노란 볼따구가 붉게 물들고, 쫑긋하던 귀가 축 늘어졌다.
물론, 기가 죽은 여동생을 사랑 넘치는 언니가 그냥 내버려 둘리는 없었다. 애플잭은 애플블룸을 힘껏 껴안으며 말했다.
“아이구, 울 귀염둥아. 내도 잠깐은 그런 말투를 썼었지만은, 그기 내답다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데이. 그런 말투를 그래 해볼라꼬 흉내낼 필요 읎다. 그리고 방금 니 말투는 하나도 안 웃겼데이. 합격이다 합격.”
“난-그래, 언니야가 그렇다믄야.......”
애플블룸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플잭이 발굽에 힘을 풀자, 그녀는 짐마차가 오는 걸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스미스 할머니는 그 후 몇 분간 더 웃어댔지만, 애플잭은 쉽사리 웃음을 이어가지 못했다. 조금 전의 웃음의 이유를 그녀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했던 탓이다. 여동생의 서툴지만 귀여운 노력에 대한 홍소인지, 아니면 내키지 않는 상황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조소인지.
몰겄다. 걍 잊어 묵어야지.
애플잭은 가볍게 도리질을 친 뒤, 마지막 남은 애플파이를 오븐에서 꺼냈다.
입에 문 선반에 정신을 집중하던 터라, 그녀는 부엌을 향해 다가오는 경쾌한 발굽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여기 있었구나!”
높은 목소리가 외쳤다. 애플잭은 화들짝 놀라하며 선반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가 지난 2주간 함께했던 하얀 암말이었다.
“여, 래리티.”
애플잭은 몸을 돌리며 마주 인사했다.
“가스나 빨리도 왔네. 설마 짐마차가 벌써 들 왔드나?”
“아니, 아직 안 왔어.”
유니콘은 머뭇대면서도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난 짐마차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란다. 난.......음.......”
하얀 발굽이 무익하게 바닥을 긁어댔다.
농군 포니는 친구의 몸에 가로 매어진 안장 가방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 챘다. 특히 왼쪽 가방에 두드러지게 나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분홍색 상자였다.
“래리티.......”
초록색 눈동자가 휘둥그레 해졌다.
“니 설마.......!”
애플잭을 올려다보는 파란색 눈동자엔 멋쩍어하는 빛이 역력했다.
“너가 나한테 해준 것들이 많으니까.......이번 기회에 좀 갚아볼까 싶어서.......”
말로 하는 대신, 래리티는 마법으로 가방에서 짐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둥실대며 어스 포니 쪽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뚜껑이 열렸고, 그 내용물이 모든 포니들의 눈앞에 공개되었다.
그것에 대한 애플잭의 첫인상은 이랬다 : 새하얗고, 프릴이 넘쳤다.
“네 아름다운 목소리에 어울리도록 디자인해봤어, 자기.”
디자이너의 설명이 뒤따랐다.
“특히 EACE에 입고 갈 수 있도록 만들었지.”
애플잭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열된 오븐 앞에서도 멀쩡했던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녀는 본래 갈라 때 입었던 의상을 입고 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이 유행에 민감한 하얀 유니콘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패닉에 빠진 초록빛 눈동자가 다급하게 주위를-보다 구체적으론, 당장 이 공간에서 뛰쳐나갈 만한 탈출구를 찾아 헤맸다. 래리티의 새하얀 프릴 투성이 최신작을 입느니, 엉덩이에 온통 유리조각이 박히더라도 창문을 깨고 뛰쳐나가는 선택지가 차라리 나아 보였다.
애플잭은 간절한 눈빛으로 스미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쪽 방향의 주름진 얼굴엔 ‘재밌어 보이는구먼!’ 이라는 감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 늙은 암말은 난관에 봉착한 손녀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결국 농군은 항복의 의미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참말로 고맙데이, 래리티. 거.......입고 가야긋제?”
래리티는 입꼬리를 올렸다.
“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구나, 애플잭. 자, 도와줄테니 위층으로 가자꾸나.”
그녀는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흘러넘치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박람회 사교장 최고의 디바가 탄생하게 되는 거야, 자기!”
사과수확꾼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친구의 뒤를 따랐다. 늙은 녹색 포니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킬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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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유.......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오래 걸렸지.”
“어우, 그랬지. 하지만 다 보람이 있었어.”
“니 말이 맞ㄷ-, 내 말은, 꼭 그랬으면 좋겠네!”
래리티는 가볍게 애플잭을 쏘아보고는 다시 풍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포니가 바랬던 대로, 요클라호마까지의 여행길은 평탄하기만 했다. 그들의 물품들은 정해진 곳에 도착했고, 그들의 좌판 역시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배정된 좌판은 다 큰 포니 둘의 몸길이를 합친 것보다도 더 길어서, 애플잭은 도리어 마말레이드에게 이렇게 많은 자리는 필요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래리티의 전시품들이 좌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충분한 자리가 있었던 덕에, 그녀는 챙겨온 옷가지들 전부를 조명이 있는 받침대 위에 전시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자, 유니콘과 어스 포니는 각자의 좌판대 앞에 섰다.
주위에선 수많은 포니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박람회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들은 모두 조직위원회의 일원 혹은 배정받은 좌판에 수확물을 진열하는 농업 종사자들이었다.
래리티는 꼬리와 뒷다리가 드러나는 짧은 가운을 입고 있는 채였다. 그것은 가을의 논밭 같은 황금빛을 띠었고, 목 주위로는 반짝이는 천으로 단이 세워져 있었다. 그 단엔 가느다란 호박색 실금이 포인트로서 박음질되어 있었다.
애플잭은 고개를 외로 꼬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주황색 발굽은 괜스레 지면을 긁어대고 있었는데, 그 꼴이 퍽 산만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박람회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래리티는 애플잭에게 ‘캐릭터에 몰입in-character’ 할 것을 주문했다. 애플잭의 금빛 갈기는 또 한 번 산처럼 위로 틀어 올려 졌고, 드레스는.......사이즈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넉넉하게 맞았다. 하지만 농군 포니는 자신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코르셋에 조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애플잭이 입고 있는 것은 사우던 벨Sounthern Belle양식의 드레스였다. 하체를 감싸는 부분은 풍성한 볼륨감이 있는 데다 검은색이어서, 착용자가 마치 고래처럼 보이게 했다. 소매엔 앙증맞은 주름 장식이 있었고, 목에는 왕방울만한 진주 목걸이가 사슬처럼 걸려 있었다.
모자, 내 모자라도 쓰고 있고 싶데이.......
“진짜 몰라보겠구나!”
하얀 암말은 뛸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진짜.......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레인보우 대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 ‘쿨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래리티는 초조한 기색으로 공연히 제 갈기를 빗어댔다.
“이 자리에 올 온갖 내로라하는 포니들의 기억 속에, 우리 둘의 이름이 제일 윗줄에 각인될 거야!”
“부.......분명 그렇겠지!”
농군 포니도 맞장구를 쳤다. 이번엔 사투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애를 써가며. 농장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고작 혀 실수 때문에 놓칠 순 없었다.
“포니들이 정말 많으니까 말야.......저 많은 포니들 중 적어도 하나쯤은 좋은 사과를-”
“그거랑 드레스.”
“-그래. 드레스도. 그럼 둘 정도는 우리 좌판으로 와 주겠지.”
애플잭은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잽싸게 말을 이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엔 여길 좀 돌아다녀보고 싶어. 방금 보니 저 쪽 코너에 쟁기 좌판이 있던데, 거기에 빅 맥킨토시가 써도 될 만한 크기의 쟁기가 있더라고.”
“자기, 한 번 둘러볼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거야.”
래리티는 자신 있게 말했다.
“박람회 마지막 날엔 우릴 위한 시간을 좀 가질 수 있겠지! 전시품들이 그 날까지 남아 있어줘야 할-”
“숙녀 여러분!”
어디선가 요란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두 포니는 다가오는 마말레이드를 발견했다.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로 기쁘기 그지없군요! 래리티 양, 애플잭 양, 두 분 모두 굉장히 아름다우십니다!”
그는 두 포니와, 그들 뒤의 좌판, 그리고 그들 주위의 모든 풍경을 죽 둘러보았다.
“모든 게 너무도 멋지고 웅장하군요! 한 눈에 보이는 전시품들, 개성만점의 혁신들, 게다가 아름다운 포니들까지! 분명 최고의 박람회가 될 거라고요!”
애플잭은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들을 억누르며 래리티 쪽으로 곁눈질을 했다. 마침 래리티도 애플잭을 향해 곁눈질을 하고 있었고, 둘은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하얀 암말의 능숙한 응대를 신호로 둘은 속내를 감추었다.
“어머, 맞는 말씀이어요, 신사 분! 이런 명망 있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시다니, 저와 제 친구가 정말 큰 빚을 졌지 뭐예요!”
“ㄴ-저도, 어, 동감이에요!”
주황색 포니도 동의를 표했다.
래리티헌티 좀 교양 있고 세련된 단어들도 알려달라캤어야 하는디.
다시 업무를 보러 가기에 앞서, 수말은 활짝 웃으며 두 포니에게 호의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제 3분 안에 박람회가 시작될 겁니다. 다들 준비됐죠? 됐다구요? 잘 됐네요! 이제, 두분 모두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포니들이 해일처럼 몰려올 테니까요!”
그는 하얀색과 주황색의 발굽을 각각 하나씩 움켜쥐었다. 두 포니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생겼다.
“두 분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잘 되기를 빌죠! 이제 개막식에 가봐야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안녕, 우리 숙녀 분들! 다시 볼 때까지, 투들-루~!”
“투들-루~!”
이번엔 둘 모두 자연스레 인사를 받았다. 갈색 수말은 그들의 인사를 뒤로한 채 어딘가로 달려 나갔다.
두 포니는 멀거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서로 눈을 맞췄다.
아스라하게, 하지만 명확하게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애플잭.”
래리티가 말문을 열었다.
“행운을 빌어. 네 사과들은 잘 팔릴 거야. 분명히!”
“고마워.”
애플잭은 능숙한 도시 말투로 답했다.
“너도 행운을 빌어!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자기, 우리 사이잖아. 새삼스레 무슨 소리니.”
유니콘은 자신의 좌판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이따 또 얘기하자꾸나. 그 때까진.......아참, 기억 해. 이상한 사투리 금지!”
제 자리를 찾아 자세를 가다듬는 친구를 보며, 사과수확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 사이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내 말투 어데가 그래 이상하단 말이고?”
-
두 포니의 비즈니스는 갈라 때보단 훨씬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애플잭의 경우가 더 그랬다. 이는 관람객들의 동선을 기준으로 고려해봤을 때, 그녀의 좌판이 제법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래리티의 부티크 좌판은 화려하고 시선을 잡아끌었기에, 관람객들은 그 쪽을 먼저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이 허기를 느끼는 순간, 제일 가까이 있는 것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좌판이었다.
그런 이유로, 애플잭의 앞에는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서 있게 되었다. 어쨌든,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패션-포니들은 쉽게 허기를 느끼곤 하는 법이었다.
애플잭은 좌판 앞에 서 있는 고객들 대다수가 자신과 같은 농군 포니임을 알아차렸다. 초면이지만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 면면들을 보며, 그녀는 도시 말투 따위는 집어치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충동을 억눌렀다. 세련된 도시 말투로 고객들을 응대했고, 사과 관련 물품들을 판매했다.
30kg 들이 레드 딜리셔스Red Delicious 품종 사과 박스를 세 개 째 비우고 나자, 어느새 한나절이 지나 있었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던 애플잭은, 두 작은 포니가 좌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이런!”
두 망아지가 다가오고, 애플잭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신선한 사과들이 있답니다! 지금은 재고가 거의 없지만요. 한 번 시식해보실래요?”
“흠.......”
왼쪽에 서 있던 망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밝은 회색의 어스 포니였고, 카콜charcoal색 직모 갈기를 갖고 있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좌판의 상품들을 죽 훑어보았다.
“여기 프리터 진짜 맛있겠다! 어떻게 생각해, 언니 파이Sissy pie?”
“난 모르게썽.”
황금빛 눈동자의 오른쪽 망아지가 대답했다. 그녀는 남색이었고, 먼지 같은 회색빛의 짧은 갈기를 갖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스 포니였다.
“그보다 난 저 캐러멜 애플이 더 당기는 걸. 하나에 얼마에요?”
“5비트랍니다.”
애플잭은 능숙한 도시 말투로 말했다.
“프리터는 조각당 7비트구요. 하지만 원하신다면.......두 조각에 10비트로 드릴 수도 있지요.”
그녀는 눈을 반쯤 감으며 은근히 웃어보였다. 그러자 두 망아지들도 따라 웃었다.
“좋아요!”
거래가 성사되고, 두 망아지들은 좌판 앞에서 바로 상품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영업에 방해되는 행동이었지만, 애플잭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포니들이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사과를 맛있게 먹어주는 걸 좋아했다.
“음냐냐냠, 이거, 완전 마싰다!”
회색 망아지가 프리터를 탐식하며 외쳤다. 그녀는 급하게 음식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큰 언니 파이한테 좀 가져다 줘야겠어!”
“맞아!”
남색 망아지도 거들었다.
“혹시 핑크 레이디Pink Lady 품종 사과도 있어요? 언니가 정말 좋아할 텐데!”
농군은 히죽히죽 웃으며 친절히 대답했다.
“아까부터 파이 얘기하믄서 왜 핑크 레이디 품종 얘길 안하는지, 거, 기다리다가 답답해 돌아가실 뻔했다 아이가!”
두 망아지의 멍해진 시선이 애플잭에게 꽂혔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녀는 다급히 발굽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저-저-저, 정말 미안해요!”
전에 없던 패닉 상태에 빠진 애플잭은 정신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실수였어요, 실수! 진짜! 사과 공짜로 줄게요! 아니, 여기 이것도-!”
“워-워-워!”
먼지 같은 회색의 포니가 애플잭을 달랬다.
“진정 좀 해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 거니까. 그치, 언니-파이?”
“그러엄.”
남색의 포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가 그 쪽에게 그렇게 큰 의미라면야, 비밀은 지켜드릴게요.”
“그건 그럴 거지만.”
회색의 포니가 말을 이었다.
“스스로한테 솔직해지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이상해.”
그 말이 애플잭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 2주간 그녀는 그 주제에 대해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전 이퀘스트리아 최대의 농업 박람회장에서, 애플잭은 고뇌했다. 전혀 입고 싶지 않았던 몽실몽실 하늘하늘한 가운에 자신을 욱여넣고, 성대를 억지로 조여 가며 도시 말투를 흉내 내는.......
“저기요?”
“괘-괜찮아요?”
애플잭은 고개를 휘적대며 정신을 차렸다.
“어.......네, 그래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리고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이번 박람회는, 제 농장을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요.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우리도 그런 마음 알아요.”
남색의 망아지가 말했다.
“우린 채석장Rock Farm에서 왔어요. 예쁘고 가치 있는 돌멩이는 큰돈을 벌어다주지만, 그런 돌멩이가 어디 많이 있겠나요.”
옆에서 그녀의 자매 망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주황색 포니는 퍼뜩 좌판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좌판 아래서 가방을 꺼내 장밋빛 사과들로 한가득 채웠다.
“여기, 방금 주문하신 핑크 레이디 품종 사과들이에요. 그리고 이건 애플파이. 집에서 드세요.”
두 망아지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런, 받아도 되는 건지-”
“잔말 말고 기냥 받으세요.”
애플잭은 사투리와 도시 말투가 묘하게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고마움이 담긴 시선으로 두 망아지를 바라보았다.
“여러분의 ‘언니-파이’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하세요. 분명 좋아할 거에요.”
망아지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애플잭을 향해 한껏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사과 파이를 등에 이며, 남색의 망아지가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매기 파이Maggie Pie! 이 박람회 진짜 너무 좋다!”
“정말 그래, 잉키 파이Inkie Pie!”
회색의 자매가 장단을 맞추었다. 그녀는 구매한 사과를 안장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핑키가 정말 좋아할 거예요! 고맙습니다, 숙녀 분!”
애플잭은 두 망아지가 마파(馬波) 속에 섞여 사라질 때까지 발굽을 흔들었다. 두 망아지가 부지불식간에 던지고 간 화두로,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술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농군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런 생각은 하등 도움이 안 된데이. 아직 첫째날 뿌이 안됐다 아이가. 판촉에 더 집중해야 한데이. 아까 파이 하나를 서비스루다가 줘뿌렀으니, 새 파이 하나를-
.......
파이?
잠만. 이것 봐라?
“핑크 레이디?”
애플잭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채석장? 잉키? 매기? 핑키?!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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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거니?”
“내 모자를 걸고 맹세컨대, 진짜야. 나중에 포니빌에 돌아가면, 분명히 핑키한테서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참 기이한 일이로구나!”
래리티가 외쳤다.
“설마 이 박람회에서 핑키 파이의 가족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애플잭은 자신의 좌판에서 머리를 식히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영업은 순조로웠다. 1일차 분으로 가져온 재고는 이미 거의 다 처분된 상태였다. 남은 것이라곤 진열용으로 챙겨온 15kg 정도 분량의 갈라스Galas 품종 사과뿐이었다.
슬슬 저녁 무렵이 되었다. 애플잭은 하루가 거의 저물어간다는 사실에 퍽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만큼 힘든 하루였지만, 동시에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돈 주머니가 비트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다들 농군들rock farm’s farmers이니까.”
그녀는 아직도 주변을 돌아다니는 포니들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눈 크게 뜨고 있어. 다음번엔 드레스를 사러 올지도 모를 일이잖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오늘 영업은 어땠니?”
“한 마디로 하자면.......정말 끝내줬단다! 너랑 같이 다시 디자인한 덧신 장화galoshes가 그렇게나 잘 나가게 될 줄은 몰랐어! 추가 주문도 15건 넘게 받았지 뭐니!”
환호하던 유니콘은 몇 초간 기절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눈을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네 갈라Gala용으로 만들었던 드레스도 대히트를 쳤단다! 물론, 그 옷도 커스텀 주문을 엄청나게 받았지. 감히 말하건데, 애플잭. 이대로만 가준다면 내 부티크에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수도 있게 될 거야!”
“그거 잘됐네.”
농군은 고개를 조금 들며 말했다.
“나도 그래. 농장을 수리하고도 비트가 조금 남는다면, 일꾼을 더 고용할 수 있을 거야. 우리 과수원에 큰 도움이 되겠지.”
고개를 끄덕인 뒤, 하얀 암말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와 온몸을 스트레칭 했다.
“오늘 하루 정말 고생했어, 사랑스런 나, 래리티.......이제 슬슬 접고 돌아다녀볼까 하는데, 넌 어쩔거니, 애플잭?”
“찬성이야!”
애플잭은 힘차게 일어서며 대답했다. 몸을 세운 그녀는 매달려 있는 줄을 입으로 당겨, 카운터 꼭대기에 달려 있는 팻말을 CLOSE로 바꾸었다.
“만약 운이 좋다면, 그 쟁기를 살 수도 있겠지!”
유니콘의 뿔에서 빛이 일렁이고, 화려한 옷가지들이 전시된 좌판이 커튼 뒤로 가려졌다.
짐을 챙기고 좌판을 감싸는 작업을 마친 뒤, 두 포니는 늦은 시간까지 회장을 떠나지 않은 관람객들을 피하며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애플잭.”
래리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황색 포니는 자신을 부른 친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단다. 특히 오늘, 그동안 갈고 닦은 도시 말투로 계속 응대를 했잖니.”
푸른빛의 눈동자에 애플잭이 한가득 담겼다. 하얀 얼굴 위로 흡족해하는 미소가 크게 그려졌다.
“게다가 생각해보렴, 아직 우리한텐 이틀이나 더 남아있어! 계속 이 페이스대로만 가면, 내가 장담하는데, 네 앞길은 완전 탄탄대로가 될 거야!”
하지만 농군 포니의 귀는 오히려 아래로 쳐졌다. 회색 망아지가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낸 고 ‘페이스’란 기 싫타. 그치만 우짜겠노, 저 가스나 말이 맞는디. 그기다, 저 아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데이.......
“그래, 이틀 밖에 안 남은 거야.”
그녀는 미묘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틀만 지나면, 이런 말투는 다신 쓸 필요 없겠지.”
새하얀 귀가 쫑긋거렸다.
“어머, 자기. 물론 박람회가 끝나면 다시 평소처럼 말해도 돼. 하지만, 글쎄, 정말 그 소양을 다 없던 걸로 할 거니? 온갖 박람회, 전시회 같은 상류층들의 사교 파티가 이퀘스트리아 곳곳에서 열린단다. 이번 박람회에 당당히 초청 받아 참석함으로서, 우리 같은 포니들도 그런 모임들에 초대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거라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푸른빛의 눈동자가 사파이어처럼 빛났다.
그와는 반대로, AJ의 낯빛은 거무죽죽해졌다.
“어-음.......다른 파티들이라꼬? 이를 테면, 어떤-?”
“마드모아젤mademoiselles!”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애플잭의 말을 잘랐다. 깜짝 놀란 두 포니는 펄쩍 뛰어오르며 주위를 두리번댔다.
마말레이드는 부리나케 발굽을 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떠셨나요? 두 분의 사업에 모두 응당한 행운이 따라줬기를 바래요!”
“어-어머! 물론 그랬죠, 마말레이드 씨!”
래리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세련된 말투로 부드럽게 말했다.
“요클라호마의 포니들은 정말 고급스런 취향을 갖고 있더군요. 애플잭과 제가 함께 디자인한 옷들이, 설마하니 이 정도로 대히트를 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멋지군요!”
수말은 한껏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어스 포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은 어떤가요, 숙녀 분. 사과 제품들은 많이 파셨는지요?”
“그-그럼요!”
애플잭은 놀랐던 마음을 추스르며 답했다.
“그랜드 갤로핑 갈라 때보다도 훨씬 나았어요. 이번 박람회에서의 성과로, 우리 농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발언은 마말레이드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애플잭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크고 밝은 웃음을 선사했다.
“그게 바로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랍니다, 애플잭 양. 당신은 정말 완벽한 포니에요! 대농장을 경영하는 존경할만한 시민이라구요! 당신이야말로 제가 찾던 그 포니입니다. 자, 빨리 이리 오세요!”
말을 마친 마말레이드는 어딘가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난폭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폭주에 관람객들이 왼쪽 오른쪽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에 남겨진 두 암말은 몇 초간 두 눈만 끔뻑대다가, 황급히 그를 쫓았다.
“마말레이드 씨!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래리티가 큰 소리로 물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입고 있는 드레스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애를 쓰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20분 후에 농업과 소비자 기반의 관계에 관한 회합이 열려요! 거기서 개막 연설을 해줄 포니가 필요해요!”
마말레이드가 다급히 대답했다.
“원래 사전에 정해진 연사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그 분이 시간에 맞춰 올 수가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그 불행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애플잭 양 생각이 났습니다! 교양 있고 세련되면서도, 농업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계시잖아요!”
그 ‘교양 있고 세련된’ 농군은, 드레스가 망가지지 않게 하면서 달리는 데에 이미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말레이드의 말은 그녀에게 있어 불타는 건초 창고에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과도 같았다.
“아니, 지금 지-아니, 저더러 연설을 하라꼬요?! 연설을?!”
애플잭은 매인해튼과 애플루사가 섞인 희한한 말투로 꽥 소리쳤다.
“그래요! 별로 길진 않을 겁니다. 그냥, 자기소개 한 번 해주시고, 농장 얘기 좀 해주시고, 박람회 첫째 날이 어땠는지 얘기해주시면 됩니다! 그냥 솔직하게만 말해주세요!”
래리티는 옆에서 달리고 있는 친구에게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응원은 전해지지 못했다.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탓에, 농군의 머릿속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그저 멀거니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현재의 그녀에겐 벅찬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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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일 분 남았대! 행운을 빌어, 자기!”
“그-그-그치만!”
애플잭은 떨리는 입술로 웅얼대며 떠밀리듯이 어두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직 조명조차 켜지지 않았음에도, 관중석에 한가득 들어차있는 포니들이 보였다.
주황색 발굽이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떨렸다. 관객들이 조용히 술렁대는 소리가 그녀에겐 거대한 함성처럼 들렸다.
초록빛 눈동자가 무대의 구석을 향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곳엔 래리티와 마말레이드가 서 있었다. 그 중 래리티는 응원과 기대에 찬 열렬한 시선을 친구에게 보내고 있었다.
“기억하렴!”
유니콘이 속삭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네 말투!”
그러거나 말거나, 애플잭은 무대 가운데로 가는 그 순간에도 마른 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무대 정중앙에는 연단이 있었다. 정말 내키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고분고분하게, 그녀는 연단 위로 올라섰다.
어느 샌가 그녀는 연단에 놓인 연사용 탁자 위에 앞발굽을 올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켜졌고, 주황색 어스 포니는 눈부신 빛줄기의 폭포에 감싸였다. 드레스에 장식된 왕방울만한 진주들이 반짝였다.
청중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이따금씩 감탄어린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 어딘가에서, 래리티의 만족스런 한숨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아-아름다운 밤입니다, 신사숙녀 포니 여러분!”
애플잭은 힘겹게 인사말을 내뱉었다. 무수한 발굽 박수 소리와 함께 또 다른 환호성의 파도가 몰아쳤다.
“보.......본래 연사를 해주기로 하셨던 주니퍼 잼스Juniper Jamms 씨가, 안타깝게도 올해의 전 이퀘스트리아 농업 박람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녀는 청중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을 했다. 그러자 머릿속을 채우던 심장 박동 소리가 잦아들었고, 마음이 한결 진정되었다.
“영광스럽게도, 마말레이드 씨에게 연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은 관계로, 제가 개막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우선 제 소개를 먼저 하고자 합니다.”
한 번의 가벼운 심호흡이 있었다.
“제 이름은 애플잭입니다.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농장을 경영하고 있지요.”
그 말에 ‘옳소!’와 같은 몇 마디 응원이 관중석에 터져 나왔다.
“여러분 모두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못 들어보셨다구요? 글쎄요, 혹시 오늘 구매하신 품목 중에 사과 관련 물품이 있으신 분들은, 그걸 어디서 샀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어때요, 이제 기억나시나요?”
대부분의 관중들이 감탄어린 환호성을 내뱉었다. 애플잭의 얼굴에 자신 있는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그녀는 완전히 긴장을 떨쳐낸 상태였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자 마음이, 구체적으론 혀가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평소대로 말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입술이 순간적으로, 상류층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내뱉을 때처럼 움직였다.
환호성이 잦아들길 기다리며, 애플잭은 자신의 오른쪽 뒷발굽으로 왼쪽 뒷발굽을 꾹 밟았다.
어으,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이데이. 탁주 한사바리 시원허게 들이키믄 딱이겠구만.
“다-다들 좋아해주신 것 같군요. 성원에 감사드려요.”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설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그녀는 도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사과를 맛있게 즐겨주시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기뻤어요. 저희 애플 일족들은 대대로 사과 농장을 일구어 왔기에, 여러분들은 이퀘스트리아 곳곳에서 저희 가족들의 사과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중에서도 특히, 포니빌 바로 옆에 있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는, 애플 일족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나가고 있는 곳이지요.”
연사이자 농군은 눈을 감고 사과 농장을 떠올렸다.
“지난 세월동안, 저흰 저희 선조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과를 길러왔어요. 애정 어린 돌봄과, 역사 속에서 증명된 방식, 책임 있는 행동들, 무엇보다도, 견실하고 고된, 정.......직한.......노동으로요.”
애플잭은 눈을 떴다. 초록빛 눈동자가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농군이 있었다. 하늘하늘한 프릴 드레스를 입고, 하늘하늘한 말투로 말하고, 마찬가지로 하늘하늘하게 차려입은 포니들 앞에 서 있는, 농군.
전 이퀘스트리아 ‘농업’ 박람회에서.
주황색 눈꺼풀이 씰룩거렸다.
이건 멍청한 짓거리야.
아니, 그 이상의 짓이지.
이건. 확실히.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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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서는, 먼지 같은 회색의 망아지가 몸 속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전율은 삽시간에 그녀의 온몸을 덮쳤고, 목소리까지 떨리게 만들었다.
“어-----언---니이---파—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대며 말을 이었다.
“뭐-어-언가---일---이---일어나---아알---것 가아아—앝---아!”
잉키 파이는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뜬 채 자매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진짜야, 매기? 난 아직 아무 느낌도 안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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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빌의 슈가큐브코너에서는, 가게 최고의 종업원이 머랭 쿠키가 담긴 선반을 성실한 보라색 드래곤에게 넘겨주려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선반이 예고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어스 포니를 바라보며,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패닉일색이 되었다.
“핑키!”
스파이크가 경악하며 외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데?! 설마 트와일라잇한테?!”
“나-아-아아-도---오 모올----라아으아아!”
핑크색 포니가 더듬대며 대답했다.
“그-으으—치이-----마아아안, 이—거어—언-부—운—며엉-해애애! 트-트으-와이—일라이-잇은, 아아-니이이---야!”
“뭐야, 그럼 누군데?!”
드래곤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며 캐물었다.
“래리티? 레인보우 대시? 아-아님 플러터샤이?! 설마 플러터샤이가 폭-?!”
“애애애---프, 프---으을—재—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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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빌과 클라우즈데일 사이 어딘가에 있는 채석장에서는, 중년의 어스 포니 부부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씩 조용한 한숨을 내쉬며, 지금 즐기고 있는 평화와 고요에 감사를 보내곤 했다.
키 큰 갈색의 수말은 모자를 벗으며 눈을 감았다.
“당신도 알겠지만.......나는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 같은 세상과 잘 어울리는 포니는 아니지.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집을 떠나서 즐길 만한 오락거리를 제공해준 것도 이 세상이니, 그 부분에 대해선 고마워해야겠어.”
“나도 그래.”
회색 암말이 답했다. 그녀는 양말의 구멍을 기우느라 바쁘게 발굽을 놀리고 있었다.
“잉키랑 매기는 거기서도 정신없이 쏘다니고 있겠지.”
부부는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걔들은 늘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지. 핑키가 큐티마크를 얻게 된 후로 줄곧 그랬고.......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오. 만약 걔들이 계속 여기서 지내길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면 핑키를 따라서 포니빌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말이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핑키한테 한 번 가봐야겠어.”
파이 부인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당신도 알지? 포니빌은 괜찮은 곳이잖아. 난 거기 가보기도 했고. 애플 가문의 농장에 들러도 되지. 그 늙은 스미스 부인이 아직도-”
그 순간, 안락의자의 흔들거림이 멈추었다.
파이 부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남편 파이는 아내의 행동을 자세히 살폈다. 아내의 꼬리가 무언가에 잡아당겨지듯 뻣뻣해지고, 그 전율이 아내의 등줄기를 타고 네 다리로 퍼져나가는 모습까지.
전율의 흐름은 암말의 머리 꼭대기에 이르러, 그녀에게 즉흥적인 춤동작 같을 발작을 선사하고서야 끝이 났다.
“거, 이번엔 누구요?”
수말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모오—오오—르겠—네-에에요.”
그녀는 떨리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하아—아—아아지이이---마아-안, 요오—오크—클라아---호오—마아아-라-느으은—건 호—아악—시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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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잠깐만.”
잉키가 말했다. 슬슬 감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제 자매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느으으---끼, 끼이이—이임---오---온드아아아-----”
“너---어어언—오—애애애---매애애---앤나아아알 그으으으러어어---케에에 하아안 바아악자아---아아씨이---익 느으읒—어어?”
매기는 진동의 와중에도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
애플잭은 시선을 낮추었다. 이제 결심이 섰다.
그 다음엔 양 옆을 둘러보며, 래리티와 시선을 맞추었다.
“미안하구나, 우리 귀염둥이.”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유니콘을 바라보며, 완벽한 매인해튼 말투로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관중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치만, 이 빌어묵을 연극놀음은 여까지만 하고 집어치울란다!!”
경악과 놀라움의 파문이 관중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패닉에 빠진 하얀 유니콘은 발굽을 미간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다만 마말레이드는, 어째선지 별다른 반응 없이 침묵을 지키며 사과수확꾼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는 거, 멋들어지게 말할 수 있다는 거 하나땜시 여 박람회에 초대받았심더! 인자 까놓고 말할라카는디, 잘들 들으쇼! 그런 목소린, 지 께 아닌기라! 지는 이런 목소리로 말한단 말요! 지금, 지금 이게 진정한 저 자신임더! 다들, 우리 애플 가족들이 어떻게 그래 좋은 사과를 수확하는 지 알고 싶습니꺼? 암요, 알려드리지예! 지랑 지 오라비인 매킨토시랑 사과나무 밭에 가가꼬, 나무들을, 하나하나 다 발로 차삡니더! 멋지고 세련된 방식이란 건 없심더! 그 지꺼리 하고 나믄, 발굽이 흙먼지를 덮어써가꼬 시커매집니더! 그치만예, 지는 그기 좋심더! 왜냐믄, 그런 기 진정한 농부다 아입니꺼! 이 박람회도, 그런 믄지 투성이의 투박한 농부들 위한 기 아입니꺼! 그런데서 지가 어째 그 하늘하늘한 매인해튼 말투로 계속 지껄여댈 수 있겠심꺼? 예? 보소! 지도 음청 옛날엔 교양있고 세련된 척을 좀 해볼라캤었는디, 겪어보이 알겠드라고예. 그런 건 지가 아니었심더! 지금도 아니고예!”
쥐죽은 듯 고요해진 관중들에 대고, 농군은 열변을 토해냈다.
“보소! 다들 똑똑히 보이소! 지는 하늘하늘한 말투 써제끼는 세련된 상류층이 아임더! 그네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도 않심더! 자, 인자 날 여서 내쫓으이소! 얼렁 와서, 내가 진짜로 신경 쓰고 돌봐야 하는 흙바닥에 낼 내팽개쳐놓으소! 그래도 지는 더 이상은 거짓말은 몬하겠심더! 진짜로 나답게, 나답게 말할 겁니더!”
말을 마친 농군은 숨을 헐떡였다. 휘몰아치던 정직한 일꾼의 분노가 메아리로 남아 회장을 울렸다. 그녀는 초록빛 눈동자를 겨우 움직이며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래리티를 향해, 가슴이 지끈거리는 걸 참으며 눈길을 돌렸다. 마말레이드의 낯빛은 여전히 평온해서,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거, 이만하믄 됐제.
애플잭은 스스로를 달래듯 속으로 생각했다.
인자 남은 이틀동안은 여 못 인겠구만. 그치만 괘안타. 오늘 번 것만 혀도 농장 고치기엔 충분하다 아이가. 이런 박람회 같은 곳엔 다신 초대 몬 받을지도 모른다만은.......그래도 어째저째 살아갈 순 있겄제. 미안케 됐다, 래리티. 그치만 더 이상 그짓말은 몬하겠다.
주황색 암말은 침묵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외로이 서 있었다. 이제 관중의 반응을 기다릴 차례였다.
.
.
.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나, 또 하나, 포니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외치기 시작했다.
“.......옳소!”
“HOOOOOOOOOOO-WHEE!!!”
누군가 긴 환성을 지른 뒤 소리쳤다.
“으따 마, 은제쯤 누가 나서서 저런 말 좀 해줄까 싶었다! 그동안 답답해 뒤져버리는 줄 알았구마!”
뒤이어 온갖 웅성거림이 돌아왔다. 그것은 이전의 것과는 달리, 각양각색의 운율과 어조로 점철되어 있었다.
래리티의 마음속에 차있던 패닉이 놀라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세련되고 교양 있는 말투로 말하던 포니들이 지금은 죄다 투박하고 거친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어미가 길고 두터운 음색의 남쪽 사투리로 온 사방이 시끌벅적해졌다. 포니들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서로 긴장을 풀고 즐거이 얼싸안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마침내 본래의 말투대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는 분위기가 삽시간에 박람회장을 뒤덮었다.
애플잭은,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곤 조금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연사용 탁자 앞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크게 떠진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크게 벌어진 입이 있었다. 그녀는 제 오른편으로 두 포니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애플잭?”
이름을 불린 포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친구가 옆에 서 있었다. 그 친구, 유니콘의 얼굴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놀라움, 자랑스러움, 즐거움, 그리고.......슬픔까지도.
애플잭은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정말.......아름다운 연설이었어, 애플잭.”
앞발굽을 농군의 어깨에 올리며, 래리티는 다시 한 번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미안해. 정말 몰랐어, 난.......”
그녀는 관중석을 돌아보았다. 각양각색의 포니들 사이에서 이얏호오!Yee-haw나 아이코!Whoops따위의, 일견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러나 즐겁고 자유로운 환호성들이 들려왔다.
“난.......정말로.......몰랐어.......”
그녀는 다시 친구를 바라보았다.
“내가.......너한테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정말.......무슨 수로 너한테 용서를 구할 지.......”
주황색 포니의 눈꼬리에서 예고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발굽을 들어 눈가를 훔치곤, 사슬처럼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를 벗어 래리티에게 건넸다. 뒤이어 갈기를 풀어헤치고, 드레스에선 하늘하늘한 프릴들을 잡아뗐다.
고개를 한 번 흔들자, 금발의 갈기가 평소처럼 주황색 등판 위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애플잭은 하얀 암말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내는, 킁, 모자를 다시 쓰고 싶데이.......”
문득, 유니콘은 자신도 울먹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다가가 다정히 코를 맞댔다.
“그럼, 자기. 일단 모자부터 찾으러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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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왁자한 웃음과 온갖 억양의 사투리들로 시끌벅적했다. 참석자들의 거침없는 남부 사투리는 웨이터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 몇 년간 시치미 뚝 떼고 세련된 말투를 구사하던 참석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걸쭉한 남부 사투리를 쏘아대고 있으니, 그들로서도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은 일이었기에, 대응을 함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투박한 사투리에 노골적인 분노가 담겨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사투리를 쓰든 말든, 그들이 대접해야 하는 손님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망고 마말레이드와 그의 일행들이 손님일 땐 더욱 그랬다. 더구나 그들은 식당 구석의 한적한 곳에 있는 별실까지 빌려서 들어 앉아 있는 채였다. 건초 튀김과 콩 버거들이 끊임없이 별실로 날라졌다.
끔찍하게도 바쁘고 정신없던 날이었다. 별실의 일행은 제각각 편안히 몸을 누이곤, 식사가 차려지기 전까지 잠시 피로를 녹였다.
“어으으, 좋다!”
애플잭은 초콜릿 오트 맥주Chocolate oat malt를 들이키곤 상쾌한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배기 포니 음식이란 기 이런 거제! 어으, 인자 쫌 살긋다!”
그녀는 시원스레 갈기를 흔들었다. 평소 즐겨 쓰던 카우걸 모자가 머리 위에 얌전히 올라 앉아 있었다. 갈기 끄트머리 역시 평소대로 소박한 끈으로 묶여 있었다.
물론, 드레스는 입고 있지 않았다.
“하도 어릴 때였어가꼬 잊어묵고 있었다 아이가! 교양 있고 세련된 포니들은 양껏 먹지도 몬하고 산다는 거 말이제!”
“정말 그런 것 같아.”
래리티는 넷째 잔까지 비워내는 애플잭을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실감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아마 포니마다 다른 거라고 봐.”
“포바포 인거죠.”
유니콘의 왼편에서 어린 망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엔 매기 파이와 그녀의 자매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건초 프라이를 합쳐서 크게 쌓아놓은 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집어먹고 있었다.
“핑키 언니는요, 채석장에 있을 땐, 그니까 아직 큐티마크를 얻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머핀 네 개도 먹지 않을 정도의 소식가였어요. 그런데 큐티마크를 얻고 나더니, 갑자기 입맛이 도는지 엄청나게 먹어 치우더라고요! 그게 언니가 채석장을 떠난 이유 중 하나기도 하죠.”
“맞아요. 엄청 많은 이유 중 하나죠.”
잉키는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맞장구를 쳤다.
“그건 그렇고, 지금 중요한 건 이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쵸?”
애플잭의 옆에 앉아있던 마말레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람회에 온 아들은.......내 같았던 거제.”
주황색 포니는 좌중의 시선을 받으며 조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선 여전히 온갖 생각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평소 말투대로 말했다간 쫓겨날 지도 모른다꼬, 다들 글케 생각했겄제. 서로 눈치나 살피꼬, 암 말도 못 꺼내고! 그러다 보이 이런 분위기가 쭉 이어져삐고.......그러다 발굽 쓸 새조차 없게 되뿐 거 아이긋나.”
그녀는 갈색 수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영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참 눈치가 없었던 것 같아.”
래리티는 레몬티 한 모금을 홀짝인 뒤, 자기성찰적인 투로 말했다.
“내 말은, 난 포니들이 격식 있는 분위기와 말투를.......억지로 가장(假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단 거야. 그래, 전부 인정해. 난.......”
하얀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부끄러움과 약간의 수치로 인한 것이었다. 평소 그녀는 세련된 도시 포니의 방식은 언제 어디서나 주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농업 박람회가 열리는 이 축산업의 마을에선, 세련되었다든가 교양이 있다든가 하는 문제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이 곳에서 그녀는 소수파minority일 뿐이었다.
“얼욱, 음냠냠, 올 게 왔다, 음음, 시픈 으임이긴, 해요.”
잉키가 입 안 가득 건초 프라이를 씹으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애플잭 양의 좌판에 오기 전에 두 곳의 좌판에 들렀었는데, 거기 주인장 분들도 전부 다 발음 실수들을 하셨었거든요.”
사과수확꾼은 두 채석장 일꾼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내가 첨이 아녔다꼬?! 거 진작 말 쫌 해주지 않고!”
“그게, 저희도 사정이 있었다구요.”
회색의 망아지가 답했다.
“다들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사정하셨단 말예요. 애플잭 양이 그랬던 것처럼요.”
애플잭은 얼굴을 붉히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고.......그래, 그럴만두 하긴 허다. 내도 그랬제. 무서웠던 기라.......”
그녀는 옆에서 어색하게 자신을 찌르는 발굽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하얀 유니콘이 묘하게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옆에 붙어오고 있었다.
“애플잭, 정말, 정말 미안해. 널 도우려던 내 시도가, 너한테 그렇게 큰 부담을 지울 줄은 정말 몰랐어. 너에게 그런 류의 두려움을 심어줄 의도는 전혀 없었단다. 친구에게 맞지 않는 걸 억지로 욱여넣으려고 했다니, 이건 정말 내 시야가 좁았던 탓이야. 난.......난 사실.......”
푸른 눈동자의 촉촉해진 시선이 끝내 아래로 떨구어졌다.
“난, 좀 기뻤거든. 같이 ‘상류층’ 모임 같은 데에 같이 나갈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말야.......미안해. 용서해줄래?”
애플잭은 미소를 지으며 래리티의 볼에 코를 부볐다.
“용서고 뭐고 할 끼 어딨노, 요 귀염둥이 가스나야. 닌 기냥 낼 도울라꼬 그랬던 거 아이가. 걍 잊어무라. 전에 내도 말했었고, 니도 말했었다시피, 우리 사이 아이가.”
시무룩해있던 하얀 유니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주황색 어스 포니도 마주 웃었다.
“글킨 해도, 가끔은, 니헌티 정말 필요하다믄야.......그 하늘하늘한 드레스 같은 거 못 입어줄 것도 없겄제. 그럼 되긋나?”
애플잭은 발굽 한 쪽을 내밀며 물었다. 래리티는 그 발굽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나도 약속할게.”
디자이너가 응답했다.
“이제 나도 네 사투리 갖고 뭐라 하지 않을 거야. 사투리라기 보단, 글쎄, 뭐라 해야 하나.......”
애플잭은 모자를 뒤로 올려 쓰며 키득댔다.
“거, 인자 기냥 사투리라 캐라. 내랑 여 있는 포니들헌티야 그기 표준어지만서두.”
일행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농군과 디자이너는 살짝 홍조를 띤 채 발굽을 맞부딪혔다.
“그래서.......”
파이 자매 중 회색인 쪽이 화제를 상기시켰다.
“올해 EACE는 예정대로 이번 주말 내내 계속 개최되는 거겠죠, 그쵸?”
마말레이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 좌판도 그대로인 거 맞심꺼?”
애플잭은 희망에 찬 얼굴로 물었다.
마말레이드는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세련되지 않은 말투로 말해도요?”
래리티는 반 쯤 호기심으로 채워진 농담을 던졌다.
마말레이드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애플잭이 일으킨 소란 이후로,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이이이이----엽EEeeeee-YUP.”
그것은 빅 맥킨토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찐득한 남부 사투리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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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imfiction.net/story/749/1/ah-aint-got-no-ack-cent/ah-aint-got-no-ack-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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